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기쁨과 평화를 건설하자 (눅2:1-20)
본문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주님 앞에 서야 될까 우리는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서 하신 일과 그 생애를 살펴보고서 우리도 주님과 같은 생애를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되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8절 말씀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 심이라"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지신 것까지 강령 적으로 말씀을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성도들이 우리의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똑같은 그의 모형으로서 예수님과 같은 생애의 걸 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리신 것과 같은 똑같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또 예수님이 모든 만물에게 주신 기쁨과 같은 기쁨을 주고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평화를 끼 칠 수 있는 일, 우리가 주님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된다. "너희 안에 이 마음 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또 주님이 하신 그 행사를 본받아 살면 우리의 생애도 주님과 같은 복된 생애를 살 수 있다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세상에 오시므로 이루신 일이 크게 말하면 세 가 지입니다. 여기 누가복음 2장 1절 이하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첫째는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고
둘째는 온 백성들에게 구원의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고 세째로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여기
첫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 하신 말씀은 지극히 높은 곳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영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영계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다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체적으로 지극한 영광 가운데 계시지만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고, 모든 영계에 있는 피조물들이 그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 하고 영원히 찬송하고 또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었다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으로 말하자면 참 하나님이시요, 또 인성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참사람이십니다. 성부 성령님 하나님께서 한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의 신성으로서 영광과 역사를 가지지 못했고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 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의 신성의 영광과 역사로 인해서 모든 영계와 물질계의 피 조물들이 성부 하나님, 성령님 하나님을 주로 삼고 바라보고 소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모든 천상 천하의 수많은 피조물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인성이 가진 피조물 의 영광과 역사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그 도성인 신하심과 사활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상속시켜 주셨고 또 예수님은 상속을 받았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으로서 그 권세를 가지실 뿐 아니라 그 인성으로 인해서 그 권세를 받고 또 누리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소망하는 소망이 예수님의 신 성에 있고 또 인성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다같은 한 신성이지만 예수님의 신성과 성부 성령님의 신성이 그 영광과 역사가 다르고 또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또 예수님의 인성의 존재가 같은 피조물 이기는 하지만 영광과 지위가 달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들이며 영물들이 큰 감화 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그 자체가 하나님 한분께만 더 의지하고 더 소망을 가지는 그런 존재로 변화되어서 그 자체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이전에도 하늘나라는 이질된 것이 없는 나라이지만 예수님의 도성인신으로 말미암아 더 하늘나라는 더 감사와 찬송이 넘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나라가 된 것입니다. 또 이 물질계도 우리 가 보는 이 우주, 지구도 우리 믿는 성도의 탄생으로 인하여 새소망이 생겼습니다. 자체 활동들이 깨끗해지고 새로워지게 되었습니다. 새생명을 받아 영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중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또 하나님께 혜택을 입어 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땅위에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너희들에게 기쁨의 좋은 소 식을 전한다." 이렇게 말씀을 했고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또 마리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 구원의 큰 기쁨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므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누가복음 1장 45절 이하 에 찬송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를 그위에서 내리치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에게 좋은 것을 먹이시고 부자를 공수로 돌려보내시는" 큰 일을 행하시고 그로 인해서 모든 이 세상에 핍박 당하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학대를 받고 가난하고 병들고 무지 무능하고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셋째로는 땅위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무리들 가운데 평화로다 하신 말씀과 같 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참 평화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땅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시고 사활대속하시므로 말미암아서 그 예수님의 대속 공로의 은 혜를 입어가지고 사람들이 자기의 모든 죄, 지어서 영원히 멸망받을 그 죄를 다 용 서함을 받고 또 주님의 의를 입어서 완전 순종의 의인이 되고 또 하나님과 원수되 었던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친이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쾌락과 만족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서 이제 