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 (눅22:41-46)
본문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 을 말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한 주간은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특별히 이 고난 주간에는 여러분들 모두가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예수님의 고난에 참 여하는 의미로 새벽에 나와 주님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 기까지의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오늘부터 금요일까지의 생활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오늘첫째날 마21:1-11, 막11:1-11에 보면 예수님은 오늘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 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안장도 없는 나 귀를 타셨고, 군악대의 연주도 없이 어린아이들과 여인의 환영 속에서 입성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21:12-19, 막11:12-19, 눅19:45-48에 보면둘째 날인 월요일에는 열 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에서 비둘기파는 사람, 양을 파는 사람, 돈을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채찍으로 장사하는 모든 자들을 쫓아내 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 일을 월요 일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렵혀진 성전에 대해 격분하시고 이들을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
셋째날 화요일에는 무엇이 참된 헌신과 참된 믿음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헌금함에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때가 유월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각처로부터 몰려와서 헌금을 하였습니다. 이때 과부가 히브리 화폐단위로서는 가장 적은 두 렙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부자들은 헌금을 많이 했으나 그들이 가진 것중 일부를 드렸을 뿐이고 이 과부는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드렸기에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풍부한 재물과, 화려한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중심 에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신과 헌금의 양보다는 질을 더 중 요시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것입니다.성경은 증거하기를 고후 9:7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말세에 나타날 일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넷째 날인 수요일에는 베다니에서 쉬셨습니다. 그러나 이날 가륫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팔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날 베다니의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 넘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 에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룟 유다가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노라"고 호되게 그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도리어 책망하시면서 "가만두어라 너희가 어찌 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며 극구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 목요일에는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최후만찬의 좌석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 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사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만찬을 마친 다음 제자들과 함께 감란 산으로 가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도착하여 함께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 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 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 밤 예수님은 가륫 유다의 안내를 받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 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들에 의하여 잡히셨습니다. 여섯째 날 금요일에는 빌라도에게 심문과 정죄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참흑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 습니다. 이상은 지상에서의 마지막인 종려주일인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주님의 고난의 날들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주님이 남기신 칠언을 생각해 보 겠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눅23:34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 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 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께서 가장 허약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극한의 상황에서 부르짖는 십자가위에서의 첫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히 원수를 위한 기도 그 이상입니다. 이 기도는 메시아로서의 기도, 그리고 동시에 죄악의 재난을 혼자 감당하는 제사장으로서의 기도입니다. 또한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신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인 것 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은 눅23:43절에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 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회개하는 강도인 죄인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희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행악자도 함께 매어 달려 있었는 데 그 중 한 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 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세 번째 말씀은 요19:26-27에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 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 마리아은 십자가에 못 박 힌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그 고통과 피흘리심과 목마르심과 죽으심에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2시간 동안 몸에서 피와 물 이 다 쏟아진 완전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밑에서 오열하는 마리아를 보고 제자 요한에게 공양을 부탁하셨습니다. 네 번째 말씀은 마27:46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육적 고통에서 나온 말씀이며 붉은 피를 쏟으며 인류의 구속과 영생에 대한 절규였습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목마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여섯째 말씀은 요19:30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속죄의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고통과 아픔과 절망을 잘 참고 견디시며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일 곱째 말씀은 눅23:46에서"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이 땅에서의 33년의 삶을 마 감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 고 운명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실로 예수님의 일생은 땀과 피를 흘리시는 삶이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 난 예수님의 고난의 모습에서 네 번 피를 흘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면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 땀흘려 기도하시는데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같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는 가륫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재판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 가실 주님의 최후의 기도는 실로 참담하기까지 한 기도였습니다. 누가복음 22 장 44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 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처 럼 예수님 땀구멍에서 핏방울이 흐르는 참담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 서"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 기도의 뜻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죽음의 잔을 옮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사오니 십자가만은 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는데 땀같이 피가 흘렀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결론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빌라도 법정에서 채찍을 맞으시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 당 시에 죄수에 대한 심문은 혹독하고 잔인했습니다. 죄수를 채찍질 할 때 쇠고 리가 달린 채찍으로 1회 39번씩 때렸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죄인 된 몸이셨기 때문에 심문 중 채찍으로 이렇게 맞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인무도한 로 마 병정들은 예수님을 무릎을 끓게 한 다음 침을 뱉고 그의 머리를 쳐다고 마27:29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은 온 머리, 이마 얼굴이 피투성이 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심한 매질과 조롱 속에서도 예수님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담대히 자신이 메시야인 것을 증거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이요 모습이었습니다.
