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까지 참으라 (눅22:47-53)
본문
사법 연수원에서 장차 판.검사가 될 법관 생도들을 가르치는 교수이 면서, 한편으로 청.소년들의 범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강지원이 라는 검사가 쓴 책 중에 ''욱!'을 잘 넘기면 聖者가 된다'라고 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 있습니다. ''욱!'을 넘기면 성자가 된다…' 여러분,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지요-굳지 책을 사서 읽어보지 않아도 책제목만 보고도, 대충 그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 을 줄로 압니다. 곧 욱하는 한 순간의 끊어 오로는 감정만 잘 참고 넘기면, 누구나 다 聖者같이 어질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는 뜻입니다. 그가 오랫동안 수많은 범죄를 다루면서 느낀 것은,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다 한 순간 '욱!'하고 끓어오르는 순간적인 감정과/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모 해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마침내 깜깜한 감옥에 까지 들어가게 되더라 하는 것입니다.-흔히 우리가 생각하기는 교도소나 유치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무슨 희한한 별종의 사람들이거나, 본래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그들은 우리와는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인 줄로 알지만, 그러나 그건 순전한 誤解입니다.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여러분도, 구경 삼아 한번 교도소나 유치장엘 가 보십시오만은, 저들을 만나 보면, 절대로 그렇지 가 않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안양 교도소를 定期的으로 찾아가서, 저들에게 福 音을 전하며 위문하는 일이 있었다고 했지요-그때 우리가 만났던 죄수들 은, 모두가 다 보통 평범한 범죄자들이 아닌,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흉악 범/ 살인범들이었습니다. 최소한 사람을 한 사람 이상, 둘 혹은 셋을 죽인 강력 살인범들이었습니다. 고로 처음에 그곳에 들어갈 때, 저는 얼마나 긴 장하고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다 얼굴이 아주 무시무시하게 생긴 사람들이겠거니. 혹 조그만 실수나, 잘못 말을 건넸다가는 금방 공격을 해 오는 무서운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안에 들어가서/ 저들을 직접 만나 보고는, 방금 전에 가졌 던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고/ 誤解였다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못내 속으로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만나 본 저들 모 두가 다 어쩌면 그렇게도 선량하고 착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정기적으로 만 나는 죄수가 대략 열 명쯤 되었는데요, 그들 모두가 다 그랬습니다. 한결같 이 선량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지금 교 도소를 출감해서,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 려고 신학교엘 입학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들은, 찾아간 우리 여전도회의 회원들을 보고는/ 어머니! 할머 니 하면서/ 어찌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또 그렇게 찾아가 준 대 대한 보답이라고 하면서, 환영가까지 불러 주는 데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들의 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도저히 그들이 흉악한 살인범이 라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다시 한번 깊이 실감했습니다.'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격언의 의미를 말입니다.-그리고 강지원 검사의 말 이 새삼 다시 생각났습니다. 욱! 하는 한 순간만 잘 참고 넘기면 누구다 다 聖者가 될 수 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직 옥에 갇힌 그들과/ 밖에 있는 우리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욱!하는 순간적인 감정을, 어떻게 잘 참 고 넘겼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그 한가지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욱! 하고 끌어 오르는 한 순간의 감정은, 그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아 마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있을 것입니다. 한 평생 살아가노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그 순간을 잘 참고, 잘 넘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순 간만 잘 참고 넘기면, 누구나 다 聖者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잘 넘기지 못해서, 그처럼 착하고 선량하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무서운 살인범/ 흉악범/ 사형수까지 되고 마는 것이라" 고 강지원 검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저께도 뉴스를 들으니까, 어느 가정에 부부 싸움 끝에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남편 되는 사람이 집안에다 고의로 불을 질러서 온 가족이 몰살을 당했는가 뭐 그랬다지요-또 어떤 사람은 권총으로 쏘아서 사람을 둘씩 이나 죽이고, 그 자신도 자살을 하고 말았다 합니다. 이 모두가 다 알고 보면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욱!하고 치미는 한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영 돌이킬 수없는 큰 파멸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어떡하든지 우리는 한 평생 살면서, 이 욱! 하고 치미는 감정을, 잘 참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강지원 검사의 말 마따나 그래서 정말 다 聖者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론:오늘 본문 성경에도 보면, 또한사람, 욱! 