성도들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평이 가능하게 되었고 또 창조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게 되고 영계의 것과 물질계의 모든 것과 더불어 사람과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져서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영 원한 이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활대속의 은혜는 이 세상의 사람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 만물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질된, 서로 대립되고 반목하는 요소를 다 해소시켜 버리고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동질이 되어가지고 참된 화목과 화평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의 구주이시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화평이라고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만 말하지만 모든 존재들, 모든 만물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통일이 되고 하나가 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참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빌립보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지 극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 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놀라운 일을 하셔서 참으로 우리가 보아도 예수님의 생애는 아름다운 생애요 복된 생애요, 영원히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 에게는 기쁨이 되고 모든 만물들에게는 평화를 가져오는 이런 생애가 되었는데 어 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예수님은 다른 방편을 쓰지를 아니했습니다. 딱 두 가지 방편을 쓰셔서 이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첫째 사랑을 가 지셨고
둘째 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였습니다. 사랑과 희생은 자본 이 되었고 그 열매로 이 세 가지 큰 일이 맺어지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저주받은 우주를 사랑하셨고 이 저주 아래에 있는 우주와 우리를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할만한 아름다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에 또 요한일서 4장 19절에는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 마음대로 제 욕심 대로 행하던 이런 우리를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이렇게 우리를 불쌍 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 생을 하신 것입니다. 다른 방편을 쓰지를 안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무력을 가지고 이 세 가지 일을 이루시려고 하면 당장에 이룰 수는 있지만 그러나 완전한 구원은 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또 하나님의 거룩이 있고 하나님의 공의가 있고 하나님의 완전이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속성을 만족을 시키려고 하면 천군천사 를 동원해가지고 무력으로서 우리 구원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자기를 대속의 제물로 내놓은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 습니다. 하나님의 그 거룩의 속성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려고 하면 죄없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 이 타락한 피조물들의 멸망과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서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여기도 우리가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대속의 제물로 내놓고
둘째로는 예수님은 자기의 자유, 하나님이 종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종노릇하는 희생을 하시고 또 세번째로 예수님은 그의 하늘나라의 부요를 내어놓으시고 가난해지시는 이 희생을 통해서 이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은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가려고 하십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은 평생 소원이 예수님이 이루신 이 세 가지 열매를 맺어서 복되고 영광스러운 그런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할 일이고 또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열매를 맺는 농장입니다. 우리의 일터입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강령적으로 이 세 가지 목표를 마음에 기억하고 또 작정하도록 합니다.
첫째로는 영광,
둘째로는 기쁨, 세째로는 평화 이 세 가지를 내 가 위해서 살겠다. 내가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서 이 세 가지를 이룰 것이다. 영광 과 기쁨과 평화, 땅에서 사는 나의 생애는 이 세 가지가 내 할 일이다.
첫째는 영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늘 이 영광을 마음속에 되뇌이면서 작정을 합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지극히 높은 곳은 영계를 말하는 것이고, 또 가치적으 로 말하면 완전한 나라입니다. 이 지극히 높은 곳은 우리가 얼마든지 자꾸 생각하 고 믿고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깊이 깊이 들어가야 할 참 신비한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마다 그 지극히 높은 곳에서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알기 쉽게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지극히 높은 곳에 속합니다. 또 눈에 보이는 기독교 교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찬송 하고 영광돌리는 세계입니다. 이래서 구체적으로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이 우리 한국교회내에서 또 우리가 섬 기는 이 서부교회내에서 또 우리 각 구역에서 또 자기 가정에서 우리 할 일이 무 엇인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입니다. 교회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차도록 모 든 성도들이 변화가 되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런 일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평생 힘을 쓰고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 내 행동,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내 가정에 가득 차고 내 구역에 가득차고 내 교회에 가득차고 한국교회, 세계교회에 가득차서 모든 사람 들이 나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저 사람의 말과 저 사람의 행동, 저 사람의 생애를 보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무섭고 두려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참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되 겠다.' 