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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향한 황혼의 길 (눅24:13-35)

본문

"봄 처녀"란 이름의 가곡이 있지만 처녀에 가을 처녀, 봄 처녀의 구별 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가곡에서 봄 처녀란 내일을 향한 희망 때문에 가슴이 부푼 소녀를 말합니다. 봄 처녀란 대명사를 받기에 합당한 안 네 프랑크는 어느 날 일기에 이런 글을 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 속에 기쁜 소식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 이 봄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당신은 얼마나 위대 한가! 당신은 마음껏 사랑할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은 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꽃 소식이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듯 잃었던 봄의 소식, 희망의 속삭임을 봄바람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인권 운동을 위해 앨마바마를 방문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가난한 흑인 청중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온 것은 봄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고귀하고 훌륭하고 귀중한 생명이라는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봄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예수께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친히 가지고 엠마오로 낙향하던 황혼 길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예수님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약 11km 떨 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내려가면서 그 날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 가까이 가 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어서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물으시자 그들은 슬픈 얼굴 빛으로 멈춰서서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단 말입니까" 예수께 되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무슨 일인지 물으시자 그들이 대답했 습니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 분이 이스라엘을 구원 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 그 분에 소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의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지 벌써 사흘이 되었는데 오늘 아침 새벽에 그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이 그의 시체를 보지 못하고 예수께서 살아 나셨다고 말하는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이 무덤에 가보았는데 여인들의 말이 사실이나 그 분을 보지는 못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그 모든 것을 왜 그렇게 더 디 믿느냐 그리스도가 마땅히 고난을 받아야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자신에 대한 기록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엠마오에 가까이 이르자 "날이 이미 어두웠으니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지요" 라고 예수께 권했습니다. 그들이 함께 식사할 때 예수께서 떡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 보았으나 그 순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길 "길에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의 속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 고 했습니다.
그들은 곧 바로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들 말 하기를 "주께서 확실히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라고 했 습니다. 그래서 그들 두 사람도 엠마오 도상에서 겪은 일과 떡을 떼실 때에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회복을 갈망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것 이었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결 코 상상해본 적도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제자들 보기에 맥없이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목자 잃은 양떼들처럼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바 입니다. "(막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본문에 엠마오로 낙향하고 있는 두 제자 역시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은 무 덤을 방문했던 여인들의 증거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료들도 부활의 증거 가 될 만한 현장을 방문했던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불신은 여인들 의 증거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제자들의 반응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의심과 불신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서도 당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열 제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나타 난 예수를 영(靈)으로 생각한 것은, 갈릴리 바다의 폭풍 가운데서 걸어오 신 예수님을 유령으로 취급한 사건에서의 제자들의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눅24: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 라.(마14: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 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제자들의 의심은 못박히신 예수님의 손과 발을 만지고 잡수시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해소가 되었습니다. "(눅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 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24: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눅24: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눅24: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눅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십자가 죽음 이전에 여러번 제자들에게 말씀하 신 바 입니다. "(막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20: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마20:19) 이방인들에 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불신의 깊은 수렁에 빠져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눅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 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생전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의 좌절 때문에 