하고 치미는 감정에 못 이겨서 그만 칼을 빼 들고 휘둘러/ 사고를 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굽니까-바로 예수님의 수제자-베드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이름 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 18장이나, 마태복음 26장을 읽어 볼 것 같으면, 칼을 빼 들고 친 사람은 바로 베드로였고, 그가 휘두른 칼에 맞아서 한 쪽 귀가 잘려나간 사람은 대 제사장의 종-말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오늘 성경의 이 본문은, 지난 주일에 우리가 보았던 그 장면-곧 예수님은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으나, 사랑하는 제자들은 쿨 쿨 자빠져서, 잠만 자고 있었던 그 장면과 바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일에 우리가 보았던 마지막 장면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제는 일어나 함 께 가자' 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지요 '어디로 가자 시는지' 그 방향에 대해서, 제자들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가자 시니 그저 따라나섰습니다. 아마도 잠을 자다가 금방 깨어났 기 때문에, 다소 정신이 없었고, 상황 판단도 잘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갑자기 앞에 대 제사장을 비롯한 군대의 한 무리가 칼과 쇠뭉치를 들고 이리로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차츰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그 행렬의 선두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고 같이 지냈던, 역시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가까이 이르자, 먼저 가룟 유다는 한발 앞서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인사 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그 입맞춤은 결코 다정한 반가움의 인사도 아니고, 또 제자가 그 선생에게 할 수 있는 경의의 표시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바로 이가 너희가 찾고 있는 선생 예수시니 이제 그를 잡으라' 라고 하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야비하고, 가장 악한 배신의 표 시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 배신의 신호에 때맞쳐서 제사장의 군병들은 갑 자기 달려들어서 예수님을 포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그러자 그 순간, 제자들이 얼마나 놀라고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49절에 보면, 제자 중에 하나가 얼른 나서서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말함 과 동시에/ 주님의 대답을 기다릴 여유도 없이/ 당장 칼을 빼 들고는 말고의 귀를 내리쳤습니다. 그가 바로 수제자 베드로였습니다. 자-그럴 때, 얼른 생각하면, 베드로의 이 행동은 매우 용감하고 의리 있는 사람의 감동적인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그렇지요-누가 감히 자기 선생 을 포박하여 잡고자 하는데, 가만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만있었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태지요 마땅히 나서서 막아서거나, 요즘 유행하는 무슨 보디가드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행동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베드로의 이 행동은 참 의리가 있고, 용맹하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좀 더 자세히/ 성경을 앞뒤의 문맥을 따라서 잘 읽고/ 분석해 보면,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의 그 행동은 정말 진정 그가 용기가 있어서, 의리가 있 어서/ 한 행동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지금 말하여/ 혹 천국에 가 있는 베드로 선생이 들으시고는 몹시 서운해하실 지 모르나, 그러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규명해야 옳겠지요 그러면 제가 본 그 사실이란 어떤 것이냐-그것은 단지 베드로가 욱! 하는 어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서, 곧 자기 감정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서 저지른 하나의 실수였고, 사고였을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직 도 자다가 금방 깼기 때문에, 정신이 덜 들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 거나 말입니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그것은, 역시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두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아서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 로 망한다라고 하신 주님의 책망의 말씀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주님은 조 금도 베드로의 그러한 행동을 칭찬하거나 기뻐하시지 않으셨고, 오히려 크 게 책망하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고로 우리는 미루어 판단할 수 있습니다. 46절에도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만,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 나 기도하라'-곧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바로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하 고, 마땅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했어야 할 시간에 기도하지 않고, 쿨 쿨 자빠져서 잠만 잤기 때문에, 결국 이런 결과에 이르고 말았다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큰 시험에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둘째는, 36계 줄행랑을 친 비겁한 행동입니다. 