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동전 (눅21:1-4)
본문
과부라고 하면, 성경에서 상당히 동정을 받는 대상으로 지목을 받습니다. 현대와 달라서 과거의 사회보장 제도가 되어 있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가족 중심의 생활을 하던 시대의 과부는 여러가지면에서 가난한 자였고, 고독한자였습니다. 우리가 읽은 21장 바로 앞의 47절에 보아도 불쌍한 과부의 재산을 삼키는 국가의 지도자들, 종교지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과부는 돈을 쥐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다 빼앗기고 착취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3일 전에 그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과 함께 긴장된 토론을 벌이다가 잠간 틈을 내어서,예루살렘 성전 여인의 광장 옆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어기에는 13개의 헌금통이 놓여있습니다. 성전비용을 위해서,제사하는데 쓰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각자 마음대로 헌금을 하게 되어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헌금하는 모습을 주님이 지금 보고 계십니다. 어떤 과부하나가 왔습니다. 조용히 동전을 헌금함에 떨어 뜨리고 갑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주변에 있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더니, [야, 이 과부야말로 지금까지 헌금한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가진것,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격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과부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헌금통에 넣는 돈이 동전 두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가 이 동전에 대해서는 너무 예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렙돈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10원짜리 동전,100원짜리 동전 하는 단위입니다. 한 200원이나,500원짜리라고 치더라도 1000원 정도의 헌금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이 아셨을까요 그가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주님은 아십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고, 또 저희 생각을 아시고]하는 말씀을 자주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지만,그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사람의 동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판단을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주님은 잘 아십니다. 이런의미에서 헌금은 공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거지요. 사람이 알 필요가 있나요 우리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내 처지와 내 신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의 액수와 그 액수가 지니는 가치를 주님이 정확하게 아시는 데, 사람에게 자랑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하는 헌금은 대단히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인간의 눈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과부의 동전 두개가 특별히 예수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저는 대단히 중요한 말 한마디를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헌금이었습니다.] 오늘 이 한마디를 마음에 담고 돌아가세요. 마음 깊은 곳에 새겨 두세요. 이 과부의 엽전 두잎은 액수로 보아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것 전부를 넣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의 눈빛은 빛이 났습니다. 감격하셨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가끔있어요. 솔로몬은 어린 임금입니다. 왕이 되었지만 잘 모릅니다. 한번은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솔로몬아, 내가 무엇을 주랴 원하는 대로 이루어 줄 것이다.] 솔로몬이 [하나님! 부족한 어린아이에게 다스리라고 준 백성은 심히 많은데,종은 아직 어립니다. 이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공의롭게 잘 다스리고 지혜롭게 다스릴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요] 이 한마디의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야, 너 솔로몬아, 부귀를 달라고도 안하는구나. 장수하고 싶다고도 안하는구나. 원수들을 다 정복하게 해 달라고도 안하는구나. 지혜를 구해 내가 너의 기도를 다 들어 주마. 과거에도 후에도 너와같이 지혜로운 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지헤를 주마. 동시에 네가 구하지 아니한 것도 내가 다 주마] 솔로몬은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특별히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감동시킨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인이 아팠습니다. 자기의 친구들을 보냈습니다. [예수님 오셔서 좀 고쳐 주세요]
그런데 자기 친구들을 보낸 다음에 생각해 보니까 [이것은 건방진 일이다. 나같은 놈이 앉아서 예수님을 부르다니. 내가 대대장인데, 내가 부하를 부르고 명령만 하면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가는 데, 예수님은 나에게 비하면,어떤 분이냐 소문에 들으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런 분을 내가 오라가라 할 수 있느냐 ]그래서 몸소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말합니다.[예수님 오시지 마세요.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내 하인이 났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자기를 따라 오는 무리들을 바라 보시면서, [내가 이스라엘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노라] 주님의 마음이 감격했어요. 오늘 이 과부는 엽전 두닢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장본인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동전 두닢에 주님이 감동된다는 말은 우리 하나님도 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허락하시는데 있어서는 무한대로 관용하시는 분으로 알고, 그저 눈 감으면 주여, 내 집,내 건강,자식들,우리 집 사업., 다 달라고 염치없이 이야기 다 합니다. 눈물흘리면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해요. 이와같은 기도를 좋아해요.
