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동산의 교훈 (눅22:39-46)
본문
집안에서 기르는 개는 볼 일을 볼 때 실내에서 보지 않고 꼭 집 바깥으로 나가서 본다고 합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보다 더 신기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조그마한 원숭이가 얼마나 훈련을 잘 받았든지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손잡이를 눌러 물을 내리는 것을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면서 감탄했던 적이 있습니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흉내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이 흉내낼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동물이 사람의 기도하는 흉내를 내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일을 알고 있다면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사람만이 절대자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람만이 절대자에게 기도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고귀한 특권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경험을 별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오르셨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확인해 보며 기도를 어떻게 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보다 잠을 좋아하는 제자들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러 이 곳에 모였어도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했지만 금방 중단했습니다.
첫째,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 감람산에 가시는 것이 그분의 습관이었습니다(21:37). 그 감람산 기슭에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휴식을 위한 장소였으며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날 밤 휴식을 위해서 이 곳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서 찾으셨습니다. 갈릴리 지방에도 그분께서 기도하기 위해서 찾으셨던 산이 있었습니다(6:12). 성전을 가리켜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분께서 성전에서도 자주 기도하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그분의 기도는 습관이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능히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신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나를 돕고자 하신다는 확신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가 지속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믿음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만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필요없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다 한 번 가물에 콩 나듯이 하는 기도는 대체로 참된 믿음의 기도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기도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분의 습관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나의 습관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런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둘째, 기도가 간절하고 진지해야 합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께서는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세 차례나 같은 내용으로 이렇게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기도에 온전히 몰두하셨습니다. 기도에 모든 것을 거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잡념이 생길 리 없습니다. 졸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 응답을 위해서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기도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한 과부가 찾아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절히 탄원하는 것을 비유로 드시며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18:7,8)
셋째, 하나님의 뜻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요, 아이가 울며 떼를 쓰면 다 들어주어요.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지 않겠어요” 기도는 무조건 떼 쓰듯이 하나님께 조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달라서 자녀가 떼를 쓰고 보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울고 불며 보채도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면 주지 않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불순종하며 기도 응답 받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사람은 당연히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신 주님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차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실 때마다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40절). 예수님께서 기분전환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일까요 기도 시간 사이사이에 커피 타임을 갖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는지 보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시며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자 하십니다. 언제까지 육신이 약하다는 핑게를 대겠습니까
첫째,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 감람산에 가시는 것이 그분의 습관이었습니다(21:37). 그 감람산 기슭에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휴식을 위한 장소였으며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날 밤 휴식을 위해서 이 곳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서 찾으셨습니다. 갈릴리 지방에도 그분께서 기도하기 위해서 찾으셨던 산이 있었습니다(6:12). 성전을 가리켜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분께서 성전에서도 자주 기도하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그분의 기도는 습관이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능히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신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나를 돕고자 하신다는 확신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가 지속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믿음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만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필요없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다 한 번 가물에 콩 나듯이 하는 기도는 대체로 참된 믿음의 기도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기도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분의 습관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나의 습관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런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둘째, 기도가 간절하고 진지해야 합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께서는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세 차례나 같은 내용으로 이렇게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기도에 온전히 몰두하셨습니다. 기도에 모든 것을 거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잡념이 생길 리 없습니다. 졸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 응답을 위해서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기도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한 과부가 찾아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절히 탄원하는 것을 비유로 드시며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18:7,8)
셋째, 하나님의 뜻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요, 아이가 울며 떼를 쓰면 다 들어주어요.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지 않겠어요” 기도는 무조건 떼 쓰듯이 하나님께 조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달라서 자녀가 떼를 쓰고 보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울고 불며 보채도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면 주지 않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불순종하며 기도 응답 받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다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사람은 당연히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신 주님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차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실 때마다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40절). 예수님께서 기분전환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일까요 기도 시간 사이사이에 커피 타임을 갖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는지 보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시며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자 하십니다. 언제까지 육신이 약하다는 핑게를 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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