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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빛을 잃을 때 (눅23:44-49)

본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각은 오전 9시였고 운명하신 시각은 오후 3시쯤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특이한 일들이 몇 가지 발생했는데 그 중 하나가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빛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1년에 한두 차례 해가 달 그림자에 가리워져서 보이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일식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현상이 통상적인 일식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일식은 기껏해야 몇 분 있다가 그치지만 본문의 현상은 무려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유대인의 유월절 명절로서 보름달이 뜨는 때입니다. 이 때는 천체 위치상 일식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 날 해가 빛을 잃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연의 질서를 초월하여 이루신 이적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이적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뜻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받기 원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사람은 빛을 잃게 됩니다. 해가 빛을 잃기 시작한 대략적인 시각은 제 육시로 지금 시간으로 낮 12시였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때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때였다는 것입니다. 머지 않아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9-11)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배척받아 죽어가시는 그때에 그분의 주장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자 해가 빛을 잃게 하는 이 이적을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분을 배척하는 사람은 빛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부인하며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해가 필요 없고 빛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물리적인 어두움만이 아니라 영적 어두움, 지적 어두움, 경제적 어두움도 닥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경제위기의 신탁통치를 받는 굴욕적인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환율이 급등하여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경제전반에 걸쳐 큰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곤궁에 처하게 될 것은 오래 전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80년대 말부터 교회성장의 정체 현상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성장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전과 달리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완강하게 배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배척한 그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에게 닥친 이 암울한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정책의 실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길 되신 그분만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참된 행복과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인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으며 참된 행복과 영원한 천국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생명의 주이신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거듭 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신명기 24장에는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이 몇 차례 나옵니다.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신24:17-22)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며 불쌍한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있는 대로 쓰는 소비형태를 보이면 안 됩니다. 풍족하더라도 근검절약 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과소비하는 습성에 빠지도록 방치했고 조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이 고무 지우개를 대여섯 개나 필통에 가지고 다닌다. 새것은 없고 다 조금씩 쓰던 것이다. 귀한 줄 모른다. 주일예배가 다 끝나고 나면 심심찮게 연필, 지우개가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없어졌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찾는 아이도 없다. 흥청망청 과소비에 젖었다.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고. 빛이 없었다. 네온싸인을 휘황찬란하게 켜고, 쌀로 막걸리를 빚고, 밤새도록 점포에 불을 켜두고. 소비 위주문화에 젖었다. 세 살면서도 자가용을 굴렸다. 무역업을 하는 姜모(34) 씨는 지난 달 구입한 지 넉달밖에 안된 대우 티코 승용차를 팔아버리고 무리를 해 중형 승용차로 바꿨다. 티코로 외국바이어나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때 왠지 자신이 차크기 만큼이나 초라해 보이고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텔선 안내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더군요. 친구를 만날 때는 아예 택시를 타고 갔어요." 우리나라 사람의 절반은 소득에 관계없이 단지 체면 때문에 배기량 8백㏄급 소형차를 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원장 金鍾基)이 지난 달 전국 성인 1천5백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의 45%가 창피해 경승용차를 구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안전성이나 승차감 등 성능에 대한 불만은 이보다 훨씬 적었다. 특히 한달 총수입이 1백50만-2백만원과 1백만원 미만인 사람들이 2백만원 이상 고소득자보다 경승용차 기피현상이 심했다. 체면을 가장 중시하는 지역은 대구(65%)였고 서울(55%). 광주(54%). 충남 (53%) 순으로 집계됐다.
한편 국내 경승용차 보급률은 11월말 현재 4만7천대로 전체 승용차 보급대수의 4.6% 수준으로 이탈리아(40%). 프랑스(39%). 일본(15%) 등 선진국보다 훨씬 낮다. 시위하는 것도 진작 자제했어야 했다. 노사관계를 다루는 성경말씀을 좇았더라면 이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사측은 구조조정을 하며 경쟁력을 길렀을 것이다.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 버리는 가구, 가전제품 교환 주기. 이 어두움은 영적 어두움이다. 지적 어두움이기도 하다. 미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생각이 사람들을 어둠 속에 남겨두고 있다. 그리스도를 배척한 사회는 빛을 잃는다. 본을 잃는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고 잘못된 길로 간다. 미신적인 사고에 빠진다. 인도의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소를 식용으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배제될 때 어둠의 세력이 판을 친다. 공산주의가 피의 숙청을 했으며 무수한 인명을 죽이고 철옹성을 구축했다. 얼마나 비참한지 우리가 알고 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사람은 통회해야 합니다. 과거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3일 동안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어두움이 임하게 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출10:22-23). 이 때의 어두움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세 시간 동안이나 사람들은 어두움 속에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 후 어두움이 걷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십자자에서 이루어진 일을 본 사람들은 통회했습니다.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막15:39 참조).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도 백부장과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못 박고 조롱한 것으로 인해 가슴을 두드리며 통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가 빛을 잃게 하는 이적을 행하신 데에는 이러한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뜻도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도 벼락이나 홍수 한재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임금이나 감사나 군수, 현감은 자신의 실정이나 부덕에 대한 하늘의 응징으로 받아들이고 몸에 자해하며 속죄를 했습니다. 어떤 때는 관청(정청) 한복판에 있는 기둥에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관청 앞마당에 단을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가죽 회초리로 핏방울이 튕기도록 등짝을 후려치는 것으로 하늘의 용서를 빌었습니다. 태종12년에 큰 바람으로 나무 뿌리가 뽑히고 돌이 날으는 천재지변이 일자 백성의 원한이 사무친 탓인지 대신의 잘못인지 임금의 실덕인지를 밤새워 가려 자성을 하고 겸허하게 대처를 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경제적 어두움(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배척한 것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 중에는 십자가 아래에서 통회했던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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