그런데 달라는대로 주시는 분인 줄은 알고 있는데, 동시에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 몰라요. 그래서 갑자기 하나님이 [네 가진 것을 나를 달라] 할 때는 얼굴 빛이 싹 달라집니다. 아니, 하나님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우리 하나님은 부잡니다.온 우주가 자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십니다. 못하실 일이 없어요. 그러나 보세요.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고 싶으신 일이 너무나 많으신 분입니다. 가난한 자를 볼 때 도와주고 싶고, 예수 안 믿고 지옥으로 가는 자를 볼 때 구원하고 싶고, 전쟁이 들끓는 곳에 평화를 주고 싶고, 고통이 들끓는 곳에 생명수를 부어 주고 싶고,하나님이 이 땅을 향해서 하고 싶은 일이 무한히 많지만, 자기의 부요나 자기의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 가지고 이 일들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마음을 다하고,정성을 다해서 자기에게 드리는 자녀들의 조그만한 헌금, 조그만한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이점이 하나님의 특이한 점입니다. 남자만 천명이 점심을 굶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온 우주의 주권을 쥐고 계시는 분이요, 널려 있는 돌들을 가지고,떡을 만들수 있는 능력자지만, 기다렸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렸느냐! 어린아이가 자기가 먹겠다고 꼭 움켜 쥐고 있던 떡 다섯덩어리와 물고기 두마리를 내 놓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정성어린 조그마한 빵덩어리와 고기 두마리가 주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것이 드디어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자, 놀라운 이적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오천명-여자 아이들까지 만여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을 정도로 우리 주님은 풍성하게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감동시키는 예물을 주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달라고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 과부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충족시켜 드리고, 감동을 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과부의 엽전 두잎이 가지는 특별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 희생적인 험금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가진 것 전부를 바쳤으니 희생 아닙니까 생활비 전부를 드렸으니 희생 아닙니까 희생이라는 것은 자기가 손해를 본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상처를 입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니 희생의 헌금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고통 당할 때에, 마게도냐에 있는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헌금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그들의 헌금을 일컬어서 고리도후서 8:3절에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조금 넘어가서 보면,[너희 자신을 주께 드렸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힘에 지나도록 헌금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린것! 제단에다가 자기 몸을 얹어 놓고 불에 태워 버렸다]것과 같은 의밉니다. 이 두마디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희생적인 헌금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감동시키는데도 희생이 없으면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도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버지가 부도가 났어. 어린아이가 잠결에 엄마-아빠가 괴로워 하는 모습을 훔쳐보고는 그 다음날 자기 통장에 있는 몇천원 밖에 안되는 돈을 고사리 같은 손에 가져와서 [아빠,이것 가지고 빌려온 돈을 갚아!]라고 말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로서는 희생입니다. 희생이 없는 곳에 감동이라는 것은 있을수가 없습니다. 과부의 동전 두잎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원인은 그 동전 두잎이 과부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희생이 있었기에 주님에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오! 하나님께서 이와같은 헌금을 얼마나 원하시는가 나를 위해, 가난해지신 주님이시여! 그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피 한방울까지도 남기지 않고,나같은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방울방울 다 흘려 주신 주님, 그 주님을 감격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내가 가진 생활비 전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나의 젊음! 나의 생명! 나의 생애도 주를 위해 바치겠습니다.하는 것이 참다운 크리스챤의 마음입니다. 주님을 감동할수 있게 한다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뿌듯하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아끼지 않고 드릴수 있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녑니다. 과부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삼례라는 곳에 교회가 하나 아담하게 지어져 있습니다.교회 건축을 하다가 재정이 모자라서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짓다가 만 교회를 보고 빈정거렸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서 교회하나 못짓나! 기도하면 다 받는다는데 그것도 구해서 얻지 못하나!]하고 핍박입니다. 문형일이라고 하는 그 교회의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에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짓다만 교회당에서 날마다 기도하는 중에 신문 조각을 통해서 전주예수 병원에서 눈을 사겠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눈은 하나만 있어도 괜챦아. 내 눈 하나를 팔아서라고 이 교회를 건축할수 있다면 이 눈을 당연히 팔아야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물론 아내도 신앙이 좋았겠죠. 