온 교회안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이 가득차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천국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깊고 오묘 한 세계는 더 말할 수가 없고 우리가 그래도 눈에 보이는 이 교회안에서라도 우리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택한 백성들이 하나되어 움직이는 삼합일행(三合一行)하는 것이 교회인데 이 교회안에 믿는 성도들이 정말 자체가 변화가 되어가지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의 영광이 가득찬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손양원 목사님같은 그런 분들은 참 자기 아들을 죽 인 원수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겁니다. 그 한 사건을 통해서 영계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교회안에서는 참 믿는 사람들이 '아이고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계십니다. 참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주 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찬 일이 있었습니다. 산다씽과 같은 성자는 자기의 부요한 사회적인 지위와 또 형편을 다 버리고 서 장에 들어가지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마지막에 히말리야 산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한 사람의 생애를 보고 온 기독교회는 정말, 물론 산다씽이 예수님은 아니지만 예수님과 닮은 그런 가난의 생 애를 살 수가 있다. 정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런 일이 있었 습니다. 우리가 허영과 허욕을 버리고 자기 힘에 알맞게 하나님이 힘주시는대로 은혜주 시는대로 하나님의 교회에 나로 말미암아 나로 삶으로 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도록 이렇게 산다고 하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 고 가든지 어떻게 살고 가든지 우리의 삶은 성공이고 또 참으로 복된 삶이 될 것 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루어진다고 하면 참 이것보다 우리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통령을 한다 하고 세상의 큰 부자로 산다 해도 결국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구름이 해를 가리듯이, 해야 어디 없어지겠습니까 있지마는 그만 연기가 나고 구름이 일고 안개가 끼면 해가 가리어져서 사람들이 햇빛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처럼 나의 한 행동이 나의 한 욕심이 이렇게 하나님을 가리고 하나님께 욕돌린다고 하면 우리 생애가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둘째 우리가 기쁨을 우리 목표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여기 보니까 예수님이 오시 므로 기쁨의 좋은 소식이 전하여졌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역사에 토마스 목사님 같은 분은 젊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중국에 왔다가 한국 사람들을 만나가지고 한국은 아직도 복음 전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때는 정상적으로 선교사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상선의 통역관으로 같이 들어와 가지고 대동강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만 잡혀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순교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전하던 한문 성경 조각을 이렇게 던졌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성경을 가지고 집에 가서 나중에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또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가지고 우리 한국교회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자,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한국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천만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또 복음을 믿고 사는데 우리 자신부터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받는 것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쁜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참 토마스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는 그 당시만 해도 우리 한국은 이제 희망이 없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희망이 없는 암담한 세상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이 복음이 들어오므로 말미암아 절망가운데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로마서 5장 5절에 말씀한대로 "소망 이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져서 소망을 가지고 사니까 점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고 이것이 모여가지고 지금 우리가 된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잘 살 수 있게 된 것이 사람들이 그때 절망을 하고 소망 이 없었다고 하면 이렇게 일어서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이렇게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새소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우리 주님의 구원 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의 젊음을 희생하고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고 자기의 모든 부요를 희생하고 또 자기의 모든 영광을 다 희생을 하고 가난해지고 낮아지 고 자기 생명을 내놓은 하나님의 종들 그들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나도 이 세상에서 살면서 내 생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참 구원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전해줘야 되겠다.' 이런 각오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세번째는 평화를 우리가 마음속에 작정을 해야 됩니다.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 값과 의를 서로 이간을 붙여가지고 서로 대립, 반목하도록 해 놓고 자기가 뒤에서 이익을 취하는 그런 일들을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하겠습니 까 우리가 예사롭게 한 말 한마디가 가지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불목시키고 내 행 동 하나가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불화시키고 또 하나님과 만물 사이가 멀어지도 록 이렇게 우리가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가정에서 가정교회입니다. 또 우리 서부교회, 또 우리 한국교회에서 우리 주님의 영광을 건설하는 것이첫째 우리 할 일이고둘째로는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누릴 이 기쁨의 충만을 건설하는 것이둘째 우리 할 일입니다.