막상 주님이 잡혀서 끌려 가시자, 나머지 제자들을 비롯한 베드로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다 도망치 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그 중에 베드로만은 그래도 다시 돌아와 멀찍이 뒤 떨어져서 따라가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야말로, '멀찍이' 떨어져서 아주 어중간하게 따라 갔을 뿐입니다.-언제든지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치겠다는 준비자세를 취하고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제사장의 집 뜰에서, 전혀 아닌 체 하고 숨어서 불을 쬐고 있다가, 제사장의 女從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저 사람도 갈릴리 사람이다. 예수의 제자다" 하니까 얼른 '아니라고/ 나는 절대 아니라고 두 번 세 번 부인하기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자-그러고 보면 명백합니다. 칼을 빼든 베드로의 행동은 결코 용기도 의 리도 아니고, 단지 욱! 하는 순간적인 어떤 감정에 빠져서 저지른 단순한 혈 기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 다른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그의 행동을 하나도 존경하거나 본받을 점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참으로 주의 깊이 관찰하며 살피고 또한 묵상해야 할 말씀은 따로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 이것까지 참으라' 고 가르치신 주님의 말씀과, 그리고 그 행동입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이것'이 무엇입니까-한마디로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굴욕과, 모순과, 억울함과 배신을 말합니다. 바로 그것을 참으 라. 그것까지도 참고 견디라는 말씀입니다.
사실은 여기서 정말 화를 내고, 칼이 있다면, 칼을 들고 내리치고 싶었을 사람은 바로 베드로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이셨을 겁니다. 무엇 때문에 저들 에게 잡히고, 무슨 잘못을 있었기에 저들에게 이처럼 구금을 당해야 옳단 말 입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습니다. 한마 디로 '아무 이유 없음' 그 뿐입니다. 오직 주님이 지금까지 하신 일이란 불치의 병든 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해 주시고, 귀신 들린 자 귀신을 쫓아 내주시고,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 내시고, 혹은 배고픈 자에게 떡으로 배불리 먹여 주신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일은 한결같이 다 크게 常을 받고,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니겠 습니까 더구나 알고 보면 그 분은 예사 분이 아니라 바로 메시아 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시어 천국으로 인도하 실 존귀하신 분, 그리스도/ 救世主이셨습니다. 그래 그런 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무슨 죄가 있다고/ 마치 중죄 인 다루듯이, 칼과 쇠뭉치를 들고 찾아와서 포박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고로 도저히 참고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참겠습니까 그래서 성급한 베 드로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빼 들고 설쳤습니다만, 그러나 정말 칼을 빼 들고, 맞서야 할 사람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 예수님의 행동을 잘 주목해 보십시오. 오히려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떨어진 말고의 한 쪽 귀를 다시 제자리에 붙여 주시고는 '아사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 하시고, 또한 '이것까지도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혹 참을 수 없는 사람, 참을 수 없는 일이 주위에 더러 있 습니까 욱!을 참으면, 성자가 된다고 하지만, 그러나 성자가 못되는 한이 있어도 그것만은 도저히 참고 넘길 수가 없다 라고 하는 일이 혹 주위에 있습 니까 아마 앞으로도 종종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여러분, 꼭 오늘 우리 주님의 이 인내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억울한 가운데도 주님은 참으셨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 욕적이고 굴욕적인 것들 다 참고 넘기셨습니다.-아마도 그 중에서도 가장 참기 어려우셨던 대목은/ 제자 유다의 입맞춤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처럼 자기 선생을 파는 못된 배신을 저질렀으면, 맨 뒤에나 서서 가만히 구 경이나 하고 있을 일이지, 그래 또 맨 앞에 서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라고 하면서 입을 맞추며 인사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혹 우리 같으면, 어떡 했을 것같습니까 귓불이 떨어져 나가도록 힘껏 후려갈겨 주지 않고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잠잠히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리고는 '이것까지도 참으 라.'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크고 작은 우리 사이의 분쟁과 다툼은 다 무 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거의 대부분이/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을, 참지 못하는데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욱! 하고 치미는 순 간적인 감정을 못 이겨서-그 한 순간을 못 참아서/ 그만 큰 다툼과 분쟁 속으로/ 자꾸만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한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기분 나쁘면 지옥도 불 사한다.' 정말 그런 것같습니다. 기분 나쁘면, 도대체 목사도/ 하나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안 나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사람 어떻게 되고 말겠습니까 지옥으로 풍덩 떨어지고 말지요 뭐.