그러나 남편이 병신되는 것 싫어서-적극적으로 만류하면서 반대했지만, 듣지 않고 예수 병원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그 당시에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눈을 팔겠다고 하니까 원장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아까운 눈을 팔려고 하느냐] [교회를 지으려고 그럽니다.] 원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습니다. [당신 그 눈을 내가 산 것이나 다름 없으니, 그 눈을 뽑지 않겠어! 그 대신 내가 눈 값만큼 헌금 하리다] 그리고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미국에 있는 교회의 잡지에다가 투고를 해서, 그 잡지의 기사를 보는 사람들마다 감동하고 헌금을 보내서 그 교회를 완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의 갸륵한 정성,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 놀라운 정성을 보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튼튼하게 서게 되었고, 자녀들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전부 유학을 떠나게 되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으로 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축복 우리는 이미 압니다. 어떤 것인지 압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은 반드시 큰 축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신령한 법칙이요, 신앙의 원리입니다. 제 생각에는 과부가 헌금을 할 때에 동전 하나쯤은 남길수 있지 않았을까요 생활비를 남기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에요, 잘못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과부는 무모할 정도로 전부를 다 주어 버렸을까요 제가 볼 때에는 과부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아마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에는 도둑도 없고, 좀과 동록도 없느니라] 과부는 아마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마음 놓고 물질 하나 둘 곳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 쌓아 두라고 했으니, 내가 쌓아 두어야 하겠다. 하늘에 쌓아 두는 방법은 흩어서 쓰는 것입니다. 선한 사업에 쓰는 것입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요즈음에 고민거리 하나가 있다면 마음 놓고 돈을 맡겨둘 만한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은행도 맡겨둘 만한 신용이 없어요. 친구도 믿을수 없고, 어떤 회사도 믿고 그 회사의 주식을 사 놓을 수도 없어요, 조금 불경기가 닥치니까 허무하게 넘어지는 것을 보잖아요. 도둑이 많아요!-단번에 떼이고 잃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좀과 동록이 슬어요.-살금살금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돈 한푼 벌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얼마나 애를 씁니까 하루 종일 머리 아플 정도로 이리뛰고 저리 뛰어야 돈을 벌지 않습니까 사람이 이마에 땀이 흐르지 않으면 먹고 마실 것이 없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죄악의 결과인데,,,,;누구나 땀흘려 일해야 합니다. 이처럼 땀흘려 번 돈이니 얼마나 가치가 있어요! 얼마나 보람된 돈입니까
그렇다면 바로 써야지요. 내가 이렇게 내 삶, 내 인격,건강 전부를 바쳐서 번 돈이라고 한다면 바로 써야지요. 바로 쓰는 비결은 하나님의 영광과 선한 사업 위해 투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흩어서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쓰는 것이요,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서 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너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많이 쌓아 두었다. 하늘 나라 은헁에 많이 저축해 놓았다. 자 와서 보라! 네가 흩어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쓰고, 흩어서 주의 선한 사업에 투자한 모든 것이 여기에 다 와 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이라도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터진다면, 여러분 은행통장 가지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휴지조각입니다. 어디가서 돈 찮을 것입니까 자녀들에게 돈을 많이 유산으로 남겨 놓고 떠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녀들에게 돈 안겨 주고 가면, 귀한 줄 모르고 이것쓰고,저것 쓰고 다 쓰고 나서 나중에는 돈쓰는 재주 밖에 모르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 가지고 죽은 부모를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부모가 우리에게 돈 만 안겨 주었기 때문에 돈 맛 밖에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날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바로 쓰세요. 이것이 천국의 경제이론입니다.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아마 과부가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녔다고 한다면 이런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주라! 흩어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 아마 이 과부는 이런 말씀을 기억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나라와 선한 사업을 위해서 귀한 돈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은 내세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받을 축복만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되박으로 드리면, 말로 섬으로 주시고, 그것으로도 차지 않아서 흔들고,누르고,넘치도록해서 들고 가기가 곤란하여 안겨 준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런 축복을 받을 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 선심을 쓴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거지가 아닙니다. 선심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는 적당한 것을 가지고,관용한 것처럼 표하는 것입니다. 선심은 돈의 액수를 가지고 그 가치를 평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희생적인 헌금은 희생적인 것이기 때문에 액수를 가지고 따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헌금이 가진 질을 가지고 가치를 측정합니다.
