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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눅22:47-62)

본문

오늘은 예수님이 우리 위해 세상에 오셨다가 우리 위해 고난 당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 날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군중들은 종려나뭇가지를 꺽어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하면서 대대적으로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종려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이 뜻 깊은 종려 주일 혹은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주일을 당해서 베드로의 인생의 세장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 1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1-5) 그 날 시몬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밤이 되도록 고기를 잡는 어부로서 수고를 거듭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를 못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바다의 내용을 손바닥 보듯이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은 자기의 지식과 경험대로 고기를 잡으면 기대했던 만큼은 고기를 잡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만은 이상할 정도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이 삶의 공허가 베드로를 깊이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조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가서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때 베드로는 그에게 말씀하시는 낯선, 그러면서도 도저히 거역 할 수 없는 그분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 속에 그 분의 말씀을 따라야겠다는 어떤 의지가 솟고 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베드로 앞에 나타나신 그분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나사렛 땅의 목수였습니다. 경험으로나 지식으로 말하면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시몬 베드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철학과 자기의 주관을 거부하는 엄청난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성도님이 위가 좋지 않아 평소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고통을 당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심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병원 응급실엘 갔더니 임시로 치료하고 정밀검사를 한다고 전문의가 진단을 했습니다. 결과는 궤양이 심해서 위에 구멍이 뚫려서 복막염이 생기기 직전이니 빨리 수술을 해서 그 부분을 절단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환자의 교회 목사님이 이 소식을 듣고 놀라 병원에 심방을 갔다가 전문의에게 “선생님, 이 환자를 제가 잘 아는데 본래 위가 좀 나빠서 소화시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보니까 음식을 좀 지나치게 먹은 것 같습니다. 수술할 병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의사가 뭐랄까요 점잖은 분이시라면 “목사님, 가셔서 설교나 하시지요”라고 한 마디로 어이없다는 듯이 잘라 버릴 것입니다. 다른 데는 몰라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에서만은 베드로는 자신이 있는, 요샛말로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의 지식, 경험, 생각을 주님의 말씀에 굴복시켰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가복음 5장 6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6-8)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에서 베드로는 두가지 큰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이 바다의 주인이시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닷속의 물고기의 흐름을 보시고 말씀하시는 주님, 내 삶, 내 의식, 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순간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날부터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삼는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내 지식, 내 경험, 내 주관대로 살 때 삶의 공허와 불안을 느꼈지만 내 경험보다, 내 지식보다, 내 철학보다 위대하신 그분이 정녕 내 삶의 주인이셔야만 하겠다는 놀라운 결단으로 자기 생을 주님 앞에 드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베드로에게 시작된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이 고백은 베드로의 처음 있는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기를 의지하여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고기를 낚았고, 그 날도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던 베드로의 입에서 ‘말씀을 의지하여’라는 고백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지식, 내 경험, 내 주관이 부인되는 순간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뿐만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내 것이 부인되고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셔야 하겠다는 이 놀라운 발견 앞에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입니다.” “이제부터는 말씀에 의지하여 살겠습니다.”라는 결단과 고백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결단에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나서는 제자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날이 베드로의 인생의 새 날이었고 여러분과 저의 새 날인 것입니다. 이런 삶 속에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지적과 도전을 받습니다.
2.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배반을 예고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의 수제자로서 누구보다도 주님의 남다른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가 타락할 것을 주님은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연약한가 하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의 행로 앞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함정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앞에 놓여져 있는 이 시험이 얼마나 큰 시험인지를 모르는 베드로의 한 말을 들어보세요. “주님, 제가 주와 함께 옥에도 그리고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는 다 버려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 자신보다 베드로를 더 잘 아셨습니다. 베드로를 향한 마귀의 도전이 얼마나 거세고 이 마귀의 도전에 베드로가 얼마나 무력한가 하는 것을 주님은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이 고백의 현장에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무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신앙의 여정이 자신의 결단과 결심 때문에 여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착각이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상기시켜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네가 오늘 여기까지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기도 때문이야”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 때문에 주님의 긍휼하심 때문에, 주님의 붙잡으심 때문에 우리는 연약해도, 우리는 무력해도, 오늘 여기까지 주님을 따라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베드로의 장담에도 불구 하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삼고, 새 인생을 시작하고 그 날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것은 아직도 주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아직도 자기 장담, 자기 결단에 의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베드로가 타락하지 않도록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로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이 실패, 이 타락을 통해서 베드로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54절 이하를 보세요. 예수님을 잡아 끌고 대 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서 불을 피우고 쪼이고 있는데 베드로도 함께 끼어 불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비자가 베드로에게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겁에 질린 베드로는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씩 부인했습니다.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회개한 것이 단순히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눈동자를 바라 본 그 순간 통곡과 회개가 시작된 것입니다. 자기 장담, 자기 결심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입니다. 그는 이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신앙생활은 내 장담, 내 결심, 내 의지, 내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베드로는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삼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끊임없이 지금까지 싸우고 있었던 그 싸움의 정체를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내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주님으로 고백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날부터 우리에게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삼아가는 싸움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서 여전히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주인은 아직도 주님이아니시고 ‘나 자신’입니다. 아직도 나는 나를 신뢰하고, 내 지식을 의지하고, 내 경험을 앞세우고, 내 생각과 주관을 의지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습니다.”라는 이 고백이 우리 삶 속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평생 자신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선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베드로의 삶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자기의 혈기였고 자기의 육신적인 장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 그가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인해서, 이 실패, 이 타락 때문에 그가 의지하고 있었던 ‘자기’라는 인생의 기초가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 경험은 베드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삶의 과정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날 어떻게 나의 삶의 현장에서도 베드로가 겪었던 이 사건을 겪게 하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 기도하고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 날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처음 주님께 드렸던 고백처럼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내 삶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부인한 이 사실, 그리고 이 사건 직후에 다시는 주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베드로, 베드로를 좇고 있던 주님과 주님의 눈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베드로의 시선이 마주칠때 베드로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통곡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고난받으시는 주님의 시선과 주님을 부인한 우리의 시선이 마주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회개하여 새 사람되기를 축원합니다.

