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한 사람의 비극 (눅23:1-25)
본문
어떤 사람이 “당신의 경쟁자”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게는 적이 한 사람 있었다. 나는 그를 알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그는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의 발길을 피해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나의 계획을 방해했고 나의 목표를 좌절시켰으며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할 때, 그는 을씨년스럽게 내게 말했다. "안된다." 어느 날 밤 나는 그를 잡았다. 그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베일을 벗겼다. 나는 드디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여러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다음 행에 있는 말입니다. 아.! 그 얼굴은 바로 나였다. 한 기자가 위대한 복음전도자 무디에게 "어떤 사람이 당신을 가장 괴롭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무디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살아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무디라는 작자 때문에 가장 골치를 썩고 있소." 잭 파아(Jack Paar)라는 사람도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 일생을 돌이켜 보건대 나는 많은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장애물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을 때는 세상을 정복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와지면 자신을 정복하려고 할 것입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데 한 몫 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결국 그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우유부단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우유부단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살펴보며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우유부단한 사람은 과거의 실패에 매여 있습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중요한 문제를 놓고 판단이나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시간을 끕니다. 이것은 신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십중팔구 과거에 여러 차례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방을 다스린 여섯 번째 로마 총독입니다(주후 26-36년). 그는 전형적인 로마군인이었습니다. 용맹스럽고 거만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그마한 지방의 총독이지만 이것을 발판으로 더 출세가도에 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에 엄격하여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조금이라도 홀대하면 곧장 화를 터뜨리는 민족입니다. 이들을 통치하려면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매사를 강압적으로 처리하며 복종을 강요하는 오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갈등은 빌라도가 부임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루살렘 수비대에 황제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기를 가지고 행진하고 요새에 그것을 꽃도록 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우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터졌습니다. 예루살렘은 적당한 물 공급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수도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큰 역사였습니다. 그는 그 비용을 성전 보물고에서 지출시키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연히 그 신성모독에 대해서 분개했습니다. 빌라도는 더욱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는 성전 뜰에서 일단의 갈릴리 사람들을 덮쳐 그들의 피를 그들이 바치려는 희생제물의 피와 섞었습니다. 유대 지방은 증오로 끓어올랐습니다. 빌라도가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에서 황제의 이름이 금박으로 새겨진 봉헌 방패를 매달았을 때 그 증오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것은 기를 들여오는 것보다 덜한 것이었겠지만 이미 분노한 백성을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네 아들을 포함하여 귀족의 무리를 앞세우고 빌라도에게 다가와서 방패를 제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완고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황제에게 탄원을 했습니다. 디베료(티베리우스) 황제는 자기의 관심사인 세수와 질서가 유지되는 한 지방에서 어떤 일이 있든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세금이 밀린다든가 폭동이 일어나 군대가 진압에 나서야 한다면 총독에게는 화가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의 탄원은 황제의 심사를 불편케 했습니다. 그는 빌라도를 꾸짖고 방패를 치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과 빌라도의 관계는 심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달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빌라도는 이렇게 과거에 여러 차례 유대인들과 마찰을 빚었고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못하게 여기는 요인이 무엇입니까 늘 화만 내는 부모입니까 여러분을 인정해 주지 않는 이성입니까 경쟁심을 일으키는 친구입니까 이런 요인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변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태어난 것을 아무리 한탄해 봤자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부모의 성격이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그 동안 불행을 감수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부모나 이성이나 가정배경을 내가 변하게 할 수는 없지만 오늘 나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현재의 우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좋게 평가할지라도 우리 자신이 보기에는 결점과 허점들이 많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변화를 이루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형성하기 위하여 오늘 그렇게 힘쓰십시오. 오늘 밤에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작정하고 행하십시오.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천해보도록 힘쓰십시오. 영어회화 하루에 20분씩만이라도 공부하십시오. 컴퓨터 서적을 하나 사 들고 읽으십시오. 우유부단한 사람은 나약한 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에도 또 실패하게 될거야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매사에 자신 없어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진보와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입니다.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실패 때문에 사람이 비참해지는 것이 아니고 실패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천 번 이상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자신의 실패를 동정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제까지 되지 않는 방법 수백 가지를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개의 곡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8백번이라는 작품을 써보고 66세가 되서야 나타난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시스턴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해 본 결과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한두 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실패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번도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은 완전한 실패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보람 있는 일을 하려고 한번도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의 위신이 손상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용감히 시도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결코 해 낼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임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둘째, 우유부단한 사람은 책임을 전가하려고 합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골치 아픈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주위에서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서 될 수 있다면 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려고 합니다. 