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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눅20:9-19)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시면서 여러분 나름대로 느끼신 것이 있으실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 포도원 농부들은 참으로 잘못되고 사람 같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이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참으로 나쁜 일들, 많은 사람을 슬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 일들,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하나는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 가운데 암시를 하신것인데 너무 좋고 너무 아름다운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반대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가 다 우리 마음을 찌릅니다. 하나는 너무 악해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일들입니다.
1.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그것이 무슨 일이냐 오늘 본문에 악한 농부들의 태도입니다.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참으로 나쁘고 흉악한 일입니다. 본문 9절로 16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포도원을 세를 내서 농사를 짖는 이 농부들에게 주인이 심부름꾼을 보내서 계약대로 세를 받으려고 했더니 당연히 세를 내야 되는데 이 농부들이 세를 받으러 온 주인의 종들을 두들겨 패서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그런 짓을 했습니다. 주인이 너무 답답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떻게 다뤄야 될 것이냐! 내 아들을 직접 보내리라 내 아들을 보내면 말을 듣지 않겠느냐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을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포도원으로 찾아온 아들을 본 농부들이 "야! 저 아들이 상속자니 죽이면 이제 포도원이 완전히 우리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하고서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악하기 그지없고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이 악한 농부들이 누군가! 그리고 주인은 누구인가! 에 대해서 직접은 말씀 안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비유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알아들었습니다. 그게 19절에 기록되었습니다. "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 그러니까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아! 저 비유는 우리를 비유해서 말한 거구나!" 그렇게 알아 들었다구요. 그랬으면 사람이라면 "우리가 잘못했구나!" 이렇게 깨달아야 될텐데 오히려 이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한 술 더 떠서 이 말씀하는 예수님을 더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 악한 농부들은 바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또 주인이 보낸 외아들은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탄식하기를 이사야 1장 2-4절에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 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이것이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인생들을 향하여 "소, 돼지만도 못한 자들이구나!" 하고 슬퍼하시는 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을 가지고 그것이 큰 죄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 예수 안 믿는 게 뭐 죄냐 " 그거예요. 로마서 1장 21-2절에 보면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살아 계시는 하나님은 섬기지 아니하고 쓸데없는 우상만 섬긴다 그 말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수없이 말씀과 이사와 기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은 요한복음 1장 10-11절에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 그리고 사람들은 이 악한 농부들처럼 예수님을 거절하고, 예수님을 두들겨 팼고, 그럴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을 때 저들의 마음이 떨림이 있었던가! 손이라도 떨렸던가! 아니요. 전혀 그런것이 없었습니다. 이 예수를 죽이는것이 뭔지 몰랐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 "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그랬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은 천재이며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최고의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최고 지성인이요. 뛰어난 두뇌를 가진 바울이 사도행전 26장 9-11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 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했다 " 이 세상에서 예수라고 하는 것은 쓸어 없애 버려야 되고, 예수와 관계된 사람은 다 죽여 버려야 됐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갈라디아 1장 13절 "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이전에 바울 처럼 이 세상 사람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를 우습게 알고. 여기 서 있는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솔직히 예수가 싫었어요. 이상하게 싫어요. 그냥 거부감이 나요. 내 삶속에 예수가 들어온다는 것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거절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망령되고 무서운 큰 죄악인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교회를 우습게 알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보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제 친구 하나가 신학대를 다니는데 어찌나 그 모습이 초라한지 비 맞은 장닭처럼 축 처져가지고. 저희 어머니가 가끔 저에게 " 아들아 너는 목사 됐으면 참 좋겠다. " 그런 말씀하실 때마다 제일 듣기 싫어 했어요. "어머니 제발 그 말씀 하지 마세요." 그렇게 거만하고, 예수님을 우습게 알고, 교회를 우습게 알고, 목사님을 우습게 알고 . 지금이야 마음이 너무 아프고 죄송스럽고 왜 내가 그렇게 살았던가! 하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몰랐어요. 오늘도 이 땅에는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구름때 같은 증인들 ,성도들이 강물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눈앞에 교회가 있고 자기 가족 중에, 친구 중에, 이웃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모릅니다. 저들은 할 수 만 있으면 교회를 없애 버릴려고 그럽니다. 예수 '예'자도 싫어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릴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죄인가 그럽니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것처럼 그것이 떳떳하고 잘난 것처럼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믿는 다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높입니까 지나가는 거지한테 밥 한 그릇 주는 식으로 내가 하지 않는지! 내가 얼마나 예수님과 하나님 앞에 정말로 마음을 받쳐 봤나요 정성을 참으로 드려 봤나요 시간을 드려 봤나요 세상 사람들은 그만 두고 내가 이 하나님을 얼마나 높여 드렸고, 정성을 다해 섬겨드렸나! 이런 하나님이 나한테 그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가 나한테 그런 대접을 받아도 당연한 주님이시겠는가
2. 또 하나 있을 수 없는 일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악한 농부들을 어떻게 해야 되겠나" 당연히 이 못된 악한 농부들을 주인이 전부 죽여 버리고 세를 다른 사람한테 포도원을 주지 않겠느냐! 당연히 그러지 않겠느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그렇게 안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현실은 지금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을 잡아죽이려고 하고 , 짓밟아 버리고, 하나님 우습게 알고 그러잖아요. 지금 현실속에 일어나고 있어요. 그것이 이 세상에 모습입니다. 이런 세상을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아들을 죽여버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되겠느냐 당연히 불로 심판하고, 싹 쓸어 버려야 되는데 "
그런데 하나님 그러지는 마십시오." 그럼 어떻게 하라는건가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욕을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이 세상을 하나님꼐서는 바라보고만 계셔야 하느냐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악한 농부같은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시겠느냐 정말로 불로 쓸어버려야 될 이 인생들을 향해서 쓸어 버리지 아니하고 , 심판하지 아니하고, 죽이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미움이실까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죽이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이 썩어가는 세상을 향해서 사랑할 수밖에 없고 불쌍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는 두 가지 에요. 하나는 십자가에서 이 인생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악하다 하는 것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얼마나 무지했으면 하나님을 죽입니까 여러분은 죽이시겠습니까 이제는 알기때문에 절대 안하지요.
