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닭 울음소리 (눅22:31-34)
본문
올해는 계유년 닭의 해입니다. 성경에는 닭에 대하여 언금된 귀절이 13번 나 옵니다. 닭은 그 종류가 8종에 18가지가 있으며 부분은 26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닭은 우리네 속담이나 이야기 속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닭을 부를때 축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연유합니다. (이야기) 축계옹이라는 사람이 시향 북산이라는 곳에 살면서 양계를 하는 데 천여 수가 넘었다 밤이 되면 모두 나물에 올라 깃들이고 낮에는 방산에 길렀 습니다. 그리고 그 천여 수의 닭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 부르기만 하면 틀림없 이 달려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닭을 축계옹의 이름을 붙여 축축(축축)이라 고 부르기도 합니다. 닭이란 동물은 예로부터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온갖 잡귀 들을 내쫓는 영물이라 불리워진 우리네 생활과 밀접한 동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함과 그 영기로움이 우리 서부교회 교우들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눅 22:3
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눅 22: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눅 22:6
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오늘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닭 울음 소리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를 알아봅시다.
1구 않겠다 고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의지라는것 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허약한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신변에 조여드는 위협을 물리칠만한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빼문에 결국은 그 위협에 굴복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울도 자기의 신앙이 가장 성숙한것인 양 착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건들이 글 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안을 다스리는 일의 상당 부분이 여성에게 주어진 일이긴 하지만 이끌어가는 능력과 원칙을 알지 못하면서 간섭하면 집안이 어렵게 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면서 간섭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전공인 분야 외에는 잠잠해야 그 어 느 기관이든지 든든하게 제 구실을 다하게 됩니다. 전문가가 아니면서 깊히 관 여하면 분명 그 결과는 불을 도듯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암닭이 울어야 할때도 있습니다. 암닭이 많이 울면 울수록 그 집안은 잘되는 집안입니다. 그러나 울 때만 울어야 합니다. 쓸데없이 마구 울면 집안을 시끄럽게만 만듭니다. 아침에 시간을 알리는 숫닭의 울음과 생산을 알리는 암닭 의 울음이 합하여 질 떠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가정이 됩니다. 비록 지금은 남들이 깨닫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이지만 일하고 부 지런히 살아야할 새벽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시간을 먼저 살아야 합니다. 현대적 표현을 빌린다면 '미래를 감지하고 시대를 앞서가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 13:3
5' 종말은 몇월 몇일로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매 순간 주님이 오실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닭처럼 주님오실 때를 알리는 일을 성 실히 합시다. 만약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한다면 그 닭은 잡아 먹힐수 박에 없습니다.
3)주님의 대 위임인 복음전파를 해야합니다.-주님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목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문화를 초월합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은 저래소 안되다고 판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2000년 역사는 문화가 이를 막지 못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만약 19세기 말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의 쇄국 정치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일 나라가 못된다고 포기해 버렸다면 우리의 신앙은 오늘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복음의 역사는 항상 문화를 뛰어넘는 능력을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전파되었습니다.
(예) 교회는 모든 신도들이 중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열정을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데살로니가 지방에 교회를 개척할 때 그 지방 사람들이 관가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그 죄목이 바로 '처하는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 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복음이 있다면 그 복음은 우리를 가만히 있도록 그냥 놓아두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안도을 뒤 짐어 놓는 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악과 선을 구분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베드로를 깨우치게 하던 닭의 울음은 회개를 촉구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 복하게 만들어 주는 가교역할을 했습니다. 이 닭 울음소리는 베드로의 혼란스럽 고 완악해진 마음을 돌이켜 참회의 눈물로 변화시킨 일종의 신선한 경종이었습니다. 닭이 우는 순간 베드로의 머리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스쳐갔습니다. 그 말씀을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의 죄 를 깨닫는 순간 통곡하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자기가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큰소리쳤 그의 사는 날 동안 전보다 더 가난한 심령으로 만들 어 주었을 것입니다.
