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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 이후 (눅24:36-49)

본문

부활 후 주님은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인생은 새롭게 변화되었다.
1.개 요 눅24장은 부활하신 메시야를 마났던 많은 사람들의 체험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상심하여 있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에는 기쁨이 넘쳤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예수를 만난자들의 인생이 변화 되었다. 보다 더 질높은 삶으로 수준이 향상되었다. 지금도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이 변하고 더욱 새로워 진다.
1.몇년전 미국에서는 “그날 이후”라는 제목의 공상영화가 상영됐던적이 있었다. 핵전쟁을 가상하여 만든 영화다. 그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핵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핵을 어떻게 대해야할 것인가를 일깨워 주었다.
2.우리의 인생에도 “그날 그 이후”의 체험이 필요하다. 부활하신 주님은 친히 제자들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 주셨다. 예수의 부활을 “그 날”로 했을 때, 제자들의 인생에서 그 이후의 삶은 엄청난 변화가 주어졌다. 우리들은 해마다 부활절을 지켜왔다. 감사헌금을 드렸고, 어린이들을 위해서 계란을 삶거나 각종 모양을 만들어 주고있다. 우리의 기억에 자라잡고 있는 예수의 부활은 이정도이거나 이것이 전부다. “그날 그 이후”의 체험이 없었다. 그러나 금년은 더 이상 그렇게 넘기지 말자.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그날 그 이후”의 체험을 하자.
3.과연 제자들은 부활의 그날 그 이후 도대체 무엇을 체험했단 말인가 그리고 그날 그 이후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가 본문을 통하여 크게 둘로 나누어 살펴보자. .제자들은 어떠 했는가(36-43).
A.한곳에 모여있었다(34-36).
1.그들은 본래 함께하는 공동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언제나 주님과 더불어 동행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이후 각기 흩어졌으나 다시 모였다.
2.흩어졌던 이들이 다시모이게 된것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때문 이었다. 믿음을 갖고 모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결국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 이들을 한 장소에 모이도록 인도했다.
3.이들은 갖가지 소문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했다. 그들 중에는 엠마오길에서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자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마치 꿈을꾸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B.주님을 만났다(36-41).
1.이들이 주님계신 장소를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특정한 장소-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비밀장소에 모여있던 그들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다. 이들은 의기 소침해 있었다. 풀이죽어 있었다. 앞으로 닥칠 박해때문에-.이것이 교권주의자들의 다음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들이 있던 장소는 은밀할 수 밖에 없었다.
2.주님은 정상적인몸 그대로 제자들을 찾아 오셨다. 지금 제자들은 그들이 늘 알고있던 주님을 만난 것이다. 전혀 이상하지 않은 주님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유령”인줄 알았다. 갈보리언덕에서 죽었던 예수, 십자가 위에서 양손과 양발에 못박히고 발가벗은 모습으로 죽은 처절한 모습의 예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3.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시는 손과 발을 보았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의 손과 발 이었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문제가 있었다. 너무 기뻐서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음은 노력으로 안된다. 배움만으로도 안된다. 하나님이 믿어지는 마음을 주셔야 한다. 불신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에 한하여 믿으려 든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발전이 없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C.음식을 드렸다(42-43).
1.도저히 소문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직접 봐야 믿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직접 봤어도 믿을 수 없었다. 유령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안단 말인가 혹시 유령일지 말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야 예수님이 살아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처형당한 후가 아니던가 다시 살아날 능력이 있다면 애당초 죽음을 초월하거나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 말이다.
2.유령이 아님을 증명해준다면 믿어주겠다.
그런데 다행히도 주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아셨다. 이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아셨다. 이들의 생각은 주님이 음식을 잡수신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부활이요, 유령이 아닌 실존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주님 죄송하지만 진짜 살아계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그래 무슨 증거를 원하느냐 “예 이 음식을 먹어보십시오!
그렇다면 틀림없이 믿겠습니다” 우리의 속을 헤아리시는 주님이 어찌 이들의 생각을 모르시겠는가
3.주님에게 음식을 대접하자. 맛있는 음식을 드리자.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드리는가 주님! 시장하시지요 이것 잡수십시오!가 아니지 않는가 나는 당신을 믿을 수가 없단 말이요. 그러니 내가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 주시오.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이 음식을 잡숴보시요.-.지독한 불신앙이다.
D.지금 백지위에 나의 자화상을 그리자.
1.주님은 누구신가 도대체 예수와 나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내가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2.부활은 가능한가 정말 의심없이 부활을 믿는가 나는 나의 상식이상을 인정하는가 나의 상식이상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3.내가 말씀의 권위 앞에 굴복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너무 기뻐서 일까 아니면 슬퍼서 일까 전적으로 의뢰하지 못함은 말씀의 권위 앞에 굴복하지 않음이요, 열매맺지 못함은 의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자는 보여주어도 믿지 못한다. 만져도 믿지 못한다. 의뢰해야 한다.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4.주님은 나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신다. 왜일까 배고파서일까 아니다. 주님은 40일을 금식하셨던 분이다. 배가고파 먹을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나의 불신앙 때문에 잡수실 것을 필요로 하신다. 의심에 가득찬 나의 불신앙을 청산해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드리자. 무슨 음식을 드릴 것인가 혹시 아까와서, 사렙다 과부처럼 마지막 사자밥만들 것밖에 없다고 거절할 것인가 그래도 좋다. 엘리야의 말처럼 음식을 만들어 먼저 조금만 떼어서 주님께 드려라. 당신의 인생이 변화될 것이다. 당신은 전혀 새로운 사람이될 수 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된다. 자신 혼자의 힘으로는 낙심과 좌절과 의심과 불신앙밖에는 없다. 마지막은 영원한 사망뿐이다. 주님은 당신을 살리기를 원하신다. 살아계실 때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오병이어를 주셨다. 그러나 그음식은 제자들의 육신은 살렸지만 죽어있는 영혼은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나에게 음식을 달라고 하신다. 내가 드린 음식으로 나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깝다고 거절하지 말자. 거절할 것이 따로 있다. 아무리 아까와도 주님이 명하실때는 아낌없이 망설이지 말고 드려라. 이와 같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하여 불신앙적인 태도를 견지한 가운데 주님의 부활을 반신반의한 반면, . 주님은 어떻게 하셨나(44-49)
A.제자들에게 부활을 증명하였다.