빌라도를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중심이 되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이끌고 왔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고소가 종교적인 것이려니 생각하고 떠맡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요18:31) 이에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하며 이 사건을 맡아줄 것을 강력히 항의하자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심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잘 됐다 싶어 유월절을 맞아 때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는 헤롯왕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 결국은 빌라도가 재판을 다시 떠맡게 되었지만 그는 이처럼 예수님의 재판을 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예수님에게 유죄를 내려야 할지 무죄를 내려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행세하며 백성들을 선동하였다느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였다느니 하며 중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고이며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문제라 판단하여 무죄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놓아주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위협에 눌려서 결국 그들의 요구에 굴복했습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19:12)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27:24) 우유부단한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려는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행동원칙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은 이렇게 처리하고 또한 번은 다르게 처리합니다. 당연히 거기에 대한 위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립니다. 이러다 보면 그나마 지니고 있던 원칙마저 잃게 되고 그것은 더욱 그를 우유부단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됩니다. 검찰총장이 검찰을 대표하여 사실상 김대중 총재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수사하지 않는다-구체적인 증거가 나오면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철저히 수사한다-수사를 유보한다.” 수사에 착수하면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합니다. 잘했다는 격려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검찰의 태도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칙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직대통령과 김현철씨의 경우에는 설만 가지고도 수사에 착수했는데 이번에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검찰본연의 임무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정치색을 띤 것입니다. 우유부단한 행동을 탈피하려면 객관적이고 타당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이 원칙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절대적인 원칙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즘 청춘남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끼 있는 여자, 터프 가이, 톡톡 튀는 행동, 산소 같은 여자(유머)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을 붉혔습니다. 요즘은 음담패설에 맞장구 치는 여자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염치와 정절로 단장하라고 했는데 전혀 딴판입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상이 아니다. 거친 것보다 부드러운 것, 뻣뻣한 것보다 유연한 것. 힘만이 제일이 아니다. 나폴레옹이 예수님에 대해서 한 말.
셋째, 우유부단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불행하게 됩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책임을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요행히 오르게 되었다 하더라도 일관성 없이 일을 처리하므로 부적격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빌라도는 재판에서 자기는 죄가 없다는 표시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씻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공범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4:27,28) 빌라도는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하여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옳지 못한 일을 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가장 끔찍한 형벌에 처했습니다. 원칙을 좇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처신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정치가가 되기보다 인기 있는 정치가가 되는 쪽을 택했습니다. 자신의 인격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자신의 명성에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인기와 명성을 좇다 보니 진리를 거스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중이 비참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사건이 있은지
2,3년 뒤(주후 36년)에 시리아 총독(governor)의 탄핵 요구로 프랑스 남동부의 한 도시(Vienne in Gaul)로 추방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거기에서 자살했다고 합니다. 다수가 좋아한다고 하여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다수의 의견을 좇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일 욕을 많이 먹는 사람이 경제정책을 이끄는 강경식 부총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좋아합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시장경제원리를 실천하고자 애씁니다. 정치권에서 질타하고 경제계에서 비난하고 노동계에서 타도대상으로 삼고 퇴진운동을 벌이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분은 인기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해도 전가한 것 자체에 대한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그 일도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자기가 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미루고, 난처하다고 떠넘기고, 어렵다고 피하려고 하는 한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습니다. 실패하게 되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궂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동하십시오. 때로는 고뇌에 찬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령님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 한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모험을 하십시오. 당신이 옳은 결정을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고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우유부단한 행동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지 말라. 성경에는 우유부단한 또한 사람이 나온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를 지나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행24:24-27)