세번째로는 우리는 모든 존재와 존재 사이에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이래가지고 목사님과 목사님 사이에 장로와 장로 사이에 권찰과 권찰사이에 반 사와 반사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에 이 화 평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고 또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경제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또 권세나 영광이나 그런 면에 유익 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모든 존재 사이에 이 평화를 깨뜨렸다고 하면 이것이 사망 이요, 영원한 고통이요 영원히 후회할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서부교회 주일 학교를 통해서 이미 하나님께서 참 그래도 우리 한국교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고 또 우리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통해서 많은 어린아이들을 구원해서 이 구원의 기쁨을 가질 수 있게 했고 또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된 평화를 이루는 이 런 일들을 이전에 해왔습니다. 지금도 물론 이 일을 우리가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한번 구체적인 예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사람들은 그전에는 주일학교에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이 와야 헌금도 하고 어른들이 와야 일도 하고 또 사회적인 지위와 그 세력 을 이용해서 여러가지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환영했지만 어린아이들 은 구원하는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무엇 때문에 주일학교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주일학교에 힘을 쓰는가 반사 선생님들이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권찰님 들이 무슨 사례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온 교회가 힘을 쓰서 이 어린아이 들을 구원하는 또 중간반 학생들을 구원하는 일을 힘쓰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를 닮아가려고 우리 주님이 사신 거와같은 그 생애를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이 어린아이들을 구원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에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가득차고 또 사람들에게 참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참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다시 우리가 작정을 해야 됩니다. '나는 어디서든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하겠다. 나는 상대방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기쁨을 다만 얼마라도 주는 사람으로 살겠다. 나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불화를 깨뜨리고 화평을 이루는 일을 하다가 가겠다.' 이 일을 이루는데에는 우리 주님이 쓰신 그 방편밖에 또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사랑과 희생뿐입니다. 위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래로는 우리를 사랑하므 로 이 양면의 사랑을 위해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시므 로 세 가지 이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 형제를 사랑하는 이 사랑 때문에 주님의 법도 대로 희생하는데에서 이 결실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자기 생명을 희생해 가지고 우리에게 영생의 생명을 허락하셨고 주님이 자기 자유를 희생해서 우리에 게 하나님 아들의 자유를 주셨고 주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것 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도 이 세 가지 목표를 이루는데에는
첫째로 우리 생명을 희 생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고 우리를 피로 사서 자기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할 일은, 이제부터는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세 가지 삶을 살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 사람을 죽이는데에서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 입니다. 새사람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자기를 바치는 이 희생,
둘째는 우리도 내 기분이나 내 오기나 내 하고 싶은대로 방종의 자유를 다 내어 놓고 어디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형제를 기쁘게, 또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형제간 에 화목을 위해서 내가 종노릇하는 것, 이것이 자기의 자유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지는 우리 주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신 것처럼 주님이 당신 의 지위도 권세도 영광도 소유도 다 내어놓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부요를 가져 다 주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도 내가 먹을 것 다 먹고 가질 것 다 가지고 또 대우받을 것 다 대우받고 칭찬받고 영광받을 것 다 받아가지고 살려고 하는데에서는 거기서는 사망뿐입니다. 거기는 이 세 가지 열매가 맺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게 있는 부요, 그게 물질적인 것이든지 재능이든지 자기의 권세나 지위나 영광이든지 이것을 이 세 가지 목표를 위해서 희생하므로 말미암아 그 희 생의 열매로 이 세 가지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우리들은 세 가지를 마음에 작정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조성하는 영광의 건설자, 나는 모든 절망하는 이들에게 기쁨 을 주는 기쁨의 건설자, 나는 모든 원수되어 있는 세상에서 평화를 건설하는 건설 자, 내가 내 가정에서 말입니다. 가정의 화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의 화평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내가 애쓰다가 죽는다고 하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그 일을 완수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내 생전에 그것이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하는 이 일은 결 코 헛된 일이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 수고가 그대로 열매를 맺히게 될 것입니다.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이 세 가지를 다 이루어서 참 우리가 언제 주님 앞에 설지 모르는데 참 복된 생애, 참으로 만족스런 생애, 참으로 영원히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에 들어갈 영광스러운 생애를 우리가 다 살고 가도록 힘씁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첫째는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고
