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 (눅23:50-54)
본문
지난 주에 우리는 선거혁명을 통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의 정권교체를 이루며 김 대중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지난 40년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거부했고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부인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궈낸 승리이기에 측근들에게는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권노갑 의원의 눈물 그 험난한 정치 일정 속에서 그의 측근들도 그와 함께 고난받았고 좌절을 겪었지만 그를 신뢰했고 그를 좇았습니다. 그들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그 꿈이 이루어져 김 대중 대통령 시대를 보게 된 것입니다. 무엇인가 달라지고 새로워지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김 대중 총재를 새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우리의 기대가 어긋나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초기에 잘 나가던 문민정부도 이 지경이 되어 버렸음을 생각하면 기대한다는 것이 사치인 것도 같습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우리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권에 대해서 실망하고 환멸을 느낄 때 새 인물, 새 정권을 찾으려 하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만이 진정 성탄을 축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을 축하하고 기뻐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러 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만나 축복한 시므온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84년 동안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며 섬기던 안나 여선지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성탄 축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축하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캐롤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믿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성탄을 축하하며 기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일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짧은 내용이지만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세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요셉에 대해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그가 천성적으로 착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좋은 교육을 시켰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는 동네 환경이 좋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입니다(단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당연히 그 나라는 공의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그 나라를 기다리며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죄악을 사랑할 수 없으며 죄악에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불의하고 악한 사람이 그 나라에 합당치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사33:15,16)
둘째,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요셉은 공회의원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공회(산헤드린)는 사법권과 행정권을 함께 가진 막강한 기관이지만 로마 치하에서는 그 권한이 상당히 제한되었습니다. 모두 71명으로 구성되는데 대제사장이 의장이 되고 24반열 제사장의 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공회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주재로 예수님을 심문하여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22:66; 마26:58).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마26:66) 이때 요셉은 이 옳지 않은 결의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52절, did not consent to the counsel and the deeds of them).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로 주장하는데 홀로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셉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옳은 것을 알면서도 행치 않고 옳지 않은 일에 동의한 빌라도와 너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면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성경의 주장을 왜곡하고 거짓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재림 약속이 거짓이라고 한 목소리로 조롱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으므로 회개하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벧후3:4). 어짜피 믿는 자는 소수이고 우리가 걷는 길은 좁은 길이며 우리가 지나가야 할 문은 좁은 문입니다.
등소평이 책상 위에 올라가서 반대의견을 밝혔다-불도옹 언젠가 모택동 주재의 중국공산당 정책회의에서 한 중요 안건을 두고 기립표결을 한 적이 있었다. 등소평 한 사람만이 기립하여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때 모택동은 일어선 사람의 키나 앉아 있는 사람의 키나 피장파장이므로 만장일치나 다를 바 없다 하고 진행하려 했다. 그러자 이때 등소평이 책상 위에 올라서서 반대의사를 재확인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장 1m 50㎝. 동서고금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작지만 동서고금에 가장 많은 인구를 얹은 가장 큰 땅덩이를 업고 버티어낸 분이 그 사람이다. 루마니아에 99.999% 찬성을 기록한 투표가 있었다. 한 사람이 반대한 것이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은 저물었을 때에 빌라도 총독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여 자기가 쓰려고 준비해 두었던 무덤에 안치했습니다(마27:60). 그는 이 행동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분께서 한창 잘 나가던 때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자와 반역자로 죽임을 당한 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공회가 예수님을 유대교의 공적 1호로 규정하고 제거한 직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과의 친분을 표시하는 것은 공회의원으로서 그의 지위와 권세와 명예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범 내지 하수인으로 기소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심한 갈증으로 고통을 받을 때 물을 마시우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시신이 방치되어 있다면 수습해 주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셉이 처음에는 두려워했다고 증거했습니다(요19:38). 틀림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고난을 받으시며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었을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운명하신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그들이-요셉과 니고데모)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19:38-40)