그런 사람 주위에 참 많지요 그래서 흔히 '순교자가 되기 보다 기분 나쁜 것 참고 견디기가 더 어렵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우리는,어떡하든지 이 기분이라는 것, 감정이라는 것을 꼭 극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면,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아직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 습니다. 또한 그 사람은 언제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 언제 하나님의 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지/ 알 수 없는 아주 불안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는 혹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이제 이후로는 이 말씀을 꼭 마음에 새기시고, 부디 참으며 삽시다. 이것까지도 참으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 예수님이 힘이 모자라서, 그처럼 비 참하게 당하셨을 것같습니까 결코 그렇지가 않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하신 말씀입니다만,' 내가 하려고 하면, 지금 당장 내 아버지께 구하여 12영 도 더 되는 천사를 부를 수도 있다.' 營이란 군대의 용어로서 보통 한 영 은 6만 명 가량인데, 12영이라고 했으니, 그 수가 자그만지 72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입니다. 천사 하나만 있어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을 72만 명의 천사를 불렀다고 한번 가정해 보십시오. 한 순간에 이 세상을 다 뒤집 어엎어 버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마음 만 잡수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참고, 그렇 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바로 여기에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참지 않 고는/ 인내가 없이는/ 결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참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이라고 말입니다.'성령님의 열매는 오직 인내라'고 말입니다. 인내 가 없는 겸손/ 위선입니다. 참음이 없는 순종/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내가 없는 봉사, 수고/ 다 자기를 나타내는 한낱 자랑만 될 뿐입니다.
인내가 없 이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인내입니다. 인내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습니다. 또 인내는 무엇입니까-한마디로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모두 다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결코 인내가 아닙니다. 또한 인내란 욱!하는 순간적인 기분/ 감정을 참고 견디는 일입니다. 어떤 비굴한 모욕까지도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인내라 하는 것입니다. 뜻깊은 이 사순절 절기에/ 오늘 주님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참으라. 참되 끝까지 참으라'이것까지도 참으라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저와 여러분이 꼭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주님, 저희는 베드로와 같이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얼마나 큰 실수와 잘못을 범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한 순간의 작은 모욕을 참지 못해서 얼마나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도저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용서를 빕니다. 저희의 모든 지난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주신 말씀-이것까지도 참으라 고 하신 주님의 귀한 말씀을, 정말 깨끗한 심령으로 저희가 받아서/ 마음 판에 깊이 새기고, 꼭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이후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 무리 어려운 일도 참고 넘기며 살게 하옵시고,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이름에 욕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가 부족할 때, 도와주 시고, 혹 이 말씀을 잊어버리고 함부로 행동하려고 할 때는, 이 말씀이 다시 떠올라져서, 꼭 참고이기며 살게 하옵소서.아멘
정기적으로 만 나는 죄수가 대략 열 명쯤 되었는데요, 그들 모두가 다 그랬습니다. 한결같 이 선량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지금 교 도소를 출감해서,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 려고 신학교엘 입학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들은, 찾아간 우리 여전도회의 회원들을 보고는/ 어머니! 할머 니 하면서/ 어찌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또 그렇게 찾아가 준 대 대한 보답이라고 하면서, 환영가까지 불러 주는 데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들의 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도저히 그들이 흉악한 살인범이 라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다시 한번 깊이 실감했습니다.'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격언의 의미를 말입니다.-그리고 강지원 검사의 말 이 새삼 다시 생각났습니다. 욱! 하는 한 순간만 잘 참고 넘기면 누구다 다 聖者가 될 수 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직 옥에 갇힌 그들과/ 밖에 있는 우리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욱!하는 순간적인 감정을, 어떻게 잘 참 고 넘겼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그 한가지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욱! 하고 끌어 오르는 한 순간의 감정은, 그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아 마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있을 것입니다. 