셋째, 로마 군인들이 가시관을 머리 에 씌울 때에 피를 흘리셨습니다. 빌라도 총독에 의하여 사형선고가 내려졌을 때 로마 병사들은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 위에 씌웠던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불의를 저질렀던 제사장들과 음ㅎ한 흉계를 꾸며댔던 바리새 인 들 뇌물을 받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쳤던 군중들이 가시관을 쓰시고 피 흘 리시는 주님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흘리 신 피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속죄의 피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 십자가에 서 물과 피를 남김 없이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갖은 모욕, 핍박, 조롱을 다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못 박힌 주님의 손과 발에서는 붉은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 주님은 "아 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죄 없으신 주님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흘리셨습니까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려주일에 고난 당하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그 흘리신 피가 지금 내 심령에도 흘러 들어오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누가 예수님께 무슨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죽였습니 까 사형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죄목은 첫 번째로 국민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둘 째로 국가에 반역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의 몸 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막 10:45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 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이 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을 이렇게 고발하고 십자가에 죽게 한 자들이 누구인가 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유대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교만과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마 23:4에서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 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워 놓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아니한다고 책망하셨 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잔칫상의 상석,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위선자라고 마23:6-7에서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천국 문을 사람 앞에서 닫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못 들 어가게 하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는 교만한 자라고 통렬히 비난하고 고발하셨 습니다. 이처럼 위선과 교만, 독선으로 가득 차 있는 그들의 불 신앙이 예수님을 죽였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 고 또 열심도 대단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겉으로만 그랬기에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도 형식에만 치우쳤지 생명을 잃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로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친 불 신앙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고발하고 죽게 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 받기 5일 전만 하더라도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라고 외치던 군중들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예수님을 죽이라 고 아우성을 쳤던 것입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돌변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 한 것을 심문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눅23:4에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보니 이 사람에는 죄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군중들이 죽이라는 아우성과 유 대 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압력과 협박에 반란이 일어날까바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만 사형선고를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신 양심을 속이는 재판관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죄질이 나쁜 사람을 꼽으라면 자기 이익 때문에 거짓 판결 을 내리는 재판관과 거짓 증언을 하는 증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억울하겠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죽을죄를 짓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자기 입으로 여러 번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유대 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옅습니다. 빌라도는 무엇이 옳은가 하는데는 관심 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세상의 이익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빌라도는 그 죄 값을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인류 중에 빌라도 만 큼 저주를 많이 받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2000년 동안 모든 성도들은 예배 때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빌라도와 유대교 지도자들과 유대 백성들만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빌라도를 보십시오. 만약 내가 그때 빌라도 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우리 중에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말 법대로, 또 옳다고 믿는 대로 사는 사람 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도 결국 진리보다는 내 이익만 먼저 생각하는 빌라도 와 꼭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는 사실 빌라도 만도 아니고 또한 유대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만이 아니 며,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친 불 신앙의 백성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 곧 저와 여러분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정말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준 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요19:11에서 주님 빌라도에게 말씀하시기를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허락하셨기 에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병정 에게 뺨을 맞고,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이 능력이 없으셔서 그러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셨던 분 입니다. 풍랑도 잔잔케 하셨던 분입니다. 떡 두덩 이와 물고기 다섯으로 5000명을 먹 이고도 12광주리를 남기셨던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빌라도의 권세와 로마 병 정들이 두려우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얼마든지 예수님은 빌라도와 유대교 지 도자들을 멸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죄가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방법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아리따운 용모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용모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 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기에도 흉칙하게 일 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누가 볼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 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당부를 깜박 잊은 채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에 찾 아갔습니다. 딸의 반을 찾아 물어서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친구들이 당연히 흉측한 얼굴의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 습니다. 이 여학생은 당황해서 그만 우리 집 식모라고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방과 후 이 여학생은 울며불며 어머니 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느냐고,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 고. 