그러므로 과부의 두 엽전은 부자들이 내는 수백만원,수억원 보다도 더 큰 값을 지녔습니다. 여러분,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힘껏한다고 재산을 내 놓고도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는 고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불쾌한 생각을 갖게 하고, 나중에는 화를 불러 들이는 일도 가끔 있어요. 이것은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 원하는 헌금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헌금을 요청할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기 위해서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동차 때문에 헌금을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계획이 있고, 신중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겔로퍼 차를 구입하고,800만원의 할부금 10개월치가 밀려있습니다. 저는 차를 없애 버리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들이 만류하고, 저도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결정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내 생각을 젖혀 놓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재무부장,권사님들과 의논한 후에 우리가 믿음과 정성을 드려서 헌금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확신하기를 우리 성도들 중에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시킬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남을 보지 마시고, 누구의 책임을 따지지 마시고, 누가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희생적인 헌금을 드리겠다는 심정으로 주의 일에 정성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사람은 누굽니까 누가 우리 주님의 목소리를 감격에 떨게 하시겠습니까 누가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겠습니까 10개월동안 옷을 덜 해 입고, 좀 허리띠를 졸라매서 쓸 것을 안쓰고, 하나님께 드리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킬수 있다면 우리가 주저할 이유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과부는 돈을 쥐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다 빼앗기고 착취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3일 전에 그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과 함께 긴장된 토론을 벌이다가 잠간 틈을 내어서,예루살렘 성전 여인의 광장 옆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어기에는 13개의 헌금통이 놓여있습니다. 성전비용을 위해서,제사하는데 쓰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각자 마음대로 헌금을 하게 되어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헌금하는 모습을 주님이 지금 보고 계십니다. 어떤 과부하나가 왔습니다. 조용히 동전을 헌금함에 떨어 뜨리고 갑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주변에 있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더니, [야, 이 과부야말로 지금까지 헌금한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가진것,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격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과부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헌금통에 넣는 돈이 동전 두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가 이 동전에 대해서는 너무 예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렙돈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10원짜리 동전,100원짜리 동전 하는 단위입니다. 한 200원이나,500원짜리라고 치더라도 1000원 정도의 헌금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이 아셨을까요 그가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주님은 아십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고, 또 저희 생각을 아시고]하는 말씀을 자주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지만,그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사람의 동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판단을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주님은 잘 아십니다. 이런의미에서 헌금은 공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거지요. 사람이 알 필요가 있나요 우리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내 처지와 내 신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의 액수와 그 액수가 지니는 가치를 주님이 정확하게 아시는 데, 사람에게 자랑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하는 헌금은 대단히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인간의 눈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과부의 동전 두개가 특별히 예수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저는 대단히 중요한 말 한마디를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헌금이었습니다.] 오늘 이 한마디를 마음에 담고 돌아가세요. 마음 깊은 곳에 새겨 두세요. 이 과부의 엽전 두잎은 액수로 보아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것 전부를 넣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의 눈빛은 빛이 났습니다. 감격하셨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가끔있어요. 