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눅20:41-44)
본문
예수님을 비판하며 제거하려는 무리들은 꼬투리를 잡기 위하여 그분께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20장에서만도 그들이 한 질문을 세 가지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절).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22절). “일곱이 다 저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33절).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받고 답변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도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질문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인식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26).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누이 마르다는 찾아오신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요11:27). 그분께서는 이에 대해서 잘못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고백했을 때에도, 그것을 터무니 없는 말로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책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깨달음을 그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마16:20). 부활하신 후에는 엠마로로 가는 두 제자를 노상에서 만나서 “그리스도가 이 모든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며 반문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고난받은 것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 말씀도 그분께서 그리스도라는 자기 인식 하에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이상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인식한 가운데 말씀하시며 행동하셨습니다. 본문의 말씀도 그런 인식 하에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하셨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첫 번째 질문은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이에 대해서 분명한 어조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탄생 시 헤롯왕은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방박사들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그리스도로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왕으로 나시고 왕으로 오신다는 것이 그 당시 보편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미가서 5장 2절을 인용하며 그 믿음에 대한 성경적인 뒷받침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출생지가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누가복음 2장 4절은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부연해 놓았습니다. 다윗은 이 동네에서 자랐고 그의 아버지도 조상 때부터 그곳을 기업으로 물려받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미가서 말씀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구절들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며 그에게는 다윗 말고도 아들이 일곱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진다면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이새의 후손이라는 정도만 가르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과 비교해 본다면 그 구절뿐만 아니라 이 구절 역시 다윗의 후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23:5,6) 에스겔서에는 다음과 같이 흥미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34:23,24) 이 말씀은 다윗이 죽은 지 300여년 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없고 단지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야 합니다. 당연히 세상 국적으로는 유대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유대인 학자들은 시편 110편을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시로 간주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의 1절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인용되어 기록된 말씀과 시편에 기록된 대로의 말씀을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로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110:1) 이 구절에서 “주”라는 단어는 인간적인 관계에서의 주인이나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주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말씀을 억지로 왜곡시키신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시편 110편 5절을 보면 명백해집니다.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5절)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오리라고 예언되어 있는 그리스도가 단순히 지상의 왕이며 구속자라고만 생각했지 하나님이라고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런 깨달음을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더라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에 좀더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그분을 영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을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거의 모든 예언들은 그분이 그저 평범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가진 왕이심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미가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이사야서 9장 6,7절도 그렇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셋째, 그리스도는 사람이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겠는가입니다. 이것은 아주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들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으므로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그리스도가 사람이자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3:16)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아니셨다면 우리와 같이 되실 수 없었을 것이고 그 반대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셨으며 이 두 본성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혹시라도 이 두 본성이 분리될 수 있는 양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두 본성이 완전히 결합되어 나뉘지 않는 한 인격으로 형성되어 하나의 의식과 의지를 행사합니다. 이 결합은 두 본성 중 하나를 변화시키거나 약화시키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분께서 신이기도 하셨다가 인간이기도 하셨다(God and man)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그분은 신인(神人, God-man)이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경우에 하나의 인격으로 행하셨습ㄴ니다. 크리소스톰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만, 또는 인간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시다. 그 이유는 그분이 배고픔을 느끼셨다는 사실뿐 아니라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사실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분은 갈증을 느끼셨을 뿐 아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다. 또한 그분은 배를 타고 다니시기도 했지만 바다 위로 걷기도 하셨고, 죽으셨지만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빌라도 앞에 서신 적도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으셨으며, 천사의 경배를 받으셨지만 또한 유대인들의 돌팔매질도 받으셨다. 이런 일들 중의 어떤 것들은 예수께서 인간이시기에, 어떤 것들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러실 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신 분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님께서 출생시에 받은 인성은 영원합니다. 즉 그분의 성육신은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를 숭배하는 우리는 단지 우상숭배자밖에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가 하나님이면, 그를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 하거나 혹은 성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성모독자들이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만일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자신이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신성모독자가 된다는 점이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는 선한 사람 축에도 들 수 없게 된다.-오스왈드 샌더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오해하면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세 분이라고 하는 삼신론이 되어 기독교를 다신교로 몰아가게 된다.기독교를 이교도적인 다신교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유일성을 강조하셨다.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은 없는 줄 알아 명심하라 (신4:39). 우리 주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마가12:29).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고전8:4) 하신 것 등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단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예수님과 성령님의 신성이나 인격성을 무시하는 일신론이 된다.유대교나 회교,현대의 유니테어리언파 등은 일신론을 믿는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세 분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설명을 그치면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분 하나님은 어떤 신비한 결합으로 한 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나 같이” 존재하신다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세 분 하나님이 각자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뜻은 완전히 일치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하셨을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은 한 뜻이었다. 