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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 (막2:1-12)

본문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원하고, 지켜 주시기를 원하고, 은혜 주시기를 원하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민6:23-26).
그런데 왜 우리는 축복을 받지 못합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을 우리의 허물과 죄가 막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렘5:2;
5). 우리의 궁핍함과 곤궁함과 질병과 고통이 왜 옵니까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하셨으니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음을 알고 통회하고 회개함으로 축복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렘29:1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써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양자를 삼으시고 기쁨과 평강을 주시려 하지만(롬8:15-23, 15:13) 우리들 자신의 죄가 축복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 생활하는 우리들의 궁핍의 원인과 고난의 원인과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 바로 알고 이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와 교회는 자신과 모든 이들에게 밀려오는 환란과 재앙을 막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의 대로를 열어주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천국문으로 교회가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고(마23:13) 주님이 책망하고 계십니다. 사도바울도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14:13)고 교훈하십니다. 우리 성도와 교회의 사명이 바로 인간에게 밀려들어 오는 죄악을 막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것인데 오늘 교회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 정반대로 죄의 통로를 더 크게 뚫어서 불행을 초래하는 일들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광경 역시 그러합니다. 갈릴리에서 전도하시고 가버나움으로 가신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위에서부터 침상이 내려오며 그 위에 중풍으로 전신이 마비된 환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믿음의 형제 네 청년이 지붕을 뚫고 침상채로 달아 내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심으로 그가 걸어 갈 때에 보는 사람들이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주시려는 축복을 받을 사람에게 예수님 가까이 둘러있던 사람들이 장애물이 되었다는 문제입니다. 멀리 있던, 그것도 들것에 들려온 자는 고침을 받았는데 가까이 둘러 있으면서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길만 막아 못 들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자에게 장애물이 되는 것은 들에서 농사하는 사람이 아니고, 장터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고, 공장에서 파업운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보다도 예수님 앞에 나와 있는, 하나님 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예나 오늘이나 큰 문제입니다. 그것이 목사일 수도 있고, 장로일 수도 있고, 열심 있는 집사일 수도 있습니다. 롬10:2-3에는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즉 말씀을 기초하지 않는 데서 저질러지는 장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은 축복을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내가 복을 받아야 한다’는 욕심이 네 사람에 의해 들것에 들려오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못하게 하고 길을 내어주지 않고 도리어 비난하게 했을 것입니다. 자기들보다 불쌍한 자를 위해 길을 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불쌍히 여기지 못하는 자는 축복의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롬15:1)고 했습니다. 욕심은 죄요 탐심은 우상숭배(골3:5)라고 지적했습니다. 아간의 탐심은 축복 대신에 자녀들에게 죽음을 불러들였습니다(수7:16-26) 수1:7에 보면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하셨으나 아간의 탐심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장애물이 되어 적군에게 패하게 했습니다. 탐욕의 장벽이 있는 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12:15, 엡5:3)고 하셨고 또한 “탐심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잠28:16)고 했습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이웃의 고통이나 궁핍이나 헐벗음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축복 대신에 저주를 자초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마25:31-46) 그리스도인은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라”(욥29:15)고 했습니다. 탐욕과 탐심을 물리치지 않고는 축복의 문을 열 수 없으며 승리의 대로를 개척할 수가 없습니다. 불순종은 축복을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예수님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에만 집착하고 있고 자기 말만 말이라고 부르짖으며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즉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4:17, 막1:15) 하심에 무관심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는데 회개치 않고 자기들의 소원 성취에만 급급했던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원은 많았으나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없었고 다른 이에게도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울 왕은 불순종하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기대였으며 기쁨을 가져다 주었지만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하고 상처를 가져 오게 한 것을 봅니다. 신28:1-14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으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며 악을 행함으로써(삿2:11-15) 고통으로 얼룩진 역사를 보게 됩니다. 주께서 가버나움에 이르러 세금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반 세겔 내는 문제로 시비하자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라”(마17:27)고 했을 때 순종하여 물고기에서 돈을 얻게 됩니다. 마리아도 성령님잉태를 예언하는 천사의 말을 듣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함으로써 그녀는 성모가 되었습니다. 불순종으로 인하여 자신은 물론 다른 이가 축복의 길에 장애물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긍휼을 모르고 헐뜯는 행위가 장애물이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도 가는 어떤 자가 강도를 만나 사경을 헤맬 때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영생 얻을 자가 못 되고 그것을 불쌍히 여기어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영생 얻을 자의 표본이 되었다고 예수님은 교훈하셨습니다(눅10:30-3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으리라”(마5:7)고 하십니다. 