(예화) 아빠가 퇴근길에 집에 가까이 왔습니다. 길에서 놀던 어린 딸아이가 아빠를 보자 "아빠" 하면서 달려옵니다. 아빠가 걸음을 멈추고 팔을 벌립니다. 이런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어린 딸 아이가 아빠의 품에 뛰어들고 아빠는 사랑하는 딸아이를 품에 안아 줍니다. 얼마나아름다운 정경인지요.
그런데 오늘 은 팔을 벌리고 있던 아빠가 팔을 접으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 얘 덤비 지 마라" 하면서 딸아이가 달려오는 것을 피하면서 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자세 히보니 어린애가 놀다가 흙탕물에 빠졌는지 온통 옷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흙투성이 된 어린아이를 품에 안아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데리고 가서 어린애의 옷을 벗기로 씻은 다음 그제서야 안아주는 것이었죠.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 범죄한 천사에게는 없고(유1:6) 땅에 있는 인류에게만 베푸 신 것이다. 회개는 오직 호흡이 있는 이때만이 유효하다(고후6:1-2) 누구든지 중생을 한 단번의 회개와(딛3:5-7) 성결을 위한 매일 수시로 해야 할 회개가 있다(약4:8) 성도는 이 두가지 회개로 초월하지 못한다(행2:38) 성령님도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십니다. 회개는 죽은 후에도 없고 다시 산 후에도 없다 회개하라 하심은 최초의 복음이요 하나님이 베푸신 첫번의 은혜이다 회개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은 자녀요 영생에 들어갈 참사람들이다 회개하고 회개의 체험을 가집시다. 기독교회가 높은 수준을 유지함은 회개때 문이다. 회개는 주님의 강력한 요구이다. 우리 역시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이 닭울음 소리를 통하여 우리의 가슴을 깨트릴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의 과거를 돌다. 성경을 통하여 죄악을 지적 받을 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통곡하므로 베드로처럼 귀하디 귀하게 쓰임 받는 교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새벽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화) 하루는 파리와 닭과 뻐꾹새가 모여서 제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자신이 하는 일이야말로 아주 중대한 것이라고 허풍을 떨고 있었다. 먼저 나서기 좋아하는 파리가 했다. `내가 달리는 쌍두마차 바퀴에 붙어서 날개를 윙하고 진동시켰더니 온 길의 먼 지가 다 일어나지 뭐야 내 날개 힘이 대단한 걸 알았어." 닭이 말했다 "뭘 그런 걸 가지구 자랑하냐, 내가 새벽마다 목청껏 울어대는 거야. 내 목소리의 힘이 해를 떠오르게 하다니 내 자신의 능력에 나두 놀랐 다구" 뻐꾹이가 말했다 "넌 하루하루 태양이 떠오르게 할 수는 있지만 계절 을 바뀌게는 못하잖니. 내가 뻐꾹뻐꾹하고 울면 봄쟁합시다. 자칫 나 때문에 하나님 의 일 이 이루어진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사람 중에도 사물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자가 있습니다. 자기의 현재 상태를 과대하게 평가하는 망상을 과대망상중이라 합니다. 곧 자기의 건강이나 능력을 실제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증상을 말하는데 가벼운 것은 남에게 박 력과 자신을 보여줌으로 매력일 수도 있지만 무서운 것은 정신과 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인가 미스 프랑스에 입섭한 아가씨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 이 자기는 화성에서 전 우주의 우수한 천재로서 당신과 결혼하도록 결정되어서 내려 왔다고 하여 국제 결혼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들 부부는 얼마가지 못하여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자는 정신 이상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좀 심한 케이스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지금 소영웅주의와 내가 아니 면 안되다고하는 메시아니즘에 들뜬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역사의 혼란은 자신을 과대하게 평가하는 자칭 애국자들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기가 민주주의의 수호자요, 자기가 남북통일의 기수요 자기가 노동자의 대변인이라고 확신하는 자들이 우리 나라에는 너무 많습니다. 과대망상증의 일 반적인 증상는 `상쾌한 감정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다 기분이 좋아서 영웅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도 미칠 수 있는데(벧후 2:6) 하물며 영웅주의자들이야 말할 나위없을 것입니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문이니 자기의 위치를 지켜 하나님의 주 권을 드높히어 오직 주께만 영광 돌리는 교우들 되시길 바랍니다. 맺는 말 아침에 시간을 알리는 숫닭의 울음과 생산을 알리는 암닭의 울음이 합하여 질 떠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가정이 됩니다.
