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 (눅22:7-23)
본문
교회에서는 가끔 성찬식을 가집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주신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흔히들 성찬식이라고 부르지만 성경에는 그런 표현이 사용되지 않고 “주의 만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고전11:20).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 의식을 행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주의 만찬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짧은 공생애 동안 유월절을 적어도 세 번 맞이하셨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2:23; 6:4; 11:5
5). 본문에 언급된 것은 마지막 유월절입니다. 요한복음 5장 1절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명절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명절이 또 다른 유월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네 번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 초기부터 제자들과 함께 행동하셨기 때문에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고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셨을 것입니다. 본문의 만찬은 과거에 두세 번 가졌던 유월절 만찬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15절). 그래서 만찬을 위한 장소도 미리 생각해 놓으셨고 때가 되자 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을 그 장소로 보내어 준비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 만찬은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저녁에 있었습니다. 성경 시대에 유대인들은 하루를 일몰 때부터 다음 날 일몰 때까지로 계산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력 니산월 14일인데 이미 14일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져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하여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마태복음 26장 28절에서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며 피를 흘리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만찬의 배경인 유월절 사건과 관련지어 본다면 그분께서 유월절에 잡는 어린 양 역할을 대신하시겠다는 뜻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 대신에 살이 찢기고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 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언약의 피였습니다(출12:13). 그리고 그 고기는 불에 구워져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분께서는 이 만찬을 통해서 자신이 받게 될 고난이 유월절에 의해 상징된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년 전에 유월절을 앞두고(요6:4)
다음과 같은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하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1-55) 이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자신을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비유하셔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달리 그 의미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 떡과 잔을 통해서 자신을 기념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주의 만찬을 그 교회에 소개했는데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고전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고전11:23) 주님께서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기념하고 전하라는 뜻입니다.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기념하라고 하셨지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의 동상을 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각종 기념식들은 기념비 앞에서나 기념관에서 행해집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국한된 한두 장소에서 자신을 기념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어느 곳에 모여 있든지 그곳에서 자신을 기념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념물이 아니라 기념의식을 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같은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원하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처음으로 유월절 절기를 정하셨을 때도 이 날을 기념하여 대대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출12:14)
둘째, 주의 만찬은 주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분과의 교제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하여 의도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했을 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성경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친밀한 교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도 하셨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필요하다면 어느 누구와도 격의 없이 마주앉아서 식사하셨을 것입니다. 이는 복음을 전할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된 만찬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특별한 식사인 유월절 만찬을 나누신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가족끼리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혹시 음식에 비해 가족의 숫자가 적을 경우에는 이웃과 함께 하도록 지시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출12:3,4)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 가족이며 가족처럼 친근한 사람들입니다. 만찬에서 사용하는 떡이 큰 덩어리 떡이라는 사실도 친근함과 일체감을 더해 줍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6,1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시며 그분 안에서 하나님 자신과 교제케 하십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물론 그 교제의 기초는 성육신하여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흘리신 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떡과 잔을 통하여 그 사실을 다시 상기하며 그분과의 교제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요6:56,57)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도 교제에 걸림으로 작용할 수 있는 죄 문제를 처리하고 교제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바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념하는 자리로 나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주의 만찬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짧은 공생애 동안 유월절을 적어도 세 번 맞이하셨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2:23; 6:4; 11:5
5). 본문에 언급된 것은 마지막 유월절입니다. 요한복음 5장 1절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명절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명절이 또 다른 유월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네 번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 초기부터 제자들과 함께 행동하셨기 때문에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고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셨을 것입니다. 본문의 만찬은 과거에 두세 번 가졌던 유월절 만찬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15절). 그래서 만찬을 위한 장소도 미리 생각해 놓으셨고 때가 되자 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을 그 장소로 보내어 준비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 만찬은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저녁에 있었습니다. 성경 시대에 유대인들은 하루를 일몰 때부터 다음 날 일몰 때까지로 계산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력 니산월 14일인데 이미 14일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져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하여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마태복음 26장 28절에서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며 피를 흘리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만찬의 배경인 유월절 사건과 관련지어 본다면 그분께서 유월절에 잡는 어린 양 역할을 대신하시겠다는 뜻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 대신에 살이 찢기고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 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신 언약의 피였습니다(출12:13). 그리고 그 고기는 불에 구워져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분께서는 이 만찬을 통해서 자신이 받게 될 고난이 유월절에 의해 상징된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년 전에 유월절을 앞두고(요6:4)
다음과 같은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하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1-55) 이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자신을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비유하셔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달리 그 의미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 떡과 잔을 통해서 자신을 기념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주의 만찬을 그 교회에 소개했는데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고전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고전11:23) 주님께서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기념하고 전하라는 뜻입니다.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기념하라고 하셨지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의 동상을 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각종 기념식들은 기념비 앞에서나 기념관에서 행해집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국한된 한두 장소에서 자신을 기념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어느 곳에 모여 있든지 그곳에서 자신을 기념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기념물이 아니라 기념의식을 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같은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원하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처음으로 유월절 절기를 정하셨을 때도 이 날을 기념하여 대대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출12:14)
둘째, 주의 만찬은 주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분과의 교제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하여 의도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했을 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성경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친밀한 교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도 하셨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필요하다면 어느 누구와도 격의 없이 마주앉아서 식사하셨을 것입니다. 이는 복음을 전할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된 만찬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특별한 식사인 유월절 만찬을 나누신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가족끼리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혹시 음식에 비해 가족의 숫자가 적을 경우에는 이웃과 함께 하도록 지시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출12:3,4)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 가족이며 가족처럼 친근한 사람들입니다. 만찬에서 사용하는 떡이 큰 덩어리 떡이라는 사실도 친근함과 일체감을 더해 줍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6,1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시며 그분 안에서 하나님 자신과 교제케 하십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물론 그 교제의 기초는 성육신하여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흘리신 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떡과 잔을 통하여 그 사실을 다시 상기하며 그분과의 교제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요6:56,57)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도 교제에 걸림으로 작용할 수 있는 죄 문제를 처리하고 교제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바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념하는 자리로 나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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