그때 그 어머니가 딸의 울먹이는 등뒤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머니 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연이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란다. 아 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그만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인 너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 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소리질러 그 사실을 안 나는 앞뒤 를 가릴 겨를도 없이 집안으로 달려들어갔고 안 방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안고 뛰쳐나왔단다. 나는 너를 안은 까닭에 뜨거운 불길 앞 에서도 내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단다. 그후 심한 화상을 얼굴에 입고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그나마 생명은 건졌지만 얼굴은 이 모양이 되었구나" 이 여학생은 분이 나서 울먹이다가 어머니의 이 사연을 듣고는 돌아서서 눈 에 눈물이 가득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도 당신만 생각하셨다면 얼마든지 고난을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가 자신만 생각하면 불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 참으시는 것 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 신앙적인 생활을 해도 그럭저럭 괜찮다 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일을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닌가하고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악한 자들이 벌을 받기는커녕 우리보다 잘되고 잘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참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참으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벧후 3:8-9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 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고 정신 바짝 차려서 믿음을 지 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즉 우리의 죄를 참아 주시는 때입니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또다른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여러분 지난해 괌에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 을 불러 일으켜 습니다. 혹시 그들 중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전도를 받고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부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추측컨대 대부분 거의 그런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겐 이미 하나님의 참으시는 은혜는 끝 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구원받았다고 하는 여러분들에게도 묻습니다. 혹 시 자신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둔 자가 되어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면서도 결단을 자꾸 미루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고 사명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참으 시는 때가 지나면 무서운 책망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를 참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을 받고 있을 때 바로 서야 합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며 은혜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 쉬되리니 제직의 직분, 구역장의 직분, 교사의 직분, 각 부서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흘리신 주님의 보혈의 피에 충성과 헌신과 감사로 보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만 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안장도 없는 나 귀를 타셨고, 군악대의 연주도 없이 어린아이들과 여인의 환영 속에서 입성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21:12-19, 막11:12-19, 눅19:45-48에 보면둘째 날인 월요일에는 열 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에서 비둘기파는 사람, 양을 파는 사람, 돈을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채찍으로 장사하는 모든 자들을 쫓아내 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 일을 월요 일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렵혀진 성전에 대해 격분하시고 이들을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
셋째날 화요일에는 무엇이 참된 헌신과 참된 믿음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헌금함에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때가 유월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각처로부터 몰려와서 헌금을 하였습니다. 이때 과부가 히브리 화폐단위로서는 가장 적은 두 렙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부자들은 헌금을 많이 했으나 그들이 가진 것중 일부를 드렸을 뿐이고 이 과부는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드렸기에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풍부한 재물과, 화려한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중심 에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신과 헌금의 양보다는 질을 더 중 요시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것입니다.성경은 증거하기를 고후 9:7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말세에 나타날 일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넷째 날인 수요일에는 베다니에서 쉬셨습니다. 그러나 이날 가륫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팔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날 베다니의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 넘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 에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룟 유다가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노라"고 호되게 그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도리어 책망하시면서 "가만두어라 너희가 어찌 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며 극구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 목요일에는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최후만찬의 좌석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 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사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만찬을 마친 다음 제자들과 함께 감란 산으로 가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도착하여 함께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 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 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 밤 예수님은 가륫 유다의 안내를 받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 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들에 의하여 잡히셨습니다. 여섯째 날 금요일에는 빌라도에게 심문과 정죄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참흑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 습니다. 이상은 지상에서의 마지막인 종려주일인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주님의 고난의 날들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주님이 남기신 칠언을 생각해 보 겠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눅23:34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 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 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께서 가장 허약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극한의 상황에서 부르짖는 십자가위에서의 첫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히 원수를 위한 기도 그 이상입니다. 이 기도는 메시아로서의 기도, 그리고 동시에 죄악의 재난을 혼자 감당하는 제사장으로서의 기도입니다. 