타락한 인류의 구속을 위한 계획에도 한 뜻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광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받는 것과 같은 동일한 영광을 요구하시며 받으신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요5:23) 도마가 나의 주시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신성모독죄를 저질렀다고 꾸짖으시기는커녕 아무 이의 없이 하나님의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창조(골1:16; 히1:10), 부활(요5:28,29), 심판(요5:27)과 같이 하나님께만 돌려질 수 있는 행위들이 그리스도의 행위로 돌려진다. 어떻게 아들이면서 창조주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첫째,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첫 번째 질문은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이에 대해서 분명한 어조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탄생 시 헤롯왕은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방박사들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그리스도로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왕으로 나시고 왕으로 오신다는 것이 그 당시 보편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미가서 5장 2절을 인용하며 그 믿음에 대한 성경적인 뒷받침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출생지가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누가복음 2장 4절은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부연해 놓았습니다. 다윗은 이 동네에서 자랐고 그의 아버지도 조상 때부터 그곳을 기업으로 물려받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미가서 말씀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구절들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며 그에게는 다윗 말고도 아들이 일곱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진다면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이새의 후손이라는 정도만 가르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과 비교해 본다면 그 구절뿐만 아니라 이 구절 역시 다윗의 후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23:5,6) 에스겔서에는 다음과 같이 흥미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34:23,24) 이 말씀은 다윗이 죽은 지 300여년 후에 주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없고 단지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야 합니다. 당연히 세상 국적으로는 유대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유대인 학자들은 시편 110편을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시로 간주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의 1절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인용되어 기록된 말씀과 시편에 기록된 대로의 말씀을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로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110:1) 이 구절에서 “주”라는 단어는 인간적인 관계에서의 주인이나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주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말씀을 억지로 왜곡시키신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시편 110편 5절을 보면 명백해집니다.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5절)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오리라고 예언되어 있는 그리스도가 단순히 지상의 왕이며 구속자라고만 생각했지 하나님이라고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런 깨달음을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더라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에 좀더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그분을 영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을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거의 모든 예언들은 그분이 그저 평범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가진 왕이심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미가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이사야서 9장 6,7절도 그렇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셋째, 그리스도는 사람이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겠는가입니다. 이것은 아주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들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으므로 답변하지 못했습니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그리스도가 사람이자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3:16)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아니셨다면 우리와 같이 되실 수 없었을 것이고 그 반대로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셨으며 이 두 본성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혹시라도 이 두 본성이 분리될 수 있는 양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두 본성이 완전히 결합되어 나뉘지 않는 한 인격으로 형성되어 하나의 의식과 의지를 행사합니다. 이 결합은 두 본성 중 하나를 변화시키거나 약화시키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분께서 신이기도 하셨다가 인간이기도 하셨다(God and man)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그분은 신인(神人, God-man)이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경우에 하나의 인격으로 행하셨습ㄴ니다. 크리소스톰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만, 또는 인간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시다. 그 이유는 그분이 배고픔을 느끼셨다는 사실뿐 아니라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사실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분은 갈증을 느끼셨을 뿐 아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다. 또한 그분은 배를 타고 다니시기도 했지만 바다 위로 걷기도 하셨고, 죽으셨지만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빌라도 앞에 서신 적도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으셨으며, 천사의 경배를 받으셨지만 또한 유대인들의 돌팔매질도 받으셨다. 이런 일들 중의 어떤 것들은 예수께서 인간이시기에, 어떤 것들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러실 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신 분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님께서 출생시에 받은 인성은 영원합니다. 즉 그분의 성육신은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를 숭배하는 우리는 단지 우상숭배자밖에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가 하나님이면, 그를 가리켜 선한 사람이라 하거나 혹은 성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성모독자들이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만일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자신이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신성모독자가 된다는 점이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는 선한 사람 축에도 들 수 없게 된다.-오스왈드 샌더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오해하면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세 분이라고 하는 삼신론이 되어 기독교를 다신교로 몰아가게 된다.기독교를 이교도적인 다신교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유일성을 강조하셨다.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은 없는 줄 알아 명심하라 (신4:39). 우리 주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마가12:29).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고전8:4) 하신 것 등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단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예수님과 성령님의 신성이나 인격성을 무시하는 일신론이 된다.유대교나 회교,현대의 유니테어리언파 등은 일신론을 믿는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세 분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설명을 그치면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분 하나님은 어떤 신비한 결합으로 한 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나 같이” 존재하신다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세 분 하나님이 각자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뜻은 완전히 일치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하셨을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은 한 뜻이었다. 타락한 인류의 구속을 위한 계획에도 한 뜻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광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받는 것과 같은 동일한 영광을 요구하시며 받으신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요5:23) 도마가 나의 주시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신성모독죄를 저질렀다고 꾸짖으시기는커녕 아무 이의 없이 하나님의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창조(골1:16; 히1:10), 부활(요5:28,29), 심판(요5:27)과 같이 하나님께만 돌려질 수 있는 행위들이 그리스도의 행위로 돌려진다. 어떻게 아들이면서 창조주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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