솔로몬은 어린 임금입니다. 왕이 되었지만 잘 모릅니다. 한번은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솔로몬아, 내가 무엇을 주랴 원하는 대로 이루어 줄 것이다.] 솔로몬이 [하나님! 부족한 어린아이에게 다스리라고 준 백성은 심히 많은데,종은 아직 어립니다. 이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공의롭게 잘 다스리고 지혜롭게 다스릴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요] 이 한마디의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야, 너 솔로몬아, 부귀를 달라고도 안하는구나. 장수하고 싶다고도 안하는구나. 원수들을 다 정복하게 해 달라고도 안하는구나. 지혜를 구해 내가 너의 기도를 다 들어 주마. 과거에도 후에도 너와같이 지혜로운 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지헤를 주마. 동시에 네가 구하지 아니한 것도 내가 다 주마] 솔로몬은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특별히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감동시킨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인이 아팠습니다. 자기의 친구들을 보냈습니다. [예수님 오셔서 좀 고쳐 주세요]
그런데 자기 친구들을 보낸 다음에 생각해 보니까 [이것은 건방진 일이다. 나같은 놈이 앉아서 예수님을 부르다니. 내가 대대장인데, 내가 부하를 부르고 명령만 하면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가는 데, 예수님은 나에게 비하면,어떤 분이냐 소문에 들으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런 분을 내가 오라가라 할 수 있느냐 ]그래서 몸소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말합니다.[예수님 오시지 마세요.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내 하인이 났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자기를 따라 오는 무리들을 바라 보시면서, [내가 이스라엘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노라] 주님의 마음이 감격했어요. 오늘 이 과부는 엽전 두닢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장본인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동전 두닢에 주님이 감동된다는 말은 우리 하나님도 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허락하시는데 있어서는 무한대로 관용하시는 분으로 알고, 그저 눈 감으면 주여, 내 집,내 건강,자식들,우리 집 사업., 다 달라고 염치없이 이야기 다 합니다. 눈물흘리면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해요. 이와같은 기도를 좋아해요.
그런데 달라는대로 주시는 분인 줄은 알고 있는데, 동시에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 몰라요. 그래서 갑자기 하나님이 [네 가진 것을 나를 달라] 할 때는 얼굴 빛이 싹 달라집니다. 아니, 하나님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우리 하나님은 부잡니다.온 우주가 자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십니다. 못하실 일이 없어요. 그러나 보세요.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고 싶으신 일이 너무나 많으신 분입니다. 가난한 자를 볼 때 도와주고 싶고, 예수 안 믿고 지옥으로 가는 자를 볼 때 구원하고 싶고, 전쟁이 들끓는 곳에 평화를 주고 싶고, 고통이 들끓는 곳에 생명수를 부어 주고 싶고,하나님이 이 땅을 향해서 하고 싶은 일이 무한히 많지만, 자기의 부요나 자기의 능력을 함부로 사용해 가지고 이 일들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마음을 다하고,정성을 다해서 자기에게 드리는 자녀들의 조그만한 헌금, 조그만한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이점이 하나님의 특이한 점입니다. 남자만 천명이 점심을 굶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온 우주의 주권을 쥐고 계시는 분이요, 널려 있는 돌들을 가지고,떡을 만들수 있는 능력자지만, 기다렸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렸느냐! 어린아이가 자기가 먹겠다고 꼭 움켜 쥐고 있던 떡 다섯덩어리와 물고기 두마리를 내 놓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정성어린 조그마한 빵덩어리와 고기 두마리가 주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것이 드디어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자, 놀라운 이적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오천명-여자 아이들까지 만여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을 정도로 우리 주님은 풍성하게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감동시키는 예물을 주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달라고 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 과부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충족시켜 드리고, 감동을 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과부의 엽전 두잎이 가지는 특별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 희생적인 험금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가진 것 전부를 바쳤으니 희생 아닙니까 생활비 전부를 드렸으니 희생 아닙니까 희생이라는 것은 자기가 손해를 본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상처를 입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니 희생의 헌금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고통 당할 때에, 마게도냐에 있는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헌금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그들의 헌금을 일컬어서 고리도후서 8:3절에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조금 넘어가서 보면,[너희 자신을 주께 드렸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힘에 지나도록 헌금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린것! 