이태 동안 그는 믿기로 결정하지 못했다. 그가 바울을 구류하여 두었다는 말에서 그가 믿음을 끝내 가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헤롯이 크게 번민하였다.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눅6:19,20) 그러나 그가 석방한 것도 아니고 해서 헤로디아와 그의 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갔다. 자신의 위신도 생각하고. 비행기 참사가 있고난 후에 여행자 보험이 크게 늘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평상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다가 정작 이런 일이 벌어지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괌 여행객들이 예약 취소하는 사태가 줄을 이었습니다. 자기가 탄 비행기가 동일한 사고를 당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독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 형벌에 관한 것에는 움츠려들지 않고 있으니 이상할 뿐입니다. 미국 네브라스카산 수입쇠고기에서 O-157 병원균이 검출되었다 하여 관계 부처가 비상이 걸렸고 수입고기 전반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구매도 줄어들었습니다. 설사 병원균이 있는 고기라 하더라도 충분히 익혀 먹으면 아무 지장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고기뿐 아니라 수입고기 전반에 대한 구매가 줄어든 것입니다. 어디서 농약이 검출되었다 하면 그것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집니다. 그것을 먹었다고 해서 당장 심각한 장애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성분이 계속 체내에 축적되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몸을 사리며 주의를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첫째, 우유부단한 사람은 과거의 실패에 매여 있습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중요한 문제를 놓고 판단이나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시간을 끕니다. 이것은 신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십중팔구 과거에 여러 차례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방을 다스린 여섯 번째 로마 총독입니다(주후 26-36년). 그는 전형적인 로마군인이었습니다. 용맹스럽고 거만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그마한 지방의 총독이지만 이것을 발판으로 더 출세가도에 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에 엄격하여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조금이라도 홀대하면 곧장 화를 터뜨리는 민족입니다. 이들을 통치하려면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매사를 강압적으로 처리하며 복종을 강요하는 오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갈등은 빌라도가 부임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루살렘 수비대에 황제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기를 가지고 행진하고 요새에 그것을 꽃도록 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우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터졌습니다. 예루살렘은 적당한 물 공급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수도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큰 역사였습니다. 그는 그 비용을 성전 보물고에서 지출시키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연히 그 신성모독에 대해서 분개했습니다. 빌라도는 더욱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는 성전 뜰에서 일단의 갈릴리 사람들을 덮쳐 그들의 피를 그들이 바치려는 희생제물의 피와 섞었습니다. 유대 지방은 증오로 끓어올랐습니다. 빌라도가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에서 황제의 이름이 금박으로 새겨진 봉헌 방패를 매달았을 때 그 증오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것은 기를 들여오는 것보다 덜한 것이었겠지만 이미 분노한 백성을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네 아들을 포함하여 귀족의 무리를 앞세우고 빌라도에게 다가와서 방패를 제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완고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황제에게 탄원을 했습니다. 디베료(티베리우스) 황제는 자기의 관심사인 세수와 질서가 유지되는 한 지방에서 어떤 일이 있든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세금이 밀린다든가 폭동이 일어나 군대가 진압에 나서야 한다면 총독에게는 화가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의 탄원은 황제의 심사를 불편케 했습니다. 그는 빌라도를 꾸짖고 방패를 치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과 빌라도의 관계는 심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달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빌라도는 이렇게 과거에 여러 차례 유대인들과 마찰을 빚었고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못하게 여기는 요인이 무엇입니까 늘 화만 내는 부모입니까 여러분을 인정해 주지 않는 이성입니까 경쟁심을 일으키는 친구입니까 이런 요인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변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태어난 것을 아무리 한탄해 봤자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부모의 성격이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그 동안 불행을 감수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부모나 이성이나 가정배경을 내가 변하게 할 수는 없지만 오늘 나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현재의 우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좋게 평가할지라도 우리 자신이 보기에는 결점과 허점들이 많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변화를 이루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형성하기 위하여 오늘 그렇게 힘쓰십시오. 오늘 밤에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작정하고 행하십시오.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천해보도록 힘쓰십시오. 영어회화 하루에 20분씩만이라도 공부하십시오. 컴퓨터 서적을 하나 사 들고 읽으십시오. 우유부단한 사람은 나약한 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에도 또 실패하게 될거야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매사에 자신 없어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진보와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입니다.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실패 때문에 사람이 비참해지는 것이 아니고 실패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천 번 이상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자신의 실패를 동정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제까지 되지 않는 방법 수백 가지를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개의 곡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8백번이라는 작품을 써보고 66세가 되서야 나타난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시스턴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해 본 결과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한두 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실패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번도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은 완전한 실패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보람 있는 일을 하려고 한번도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의 위신이 손상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용감히 시도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결코 해 낼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임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둘째, 우유부단한 사람은 책임을 전가하려고 합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골치 아픈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주위에서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서 될 수 있다면 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려고 합니다. 