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눅 22:60'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눅 22:6
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오늘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닭 울음 소리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를 알아봅시다.
1구 않겠다 고 큰소리치던 베드로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의지라는것 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허약한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신변에 조여드는 위협을 물리칠만한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빼문에 결국은 그 위협에 굴복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울도 자기의 신앙이 가장 성숙한것인 양 착각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건들이 글 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안을 다스리는 일의 상당 부분이 여성에게 주어진 일이긴 하지만 이끌어가는 능력과 원칙을 알지 못하면서 간섭하면 집안이 어렵게 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면서 간섭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전공인 분야 외에는 잠잠해야 그 어 느 기관이든지 든든하게 제 구실을 다하게 됩니다. 전문가가 아니면서 깊히 관 여하면 분명 그 결과는 불을 도듯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암닭이 울어야 할때도 있습니다. 암닭이 많이 울면 울수록 그 집안은 잘되는 집안입니다. 그러나 울 때만 울어야 합니다. 쓸데없이 마구 울면 집안을 시끄럽게만 만듭니다. 아침에 시간을 알리는 숫닭의 울음과 생산을 알리는 암닭 의 울음이 합하여 질 떠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가정이 됩니다. 비록 지금은 남들이 깨닫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이지만 일하고 부 지런히 살아야할 새벽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시간을 먼저 살아야 합니다. 현대적 표현을 빌린다면 '미래를 감지하고 시대를 앞서가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 13:3
5' 종말은 몇월 몇일로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매 순간 주님이 오실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닭처럼 주님오실 때를 알리는 일을 성 실히 합시다. 만약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한다면 그 닭은 잡아 먹힐수 박에 없습니다.
3)주님의 대 위임인 복음전파를 해야합니다.-주님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목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은 문화를 초월합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은 저래소 안되다고 판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2000년 역사는 문화가 이를 막지 못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만약 19세기 말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의 쇄국 정치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일 나라가 못된다고 포기해 버렸다면 우리의 신앙은 오늘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복음의 역사는 항상 문화를 뛰어넘는 능력을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전파되었습니다.
(예) 교회는 모든 신도들이 중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열정을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데살로니가 지방에 교회를 개척할 때 그 지방 사람들이 관가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그 죄목이 바로 '처하는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 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복음이 있다면 그 복음은 우리를 가만히 있도록 그냥 놓아두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안도을 뒤 짐어 놓는 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악과 선을 구분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베드로를 깨우치게 하던 닭의 울음은 회개를 촉구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 복하게 만들어 주는 가교역할을 했습니다. 이 닭 울음소리는 베드로의 혼란스럽 고 완악해진 마음을 돌이켜 참회의 눈물로 변화시킨 일종의 신선한 경종이었습니다. 닭이 우는 순간 베드로의 머리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스쳐갔습니다. 그 말씀을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의 죄 를 깨닫는 순간 통곡하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과거에 자기가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큰소리쳤 그의 사는 날 동안 전보다 더 가난한 심령으로 만들 어 주었을 것입니다.
(예화) 아빠가 퇴근길에 집에 가까이 왔습니다. 길에서 놀던 어린 딸아이가 아빠를 보자 "아빠" 하면서 달려옵니다. 아빠가 걸음을 멈추고 팔을 벌립니다. 이런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어린 딸 아이가 아빠의 품에 뛰어들고 아빠는 사랑하는 딸아이를 품에 안아 줍니다. 얼마나아름다운 정경인지요.