제단에다가 자기 몸을 얹어 놓고 불에 태워 버렸다]것과 같은 의밉니다. 이 두마디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희생적인 헌금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감동시키는데도 희생이 없으면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도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버지가 부도가 났어. 어린아이가 잠결에 엄마-아빠가 괴로워 하는 모습을 훔쳐보고는 그 다음날 자기 통장에 있는 몇천원 밖에 안되는 돈을 고사리 같은 손에 가져와서 [아빠,이것 가지고 빌려온 돈을 갚아!]라고 말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로서는 희생입니다. 희생이 없는 곳에 감동이라는 것은 있을수가 없습니다. 과부의 동전 두잎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원인은 그 동전 두잎이 과부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희생이 있었기에 주님에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오! 하나님께서 이와같은 헌금을 얼마나 원하시는가 나를 위해, 가난해지신 주님이시여! 그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피 한방울까지도 남기지 않고,나같은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방울방울 다 흘려 주신 주님, 그 주님을 감격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내가 가진 생활비 전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나의 젊음! 나의 생명! 나의 생애도 주를 위해 바치겠습니다.하는 것이 참다운 크리스챤의 마음입니다. 주님을 감동할수 있게 한다면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뿌듯하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아끼지 않고 드릴수 있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녑니다. 과부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삼례라는 곳에 교회가 하나 아담하게 지어져 있습니다.교회 건축을 하다가 재정이 모자라서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짓다가 만 교회를 보고 빈정거렸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서 교회하나 못짓나! 기도하면 다 받는다는데 그것도 구해서 얻지 못하나!]하고 핍박입니다. 문형일이라고 하는 그 교회의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에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짓다만 교회당에서 날마다 기도하는 중에 신문 조각을 통해서 전주예수 병원에서 눈을 사겠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눈은 하나만 있어도 괜챦아. 내 눈 하나를 팔아서라고 이 교회를 건축할수 있다면 이 눈을 당연히 팔아야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물론 아내도 신앙이 좋았겠죠. 그러나 남편이 병신되는 것 싫어서-적극적으로 만류하면서 반대했지만, 듣지 않고 예수 병원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그 당시에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눈을 팔겠다고 하니까 원장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아까운 눈을 팔려고 하느냐] [교회를 지으려고 그럽니다.] 원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습니다. [당신 그 눈을 내가 산 것이나 다름 없으니, 그 눈을 뽑지 않겠어! 그 대신 내가 눈 값만큼 헌금 하리다] 그리고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미국에 있는 교회의 잡지에다가 투고를 해서, 그 잡지의 기사를 보는 사람들마다 감동하고 헌금을 보내서 그 교회를 완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의 갸륵한 정성,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 놀라운 정성을 보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튼튼하게 서게 되었고, 자녀들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전부 유학을 떠나게 되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으로 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축복 우리는 이미 압니다. 어떤 것인지 압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은 반드시 큰 축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신령한 법칙이요, 신앙의 원리입니다. 제 생각에는 과부가 헌금을 할 때에 동전 하나쯤은 남길수 있지 않았을까요 생활비를 남기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에요, 잘못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과부는 무모할 정도로 전부를 다 주어 버렸을까요 제가 볼 때에는 과부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아마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에는 도둑도 없고, 좀과 동록도 없느니라] 과부는 아마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마음 놓고 물질 하나 둘 곳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 쌓아 두라고 했으니, 내가 쌓아 두어야 하겠다. 하늘에 쌓아 두는 방법은 흩어서 쓰는 것입니다. 선한 사업에 쓰는 것입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요즈음에 고민거리 하나가 있다면 마음 놓고 돈을 맡겨둘 만한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은행도 맡겨둘 만한 신용이 없어요. 친구도 믿을수 없고, 어떤 회사도 믿고 그 회사의 주식을 사 놓을 수도 없어요, 조금 불경기가 닥치니까 허무하게 넘어지는 것을 보잖아요. 도둑이 많아요!-단번에 떼이고 잃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좀과 동록이 슬어요.-살금살금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돈 한푼 벌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얼마나 애를 씁니까 하루 종일 머리 아플 정도로 이리뛰고 저리 뛰어야 돈을 벌지 않습니까 사람이 이마에 땀이 흐르지 않으면 먹고 마실 것이 없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죄악의 결과인데,,,,;누구나 땀흘려 일해야 합니다. 이처럼 땀흘려 번 돈이니 얼마나 가치가 있어요! 얼마나 보람된 돈입니까
