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못오시는 이유 (눅2:1-7)
본문
I. 2,000년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때, 이 땅에는 큰 역사들이 일어 났읍니다. 인류의 역사가 가장 큰 사건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바로 그 사건이며, 그 때 이 땅에 가장 큰 역사들이 일어 났습니다. 우주 쑈가 벌어졌습니다.(마2:1-12) 동방 박사들이 쓸쓸하고, 추운 겨울 밤에 황량한 들에서 별을 연구하는 데, 갑자기 하늘에 찬란한 별이 나타났습니다. 그 별들은 그들을 인도하여,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데려다 주었읍니다. 그 박사들은 별을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크게 기뻐했다"는 말씀은 기쁨이 충만했다는 말씀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인 성탄은 이 땅에 있는 지성인들에 큰 기쁨을 자져 다 주었습니다. 이 동방의 박사들은 천문학자들이였습니다. 별을 연구하는 자들이였읍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다 고히 잠든 밤에 깨어서 일을 해 야 했습니다. 집에서 하지 못하고, 언제나 빈들이나, 산에 올라가서 해 야 했습니다. 이 것은 이 땅에 있는 지성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지성인들은 언제나 목말라 있습니다. 저들의 마음은 언제나 텅비어 있고, 어둡기만 합니다. 저들의 마음은 언제나 삭막한 사막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으 탄생은 그런 그들의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게 했읍니다. 그들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렇게 목말라 있고, 기쁨을 몰라하던 인간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눅2:10) 들에서 춥고 고된 생활을 하던 목자들에게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눅2:8-14) 목자들은 그날 밤도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양을 치느라고 추 운 들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천사들은 이 목자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목자는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던 직업이였습니다. 그 들은 유목민이라, 양을 치는 목자들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있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충만하게 해준다는 말씀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지성인들 에게만 기쁨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고달프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게도 기쁨을 충만하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늘과 온 땅에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로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건이였읍니다. 하늘 나라의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사건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평화의 기쁜 소식이였읍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인 성탄은 이렇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평하를 가져다 줍니다. 쓸쓸한자, 괴로운자, 슬픈자, 문제소에서 고통을 당하는자, 병든자, 소외된자, 이 모든 자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수산 베스트(Susan M. Best)가 이 성탄의 감격을 생각하면서"성탄의 꿈" (The Miracle Dreams)이란 시를 썼습니다. 유대 하늘에 신비의 별이 그의 빛을 비치는 그날 밤에, 한 소경이 잠속에서 꿈을 꾸었네 그리고 그가 보게 되는 꿈을. 목자들이 하늘의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은 그날 밤에 귀머거리가 깊은 잠속에서 꿈을 꾸었네, 그리고 그가 듣게 되는 꿈을. 말구유에서 엄마와 어린 아이가 서로 밀착하여 잠을 자고 있는 그 날 밤에 불구자가 그의 사지를 펴지고 그리고 온전해 지는 꿈을 꾸었네. 갓 태어난 어린 아이 위에 사랑하는 마리아가 구푸려 볼를 비비는 그 날 밤에 흉칙한 문둥이가 꿈속에서 미소를 지었네 그리고 그가 깨끗해 지는 꿈을 꾸었네. 어린 왕이 그의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빠는 그 날 밤에 창녀가 해복한 잠을 이루었네 그리고 그녀가 순결해지는 꿈을 꾸었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거룩한 자가 말구유에 누워 있는 그날 밤에 죽음의 잠에서 감동되었네 그리고 거기에는 무덤이 없는 꿈을 꾸었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이렇게 이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소망과 위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도 2,000년전과 똑같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리고 이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찾아가는 곳마다,
2,000년전 첫탄생 때와 똑같은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경제위기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에는 아기 예수님이 꼭 오 셔야만 합니다. 그 예수님이 오시면, 이 땅에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모든 자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 "온 백성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찾아오셔도 소용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에 나타난 유대 베들레헴의 사관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베들레헴의 사관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곳입니다. 성탄의 놀라운 역 사의 가장 중심지입니다. 하늘의 기쁨, 축복, 위로, 평화가 가장 먼저 나 타난 곳입니다. 베들레헴의 그 사관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축복의 중 심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관에 방마다 사람들로 가득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있었지 만, 그들에게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아기 예수님이오신 것으로 인하여 은혜를 받거나, 축복을 받거나, 변화된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곳에는 아기 예수님이 오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 예수님은 그런 곳에는 오시지 않습니다. 아니 가셔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에 안 오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시간 아기 예수가 오셔도 아무 소용이 없는 곳,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찾아 오시지 않는 곳은 어떤 곳인가를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한 사관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방마다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있을 방이 없었습니다.(There was no room for Him) 예수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말구유 밖에 없었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도 계실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작년에도, 그작년에도, 매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다른 것으로 가득차 있어서 예수님이 계실 곳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잘 될때는 먹고 마시느라고, 정신이없었습니다. 나라가 잘 안될 때는 바쁘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도 가실 곳 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는 이 땅에 오시지를 않습니다. 