또한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신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인 것 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은 눅23:43절에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 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회개하는 강도인 죄인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희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행악자도 함께 매어 달려 있었는 데 그 중 한 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 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세 번째 말씀은 요19:26-27에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 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 마리아은 십자가에 못 박 힌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그 고통과 피흘리심과 목마르심과 죽으심에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2시간 동안 몸에서 피와 물 이 다 쏟아진 완전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밑에서 오열하는 마리아를 보고 제자 요한에게 공양을 부탁하셨습니다. 네 번째 말씀은 마27:46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육적 고통에서 나온 말씀이며 붉은 피를 쏟으며 인류의 구속과 영생에 대한 절규였습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목마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여섯째 말씀은 요19:30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속죄의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고통과 아픔과 절망을 잘 참고 견디시며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일 곱째 말씀은 눅23:46에서"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이 땅에서의 33년의 삶을 마 감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 고 운명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실로 예수님의 일생은 땀과 피를 흘리시는 삶이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 난 예수님의 고난의 모습에서 네 번 피를 흘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면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 땀흘려 기도하시는데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같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는 가륫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재판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 가실 주님의 최후의 기도는 실로 참담하기까지 한 기도였습니다. 누가복음 22 장 44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 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처 럼 예수님 땀구멍에서 핏방울이 흐르는 참담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 서"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 기도의 뜻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죽음의 잔을 옮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사오니 십자가만은 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는데 땀같이 피가 흘렀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결론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빌라도 법정에서 채찍을 맞으시면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 당 시에 죄수에 대한 심문은 혹독하고 잔인했습니다. 죄수를 채찍질 할 때 쇠고 리가 달린 채찍으로 1회 39번씩 때렸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죄인 된 몸이셨기 때문에 심문 중 채찍으로 이렇게 맞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인무도한 로 마 병정들은 예수님을 무릎을 끓게 한 다음 침을 뱉고 그의 머리를 쳐다고 마27:29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은 온 머리, 이마 얼굴이 피투성이 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심한 매질과 조롱 속에서도 예수님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담대히 자신이 메시야인 것을 증거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이요 모습이었습니다.
셋째, 로마 군인들이 가시관을 머리 에 씌울 때에 피를 흘리셨습니다. 빌라도 총독에 의하여 사형선고가 내려졌을 때 로마 병사들은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 위에 씌웠던 것입니다. 세상의 온갖 불의를 저질렀던 제사장들과 음ㅎ한 흉계를 꾸며댔던 바리새 인 들 뇌물을 받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쳤던 군중들이 가시관을 쓰시고 피 흘 리시는 주님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흘리 신 피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속죄의 피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 십자가에 서 물과 피를 남김 없이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갖은 모욕, 핍박, 조롱을 다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못 박힌 주님의 손과 발에서는 붉은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 주님은 "아 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죄 없으신 주님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흘리셨습니까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려주일에 고난 당하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그 흘리신 피가 지금 내 심령에도 흘러 들어오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누가 예수님께 무슨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죽였습니 까 사형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죄목은 첫 번째로 국민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둘 째로 국가에 반역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의 몸 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막 10:45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 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이 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을 이렇게 고발하고 십자가에 죽게 한 자들이 누구인가 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유대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교만과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마 23:4에서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 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워 놓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아니한다고 책망하셨 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잔칫상의 상석,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위선자라고 마23:6-7에서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천국 문을 사람 앞에서 닫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못 들 어가게 하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는 교만한 자라고 통렬히 비난하고 고발하셨 습니다. 이처럼 위선과 교만, 독선으로 가득 차 있는 그들의 불 신앙이 예수님을 죽였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했 고 또 열심도 대단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겉으로만 그랬기에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도 형식에만 치우쳤지 생명을 잃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로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친 불 신앙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고발하고 죽게 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 받기 5일 전만 하더라도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라고 외치던 군중들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예수님을 죽이라 고 아우성을 쳤던 것입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돌변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 한 것을 심문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눅23:4에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보니 이 사람에는 죄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군중들이 죽이라는 아우성과 유 대 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압력과 협박에 반란이 일어날까바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만 사형선고를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자신 양심을 속이는 재판관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죄질이 나쁜 사람을 꼽으라면 자기 이익 때문에 거짓 판결 을 내리는 재판관과 거짓 증언을 하는 증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억울하겠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죽을죄를 짓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자기 입으로 여러 번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유대 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옅습니다. 