빌라도를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중심이 되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이끌고 왔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의 고소가 종교적인 것이려니 생각하고 떠맡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요18:31) 이에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하며 이 사건을 맡아줄 것을 강력히 항의하자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심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잘 됐다 싶어 유월절을 맞아 때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는 헤롯왕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 결국은 빌라도가 재판을 다시 떠맡게 되었지만 그는 이처럼 예수님의 재판을 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예수님에게 유죄를 내려야 할지 무죄를 내려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행세하며 백성들을 선동하였다느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였다느니 하며 중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고이며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문제라 판단하여 무죄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놓아주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위협에 눌려서 결국 그들의 요구에 굴복했습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19:12)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27:24) 우유부단한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려는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행동원칙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은 이렇게 처리하고 또한 번은 다르게 처리합니다. 당연히 거기에 대한 위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립니다. 이러다 보면 그나마 지니고 있던 원칙마저 잃게 되고 그것은 더욱 그를 우유부단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됩니다. 검찰총장이 검찰을 대표하여 사실상 김대중 총재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수사하지 않는다-구체적인 증거가 나오면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철저히 수사한다-수사를 유보한다.” 수사에 착수하면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합니다. 잘했다는 격려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검찰의 태도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칙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직대통령과 김현철씨의 경우에는 설만 가지고도 수사에 착수했는데 이번에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검찰본연의 임무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정치색을 띤 것입니다. 우유부단한 행동을 탈피하려면 객관적이고 타당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이 원칙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절대적인 원칙이 어디에 있습니까 요즘 청춘남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끼 있는 여자, 터프 가이, 톡톡 튀는 행동, 산소 같은 여자(유머)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을 붉혔습니다. 요즘은 음담패설에 맞장구 치는 여자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염치와 정절로 단장하라고 했는데 전혀 딴판입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상이 아니다. 거친 것보다 부드러운 것, 뻣뻣한 것보다 유연한 것. 힘만이 제일이 아니다. 나폴레옹이 예수님에 대해서 한 말.
셋째, 우유부단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불행하게 됩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책임을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요행히 오르게 되었다 하더라도 일관성 없이 일을 처리하므로 부적격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빌라도는 재판에서 자기는 죄가 없다는 표시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씻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공범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4:27,28) 빌라도는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하여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옳지 못한 일을 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가장 끔찍한 형벌에 처했습니다. 원칙을 좇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처신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정치가가 되기보다 인기 있는 정치가가 되는 쪽을 택했습니다. 자신의 인격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자신의 명성에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인기와 명성을 좇다 보니 진리를 거스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중이 비참했습니다. 빌라도는 이 사건이 있은지
2,3년 뒤(주후 36년)에 시리아 총독(governor)의 탄핵 요구로 프랑스 남동부의 한 도시(Vienne in Gaul)로 추방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거기에서 자살했다고 합니다. 다수가 좋아한다고 하여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다수의 의견을 좇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일 욕을 많이 먹는 사람이 경제정책을 이끄는 강경식 부총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좋아합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시장경제원리를 실천하고자 애씁니다. 정치권에서 질타하고 경제계에서 비난하고 노동계에서 타도대상으로 삼고 퇴진운동을 벌이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분은 인기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해도 전가한 것 자체에 대한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그 일도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처음부터 자기가 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미루고, 난처하다고 떠넘기고, 어렵다고 피하려고 하는 한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습니다. 실패하게 되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궂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동하십시오. 때로는 고뇌에 찬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령님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 한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모험을 하십시오. 당신이 옳은 결정을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고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우유부단한 행동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지 말라. 성경에는 우유부단한 또한 사람이 나온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를 지나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행24:24-27)
이태 동안 그는 믿기로 결정하지 못했다. 그가 바울을 구류하여 두었다는 말에서 그가 믿음을 끝내 가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헤롯이 크게 번민하였다.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눅6:19,20) 그러나 그가 석방한 것도 아니고 해서 헤로디아와 그의 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갔다. 자신의 위신도 생각하고. 비행기 참사가 있고난 후에 여행자 보험이 크게 늘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평상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다가 정작 이런 일이 벌어지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괌 여행객들이 예약 취소하는 사태가 줄을 이었습니다. 자기가 탄 비행기가 동일한 사고를 당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유독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 형벌에 관한 것에는 움츠려들지 않고 있으니 이상할 뿐입니다. 미국 네브라스카산 수입쇠고기에서 O-157 병원균이 검출되었다 하여 관계 부처가 비상이 걸렸고 수입고기 전반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구매도 줄어들었습니다. 설사 병원균이 있는 고기라 하더라도 충분히 익혀 먹으면 아무 지장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고기뿐 아니라 수입고기 전반에 대한 구매가 줄어든 것입니다. 어디서 농약이 검출되었다 하면 그것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집니다. 그것을 먹었다고 해서 당장 심각한 장애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성분이 계속 체내에 축적되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몸을 사리며 주의를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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