둘째는 온 백성들에게 구원의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고 세째로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여기
첫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 하신 말씀은 지극히 높은 곳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영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영계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다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자체적으로 지극한 영광 가운데 계시지만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고, 모든 영계에 있는 피조물들이 그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 하고 영원히 찬송하고 또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었다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으로 말하자면 참 하나님이시요, 또 인성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참사람이십니다. 성부 성령님 하나님께서 한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의 신성으로서 영광과 역사를 가지지 못했고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 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의 신성의 영광과 역사로 인해서 모든 영계와 물질계의 피 조물들이 성부 하나님, 성령님 하나님을 주로 삼고 바라보고 소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모든 천상 천하의 수많은 피조물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인성이 가진 피조물 의 영광과 역사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그 도성인 신하심과 사활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상속시켜 주셨고 또 예수님은 상속을 받았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으로서 그 권세를 가지실 뿐 아니라 그 인성으로 인해서 그 권세를 받고 또 누리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소망하는 소망이 예수님의 신 성에 있고 또 인성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다같은 한 신성이지만 예수님의 신성과 성부 성령님의 신성이 그 영광과 역사가 다르고 또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또 예수님의 인성의 존재가 같은 피조물 이기는 하지만 영광과 지위가 달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들이며 영물들이 큰 감화 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그 자체가 하나님 한분께만 더 의지하고 더 소망을 가지는 그런 존재로 변화되어서 그 자체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이전에도 하늘나라는 이질된 것이 없는 나라이지만 예수님의 도성인신으로 말미암아 더 하늘나라는 더 감사와 찬송이 넘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나라가 된 것입니다. 또 이 물질계도 우리 가 보는 이 우주, 지구도 우리 믿는 성도의 탄생으로 인하여 새소망이 생겼습니다. 자체 활동들이 깨끗해지고 새로워지게 되었습니다. 새생명을 받아 영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중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또 하나님께 혜택을 입어 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땅위에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너희들에게 기쁨의 좋은 소 식을 전한다." 이렇게 말씀을 했고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또 마리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 구원의 큰 기쁨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므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누가복음 1장 45절 이하 에 찬송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를 그위에서 내리치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에게 좋은 것을 먹이시고 부자를 공수로 돌려보내시는" 큰 일을 행하시고 그로 인해서 모든 이 세상에 핍박 당하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학대를 받고 가난하고 병들고 무지 무능하고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셋째로는 땅위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무리들 가운데 평화로다 하신 말씀과 같 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참 평화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땅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시고 사활대속하시므로 말미암아서 그 예수님의 대속 공로의 은 혜를 입어가지고 사람들이 자기의 모든 죄, 지어서 영원히 멸망받을 그 죄를 다 용 서함을 받고 또 주님의 의를 입어서 완전 순종의 의인이 되고 또 하나님과 원수되 었던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친이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쾌락과 만족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서 이제 성도들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평이 가능하게 되었고 또 창조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게 되고 영계의 것과 물질계의 모든 것과 더불어 사람과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져서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영 원한 이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활대속의 은혜는 이 세상의 사람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 만물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질된, 서로 대립되고 반목하는 요소를 다 해소시켜 버리고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동질이 되어가지고 참된 화목과 화평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의 구주이시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화평이라고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만 말하지만 모든 존재들, 모든 만물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통일이 되고 하나가 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참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빌립보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지 극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 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놀라운 일을 하셔서 참으로 우리가 보아도 예수님의 생애는 아름다운 생애요 복된 생애요, 영원히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 에게는 기쁨이 되고 모든 만물들에게는 평화를 가져오는 이런 생애가 되었는데 어 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예수님은 다른 방편을 쓰지를 아니했습니다. 딱 두 가지 방편을 쓰셔서 이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첫째 사랑을 가 지셨고
