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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다 (눅24:1-12)

본문

오늘은 우리에게 최고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식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복된 날입니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유일한 빛이 되십니다.
첫째, 태양은 온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하늘의 태양이 온 세상을 밝게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의 빛을 주신, 광명한 하늘의 빛을 주신 복된 사건입니다.
둘째, 태양은 영양분을 공급하여 줍니다. 모든 생명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받습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살아 있는 생명은 모두 태양의 덕택입니다. 우리 성도는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힘을 얻고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의 사랑이 ㅇ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의 열심히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의 선교와 구제와 봉사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우리의 예배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를 섬기고 사랑하며 감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셋째,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움직이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같은 아홉 개의 행성이 있습니다. 또 행성의 주위에는 위성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에는 달이라는 위성이 있습니다. 토성과 목성 같은 행성 주위에도 아주 많은 위성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으로 다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66권도 전부 부활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느것 하나도 부활을 벗어나면 어두움과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부활은 우리 모든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태양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나름대로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부산에 가면 부산에서 자랑하는 것이 있고, 광주에 가면 광주에서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워싱턴에 가면 워신턴에서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악관이라든지, 케네디의 무덤이라든지, 링컨 기념관이라든지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또 뉴욕에 가보면 뉴옥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리라든지, 자유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연을 자랑합니다. 무덤을 자랑합니다. 사람을 자랑합니다. 빌딩을 자랑합니다. 어떤 제도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자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첫째도둘째도셋째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이 유효하게 되고,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이 가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힘을 가진 권력자가 생명을 끊어버리면 모든 것이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권력자의 영광이 끊어지면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도 함께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알렉산더가 죽고 나니 그의 나라도 끝나버렸습니다. 우리 나라도 보십시오. 한번 총소리가 나니까 그를 따르던 분들이 모두 함께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디든지 마찬가지입니다. 히틀러도 나폴레옹도 그의 생명이 끝나니 그를 따르던 세력들도 다 함께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만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믿지 아니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첫째, 그중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지키는 주일입니다. 주일이 왜 생겼습니까 주일이 어느 나라에서 시작되었습니까 누가 만든 것입니까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주일 아침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토요일에 지키던 안식일이 주일로 옮겨진 것입니다. 지금 전세계에서 주일을 안 지키는 나라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든 난 믿든 다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날은 평안의 날이요, 기쁨의 날이요, 온 인류에게 최고의 날입니다. 안식교아 유대교 이외에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나라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만들어진 주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안 믿는 사람에게도 휴식을 주는 안식일인 줄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가 온 인류에게 사랑이 되고,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표현할 때 십자가로 표현했습니다. 십자가는 로마 제국 이전부터 사람을 죽이는 형틀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는 오히려 살리는 것을 상징하게 됩니다. 국제적십자를 의미하는 붉은 십자 표시도 사람을 살리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전쟁 중에 있는, 기근 가운데 있는, 환난 가운데 있는 곳은 어디라도 적십자 표시를 보이면 그냥 통과시켜 줍니다. 육을 살리는 것은 십자가 표시를 합니다. 엠불런스나 119구조대 같은 데에는 십자가를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과 연결되고, 구원과 연결되고, 소망과 연결된 것입니다. 요사이는 믿든지 안 믿든지 십자가를 귀히 여기고 온 세계가 십자가 깃발을 펄럭이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모든 역사가 여기에 맞추어 생겨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영원히 돌아가셨다고 하면 이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부활은 중요한 서건이 되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생명의 주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이 세상이 끝날지라도 우리는 세상과 함께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하늘나라의 길을 열어주셔서 우리는 구원받을 자로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 권세 이기시고 무덤에서 승리하신 주님께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김포공항에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합니다. 기쁘게 영접합니다. 높은 분들이 마중 나가고 꽃종이를 뿌리면서 축하 행렬이 대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계의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 모두에게 기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도 기독교 국가가 되면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이 부활절을 공휴일로 만드는 일입니다. 유럽의 독일이나 프랑스나 로마 같은 나라들은 수천 년 동안 부활절을 공휴일로 정하여 온 나라가 함께 기뻐하고 생명을 주신 주님, 구원을 주신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무덤 안에서 나오셨습니다. 무덤을 찾아간 제자들은 무덤 밖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무덤 안에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무덤 밖에서 살아나신 주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여인들은 무덤 밖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온 세계에 증거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덤을 크게 합니다. 무덤으로도 자신의 삶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무덤 밖으로 나오신 그 다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가면 아직까지도 예수님의 빈 무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무덤이 있습니다. 그 무덤을 넘지 못합니다.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죽음을 슬퍼하다가 결국은 죽음 앞에 다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죽지 않기 때문에 무덤이 필요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무덤이 필요 없습니다. 영원히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주님을 마음껏 영화롭게 하고 그를 높이며 그의 이름을 온 세계 땅 끝까지 전파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남은 생애는 주님을 증거하는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으로 평생을 보냈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많았지만 그들은 기쁘게 주님을 증거하다가 마지막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죽인 권력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은폐하려고 애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다가 숨겨 놓고 예수님이 살았다고 제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군병들에게 돈을 주고 그렇게 소문을 퍼뜨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사건입니다. 진리는 숨길 수 없습니다. 