셋째,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무덤에 안치한 것은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굳게 믿은 그분의 제자였습니다(요19:38).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기대와 달리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사도들조차 낙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죽으신 예수님에게 아무런 소망도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들에게는 세상적으로 이렇다 할 지위도 없었고 명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그도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면 앞서 설명했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그분의 시신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법으로든 메시야가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선지자 안나가 그러했습니다. 시므온이 그러했습니다. 인내하는 것은 힘들지만 값진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인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기다림이 길수록 만남의 기쁨이 더 커짐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사30:18). 그런 사람이 성탄의 기쁨을 온전히 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30:18)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 할 것이며”(사32:1)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임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일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짧은 내용이지만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세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요셉에 대해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그가 천성적으로 착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좋은 교육을 시켰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는 동네 환경이 좋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입니다(단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당연히 그 나라는 공의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그 나라를 기다리며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죄악을 사랑할 수 없으며 죄악에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불의하고 악한 사람이 그 나라에 합당치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사33:15,16)
둘째,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요셉은 공회의원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공회(산헤드린)는 사법권과 행정권을 함께 가진 막강한 기관이지만 로마 치하에서는 그 권한이 상당히 제한되었습니다. 모두 71명으로 구성되는데 대제사장이 의장이 되고 24반열 제사장의 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공회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주재로 예수님을 심문하여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22:66; 마26:58).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마26:66) 이때 요셉은 이 옳지 않은 결의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52절, did not consent to the counsel and the deeds of them).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로 주장하는데 홀로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셉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옳은 것을 알면서도 행치 않고 옳지 않은 일에 동의한 빌라도와 너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면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성경의 주장을 왜곡하고 거짓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재림 약속이 거짓이라고 한 목소리로 조롱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의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으므로 회개하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벧후3:4). 어짜피 믿는 자는 소수이고 우리가 걷는 길은 좁은 길이며 우리가 지나가야 할 문은 좁은 문입니다.
등소평이 책상 위에 올라가서 반대의견을 밝혔다-불도옹 언젠가 모택동 주재의 중국공산당 정책회의에서 한 중요 안건을 두고 기립표결을 한 적이 있었다. 등소평 한 사람만이 기립하여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때 모택동은 일어선 사람의 키나 앉아 있는 사람의 키나 피장파장이므로 만장일치나 다를 바 없다 하고 진행하려 했다. 그러자 이때 등소평이 책상 위에 올라서서 반대의사를 재확인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장 1m 50㎝. 동서고금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작지만 동서고금에 가장 많은 인구를 얹은 가장 큰 땅덩이를 업고 버티어낸 분이 그 사람이다. 루마니아에 99.999% 찬성을 기록한 투표가 있었다. 한 사람이 반대한 것이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은 저물었을 때에 빌라도 총독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여 자기가 쓰려고 준비해 두었던 무덤에 안치했습니다(마27:60). 그는 이 행동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분께서 한창 잘 나가던 때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자와 반역자로 죽임을 당한 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공회가 예수님을 유대교의 공적 1호로 규정하고 제거한 직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과의 친분을 표시하는 것은 공회의원으로서 그의 지위와 권세와 명예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범 내지 하수인으로 기소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심한 갈증으로 고통을 받을 때 물을 마시우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시신이 방치되어 있다면 수습해 주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셉이 처음에는 두려워했다고 증거했습니다(요19:38). 틀림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고난을 받으시며 운명하시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었을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운명하신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그들이-요셉과 니고데모)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19:38-40)
셋째,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무덤에 안치한 것은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굳게 믿은 그분의 제자였습니다(요19:38).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기대와 달리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사도들조차 낙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죽으신 예수님에게 아무런 소망도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들에게는 세상적으로 이렇다 할 지위도 없었고 명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그도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면 앞서 설명했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그분의 시신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법으로든 메시야가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선지자 안나가 그러했습니다. 시므온이 그러했습니다. 인내하는 것은 힘들지만 값진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인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기다림이 길수록 만남의 기쁨이 더 커짐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사30:18). 그런 사람이 성탄의 기쁨을 온전히 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30:18)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 할 것이며”(사32:1)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임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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