빌라도는 무엇이 옳은가 하는데는 관심 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세상의 이익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빌라도는 그 죄 값을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아마 모든 인류 중에 빌라도 만 큼 저주를 많이 받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2000년 동안 모든 성도들은 예배 때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빌라도와 유대교 지도자들과 유대 백성들만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빌라도를 보십시오. 만약 내가 그때 빌라도 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우리 중에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말 법대로, 또 옳다고 믿는 대로 사는 사람 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도 결국 진리보다는 내 이익만 먼저 생각하는 빌라도 와 꼭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는 사실 빌라도 만도 아니고 또한 유대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만이 아니 며,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친 불 신앙의 백성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 곧 저와 여러분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정말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준 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요19:11에서 주님 빌라도에게 말씀하시기를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허락하셨기 에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병정 에게 뺨을 맞고,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이 능력이 없으셔서 그러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셨던 분 입니다. 풍랑도 잔잔케 하셨던 분입니다. 떡 두덩 이와 물고기 다섯으로 5000명을 먹 이고도 12광주리를 남기셨던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빌라도의 권세와 로마 병 정들이 두려우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얼마든지 예수님은 빌라도와 유대교 지 도자들을 멸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죄가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방법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아리따운 용모를 가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용모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불 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기에도 흉칙하게 일 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극구 반대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누가 볼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여 학생의 어머니는 딸의 당부를 깜박 잊은 채 도시락을 갖다 주려고 학교에 찾 아갔습니다. 딸의 반을 찾아 물어서 도시락을 전해 줄 때 그 여학생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친구들이 당연히 흉측한 얼굴의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 습니다. 이 여학생은 당황해서 그만 우리 집 식모라고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가지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방과 후 이 여학생은 울며불며 어머니 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느냐고,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 고. 그때 그 어머니가 딸의 울먹이는 등뒤에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어머니 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연이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란다. 아 버지는 회사에 출근하시고 나는 집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그만 원인 모를 불이 났었단다. 집안에는 어린아이인 너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이 난 것을 알았을 때는 이 미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단다. 사람들이 소리질러 그 사실을 안 나는 앞뒤 를 가릴 겨를도 없이 집안으로 달려들어갔고 안 방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너를 부둥켜안고 뛰쳐나왔단다. 나는 너를 안은 까닭에 뜨거운 불길 앞 에서도 내 얼굴을 가릴 수 없었단다. 그후 심한 화상을 얼굴에 입고 입원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그나마 생명은 건졌지만 얼굴은 이 모양이 되었구나" 이 여학생은 분이 나서 울먹이다가 어머니의 이 사연을 듣고는 돌아서서 눈 에 눈물이 가득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용서해주세요.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그후 이 여학생은 얼굴이 일그러진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도 당신만 생각하셨다면 얼마든지 고난을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가 자신만 생각하면 불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 참으시는 것 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 신앙적인 생활을 해도 그럭저럭 괜찮다 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일을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닌가하고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악한 자들이 벌을 받기는커녕 우리보다 잘되고 잘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참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참으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벧후 3:8-9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 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고 정신 바짝 차려서 믿음을 지 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즉 우리의 죄를 참아 주시는 때입니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또다른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여러분 지난해 괌에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 을 불러 일으켜 습니다. 혹시 그들 중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전도를 받고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부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추측컨대 대부분 거의 그런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겐 이미 하나님의 참으시는 은혜는 끝 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구원받았다고 하는 여러분들에게도 묻습니다. 혹 시 자신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둔 자가 되어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면서도 결단을 자꾸 미루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고 사명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참으 시는 때가 지나면 무서운 책망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를 참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을 받고 있을 때 바로 서야 합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며 은혜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 쉬되리니 제직의 직분, 구역장의 직분, 교사의 직분, 각 부서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흘리신 주님의 보혈의 피에 충성과 헌신과 감사로 보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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