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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失望)한 이들에게 (눅24: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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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국에 나가 있는 교포들이 우리 한국의 뉴스를 접하면서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안부를 물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엇그제도 제가 잘 아는 미국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이 매일 한국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가는가 퍽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문의해 왔습니다. 매일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가장들이 늘어난다는 소문에 대하여 확인하는 문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 지 못하고 역 대합실에서 지하도에서 잠을 잔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소 기업을 하던 사람들이 남의 빛독촉에 시달리어 집에도 못들어가는 형 편이라니 참으로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라 전체가 경제위기 한파로 걱정들이며, 실의(失意)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 때입니다. 이럴때,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닐것입니다. 답답하고 억울하 고 괴로운 심정으로 나날을 보내는분들이 많을줄 압니다. 그러나, 걱정한다고 불평 한다고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걸음 물러서 냉철하게 우리의 삶 전체를 반성해 보는 기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과 권고를 진심으로 받아 드리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1. 실망(失望)은 생활 속에서 언제나, 어떤 시대나, 다 있었습니다. '실망'이란 문자대로 '바라 보고 기대하던 것'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자신의 바라 보고 기대하던 일이 잘 안되어서 마음 이 약해졌거나 살아갈 힘을 잃어 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역사의 고금(古今)을 통하여 다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인간은 전능자 가 아니라 피조물임을 깨닫게 합니다. 더욱이 우리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에게는 남보다 이런 문제에서 더 절감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본 제자들은 실망하 고 낙담하였습니다. 자기들이 바라보고 기대하던 바가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등지고 시골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저들의 바라고 기대하였던 것은 예수님이 로마 정권을 뒤집어엎어 버리고 새로 운 세상을 만들어 낼 줄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십자가에서 맥없이 죽는 것을 보고는 실망하였습니다. 21절에 보면,"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고 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망중에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은 실망의 길이었습니다. 3년동안 허송세월하 였다고 생각하고 맥 없이 처져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일은 여전합니다. 예수를 자기의 소원 성취의 대상으로 삼았다가 그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잘 믿던 사람들 중에서도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 나오던 사람이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대부분 자기의 원하던 바가 이루어지지 안는다고 그렇게 실망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더욱이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생각대로 바라던 바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그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기대하였던 주님께 대한 희망 사항이 과연 무엇이었던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2. 실망(失望)중에 있을 때에는 예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은 처음에 주님을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슬픔중에 있었기에 저들의 눈이 가려져서 주님 인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기대가 컸으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주님께 걸었던 기대가 컷었기에 감히 주님이 다시 부활하실 것이란 말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실망한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실망 중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이 보이질 않습니다. 현실의 슬픔과 실망의 벽이 너무 높아서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아야지 일단 실망하게 되면 예수님이 바로 보이질 않습니다. 자신의 슬픔만 커 보이고 예수님의 말씀도 바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더 큰 슬픔과 불행을 당합니다. 대부분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형편이 그럴것입니다. 실망중에는 예수 믿던 사람들도 예수가 보이질 않습니다. 교인들의 얼굴도, 충고도, 격려와 위로의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슬픔만 커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실망 중에 있을 때에도 주님 은 나와 동행 중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성공할 때에만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실패와 낙심 중에 있을 때 더욱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지금도 인생의 엠마오 도상에서 실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 주님은 함께 하 십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실망중에 주님이 보이지 않을 것 뿐입니다.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요즘처럼 이렇게 어려운 때에 주님 이 나와 동행중에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1930년대 미국도 대 경제 공황이 일어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백화점 사업으로 대 성공했던 J. C.Penney 도 어쩔 수없이 무일 푼의 사람으로 완전 파산지경에 일으게 되었습니다. 실망과 패배감에서 정신적 고 민은 육체의 병으로 이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나, 당장에 병원비마져 막연한 처지였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백만 장자였던 그가 치료비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실망이 컸겠습니까. 