둘째 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였습니다. 사랑과 희생은 자본 이 되었고 그 열매로 이 세 가지 큰 일이 맺어지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저주받은 우주를 사랑하셨고 이 저주 아래에 있는 우주와 우리를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할만한 아름다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로마서 5장 8절에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에 또 요한일서 4장 19절에는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 마음대로 제 욕심 대로 행하던 이런 우리를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이렇게 우리를 불쌍 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 생을 하신 것입니다. 다른 방편을 쓰지를 안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무력을 가지고 이 세 가지 일을 이루시려고 하면 당장에 이룰 수는 있지만 그러나 완전한 구원은 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또 하나님의 거룩이 있고 하나님의 공의가 있고 하나님의 완전이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속성을 만족을 시키려고 하면 천군천사 를 동원해가지고 무력으로서 우리 구원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자기를 대속의 제물로 내놓은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 습니다. 하나님의 그 거룩의 속성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려고 하면 죄없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 이 타락한 피조물들의 멸망과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서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여기도 우리가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대속의 제물로 내놓고
둘째로는 예수님은 자기의 자유, 하나님이 종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종노릇하는 희생을 하시고 또 세번째로 예수님은 그의 하늘나라의 부요를 내어놓으시고 가난해지시는 이 희생을 통해서 이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은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고 가려고 하십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은 평생 소원이 예수님이 이루신 이 세 가지 열매를 맺어서 복되고 영광스러운 그런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할 일이고 또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열매를 맺는 농장입니다. 우리의 일터입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강령적으로 이 세 가지 목표를 마음에 기억하고 또 작정하도록 합니다.
첫째로는 영광,
둘째로는 기쁨, 세째로는 평화 이 세 가지를 내 가 위해서 살겠다. 내가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서 이 세 가지를 이룰 것이다. 영광 과 기쁨과 평화, 땅에서 사는 나의 생애는 이 세 가지가 내 할 일이다.
첫째는 영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늘 이 영광을 마음속에 되뇌이면서 작정을 합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므로 말미암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지극히 높은 곳은 영계를 말하는 것이고, 또 가치적으 로 말하면 완전한 나라입니다. 이 지극히 높은 곳은 우리가 얼마든지 자꾸 생각하 고 믿고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깊이 깊이 들어가야 할 참 신비한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마다 그 지극히 높은 곳에서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알기 쉽게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지극히 높은 곳에 속합니다. 또 눈에 보이는 기독교 교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찬송 하고 영광돌리는 세계입니다. 이래서 구체적으로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이 우리 한국교회내에서 또 우리가 섬 기는 이 서부교회내에서 또 우리 각 구역에서 또 자기 가정에서 우리 할 일이 무 엇인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입니다. 교회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차도록 모 든 성도들이 변화가 되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런 일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평생 힘을 쓰고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내가 하는 일, 내 행동,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내 가정에 가득 차고 내 구역에 가득차고 내 교회에 가득차고 한국교회, 세계교회에 가득차서 모든 사람 들이 나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저 사람의 말과 저 사람의 행동, 저 사람의 생애를 보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무섭고 두려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참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되 겠다.' 