가도 있을 곳이 없는데, 무엇하러 그곳에 또 가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많은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도 계실 방이 없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뉴욕 타임즈 토픽스란에 실려 있었다. 켈리포니아 의 한 사나이는 쓰레기 수집이 취미다. 남이 버린 것들을 10년간 주어 모 았는데집안은 쓰레기로 가득찼다. 이것은 소방법 위반이어서 결국 동네 사람들이 두 추럭이나 되는 쓰레기들을 내다버렸다. 오랜만에 깨끗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나이는 그 다음 날부터 다시 쓰레기 수집을 시작했 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도, 쓸데 없는 쓰레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 다가 보니 가장 귀한 예수님이 계실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생각, 더러운 생각, 놀 생각, 이기적인 생각, 원한, 등등 수 많은 잡동사니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차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산 타크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 주는 선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망년회 할 생각으 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진정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와 소망을 가져다 주시는 예수님이 찾아 오시 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마음을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오십니다. 아일랜드 북쪽에 볼리메나(Ballymena)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천주교인이 몇 명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독교 에 대하여 아주 적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기독교인인 부인이 자기 작은 집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그래서 자기 옆집에 사는 천주교 교인인 부인에게 "내일 우리 집 에서 집회를 하니 오시지 않겠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 천주교인은 "가지 않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 집회가 있는 후에 천주교 부인은 옆집에서 있었던 집회의 결과가 궁 금했다. 그래서 "어제 집회를 잘 마쳤느냐 "고 물었다. 그 부인은 "참으로 놀라운 집회였다. 대성공이였다. 35 명이 모였는데, 우리 집에 가득찼다"고 대답을 했다. 그 다음주에도 집회가 그 집에서 있었고, 그 부인은 옆집의 천주교인인 부인을 또 초대했고, 그녀는 오지 않겠다고 대답을 하고, 집회가 끝난 후에는 똑같은 질문을 또했다. 그 부인은 "어제는 51명이 모였다"고 자랑하며 말을 했다. 이제 다음 주에 마지막 3번째 집회가 있다. 그래서 그 부인은 천주교인인 이웃집 부인에게 한번 꼭 와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천주교인은 거 절을 했다. 3번째 집회를 마쳤다. 천주교인인 부인은 몹씨 궁굼해서 그 집회의 결 과에 대해서 물었다. 그 부인은 "참으로 놀아운 집회였다. 대성공이였다. 61명이 모였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천주교인인 부인은 "피"하고 웃으면서 "거짓말 하지 말아요. 그 조그만 집에 어떻게 61명이 들어갈 수 있어요"하고 빈정댔다. 부인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방에 있는 가구며, 모 든 것을 다 밖에 내 놓았다. 그리고 사람이 들어가니 61명이 들어갔다." 고 말을 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우리 삶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구들을 주님을 위하여 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우리 삶속에 들어 올 수 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 주님이 우리 삶속에 찾아 오시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삶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추운 겨울에 연약한 여인이 초산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헛간에 누 워 있습니다. 그 추운 밤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가 구유에 누어 있읍니다. 그 추운데 초산을 하느라고 마리아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겠으며, 해 산의 고통이 끝난 후에는 크 찬 공기에 얼마나 추위가 몰려 왔겠습니까 어머니 배속에서 따듯하게 있다고 이 땅에 태어난 어린 아기 예수님은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형편을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 하 나도 그들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추운 밤에 산모와 갓 태어난 피덩어리가 바깥 헛간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무관심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관은 사랑이 메마른 곳입니가. 인정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수가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그 고생을 하셨으니, 사랑이 없는 이 땅 에 다시 오시고 싶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때 그 고생을 하시고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지금 도 우리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시고, 위로를 주시기 위하여 또 찾아 오십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머니 마리아는 산통를 격느라 땀을 흠뻑흘린 그 몸으로 밖에 추운 곳에 누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갓 태어난 핏덩어리의 몸으로 구유에 누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기 예수님께관심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이 목사 부터 관심이없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들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무관심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수가 없습니다. 마귀 사단은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도 아무런 효과가 없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인간들을 다 무관심속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 나라는 다 지금 무관심의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문학가이며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C.S. Lewis)의 명작 "The screwtape Letters"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악마 (Devil) 가 그의 조카 웜우드 (Wormwood) 를 훈련하는 과정에서 말한다. "나쁜 인간을 만들려고 애쓸 것 없다. 내게 필요한 인간은 오직 남에게 관심없는 인간이란 말이야. 인간으로 하여금 '나는 빼달라'(Include me out!)고 주장하게만 만들면 우리 일은 성공한거야." 이웃과의 문제에 포함되기를 거부하는 이기적 개 인주의는, 인간의 무관심은 악마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이 무관심 때문에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이 땅의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단테가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은 가장 큰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에 남아 있는 자다"고 말을 했다. 우리 인간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이 땅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변 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은 무엇입니까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고 나오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한 목사님이 "무지와 무관심"(Ignorance and Indifference)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했다. 