그런데 오늘 은 팔을 벌리고 있던 아빠가 팔을 접으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 얘 덤비 지 마라" 하면서 딸아이가 달려오는 것을 피하면서 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자세 히보니 어린애가 놀다가 흙탕물에 빠졌는지 온통 옷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흙투성이 된 어린아이를 품에 안아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데리고 가서 어린애의 옷을 벗기로 씻은 다음 그제서야 안아주는 것이었죠.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 범죄한 천사에게는 없고(유1:6) 땅에 있는 인류에게만 베푸 신 것이다. 회개는 오직 호흡이 있는 이때만이 유효하다(고후6:1-2) 누구든지 중생을 한 단번의 회개와(딛3:5-7) 성결을 위한 매일 수시로 해야 할 회개가 있다(약4:8) 성도는 이 두가지 회개로 초월하지 못한다(행2:38) 성령님도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십니다. 회개는 죽은 후에도 없고 다시 산 후에도 없다 회개하라 하심은 최초의 복음이요 하나님이 베푸신 첫번의 은혜이다 회개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은 자녀요 영생에 들어갈 참사람들이다 회개하고 회개의 체험을 가집시다. 기독교회가 높은 수준을 유지함은 회개때 문이다. 회개는 주님의 강력한 요구이다. 우리 역시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이 닭울음 소리를 통하여 우리의 가슴을 깨트릴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의 과거를 돌다. 성경을 통하여 죄악을 지적 받을 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통곡하므로 베드로처럼 귀하디 귀하게 쓰임 받는 교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새벽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화) 하루는 파리와 닭과 뻐꾹새가 모여서 제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자신이 하는 일이야말로 아주 중대한 것이라고 허풍을 떨고 있었다. 먼저 나서기 좋아하는 파리가 했다. `내가 달리는 쌍두마차 바퀴에 붙어서 날개를 윙하고 진동시켰더니 온 길의 먼 지가 다 일어나지 뭐야 내 날개 힘이 대단한 걸 알았어." 닭이 말했다 "뭘 그런 걸 가지구 자랑하냐, 내가 새벽마다 목청껏 울어대는 거야. 내 목소리의 힘이 해를 떠오르게 하다니 내 자신의 능력에 나두 놀랐 다구" 뻐꾹이가 말했다 "넌 하루하루 태양이 떠오르게 할 수는 있지만 계절 을 바뀌게는 못하잖니. 내가 뻐꾹뻐꾹하고 울면 봄쟁합시다. 자칫 나 때문에 하나님 의 일 이 이루어진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사람 중에도 사물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자가 있습니다. 자기의 현재 상태를 과대하게 평가하는 망상을 과대망상중이라 합니다. 곧 자기의 건강이나 능력을 실제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증상을 말하는데 가벼운 것은 남에게 박 력과 자신을 보여줌으로 매력일 수도 있지만 무서운 것은 정신과 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인가 미스 프랑스에 입섭한 아가씨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 이 자기는 화성에서 전 우주의 우수한 천재로서 당신과 결혼하도록 결정되어서 내려 왔다고 하여 국제 결혼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들 부부는 얼마가지 못하여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자는 정신 이상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좀 심한 케이스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지금 소영웅주의와 내가 아니 면 안되다고하는 메시아니즘에 들뜬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역사의 혼란은 자신을 과대하게 평가하는 자칭 애국자들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기가 민주주의의 수호자요, 자기가 남북통일의 기수요 자기가 노동자의 대변인이라고 확신하는 자들이 우리 나라에는 너무 많습니다. 과대망상증의 일 반적인 증상는 `상쾌한 감정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다 기분이 좋아서 영웅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도 미칠 수 있는데(벧후 2:6) 하물며 영웅주의자들이야 말할 나위없을 것입니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문이니 자기의 위치를 지켜 하나님의 주 권을 드높히어 오직 주께만 영광 돌리는 교우들 되시길 바랍니다. 맺는 말 아침에 시간을 알리는 숫닭의 울음과 생산을 알리는 암닭의 울음이 합하여 질 떠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가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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