온 교회안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이 가득차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천국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깊고 오묘 한 세계는 더 말할 수가 없고 우리가 그래도 눈에 보이는 이 교회안에서라도 우리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택한 백성들이 하나되어 움직이는 삼합일행(三合一行)하는 것이 교회인데 이 교회안에 믿는 성도들이 정말 자체가 변화가 되어가지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의 영광이 가득찬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손양원 목사님같은 그런 분들은 참 자기 아들을 죽 인 원수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겁니다. 그 한 사건을 통해서 영계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교회안에서는 참 믿는 사람들이 '아이고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계십니다. 참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주 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찬 일이 있었습니다. 산다씽과 같은 성자는 자기의 부요한 사회적인 지위와 또 형편을 다 버리고 서 장에 들어가지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마지막에 히말리야 산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한 사람의 생애를 보고 온 기독교회는 정말, 물론 산다씽이 예수님은 아니지만 예수님과 닮은 그런 가난의 생 애를 살 수가 있다. 정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런 일이 있었 습니다. 우리가 허영과 허욕을 버리고 자기 힘에 알맞게 하나님이 힘주시는대로 은혜주 시는대로 하나님의 교회에 나로 말미암아 나로 삶으로 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도록 이렇게 산다고 하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 고 가든지 어떻게 살고 가든지 우리의 삶은 성공이고 또 참으로 복된 삶이 될 것 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루어진다고 하면 참 이것보다 우리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통령을 한다 하고 세상의 큰 부자로 산다 해도 결국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구름이 해를 가리듯이, 해야 어디 없어지겠습니까 있지마는 그만 연기가 나고 구름이 일고 안개가 끼면 해가 가리어져서 사람들이 햇빛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처럼 나의 한 행동이 나의 한 욕심이 이렇게 하나님을 가리고 하나님께 욕돌린다고 하면 우리 생애가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둘째 우리가 기쁨을 우리 목표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여기 보니까 예수님이 오시 므로 기쁨의 좋은 소식이 전하여졌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역사에 토마스 목사님 같은 분은 젊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중국에 왔다가 한국 사람들을 만나가지고 한국은 아직도 복음 전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때는 정상적으로 선교사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상선의 통역관으로 같이 들어와 가지고 대동강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만 잡혀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순교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전하던 한문 성경 조각을 이렇게 던졌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성경을 가지고 집에 가서 나중에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또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가지고 우리 한국교회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자,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한국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천만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또 복음을 믿고 사는데 우리 자신부터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받는 것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쁜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참 토마스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는 그 당시만 해도 우리 한국은 이제 희망이 없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희망이 없는 암담한 세상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이 복음이 들어오므로 말미암아 절망가운데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로마서 5장 5절에 말씀한대로 "소망 이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져서 소망을 가지고 사니까 점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고 이것이 모여가지고 지금 우리가 된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잘 살 수 있게 된 것이 사람들이 그때 절망을 하고 소망 이 없었다고 하면 이렇게 일어서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이렇게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새소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우리 주님의 구원 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의 젊음을 희생하고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고 자기의 모든 부요를 희생하고 또 자기의 모든 영광을 다 희생을 하고 가난해지고 낮아지 고 자기 생명을 내놓은 하나님의 종들 그들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나도 이 세상에서 살면서 내 생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참 구원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전해줘야 되겠다.' 이런 각오로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세번째는 평화를 우리가 마음속에 작정을 해야 됩니다.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 값과 의를 서로 이간을 붙여가지고 서로 대립, 반목하도록 해 놓고 자기가 뒤에서 이익을 취하는 그런 일들을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하겠습니 까 우리가 예사롭게 한 말 한마디가 가지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불목시키고 내 행 동 하나가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불화시키고 또 하나님과 만물 사이가 멀어지도 록 이렇게 우리가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가정에서 가정교회입니다. 또 우리 서부교회, 또 우리 한국교회에서 우리 주님의 영광을 건설하는 것이첫째 우리 할 일이고둘째로는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누릴 이 기쁨의 충만을 건설하는 것이둘째 우리 할 일입니다.
