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를수록 좋은 것 (눅2:21-39)
본문
잠언 30장에는 수수께끼와 같은 항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히 기이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너 가지,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너 가지, 땅에 있는 작고도 지혜로운 것 서너 가지,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너 가지. 이에 대한 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패턴을 좇아 본문에서 빠를수록 좋은 것 서너 가지를 찾는다면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첫째, 순종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난지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 하에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창17:10-14). 하나님께서는 이 의식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셨고 그 중요성을 아브라함에게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할례를 행치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모세를 죽이시려고 했던 사건도 있었습니다(출3:24-26).이것이 무엇을 교훈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차일피일 미룰 것이 아니라 빨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했습니다. 마리아가 출산한 지 40일만에 성전으로 간 것도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레위기 12장에는 여인이 아기를 낳았을 때의 정결케 하는 의식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율법에 의하면 남아를 출산한 여인은 40일이 지나야 의식적으로 정결함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에 성전에서 결례 의식을 행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비둘기 두 마리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는 것은 가정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 밖의 것을 결코 요구하시지 않으며 가난은 순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둘째,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되는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첫아들이셨기 때문에 이들 부부는 율법에 따라 대속(代贖)해야 했습니다(출13:1-16).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구약의 의식적인 율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영적인 교훈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23절의 “아기를 주께 드리고”라는 말씀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리스도인 부모는 태어난 아기를 믿음으로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의 장래가 부모의 뜻대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믿을진대 갓난아기 때부터 그 아이의 장래를 주님께 맡기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특권입니까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에 왔습니다. 생후 40일 된 아기가 무엇을 알겠느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철이 든 청소년에게가 아니라 생후 8일 된 갓난 아이에게 언약의 표시로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까 비록 깨달을 수 있는 지각이 아직 발달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대리인격인 부모의 믿음을 통해서라도 영적인 감화를 받게 되며 그것은 이를수록 좋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교육은 이를수록 좋습니다. 영적 교육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출산 후 몸조리를 끝낸 후에는 아기를 데리고 예배당에 오십시오. 그것이 성경적이며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세째,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할례의 영적인 의미는 회개입니다. 포피를 베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죽을 베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육적 할례처럼 생후 8일째 되는 날에 받을 수 없지만 깨달음이 있다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느니라”(렘4:4)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
첫째, 순종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난지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 하에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창17:10-14). 하나님께서는 이 의식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셨고 그 중요성을 아브라함에게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할례를 행치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모세를 죽이시려고 했던 사건도 있었습니다(출3:24-26).이것이 무엇을 교훈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차일피일 미룰 것이 아니라 빨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했습니다. 마리아가 출산한 지 40일만에 성전으로 간 것도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레위기 12장에는 여인이 아기를 낳았을 때의 정결케 하는 의식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율법에 의하면 남아를 출산한 여인은 40일이 지나야 의식적으로 정결함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에 성전에서 결례 의식을 행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비둘기 두 마리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는 것은 가정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 밖의 것을 결코 요구하시지 않으며 가난은 순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둘째,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되는 것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첫아들이셨기 때문에 이들 부부는 율법에 따라 대속(代贖)해야 했습니다(출13:1-16).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구약의 의식적인 율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영적인 교훈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23절의 “아기를 주께 드리고”라는 말씀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리스도인 부모는 태어난 아기를 믿음으로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의 장래가 부모의 뜻대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기도의 능력을 믿을진대 갓난아기 때부터 그 아이의 장래를 주님께 맡기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특권입니까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에 왔습니다. 생후 40일 된 아기가 무엇을 알겠느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철이 든 청소년에게가 아니라 생후 8일 된 갓난 아이에게 언약의 표시로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까 비록 깨달을 수 있는 지각이 아직 발달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대리인격인 부모의 믿음을 통해서라도 영적인 감화를 받게 되며 그것은 이를수록 좋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교육은 이를수록 좋습니다. 영적 교육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출산 후 몸조리를 끝낸 후에는 아기를 데리고 예배당에 오십시오. 그것이 성경적이며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세째,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할례의 영적인 의미는 회개입니다. 포피를 베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죽을 베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육적 할례처럼 생후 8일째 되는 날에 받을 수 없지만 깨달음이 있다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느니라”(렘4:4)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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