아무리 주님께 가까이 있다고 해도 형제를 불쌍히 여기지 못하면서 불쌍히 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천국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눅23:34, 행7:60)하는 자의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지 못하고 헐뜯는 것은 자신과 다른 이에게 장애물이 되어 축복의 길을 막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분쟁이 있었습니다(고전1:10). 이것은 남의 잘못을 용서할 마음이 없음으로 인해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 분쟁은 지혜와 능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고전1:26).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교회의 사명은 충성입니다. 남의 일을 판단하는 것은 성도의 할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고전4:1-4). 예수님도 첫 설교인 산상수훈에서 “비판하지 말라”(마7:1-3)고 하셨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음행한 자와 그것을 판단하는 자 사이에 분당이 생겼고(고전5장) 가정을 가진 자와 독신자 사이에 비판이 일어났고(고전7장)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와 먹지 않는 자 사이에 분쟁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고전8장)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였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비방거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큰 장애물이 됩니다. 용서할 줄 모르는 자는 자신과 모든 이들에게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간절한 맘으로 겸손하게 권고할 것밖에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하여 용서 못하면 그것이 더 큰 장애물이 됩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 천국문을 활짝 여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준비한 모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갈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신 권고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모르는 것이 장애물이 됩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자가 교회의 거침돌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3장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도 자신을 모를 때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행7:58),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자였습니다. 자신을 알고난 후에는 자기에 대하여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15:8)라고 했고,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에 그를 통해서 축복 받은 사람의 수가 천도 아니고 만도 아니라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구원과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장애물이 있다고 돌아서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네 청년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소경도 제자들의 골을 보고도 낙심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람을 보면 낙심하게 됩니다. 주님만을 목표하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이 장애물이 된 그 사람들도 중풍병자가 상을 들고 걸어갈 때는 길을 내어 주고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떤 장애물을 보아도 지붕을 뚫고 달아내리는 인내와 용기로써 장애물이 되는 이들을 감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믿기만 하라(눅18:35-43)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 한 소경이 나타나 예수님을 찾게 되었고 무리들이 제지해도 소경은 혼신을 다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더욱 힘써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 “내가 너를 보게 할 것으로 믿느냐”, “주여 믿습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기에 찾았습니다.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함과 함께 소경의 눈이 떠졌습니다. 함께 있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해결되고 나아가서 여러분의 믿음이 모든 사람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드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지금도 주께서 세상 염려와 고통을 가지고 신음하는 자를 향하여 “믿기만 하라”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펴 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하는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말2:13)라는 책망을 받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의심하는 자가 있으면 의심을 물리치고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겔8:16) 함과 같이 지금 염려로 사로잡힌 자가 있거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구주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근심을 제거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말씀처럼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실 것을 의심말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께로부터 유쾌하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행3:19).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기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말씀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믿으라 하심은 “너희에게 주고자 준비한 것을 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려고 예수님을 먼저 보내사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고 우리의 악을 버리게 하셨습니다(행3:26).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22)하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십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함과 같이 우리도 “주여 믿나이다”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울 왕을 버리신 것을 슬퍼하는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버릴 것은 버리고 세울 것은 세우라”(삼상16:1)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까지 머뭇거리렵니까 속히 구습을 좇던 옛 사람을 버리고 “죄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해서는 산자”(롬6:11)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확실한 지적 믿음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히11:3-5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3절)과 구속의 하나님(4절), 그리고 부활의 하나님(5절)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말의 고백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입혀 주심으로써 생활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의심을 버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1:6)고 했습니다. 