한 평생 살아가노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그 순간을 잘 참고, 잘 넘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순 간만 잘 참고 넘기면, 누구나 다 聖者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잘 넘기지 못해서, 그처럼 착하고 선량하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무서운 살인범/ 흉악범/ 사형수까지 되고 마는 것이라" 고 강지원 검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저께도 뉴스를 들으니까, 어느 가정에 부부 싸움 끝에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남편 되는 사람이 집안에다 고의로 불을 질러서 온 가족이 몰살을 당했는가 뭐 그랬다지요-또 어떤 사람은 권총으로 쏘아서 사람을 둘씩 이나 죽이고, 그 자신도 자살을 하고 말았다 합니다. 이 모두가 다 알고 보면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욱!하고 치미는 한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영 돌이킬 수없는 큰 파멸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어떡하든지 우리는 한 평생 살면서, 이 욱! 하고 치미는 감정을, 잘 참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강지원 검사의 말 마따나 그래서 정말 다 聖者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론:오늘 본문 성경에도 보면, 또한사람, 욱! 하고 치미는 감정에 못 이겨서 그만 칼을 빼 들고 휘둘러/ 사고를 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굽니까-바로 예수님의 수제자-베드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이름 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 18장이나, 마태복음 26장을 읽어 볼 것 같으면, 칼을 빼 들고 친 사람은 바로 베드로였고, 그가 휘두른 칼에 맞아서 한 쪽 귀가 잘려나간 사람은 대 제사장의 종-말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오늘 성경의 이 본문은, 지난 주일에 우리가 보았던 그 장면-곧 예수님은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으나, 사랑하는 제자들은 쿨 쿨 자빠져서, 잠만 자고 있었던 그 장면과 바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일에 우리가 보았던 마지막 장면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제는 일어나 함 께 가자' 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지요 '어디로 가자 시는지' 그 방향에 대해서, 제자들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가자 시니 그저 따라나섰습니다. 아마도 잠을 자다가 금방 깨어났 기 때문에, 다소 정신이 없었고, 상황 판단도 잘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갑자기 앞에 대 제사장을 비롯한 군대의 한 무리가 칼과 쇠뭉치를 들고 이리로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차츰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그 행렬의 선두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고 같이 지냈던, 역시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가까이 이르자, 먼저 가룟 유다는 한발 앞서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인사 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그 입맞춤은 결코 다정한 반가움의 인사도 아니고, 또 제자가 그 선생에게 할 수 있는 경의의 표시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바로 이가 너희가 찾고 있는 선생 예수시니 이제 그를 잡으라' 라고 하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야비하고, 가장 악한 배신의 표 시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 배신의 신호에 때맞쳐서 제사장의 군병들은 갑 자기 달려들어서 예수님을 포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그러자 그 순간, 제자들이 얼마나 놀라고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49절에 보면, 제자 중에 하나가 얼른 나서서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말함 과 동시에/ 주님의 대답을 기다릴 여유도 없이/ 당장 칼을 빼 들고는 말고의 귀를 내리쳤습니다. 그가 바로 수제자 베드로였습니다. 자-그럴 때, 얼른 생각하면, 베드로의 이 행동은 매우 용감하고 의리 있는 사람의 감동적인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그렇지요-누가 감히 자기 선생 을 포박하여 잡고자 하는데, 가만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만있었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태지요 마땅히 나서서 막아서거나, 요즘 유행하는 무슨 보디가드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행동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베드로의 이 행동은 참 의리가 있고, 용맹하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좀 더 자세히/ 성경을 앞뒤의 문맥을 따라서 잘 읽고/ 분석해 보면,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의 그 행동은 정말 진정 그가 용기가 있어서, 의리가 있 어서/ 한 행동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지금 말하여/ 혹 천국에 가 있는 베드로 선생이 들으시고는 몹시 서운해하실 지 모르나, 그러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규명해야 옳겠지요 그러면 제가 본 그 사실이란 어떤 것이냐-그것은 단지 베드로가 욱! 