연약한 제자들이 그 어려운 시대에 시체를 숨겨 놓고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한 그 악한 세력 앞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숨겨 놓고 담대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또 죽은 분을 숨겨 놓고 살았다고 하루도 아닌 평생 동안 증거할 수 없습니다. 시체를 숨겼다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배반자가 나올 수 있는데 끝까지 어느 한 명도 배반자가 없었습니다. 모두 끝까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증거하다가 죽었습니다. 비밀은 영원히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김주열을 죽여서 마산 앞바다에 버렸지만 그의 시체는 떠올랐습니다. 오래 감출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감추어도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백범 김 구 선생을 죽였던 안두희도 진실을 다 토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제자들은 엄청나게 고문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면서도 한 사람도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내가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던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제자들을 비웃었습니다. 제자들이 정신나갔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성도들과 맹수를 한곳에 몰아넣고 싸움을 시켜 죽어가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희희낙락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성도들을 죽이던 로마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 제자들의 배턴을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 경제, 모든 제도를 다 바꾸어 부활의 주님을 온 세계에 증거하는 선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핍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든지 안 받아들이든지 선택의 여지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죽지 아니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결코 놀라운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분에, 능력의 신이시기 때문에 넉넉히 부활하시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죽으셨습니까 왜 부활하셨습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주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분만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잘 믿는 분만 부활하고 안 믿는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원래 다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땅에 뿌려진 씨앗은 좋은 씨앗이든지 나쁜 씨앗이든지 다 싹을 틔우듯이 죽은 사람도 다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겨울 추위에 얼어붙은 땅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른봄이 되면 땅속에서 삭이 올라오듯이 이 세상을 떠나 흙으로 돌아간 우리의 생명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다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사람은 다 부활합니다.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저는 농촌에서 살았습니다. 이른봄에 수많은 생명들이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생명은 살아납니다.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어떻게 부활합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나의 죄는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부활은 의인으로의 부활입니다. 천국 갈 사람으로 영원히 부활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죄를 가지고 부활하기 때문에 그 죄값으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공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공로로 부활하기 때문에 그는 멸망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미 먹보다 더 검은 나의 죄를 다지시고 그 죄값으로 고통과 슬픔과 저주와 죽음을 다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살 자로 부활하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무덤 권세 이긴 주 할렐루야 왕의 왕이 되셨네 할렐루야”(찬송가 154장). 우리 모두 주를 영화롭게 하십시다. 이제 우리 성도들의 삶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사망에서 벗어났습니다.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는 무덤을 향하여 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님을 믿으며 영원히 주와 함께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망의 그늘 속에 있는 어두움 속에 있는 삶은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 방식도, 의식도, 양심도, 도덕도, 언어도 우리의 모든 가정생활도 바뀌어야 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님을 믿고 영원히 살 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전에 좋아하던 어두움의 것을 벗어버려야 할 줄 믿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싸움과 거짓과 모욕과 술픔과 원망과 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음란함과 모든 우상숭배와 불의한 어두움 속에서 살았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좋은 말을 설초 주고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의 말을 하십시오. 다투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교인은 며느리에게 말할 때에 꼭 “-년”자를 붙인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생명의 주님을 믿으면서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합니까 여러분, 말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도 바꾸어야 됩니다. 그저 앉기만 하면 남의 말하는 것, 거짓말하는 것도 다 바꾸어야 합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미국의 메치치라고 하는 분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나라의 특징을 적은 기행문을 책으로 냈습니다. 약 60년 전에 한국을 다녀갔다가 적은 글도 있습니다. 옛날에 9살 난 부잣집 도련님이 19살 난 처녀하고 결혼을 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7, 18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가면 노총각으로 여겼습니다. 20살이 넘으면 이미 늙어빠진 것입니다. 결혼을 못할 정도로 가난하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13, 14살에 장가를 갔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이 볼 때 기가 막힙니다. 초등학교 2, 3학년 나이인데, 그를 서방님으로 섬기고 사니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루는 그 어린 서방님이 친구들이 빨간 주머니를 옆구리에 달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이제 결혼을 해서 상투를 올린 어른인데 빨간 주머니를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부인이 말렸습니다. “서방님, 공부하셔서 과거에 급제를 하셔야지요. 그런 것을 달고 다니시면 어찌하옵니까” 그렇지만 어린 서방님은 그런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왜 안 만들어주느냐고 울고불고 매달렸습니다. 아무리 졸라도 안 만들어주니까 어린 신랑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게 색시가 우물가에서 어떤 남자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시부모가 깜짝 놀라서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신랑이 어리다고 그럴 수 있느냐, 누구와 만났느냐” 하며 야단을 쳤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것 봐라 방자하구나” 하며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 말하면 말대꾸한다고 친정으로 내쫓기게 될 테니 며느리는 아무 말 못하고 눈물만 흘립니다. 그렇게 되면 친정은 그날로 끝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부끄러워 밖에 나갈 수가 없고 쫓겨온 딸은 평생 집 안에서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가 오랫동안 어두움 속에서 생명의 빛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까지 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남을 원망하며 시기하며 질투하며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의인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습니까 선한 사람들을 모함해서 얼마나 많이 죽였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잘못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잘못된 생각도 고치고, 입도 고치고, 눈도 고치고, 귀도 고쳐야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렇습니까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덤을 향하여 가는 자와 천국을 향하여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다릅니다. 무덤 속으로 들어가서 무덤에 갇힐 자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다릅니다. 무덤 속으로 들어가서 무덤에 갇힐 자와, 무덤에서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영원히 살 자의 삶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오신 여러분은 생명을 주신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와 함께 영원히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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