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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아, 시몬아 (눅22:31-34)

본문

예수님의 수난은 십자가 위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빌라도 법정에서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그 전에 이미 심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의도적으로 주님을 배반했고 베드로는 본의 아니게 그분을 부인했습니다. 본문은 베드로의 부인에 앞서 주님께서 그것을 예언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제자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베드로를 위해서 주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단은 제자들을 청구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의 연약함도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마귀 사단의 적극적인 개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청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사단이 누구에게 무엇을 청구했다는 것입니까 이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구약성경 욥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기 1장과 2장에는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서서 욥을 시험해 볼 것을 요청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욥을 시험합니다. 욥은 사단의 역사로 많은 재산을 하루에 잃었고 자식들을 한날 한시에 잃었습니다. 그리고 건강도 잃었습니다. 마귀 사단은 제자들을 상대로 이와 같은 일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 즉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였다는 주님의 말씀은 사단의 요청이 허가되었고 그의 유혹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증거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3-15)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겠다는 생각은 마귀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시도를 가로막으실 수도 있고 묵인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단이 아무리 능한 존재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개입의사가 확실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욥의 경우와 베드로의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묵인하셨습니다. 묵인하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사단의 행동을 옳다고 승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은 베드로가 혈기왕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 중에서 최고가 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약점들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를 뒤흔든 것입니다. 마귀 사단은 지금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앞에서 비방하며 넘어뜨릴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다음 말씀을 살펴보십시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12:10) 이 말씀은 말세의 7년 환난 때에 있을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때가 되기까지 마귀 사단은 쉬지 않고 신자들을 유혹하며 청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지만 마귀 사단은 타락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후에도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욥처럼 죄가 없는 경우에도 마귀 사단이 그를 요청했는데 우리가 불순종 가운데 있게 되면 우리에 대한 그의 비방이 얼마나 더 심각하겠습니까 마귀 사단이 지금도 우리를 하나님께 비방하고 있음을 아십시오. 그리고 그의 비방은 아주 집요합니다. 욥의 경우에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두 번 시도되었습니다.
둘째, 주님은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은 암울한 것이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베드로에게 격려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그분께서는 마귀의 의도와 계획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이미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모두 들으신 바 되었습니다. 이 기도 역시 응답될 것입니다. 그 날 베드로가 주님을 세 차례 부인하기까지 했으나 본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인 연약함과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에게 믿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불씨는 그후에 더욱 크게 타올랐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그분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 옛날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셨듯이 성령님은 구원받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 거하시며 신자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은 마귀 사단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느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승천하신 주님께서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시느니라”(요일5:18) 이상을 고려해 볼 때 우리의 상황이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이 처한 것보다 좋으면 좋았지 결코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죄 범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릴 기회를 노리며 하나님 앞에서 비방한다 하여도 마냥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며 기도하는 가운데 마귀를 대적하면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셋째, 주님은 베드로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라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한 말(마26:36)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자기 딴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지키겠다고 용감하게 칼까지 휘둘렀습니다. 그런 제자가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했음을 깨달을 때 얼마나 절망감에 사로잡힐지 주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하신 후에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이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돌이킨다는 말은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가 자칫 방심하면 유혹에 빠진다는 것을 아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게 되겠지만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또한 재신임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부인하고난 후에라도 회개하면 제자로서, 그리고 사도로서의 역할 및 임무를 계속 맡기시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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