하는 어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서, 곧 자기 감정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서 저지른 하나의 실수였고, 사고였을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직 도 자다가 금방 깼기 때문에, 정신이 덜 들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 거나 말입니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그것은, 역시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두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아서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 로 망한다라고 하신 주님의 책망의 말씀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주님은 조 금도 베드로의 그러한 행동을 칭찬하거나 기뻐하시지 않으셨고, 오히려 크 게 책망하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고로 우리는 미루어 판단할 수 있습니다. 46절에도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만,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 나 기도하라'-곧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바로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하 고, 마땅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했어야 할 시간에 기도하지 않고, 쿨 쿨 자빠져서 잠만 잤기 때문에, 결국 이런 결과에 이르고 말았다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큰 시험에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둘째는, 36계 줄행랑을 친 비겁한 행동입니다. 막상 주님이 잡혀서 끌려 가시자, 나머지 제자들을 비롯한 베드로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다 도망치 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그 중에 베드로만은 그래도 다시 돌아와 멀찍이 뒤 떨어져서 따라가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야말로, '멀찍이' 떨어져서 아주 어중간하게 따라 갔을 뿐입니다.-언제든지 상황이 불리하면 도망치겠다는 준비자세를 취하고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제사장의 집 뜰에서, 전혀 아닌 체 하고 숨어서 불을 쬐고 있다가, 제사장의 女從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저 사람도 갈릴리 사람이다. 예수의 제자다" 하니까 얼른 '아니라고/ 나는 절대 아니라고 두 번 세 번 부인하기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자-그러고 보면 명백합니다. 칼을 빼든 베드로의 행동은 결코 용기도 의 리도 아니고, 단지 욱! 하는 순간적인 어떤 감정에 빠져서 저지른 단순한 혈 기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 다른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그의 행동을 하나도 존경하거나 본받을 점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참으로 주의 깊이 관찰하며 살피고 또한 묵상해야 할 말씀은 따로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 이것까지 참으라' 고 가르치신 주님의 말씀과, 그리고 그 행동입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이것'이 무엇입니까-한마디로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굴욕과, 모순과, 억울함과 배신을 말합니다. 바로 그것을 참으 라. 그것까지도 참고 견디라는 말씀입니다.
사실은 여기서 정말 화를 내고, 칼이 있다면, 칼을 들고 내리치고 싶었을 사람은 바로 베드로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이셨을 겁니다. 무엇 때문에 저들 에게 잡히고, 무슨 잘못을 있었기에 저들에게 이처럼 구금을 당해야 옳단 말 입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습니다. 한마 디로 '아무 이유 없음' 그 뿐입니다. 오직 주님이 지금까지 하신 일이란 불치의 병든 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해 주시고, 귀신 들린 자 귀신을 쫓아 내주시고,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 내시고, 혹은 배고픈 자에게 떡으로 배불리 먹여 주신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일은 한결같이 다 크게 常을 받고,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니겠 습니까 더구나 알고 보면 그 분은 예사 분이 아니라 바로 메시아 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시어 천국으로 인도하 실 존귀하신 분, 그리스도/ 救世主이셨습니다. 그래 그런 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무슨 죄가 있다고/ 마치 중죄 인 다루듯이, 칼과 쇠뭉치를 들고 찾아와서 포박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고로 도저히 참고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참겠습니까 그래서 성급한 베 드로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빼 들고 설쳤습니다만, 그러나 정말 칼을 빼 들고, 맞서야 할 사람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 예수님의 행동을 잘 주목해 보십시오. 오히려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떨어진 말고의 한 쪽 귀를 다시 제자리에 붙여 주시고는 '아사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 하시고, 또한 '이것까지도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혹 참을 수 없는 사람, 참을 수 없는 일이 주위에 더러 있 습니까 욱!을 참으면, 성자가 된다고 하지만, 그러나 성자가 못되는 한이 있어도 그것만은 도저히 참고 넘길 수가 없다 라고 하는 일이 혹 주위에 있습 니까 아마 앞으로도 종종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여러분, 꼭 오늘 우리 주님의 이 인내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억울한 가운데도 주님은 참으셨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 욕적이고 굴욕적인 것들 다 참고 넘기셨습니다.