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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눅23:54-24:10)

본문

무덤은 슬픔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그곳에서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무덤의 절망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전보다 더 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무덤은 단절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재회를 즐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장소에서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전과 달리 기쁨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예비했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4일 앞둔 이 시점에서 그 여인들처럼 새해 벽두를 열어가고 싶은 소망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예비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배를 위하여 예비해야 합니다. 유월절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을 간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사 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출12:5-6) 유월절 다음부터 일주일 간이 무교절입니다. 그 첫날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보십시오. “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12:15) 54절 말씀에 의하면 예비일은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이 분명합니다. 금요일을 금요일로 표현하지 않고 예비일이라고 불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앞서 예비함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왜 단순히 지키라고만 하지 않고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유대인 랍비들은 기억하라는 명령을 준비하라는 명령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억하는 것이 외적으로 나타난 것이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유대인 주부들은 금요일 오전이 되면 집안 청소를 시작으로 안식일을 준비한다. 미리 장을 보고 안식일에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이스라엘에는 안식일이 되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버스도 다니지 않아 학교도 갈 수 없다. 이것은 사람들이 토요일은 집에 갇혀 있어야 함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편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 보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2:27) 모르데카이 카플란 “화가가 쉬지 않고 계속 붓질만 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붓질을 멈추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그리고자 하는 주제가 캔버스에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삶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안식일은 붓을 멈추고 우리의 삶을 관조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삶이라는 화폭에 새로운 시각으로 신선한 힘을 공급하게 됩니다.” 19세기의 아하드 하암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켰다기보다 안식일이 이스라엘을 지켰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시대에 사는 우리는 오늘날 토요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같은 목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는 않지만 주일에 앞서 예비일 개념을 가지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할 때 주일을 주일답게 지킬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온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주일을 예비하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예비하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10절 /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막16:1)은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그에 앞서 향품과 향유를 예비했습니다. 그것이 예배행위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주님께 드릴 예물을 예비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로 모일 때마다 준비하여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준비할 것은 물질적 예물만이 아닙니다. 영적 예물도 준비해야 합니다.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예물이 됩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여인들이 안식일에 쉰 것이 계명을 좇은 것이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예배시간을 준수하는 것도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송년만찬에 사람들을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교회 모임이라고 소개했는데 시간에 맞게 도착한 사람들이 없는 것입니다. 음식점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불신 남편들도 나왔는데 도대체 그들의 영접을 받으며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해야 합니까 말을 하지 않지만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여기겠습니까 하나님 믿으라고 하지 말고 나만큼만이라도 해 보라고 빈정대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시간에 철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시간을 지키라는 교훈을 받지 못했습니까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갈4:4)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가 되자 약속하신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시간 약속을 지키셨고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정하신 때가 되면 온전히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2:3)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삼하24:15)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 혼인잔치의 시간이 되자 주인이 문을 닫고 늦게 온 처녀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열어주지 않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25:10) 이른 아침 시간에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도 예배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새벽에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주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이 그들을 깨웠습니다. 주님을 섬기로자 하는 마음에 그들은 지체할 수 없어서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 주님과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경건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새벽기도는 일년 중 부활절 아침 하루만 갖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을 생각하며 드리십시오. 이 여인 중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예비함으로 이 여인들이 경험했던 것 같이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들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주님께 쓰임받았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예비함으로 주님께 복음을 전하는 전달자로 쓰임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들은 갈릴리로 가라는 주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예배를 예비함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예배를 예비함으로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부흥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고난의 때를 위하여 예비해야 합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수차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죽으실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께서 운명하셨지만 시신에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시간적으로도 안식일이 거의 다 된 시점이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구입하여 올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9절에는 이들과 달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나아온 니고데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리마대 요셉과 마찬가지로 공회의원이었기 때문에 공회의 의도를 파악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그 날 새벽의 결정이 있고 나서 즉시로 돌아가서 향품(침향)과 향유(몰약)를 준비해 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죽음을 예비한 사람과 예비치 못한 사람들을 봅니다. 주님께서는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 향유를 그분의 머리에 부어 생전에 그분의 장례를 준비한 한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14:8-9) 아버지는 죽음을 준비하셨다. 78까지 사셨는데 15년 이상 준비해 두셨던 것 같다. 수의를 준비해 두셨고 관의 상판을 준비해 두셨고 스치로폼까지 준비해 두셨다. 저는 처음에 우리 아버지가 별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장인께서 소천하셨을 때 그분도 미리부터 묘지를 사두셨고 준비해 두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준비하고 계시다. 묘지 자리를 알아 보시고. 장례식 비용을 생각하시며 저축해 두시고. 자식들이 사후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부모가 그러는 것이다. 당신은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부모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남편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자식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당신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그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한 당신은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지옥심판을 받게 됩니다. 당신이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부모나 형제가 예수님을 믿도록 힘쓰지 않는 한 당신은 죽음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만이 고난은 아닙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고난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예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궁핍한 때를 위하여도 예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새해 우리는 경제위기 시대의 고난을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궁핍을 위한 준비는 여건이 좋을 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작 그렇게 하지 못하여 지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생 자녀를 둔 부부가 귀국시키는 문제를 놓고 다투다가 주부가 투신자살했다. 상사가 휴대폰을 오래 쓴다고 폭행하여 구속되었다. 상황이 나빠졌다고 하여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상황이 최악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앞으로도 닥칠지도 모를 더 나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한 충고가 바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창41:34-36) 저축하는 것이 고난의 때를 위하여 예비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수입의 10%는 저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약하는 것도 예비하는 것입니다. 기업만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구조조정 한답시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삭감하거나 생략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수고한다 하더라도 복은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전기와 물, 가스의 사용량을 줄이도록 하십시오. 부식비, 의류비, 문화비, 교통비, 세탁비, 용돈 등 전체적인 지출을 생각해 보며 어디에서 줄일 수 있는지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이미용실 이용, 집에서, 치석제거용 송곳과 거울-하긴 해야 하겠고 그래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하는 것이다. 구두 닦는 것) 고난의 때를 위하여 준비해 두는 사람은 결코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6:6-8)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12:1-2)
셋째, 주님 뵈올 때를 위하여 예비해야 합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정말 애통해 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신 지 사흘이 되었지만 그들의 슬픔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이튿날 새벽에 무작정 성읍 바깥에 있는 바위 무덤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분의 몸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일은 마음 약한 여자들에게는 적합치 않은 것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남자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직접 나선 것은 예수님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덤 입구를 돌로 막아놓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옮길지 아무 대책도 없이 무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커서 앞뒤를 재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무덤 입구의 돌은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간이고 그들은 곧 안에 주님의 시신이 없음을 발견하고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사를 만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24:5-8)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마28:5-7)
요한복음 20장에는 이 여인 중 한 사람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요20:15-16) 예수님의 부활을 둘러싼 사건들 순서에 관한 사복음서의 기록은 애매한 데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여인들이 천사들을 본 것이 먼저인지 모호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여인들과 동시에 천사들을 본 것인지 아니면 각기 다른 때에 본 것인지도 모호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천사를 만난 여인들이나 막달라 마리아 모두 그들이 그곳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는 의심할 만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들에게서 보여지듯이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주님을 만날 기대를 조금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 여인들이 주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깨닫기도 하고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기도 하여 큰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편으로는 무척 당황하고 부끄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만에 살아나리라고 친히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얼마나 부끄러워했겠습니까 살아 계신 그분을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분께서 눈 앞에 서 계시건만 알아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어느 때에라도 오실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고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주님을 만나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4:12) 주님이 어느 때에 오신다 하더라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재림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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