그런데 그때는 몰랐거든요. 그리고 얼마나 악하면선하신 예수님을 죽입니까
그런데 또한 그 십자가는 이렇게 자기를 거스리고 예수를 죽이고 하나님을 죽이는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손가락도 안대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뭡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향해서 찌름과 못 박힘을 당하시면서 가만히 그대로 못 박힘을 당하는 하나님의 마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찢어지는 사랑이고, 피를 흘리는 사랑입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럽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좀 알죠.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할려니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천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고 상합니까 1948년 10월 21일에 여수에서 반란 사건이 났습니다. 이때 여수 애향원에 계신 손양호 목사님 아들이 둘인데 이 두 아들을 "안재선"이란 학생이 반란군에 가담해 가지고 죽였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예수 믿는게 싫어서. 그리고 그 반란이 진압이 된 다음에 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총살하게 됐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손 목사님이 가서 탄원을 해서 석방시켰습니다. 석방된 이 원수를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손 재선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뭡니까 그럴 수 있느냐는 거죠. 억지로 한 것일까요 그냥 목사라고 경건한 척 한 것일까요 아니면 진정으로 그랬을까요 진정으로 했다면 얼마나 가슴아픈 사랑일까 얼마나 처절하게 쓰라리고 쓰라린 사랑일까 친아들을 죽인 사람을 아들로 받아 드려야 되는 그 심정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네 가지 큰사랑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세상을 가만 바라만 봐도 크나큰 사랑인데 거기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이 십자가에 피흘려 죽어가는 아들에게 네 가지 큰사랑을 주었습니다.
(1). 죽어가는 예수님에게 우리들의 죄를 다 짊어 주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을 보라" 저의 모든 죄를 전부 다털어서 예수 위에다 지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죄를 . 왜요 내 죄가 없어져야 우리가 사니까요!
그런데 그 죄를 어떻게 없앱니까 법적인 일이에요. 내 모든 죄를 다 들어서 예수님에게 지우고 그 죄를 지고 그 죄값으로 죽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내 죄가 없어진 겁니다. 그것을 "속죄"라고 그럽니다.
(2).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 저주에서 해방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저주가 무엇입니까 저주란 참 싫은 것인데 내게서 저주란 바로 내가 지은 죄를 내 아들.딸들이 반복해서 지으면 그것은 내게는 저주입니다. 견딜 수 없는 저주입니다.
그런데 거짓말하고, 욕심도 부리고, 싸우는 것은 누구나 짖는 보통 죄니까 할 수 없고 그것 말고 죄 중에서 내가 특별히 짖는 술주정뱅이라든지, 노름 한다던지, 바람 피고 혈기 부린다든지 두들겨 패고 물건을 부수는 것을 여러분 아들.딸들이 그대로 반복하면 어떻겠어요 그건 견디기 어려운 저주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아 그 저주에서 건져 주셨구나!" 그것을 깨닫고 보니까 내가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고, 싫어하는 그 끔직한 죄를 자녀들이 반복하지 안해요.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여러분 자녀들에게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아서 죄가 유전이 안되도록 죄를 끊어 버립니다. 내 아들.딸들에게는 더 이상 저주 안 받도록 예수님이 그렇게 나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3).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인해서 마귀가 없어져 버립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마귀가 나에게 더 이상 역사하지 못하도록 했다." 마귀는 파괴자입니다. 나는 더 이상 파괴당하지 않는다. 사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4). 예수님이 죽음으로 끝났으면 예수님도 평범한 인생이죠.
그런데 죽으심으로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살아나셨습니다.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므로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예수님처럼 십자가 지고 사랑과 섬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외에 특별히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 영혼 속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을 알게 됐고, 예수님을 알게 됐고, 십자가를 알게 됐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이거야말로 나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여러분 어떻게 예수 믿게 됐어요 하나님이 안 돌아보셨으면 우리는 이전과 똑같이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도 모르고 십자가가 뭔지 모르고 지금도 살 것 아닙니까 놀랍고 기막힌 일이 내게 이루어졌구나! 그리고 이것이 시작이에요. 이렇게 내 안에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 사람됨이나, 그릇됨이나, 조건이나 상황은 꿈에도 꿀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은혜 안에 사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더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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