그렇다면 바로 써야지요. 내가 이렇게 내 삶, 내 인격,건강 전부를 바쳐서 번 돈이라고 한다면 바로 써야지요. 바로 쓰는 비결은 하나님의 영광과 선한 사업 위해 투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흩어서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쓰는 것이요,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서 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너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많이 쌓아 두었다. 하늘 나라 은헁에 많이 저축해 놓았다. 자 와서 보라! 네가 흩어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쓰고, 흩어서 주의 선한 사업에 투자한 모든 것이 여기에 다 와 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이라도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터진다면, 여러분 은행통장 가지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휴지조각입니다. 어디가서 돈 찮을 것입니까 자녀들에게 돈을 많이 유산으로 남겨 놓고 떠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녀들에게 돈 안겨 주고 가면, 귀한 줄 모르고 이것쓰고,저것 쓰고 다 쓰고 나서 나중에는 돈쓰는 재주 밖에 모르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 가지고 죽은 부모를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부모가 우리에게 돈 만 안겨 주었기 때문에 돈 맛 밖에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날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바로 쓰세요. 이것이 천국의 경제이론입니다.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아마 과부가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녔다고 한다면 이런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주라! 흩어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 아마 이 과부는 이런 말씀을 기억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나라와 선한 사업을 위해서 귀한 돈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은 내세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받을 축복만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되박으로 드리면, 말로 섬으로 주시고, 그것으로도 차지 않아서 흔들고,누르고,넘치도록해서 들고 가기가 곤란하여 안겨 준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런 축복을 받을 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 선심을 쓴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거지가 아닙니다. 선심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는 적당한 것을 가지고,관용한 것처럼 표하는 것입니다. 선심은 돈의 액수를 가지고 그 가치를 평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희생적인 헌금은 희생적인 것이기 때문에 액수를 가지고 따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헌금이 가진 질을 가지고 가치를 측정합니다.
그러므로 과부의 두 엽전은 부자들이 내는 수백만원,수억원 보다도 더 큰 값을 지녔습니다. 여러분,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힘껏한다고 재산을 내 놓고도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는 고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불쾌한 생각을 갖게 하고, 나중에는 화를 불러 들이는 일도 가끔 있어요. 이것은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 원하는 헌금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헌금을 요청할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기 위해서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동차 때문에 헌금을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계획이 있고, 신중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겔로퍼 차를 구입하고,800만원의 할부금 10개월치가 밀려있습니다. 저는 차를 없애 버리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들이 만류하고, 저도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결정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내 생각을 젖혀 놓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재무부장,권사님들과 의논한 후에 우리가 믿음과 정성을 드려서 헌금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확신하기를 우리 성도들 중에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시킬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남을 보지 마시고, 누구의 책임을 따지지 마시고, 누가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희생적인 헌금을 드리겠다는 심정으로 주의 일에 정성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사람은 누굽니까 누가 우리 주님의 목소리를 감격에 떨게 하시겠습니까 누가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겠습니까 10개월동안 옷을 덜 해 입고, 좀 허리띠를 졸라매서 쓸 것을 안쓰고, 하나님께 드리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킬수 있다면 우리가 주저할 이유가 어디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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