세번째로는 우리는 모든 존재와 존재 사이에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이래가지고 목사님과 목사님 사이에 장로와 장로 사이에 권찰과 권찰사이에 반 사와 반사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에 이 화 평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고 또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경제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또 권세나 영광이나 그런 면에 유익 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모든 존재 사이에 이 평화를 깨뜨렸다고 하면 이것이 사망 이요, 영원한 고통이요 영원히 후회할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서부교회 주일 학교를 통해서 이미 하나님께서 참 그래도 우리 한국교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고 또 우리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통해서 많은 어린아이들을 구원해서 이 구원의 기쁨을 가질 수 있게 했고 또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참된 평화를 이루는 이 런 일들을 이전에 해왔습니다. 지금도 물론 이 일을 우리가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한번 구체적인 예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사람들은 그전에는 주일학교에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이 와야 헌금도 하고 어른들이 와야 일도 하고 또 사회적인 지위와 그 세력 을 이용해서 여러가지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환영했지만 어린아이들 은 구원하는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무엇 때문에 주일학교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주일학교에 힘을 쓰는가 반사 선생님들이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권찰님 들이 무슨 사례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온 교회가 힘을 쓰서 이 어린아이 들을 구원하는 또 중간반 학생들을 구원하는 일을 힘쓰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를 닮아가려고 우리 주님이 사신 거와같은 그 생애를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이 어린아이들을 구원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에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가득차고 또 사람들에게 참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참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다시 우리가 작정을 해야 됩니다. '나는 어디서든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하겠다. 나는 상대방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기쁨을 다만 얼마라도 주는 사람으로 살겠다. 나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불화를 깨뜨리고 화평을 이루는 일을 하다가 가겠다.' 이 일을 이루는데에는 우리 주님이 쓰신 그 방편밖에 또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사랑과 희생뿐입니다. 위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래로는 우리를 사랑하므 로 이 양면의 사랑을 위해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시므 로 세 가지 이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 형제를 사랑하는 이 사랑 때문에 주님의 법도 대로 희생하는데에서 이 결실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자기 생명을 희생해 가지고 우리에게 영생의 생명을 허락하셨고 주님이 자기 자유를 희생해서 우리에 게 하나님 아들의 자유를 주셨고 주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것 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도 이 세 가지 목표를 이루는데에는
첫째로 우리 생명을 희 생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고 우리를 피로 사서 자기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할 일은, 이제부터는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세 가지 삶을 살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 사람을 죽이는데에서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 입니다. 새사람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자기를 바치는 이 희생,
둘째는 우리도 내 기분이나 내 오기나 내 하고 싶은대로 방종의 자유를 다 내어 놓고 어디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형제를 기쁘게, 또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형제간 에 화목을 위해서 내가 종노릇하는 것, 이것이 자기의 자유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지는 우리 주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신 것처럼 주님이 당신 의 지위도 권세도 영광도 소유도 다 내어놓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부요를 가져 다 주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도 내가 먹을 것 다 먹고 가질 것 다 가지고 또 대우받을 것 다 대우받고 칭찬받고 영광받을 것 다 받아가지고 살려고 하는데에서는 거기서는 사망뿐입니다. 거기는 이 세 가지 열매가 맺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게 있는 부요, 그게 물질적인 것이든지 재능이든지 자기의 권세나 지위나 영광이든지 이것을 이 세 가지 목표를 위해서 희생하므로 말미암아 그 희 생의 열매로 이 세 가지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우리들은 세 가지를 마음에 작정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조성하는 영광의 건설자, 나는 모든 절망하는 이들에게 기쁨 을 주는 기쁨의 건설자, 나는 모든 원수되어 있는 세상에서 평화를 건설하는 건설 자, 내가 내 가정에서 말입니다. 가정의 화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의 화평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내가 애쓰다가 죽는다고 하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그 일을 완수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내 생전에 그것이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하는 이 일은 결 코 헛된 일이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 수고가 그대로 열매를 맺히게 될 것입니다.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이 세 가지를 다 이루어서 참 우리가 언제 주님 앞에 설지 모르는데 참 복된 생애, 참으로 만족스런 생애, 참으로 영원히 우리 주님과 함께 영광에 들어갈 영광스러운 생애를 우리가 다 살고 가도록 힘씁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