1.제자들의 상황을 아셨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셨다. 결코 책망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필요한 우선순위에 따라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기위한 대책을 세우셨다. 예수님자신과 상처를 보여 주셨다. 유령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셨다.
2.메시야에 대한 구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모세의 율법, 선지자들의 글, 시편은 예수님 당시의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세 부분이다. 그가 메시야이며 고난을 받아야 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보여주었다.
B.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47-49).
1.사실 이들은 하자가 많은 사람들이다. 엄격히 말하면 자격이 없다고 봐야한다. 삼년여의 긴 세월동안 함께했던 주님을 떠났던 자들이며, 부활하여 자신들 앞에서 계신 주님 조차도 믿지 못하던자들이 아닌가
2.예수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증인은 본대로 말하면 된다. 아는 대로, 본대로 말하는 것이 증인의 임무지만 결코 이 일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엉뚱한 말을 한다든지, 불리한 증언을 해서는 오히려 역효과이기 때문이다.
3.제자들은 주님을 못 믿었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믿어주셨다. 그리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귀한 사명까지 더해 주셨다.
4.그러나 이 일은 부탁만으로는 성취되지 않는다. 이 일을 위해선 꼭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었다. 주님의 영을 받게해주시마고 약속해 주셨다. 그리고 방법을 일러주셨다.
C.지금 주님은 나를 필요로 하신다.
1.실패한 제자들을 찾아주신 주님은 나의 현재를 문제삼지 않는다. 나를 부르실 때는 이미 나에 대한 모든 조사를 완료하신 이후라는 사실이다. 결코 주님은 나에게 무리하거나 큰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2.주님은 내 힘으로 주의일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주님이 제자를 찾아가셨지 결코 제자들이 주님을 찾아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무슨 까닭일까 그들의 힘,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신 것이다. “네 힘으로 해봤더니 어떠하드냐 일이 잘 되드냐 고기가 많이 잡혔느냐” 바로 이런 말씀이다. 자 그러니 이제 부터는 내가 너희를 움직여 주마! 그러니 너는 나에게 맡기기만 해라! 현재의 내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 드리기만 하면 된다. 드린다는 말은 의탁하라는 말이다. 의탁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3.믿음의 은사를 받지 못했던 제자들이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다. 제한돼 있다. 그러나 믿음은 제한이 없다. 주님에 대한 지식만을 가졌던 제자들의 한계는 십자가에서 종료돼었다. 지식은 죽음까지만 인정한다. 지식은 결코 부활을 가르키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호기심만을 허락할 뿐이다. 그래서 호기심많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덤에 구경갔던 것이다. 주님은 이 사실을 아신다. 바로 이것이 내가 주님께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근거요 원인이다.
4.그래서 우리는 지식만으로는 살 수 없고 지식만으로는 주님께 영광돌릴 수 없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힘, 성령님이 필요하다. 능력 받는 조건은 “기다리는 것”이다. 성령님은 기다리는 자만이 받는다. 기다리되 받을 때까지 기다리자. 주님은 내가 능력받기를 기다리신다. 받지 못함은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릎꿇고 기다리자. 욕심을 포기하고 기다리자. 결론
1.부활 그 이후의 사건들-믿음의 은사를받지 못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음에도 예수를 믿지 못했다. 실감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드린 음식드시는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믿었다. 즉,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이 드린 음식이 주님을 믿게하는 촉매가 되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음식은 보잘것없는 생선 한토막 이었지만 3년동안 배웠던 지식을 능가했다. 결국 믿음의 은사가 동반되지 못한 지식은 믿음으로 드린 생선 한토막만도 못하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깨달았다.
2.주님은 길이 참아주신다. 내가 자포자기 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신다. 그리고 스스로 인정하도록 하신다. 인본주의의 결국이 어떠함을 가르쳐주신다. 자신의 힘으로하는 것은 모두 인본주의다. 주님은 인본주의의 허구를 가르쳐 주셨다.
3.인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오직 성령님이다. 이 성령님은 주님이 보내주셔야 우리의 것이 된다. 주님은 “부활 그 이후”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이 성령님은 기다리는 자만이 받는다. 믿음이 없이는 기다리지 못한다. 믿지 못할 이유는 없다. 주님이 나에게 찾아 오셨기 때문이다. 모습을 보여 주셨고 더 확실히 믿게하려고 음식을 달라고 하신다. 드려라. 드리는 자만이 확실히 믿는다. 그리고 성령님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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