부활도 믿지 않고 서둘러 자기의 생업을 찾아 엠마오로 낙향한 제자들이었건만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그냥 버려두시지 않고 다시금 그들이 감격과 기쁨을 회복 하여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돌이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들의 엠마오 여행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전환되는 예루살렘 여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의 발걸음을 예루살렘으 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핍박자, 살인자의 발걸음을 복음 전도자의 발걸음 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삶의 변화를 가져 오게 되는 것입니다. "(행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 라 (행9: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 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행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장로교 선교사인 벤자민 웨어목사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국제 테러단 에 납치되어 16개월 동안 세상과 격리된 감금생활을 하고, 살아 나온 뒤 에 자기의 경험을 써서 '갇힌 인질, 풀린 인질(Hostage Bound, Hostage Free)' 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고문당하고, 소식이 끊기며, 세뇌당하는 고 통스러운 생활을 하는 중 위로가 있다면 새벽에 변소에 가는 시간이었다 고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창문 밖을 내다보고 싶어 변기 위에 발을 딛 고 올라섰습니다. 그곳은 높은 곳이어서서 마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고 숲과 산의 능선과 찬란한 구름들, 새벽을 맞는 대자연, 벡카 골짜기와 멀 리 눈에 덮인 높은 산맥이 보였습니다. 웨어 목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창조자의 이 장엄한 선물은 하루 종일 나의 기억 속에서 천사의 음성이 되었습니다. 그 음성이 나에게 살아야 한다는 희망과 살아서 무엇인가 창조자를 위하여 그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분명한 생명의 의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역시 변소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던 웨어 목사를 발견한 테러단은 그것마저 못하도록 변소를 옮겼으나, 그는 이젠 눈으로 보지 않아도 기억 속에 남은 그 장엄한 감격과 천사의 음성을 언제나 보고 들 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웨어 목사는 천상의 음성을 대자연을 통해 화장 실에서 들었지만, 천사의 음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설교를 들 으며 주님의 음성에 접하고 힘과 용기를 얻는 이도 많고 예배 찬송에서, 혹은 성가대의 찬양에서 주의 음성을 접하고 감격과 희망을 갖는 이도 많습니다. 석양 길로 가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경 전체에서 자신에 관한 말씀을 풀어 주실 때 마음 속이 뜨거워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떡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은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황혼에 낙향했던 발걸음을 돌려 벅찬 감격과 소망을 가슴에 안 고 부활의 새벽이 있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음 속이 뜨겁지 못하거나, 좌절하고 절망가운데 있거나, 아직도 여전히 의심과 불신 가운데 신앙의 황혼 길로 내려 가고 있습니까 이 부활의 계절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므로 삶의 새벽을 여는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여류 시인인 패트 반즈 씨는 어느 부활절 아침의 체험을 소개 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교회 대문 곁에 꽃파는 노파가 있 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주름살이 깊게 패인 노인이었으나 얼굴 전체 에 웃음꽃이 피고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반즈 씨는 "그렇게 웃고 계신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꽃 파는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내 나이만큼 살면 슬픈 일,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 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고통의 금요일은 끝이 아닙니다. 겨우 사흘만에 부활의 새벽이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괴 로울 때면 사흘만 기다리자고 말합니다." 이 노파의 지혜가 바로 부활의 믿음입니다. "(눅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 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 라." 십자가에 예수께서 죽으신 것만 확인하고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신 앙과 삶의 황혼 길이 새벽을 향한 벅찬 감격과 소망이 넘치는 발걸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대설교가 스펄전이 대예배 설교 때 아동 설교를 할 때처럼 물건을 들 고 나와 회중에게 보이며 소위 '실물설교'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빈 새장을 들고 강단에 올라섰습니다. 그 새장은 2파운드(약8만원)를 주 고 산 것이었습니다. 스펄전 목사가 거리에서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소년은 참새 한 마리 가 들어 있는 새장을 들고 있었습니다. 난폭한 이 아이는 가끔 새장을 흔들어 참새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스펄전 목사가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너 그 새를 어떻게 할 셈이냐" 라고 묻자 "조금만 더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릴 거예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
그렇다면 나에게 팔지 않겠니!" 라고 제안했습니다. 소년은 스펄전 목사를 훑어 보더니 웃으며 농담을 했습니다. "2파운드 준다면 팔죠." 스펄전 목사는 그 자리에서 2파운드를 내주고 새장을 사서 문을 열어 새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튿날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대성전 강단에서 스펄전 목사가 행한 새장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라는 악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인간들을 어떻게 할 셈이냐" 그러자 죄가 말했습니다.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가르쳐 잠시 가지고 놀다 죽여 버리 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데 값을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 악마는 웃어버렸습니다. "이것들을 사서 뭐하게요. 그들은 당신을 배반하고 침 고 십자가에 메달 것입니다. 그래도 사겠다면 당신의 눈물과 피를 내놓으시오." 스펄전 목사는 이 새장 설교를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에게 자유 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요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신앙과 삶의 황혼 길이 아니라 부활을 향한 새벽을 깨우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삶이 항상 부활의 새벽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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