-아마도 그 중에서도 가장 참기 어려우셨던 대목은/ 제자 유다의 입맞춤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처럼 자기 선생을 파는 못된 배신을 저질렀으면, 맨 뒤에나 서서 가만히 구 경이나 하고 있을 일이지, 그래 또 맨 앞에 서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라고 하면서 입을 맞추며 인사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혹 우리 같으면, 어떡 했을 것같습니까 귓불이 떨어져 나가도록 힘껏 후려갈겨 주지 않고 견딜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잠잠히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리고는 '이것까지도 참으 라.'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크고 작은 우리 사이의 분쟁과 다툼은 다 무 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거의 대부분이/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을, 참지 못하는데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욱! 하고 치미는 순 간적인 감정을 못 이겨서-그 한 순간을 못 참아서/ 그만 큰 다툼과 분쟁 속으로/ 자꾸만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한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기분 나쁘면 지옥도 불 사한다.' 정말 그런 것같습니다. 기분 나쁘면, 도대체 목사도/ 하나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안 나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사람 어떻게 되고 말겠습니까 지옥으로 풍덩 떨어지고 말지요 뭐.그런 사람 주위에 참 많지요 그래서 흔히 '순교자가 되기 보다 기분 나쁜 것 참고 견디기가 더 어렵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우리는,어떡하든지 이 기분이라는 것, 감정이라는 것을 꼭 극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면,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아직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 습니다. 또한 그 사람은 언제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 언제 하나님의 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지/ 알 수 없는 아주 불안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는 혹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이제 이후로는 이 말씀을 꼭 마음에 새기시고, 부디 참으며 삽시다. 이것까지도 참으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 예수님이 힘이 모자라서, 그처럼 비 참하게 당하셨을 것같습니까 결코 그렇지가 않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하신 말씀입니다만,' 내가 하려고 하면, 지금 당장 내 아버지께 구하여 12영 도 더 되는 천사를 부를 수도 있다.' 營이란 군대의 용어로서 보통 한 영 은 6만 명 가량인데, 12영이라고 했으니, 그 수가 자그만지 72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입니다. 천사 하나만 있어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을 72만 명의 천사를 불렀다고 한번 가정해 보십시오. 한 순간에 이 세상을 다 뒤집 어엎어 버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마음 만 잡수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참고, 그렇 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바로 여기에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참지 않 고는/ 인내가 없이는/ 결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참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이라고 말입니다.'성령님의 열매는 오직 인내라'고 말입니다. 인내 가 없는 겸손/ 위선입니다. 참음이 없는 순종/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내가 없는 봉사, 수고/ 다 자기를 나타내는 한낱 자랑만 될 뿐입니다.
인내가 없 이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인내입니다. 인내가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습니다. 또 인내는 무엇입니까-한마디로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모두 다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결코 인내가 아닙니다. 또한 인내란 욱!하는 순간적인 기분/ 감정을 참고 견디는 일입니다. 어떤 비굴한 모욕까지도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인내라 하는 것입니다. 뜻깊은 이 사순절 절기에/ 오늘 주님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참으라. 참되 끝까지 참으라'이것까지도 참으라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저와 여러분이 꼭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주님, 저희는 베드로와 같이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얼마나 큰 실수와 잘못을 범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한 순간의 작은 모욕을 참지 못해서 얼마나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도저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이 시간 주님께 용서를 빕니다. 저희의 모든 지난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주신 말씀-이것까지도 참으라 고 하신 주님의 귀한 말씀을, 정말 깨끗한 심령으로 저희가 받아서/ 마음 판에 깊이 새기고, 꼭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이후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 무리 어려운 일도 참고 넘기며 살게 하옵시고,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이름에 욕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가 부족할 때, 도와주 시고, 혹 이 말씀을 잊어버리고 함부로 행동하려고 할 때는, 이 말씀이 다시 떠올라져서, 꼭 참고이기며 살게 하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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