또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하십니다. 우리들은 기도하고난 후에 태도가 어떠합니까 초대 교회가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자 헤롯의 핍박이 시작되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는 핍박이 일어나고 베드로도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자 교회는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랄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천사의 인도로 석방되어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모두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대문을 두드리니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나와서 베드로 사도를 확인하고 뛰어 들어가 베드로 사도가 왔다고 알리자,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던 교회가 “네가 미쳤다”고 했습니다(행12:1-15) 이 어처구니 없는 교인들을 보십시요. 야고보가 칼에 순교 당했으니 베드로야 말할 것 없이 죽을 것이라는 사람의 생각이 앞섰기에 기도하면서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병든 이를 심방 가서 “고쳐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 기도하고 나와서는 “아무래도 어렵겠어”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의심없는 믿음은 부르짖어 찾게 됩니다. “믿고 기도하면 다 받으리라”(마21:22) 했기에 소경의 부르짖음같이 개인문제, 가정문제, 사업문제, 자녀문제 말 못할 어려움을 부르짖어 기도하면 반드시 해결받을 것입니다. 의심을 떨쳐버리고 기도한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왕상18:30-45)는 장마비의 축복과 불의 응답을 받아 승리하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승리 했습니까 근심되는 일이 있습니까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시107:6-7)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권념하셨습니다(출2:23-25). 유다왕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항복을 재촉하는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 합심기도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대하32:7-23) 즉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한 천사가 앗수르 진에서 군사를 멸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기도합시다. 인내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란 인내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고 했습니다. 또한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고 하셨습니다. 한번은 주님이 두로와 시돈에 이르렀을 때 한 가나안 여인이 주께 와서 딸이 흉악한 귀신 들린 것을 고쳐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은 너무나 실망스러웠으나 여인은 인내로써 목적한 바를 성취하였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축복의 음성을 듣기 원하면 환경이 변해도 인내로 믿음을 지켜야 할 것이며(약1:1-3), 빈부 귀천의 와중에서도 인내로 믿음을 지켜야 할 것이며(약1:9-11), 감정의 지배를 인내로써 이기고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약1:19-21).
요9:1-12을 보십시오.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가 주 앞에 나왔을 때 제자들이 “누구의 죄로 소경이 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사람을 놓고 희롱하는 것을 참고 있는 소경에게 주님은 “흙을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소경은 순종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13).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비하지 않고는 명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할때 가나안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봅시다.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도와달라하므로 드로아를 떠나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회당도 없고 침식할 곳도 막연하여 강가에서 전도할 때,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 루디아로 하여금 침식을 제공하게 하셨고, 또한 점치는 여인을 구원하는 일로 감옥에 갇히게 하시어 거기서 잃은 양을 찾게 하셨습니다(행16:6-3
4).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십일조를 명하시는 하나님(말3:10)은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두 배를 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했을 때 베드로는 경험을 앞세우지 않고 순종함으로 두배에 가득하게 채우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눅5:1-6). 하나님의 준비한 모든 축복은 순종하는 자가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의 눈은 까마귀에게 쪼일 것이요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 하신 말씀 그대로 불순종은 곧 멸망입니다. 의심을 버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은 자신을 구원하게 됩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은 믿음으로 주님의 옷가를 만져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그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마9:20-22). 믿음의 능력은 타인을 구원합니다. 마9:18-26에는 한 국가 공무원이 자신의 딸을 구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녀문제로 고통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백부장의 믿음은 하인을 구원했습니다(마8:5-13). 참 믿음은 나라를 구원합니다. 기드온의 믿음(삿7장), 에스더의 믿음이 나라를 구했습니다. 12월 13일에 멸망 당할 것을 의심치 않고 인내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신앙을 통해 부림절을 이룩했습니다(에3:1-9:32). 우리를 살펴봅시다. 형식적인 믿음이나 인정에 의한 것이라면 변화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기도 없는 믿음은 환란을 이길 수가 없고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나도 죽고 이웃도 죽고 나라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내 자신과 이웃과 나라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막9:24). 고백함으로써 성령님을 선물로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 영광돌리고 영원한 기업을 선물로 받는 성도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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