3.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회복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위해 다시 사셨습니다. 여러분, 다시 사신 주님께서 이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여인들에게 들려 주실 때,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7절에 보면 천사들이 예수님의 다시 사신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 것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의 입술을 빌려서 예수님의 다시 사신소식이 전해질 때 주님께서는 이 여인들에게 가서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7절에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그의 제자들’이라는 말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이렇게 베드로를 지적하면서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직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에게 면목이 없어서 피하고 있는데 주님은 베드로를 뒤쫓고 계셨습니다. 실패를 안고 피하고 있던 베드로가 주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자기의 장담이 실패하고 자기의 육신이 무력하게 무너져 간 그 현장에서 다시는 주님의 얼굴을 뵐 수가 없고 그분의 시선을 마주칠 수 없었던 베드로가 피해 가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그를 만날 것이다.” ‘만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반드시 만나십니다. 다시 사신 주님께서 기어이 베드로를 찾으시고 그 앞에 서시고 그를 만나시는 것이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주시는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닷가에서 물고기 잔치를 준비하시고 이른 새벽에 찾아오신 주님, 그분은 한마디도 베드로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부인한 이유가 무엇이냐 따지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베드로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다만 조용하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버릴 수 없는 제자, 그래서 찾아오신 주님, 이 제자를 향한 사랑의 행동을 그에게 확인 시켜 준 후에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감히 주님이 말씀하셨던 ‘사랑’이라는 이 단어를 가지고 주님께 고백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러나 세 번씩 다그치는 주님의 물음 앞에 베드로는 크게 근심 하며 “주여, 모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옛날의 베드로처럼 그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베드로는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패를 통해서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신앙의 한 걸음도 승리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이 교훈을 배운 베드로에게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엄청난 교훈을 주께서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은 날에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이 말이 무슨 뜻이예요 “예수를 믿으면서도 네 마음대로 살고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 하면서도 네 주장을 내세우고 너 자신을 의지했으나,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기리키심이러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억지로 우리의 의지를 항복시키려하지 아니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예수님께 우리를 전적으로 굴복시키고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 주십니다. 내가 내 자신을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내세우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허물어져 버린 그런 현장에서 주님은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네 삶 속에 내가 간섭하마, 내가 너를 주장하마, 그래서 네 삶의 마지막에 내가 영광 받도록 내가 네 삶을 간섭하겠다.” 그래서 마침내 베드로의 삶이 주님에 의해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승리였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그것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주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내 마음대로 넘어지는 삶이 아닙니까 입으로는 고백을 하면서도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계속 부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침내 우리의 고백이 진정한 고백이 진정한 고백이 되도록 내 삶 속에서 항복과 승리를 받아 내실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에게 있어서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이 항복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승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적으로 손을 드는 것은 영적으로 승리입니다. 이 뜻 깊은 고난 주간을 당해서 베드로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그 십자가에서 승리의 삶을 배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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