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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지고 가다 (눅23:26-31)

본문

지중해 서쪽 바로 이탈리아 서편에는 코르시카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 섬에서는 중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천 년 동안 내려오는 전통적인 행사 하나가 있는데 그 행사는 해마다 고난절이 되면 십자가 행렬을 하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등에는 십자가를 메고 발목에는 30㎏이 넘는 쇠사슬을 묶어 쇠사슬을 끌고 2㎞의 돌작길을 가야 합니다. 뒤에는 수많은 섬 주민들이 행렬을 이루고 따릅니다. 무거운 십자가에다 쇠사슬, 그리고 돌작길, 한 1㎞만 가도 발이 부르트고 피가 납니다. 2㎞쯤 가면 지치고 지친 나머지 그냥 거의 실신될 정도로 쓰러지고 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를 지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지원한 사람이 앞으로 40년 동안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십자가 행렬은 노르웨이나 최근 필리핀에서도 행해지는 행사랍니다. 본문 말씀가운데 보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산상을 향하여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출신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시몬은 예루살렘 여행을 왔다가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세 죄수가 십자가를 등에 메고 형장을 향하여 올라가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세 죄수 중에서 특별히 예수라는 분의 모습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많은 채찍을 맞았고, 가시관까지 쓰고 있고, 뭇 사람들로부터 조롱까지 받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가다가 지친 나머지 쓰러지고 쓰러지니까 로마 병사가 아프리카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을 불러서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여행 왔다가 남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그런 운명은 우연이라 해야 할지, 또는 재수가 나빠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뭐라고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우연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운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재수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세계는 재수라든지, 운이라든지, 우연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연이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사람의 머리털 하나도 다 세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면서 인간의 모든 삶을 다 헤아려 보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는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뜻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깃들어 있습니다. 구레네 출신 시몬은 예루살렘에 여행을 왔다가 엉뚱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로마 군인의 명령 때문에 억지로 질 수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시몬은 자진해서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생 동안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를 바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 편지를 하면서 시몬의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해서 문안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으로 보아서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한 다음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일생 동안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광경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도 구레네 시몬 못지않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을 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시몬의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였습니까 어떻게 해서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까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두 가지 모습에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를 질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신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즉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힘이 부쳐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된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밤새껏 심문당하고 고통당하심으로 인하여 도저히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되신 메시아께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죄악을 대신 담당해 주시는 사랑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둘째는 예수님의 수난을 애통하는 자들을 향해서 오히려 고통에 찬 그들의 미래를 염려하시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애곡하는 백성과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에게 현재 사형장으로 가는 자신보다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위해 애곡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A.D 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최후 심판의 때를 예언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가시는 십자가의 길은 죽음의 길처럼 보이나 궁극적으로는 승리의 길이요 영원한 영광의 길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돌르 배척한 자들이 가야할 길은 하나님의 교훈을 듣지 아니하고 메시야까지 죽이는 죄악의 길로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의 격언으로 이러한 말씀을 확증하시는데, 이는 푸른 나무와 같이 무죄하신 예수님이 죽임을 당했다면 마른 나무와 같이 죄많은 유대인들은 더욱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비유입니다. 진정 주님의 고난은 패역한 죄인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표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절망적이고 영원한 최후가 오기 전에 우리는 마땅히 지금의 죄악에서 둘이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골고다를 오르는 가운데 평소에 주의 말씀을 좇던 많은 여인들이 슬피울며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우리가 가슴을 치면서 울어야 할 대상은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죄 아래 팔린 우리의 자녀들과 이웃들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작정되었으며, 죄 아래 있는 자들은 아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이 사실을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경고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들에게 주신 책임이 바로 이것입니다. 경고는 상대방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자녀를 위해, 부모를 위해, 동포를 위해 애타하며 주께 돌아오길 빌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고후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히3: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여하튼 그 고난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지쳐 쓰러져 주저앉을 정도로 피곤하신 그 현장에 구레네 시몬이 있었습니다.
1. 시몬은 주님의 수난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만약 시몬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그 수난의 현장에 없었더라면 십자가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난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나누어 주실 때는 장정만도 5천 명이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이적을 행할 때는 사람이 정말 벌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중풍병자인 네 친구는 환자를 데리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어서 지붕까지 뚫고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를 지게 되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신임을 받고 있는 수제자 베드로도 한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고백했던 사람이고,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며 생명을 걸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영광과 권능 중에 계셨던 예수님께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십자가를 지고 있을 때에는 모두 떠나갔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예수님의 수난 현장에 시몬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것은 주님의 수난의 현장에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수난의 현장에, 주님의 고난에 우리 자신을 동참시키는 최선의 길은 무엇입니까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은 후에도 그 진리의 십자가의 도리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복음을 증거하고 사는 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생활입니다. 시몬은 주님의 수난의 현장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주님의 수난의 현장에 동참한다는 것은 바로 주님을 증거하는 생활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증거하는 생활을 할수 있을 때에 주님의 십자가를 영광스럽게 질 수 있습니다.
2. 시몬은 건강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할 때 길은 험하고, 지친 나머지 자꾸 쓰러지니까 로마 병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질 사람을 찾았습니다. 예수님 뒤에는 어떤 사람들이 따랐습니까 성경 말씀에 보면 슬피 우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뒤따랐습니다. 또 그 주변에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아우성쳤던 군중들이 따릅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을 고발하고 예수님을 죽이도록 모의한 제사장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병사들은 두리번거리다가 낮선 사람, 건장하고 힘있는 체격 좋은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구레네 출신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으로 하여금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그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가 힘이 있고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약한 사람 같으면 십자가를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찾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명을 짊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힘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바로 임금을 찾아가서 바로에게 바기 백성을 놓아줄 것을 해방시켜 줄 것을 요구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바로 임금에게 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할 수 있는 그런 능력, 바로 임금을 꼼짝하지 못할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지팡이를 통해서 10가지의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말을 잘 못한다니까 아론을 붙여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어떤 일을 맡기실 때 그냥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그냥 무조건 사명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 이전에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그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질만한 건강과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특별히 교회일을 할 때, 또는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나에게 주어진 책임, 사명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명이나 책임이 주이질 때는 이것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알고, 하나님께서 이런 소명을 나에게 주실 때는 이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미리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시몬은 순종했습니다. 로마 병사가 시몬에게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했을 때 시몬은 힘이 있고 건강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외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안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졌습니다. 이 구레네 시몬이 두말없이 십자가를 진 그 이면에는 이 구레네 시몬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채찍을 맞아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뭇 사람들의 매를 맞고 욕을 얻어 먹고 십자가까지 지신 예수님, 하여튼 그 불쌍한 모습에 대한 동정심과 사랑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한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의 충동에서 오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아픔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 사랑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수고, 이것은 오히려 보람이요 기쁨입니다. 사랑의 충동에서 오는 고통, 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얻는 기쁨이 오늘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의 삶속에 있어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의 예수님께로 향한 그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한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충동이 오늘 우리들의 생활속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아주 없애버리려던 십자가가 도리어 모든 사람을 그에게로 끄는 자석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만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가듯이,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지셨던 그 사랑의 십자가, 의의 십자가, 순종의 십자가, 그 한 부분이라도 짊어지고 주님의 수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찬의 떡과 잔을 가질 수 있을 때 십자가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부활의 승리와 기쁨이, 영광이 있음을 믿습니다. 십자가의 신앙,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께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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