병세는 악화되어 어느날 밤을 넘기기 어려움 을 알고 그는 부인과 자녀들에게 고별의 유언의 글을 써 놓고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다음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어디선가 은은히 찬송 소리가 들려 왔 습니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으나 분명히 찬송 소리는 저 복도 끝에서 들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페니는 자기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일어나 갔습니다. 복도 끝 에 작은 예배실에서 들려오는 찬송이었습니다. 뒷자에 자리를 잡고 그야말로 진실 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내 사정을 돌아보아 주시옵소서".그는 나중에 고백하기를 이 기도후에 자기 의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다 떠나 벼렸다고 했습니다. 그가 예배실을 나 올때는 완전한 다른 사람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페니는 매사에 그리스도를 섬기는 믿음으로 사는 훌륭한 그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페니의 사업은 전보다 더 좋게 회복 되었고, 그는 파산 전에는 소유하지 못했던 하늘의 영생을 감사드리며 땅에서도 장수의 복을 누린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3. 사실 '실망'과 '절망'한 마음에 새로운 하늘 문이 열림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리고 말씀으로 풀어 설명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주님이심을 깨 달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길은 보통 평범한 길에서가 아닙니다. 슬픔의 극치에서, 절망의 극치에서, 도리어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밝혀 보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은 그래서 깨우치는 영입니다. 부활한 주님을 비로소 보게 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役事)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지혜의 영이라고도 했습니다.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감동(感動)감화(感化)로 새힘을 얻습니다. 성령님의 감화는 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성령님의 감화는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성령님의 감화는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보게합니다. 성령님의 감화는 인생관과 물질관을 변화시킵니다. 성령님의 감화는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게 합니다. 성령님은 힘(Power)입니다. 성령님은 다니나 마이트입니다. 낙심하였던 제자들의 발걸을 되돌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였습니다. 오늘이 바로 성령님 강림절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지금도 실망했던 마음에 성령님은 새로운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두려움을 물리치게합니다.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합니다. 내려가던 길을 되돌려 올라가게 합니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야곱은 요즘 우리보다 먼저 허허 들판에서 노숙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노숙하면서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정처 없는, 기야없는 도망치는 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한 좌절과 실망의 자리에서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그후에 야곱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이 보았던 그대로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습니다. 모름즉이 신앙의 사람들은 이런 경제위기 시대에, 노숙하는 지경에서 하늘의 열린 문 을 바라보는 성령님의 체험을 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였다면 이런 기회에 기도다운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눈물한번 흘리지 못하였다면, 이런 기회에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늘문이 열리는 환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이 정직하게 살았으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 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즘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요셉이 억울한 자리에 있 을 때에, 바로왕 앞에 설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만일 정식 코스대로 바로 왕 앞에 설 수 있으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 없이 형들로 미움을 받고, 물없는 구덩이에서 건져냄을 받아, 그리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길을 받고, 바로의 시위대장관의 집에 몸종으로 팔렸기에 도리어 바로 앞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후에 요셉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히 상상도 못했던 최 강대국의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역사 합니다. 실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 꿈을 보여줍니다. 오늘 요셉처럼 억울한 사정으로 실망중에 있는분들이 계십니까 요셉의 꿈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근심히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할 줄 믿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궐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자라다가 애국심의 발로로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인후 그가 정처 없이 도망쳐 광야에서 양치기를 하면서 40년의 세월을 보내 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모세에게는 최고의 실망의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미래가 불 투명한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바에야 차라리 죽는편이 낳겠다고 그런 비 감한 마음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의 일입니다. 그날도 들에서 양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불길을 보았습니다. 가싯덤불에 불이 붙었는데 가시 나무나무가 타지는 않았습니다. 점점 가까이 가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상상도 못했던 큰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실망중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낙심중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지금도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움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 위 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망의 움침한 삶의 골짜기를 지나는 분들이 계십니까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자들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 신다"고 했습니다.(시34:18) 그리고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라고 했습니다.(시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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