교회에 온 교인 하나가 주보에 나와 있는 "무 지와 무관심"이란 제목을 보고는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뜻 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난 몰라. 나하고는 상관 없어"(I don't know and I don't care)라고 대답을 했다. 이 "난 몰라. 나하고는 상관 없어"하는 사상이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시 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른 때에는 무관심 했다고 하더라도, 이 성탄절 만큼이라도 관심을 가 지고 사랑합시다. 초산을 하느라고 산통을 겪으며, 수 많은 땀을 흘리 고, 힘이 없이 저 추운 헛간에 누워 있는 마리아, 갓 태어난 어리 생명이 이 추운 날씨에 구유에 누워 있는 예수님께 눈을 돌려 관심과 사랑을 보이 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이번에는 놓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이사 아구스도가 모든 로마 사람과 로마가 통치하는 식민지 백성 들은 다 호적을 하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온통 난리였습니다. 명절에 귀성전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온 세상이 복잡하고, 바빴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몰라 보았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깥 구유에 처박아 두고 말았습니다. 너무 바 쁘고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기쁨과 평화와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 일에 너무 바빠서 그 예수님을 바깥에 버려두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는 것은 오셔도,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예수님께 시간을 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이렇게 될 것을 마태복음 22장에서 말씀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금이 왕자의 결혼 맞아 초청장을 냈습니다. 임금이 그 렇게 잔치상을 잘 차리고 사람들을 정중하게 초청했지만, 그들은 "밭에 가 야한다", "사업상 약속이 있어서 못간다"는 핑계를 대고는 오지 않았읍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 일로 너무나 바쁩니다. 하루 24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 낼 시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 찬치, 성경 잔치, 새벽기도 잔치, 성가대 잔치, 교회학교 잔치, 등 각가지 잔치를 베풀어 놓고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예수님께 오지 않습니다. 요즘은 정말로 너무 바빠졌습니다. 미국의 명문 여자 대학인 브린 모 어(Bryn Mawr)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아이 둘을 가진 미국 주부가 청소, 부 엌일, 아이 양육 등 가사에 쓰는 시간이 매주 80 시간이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빨래를 하는데, 70년대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합니다. 지금은 세탁기나 세제가 발달했지만, 옛날에 비해 빨래감이 훨씬 많아지고, 깨끗한 것에 대한 기대 치가 훨씬 높아져 와이셔츠를 날마다 빨개 되므로 주부가 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보다는 남편이나, 자녀가 더 까까워 보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초청에 대해서는 시간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일에 바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_
그러므로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다 고히 잠든 밤에 깨어서 일을 해 야 했습니다. 집에서 하지 못하고, 언제나 빈들이나, 산에 올라가서 해 야 했습니다. 이 것은 이 땅에 있는 지성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지성인들은 언제나 목말라 있습니다. 저들의 마음은 언제나 텅비어 있고, 어둡기만 합니다. 저들의 마음은 언제나 삭막한 사막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으 탄생은 그런 그들의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게 했읍니다. 그들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렇게 목말라 있고, 기쁨을 몰라하던 인간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눅2:10) 들에서 춥고 고된 생활을 하던 목자들에게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눅2:8-14) 목자들은 그날 밤도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양을 치느라고 추 운 들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천사들은 이 목자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목자는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던 직업이였습니다. 그 들은 유목민이라, 양을 치는 목자들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있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충만하게 해준다는 말씀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지성인들 에게만 기쁨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고달프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게도 기쁨을 충만하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늘과 온 땅에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로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건이였읍니다. 하늘 나라의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사건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평화의 기쁜 소식이였읍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인 성탄은 이렇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평하를 가져다 줍니다. 쓸쓸한자, 괴로운자, 슬픈자, 문제소에서 고통을 당하는자, 병든자, 소외된자, 이 모든 자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수산 베스트(Susan M. Best)가 이 성탄의 감격을 생각하면서"성탄의 꿈" (The Miracle Dreams)이란 시를 썼습니다. 유대 하늘에 신비의 별이 그의 빛을 비치는 그날 밤에, 한 소경이 잠속에서 꿈을 꾸었네 그리고 그가 보게 되는 꿈을. 목자들이 하늘의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은 그날 밤에 귀머거리가 깊은 잠속에서 꿈을 꾸었네, 그리고 그가 듣게 되는 꿈을. 말구유에서 엄마와 어린 아이가 서로 밀착하여 잠을 자고 있는 그 날 밤에 불구자가 그의 사지를 펴지고 그리고 온전해 지는 꿈을 꾸었네. 갓 태어난 어린 아이 위에 사랑하는 마리아가 구푸려 볼를 비비는 그 날 밤에 흉칙한 문둥이가 꿈속에서 미소를 지었네 그리고 그가 깨끗해 지는 꿈을 꾸었네. 어린 왕이 그의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빠는 그 날 밤에 창녀가 해복한 잠을 이루었네 그리고 그녀가 순결해지는 꿈을 꾸었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거룩한 자가 말구유에 누워 있는 그날 밤에 죽음의 잠에서 감동되었네 그리고 거기에는 무덤이 없는 꿈을 꾸었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이렇게 이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소망과 위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도 2,000년전과 똑같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 리고 이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찾아가는 곳마다,
2,000년전 첫탄생 때와 똑같은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경제위기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에는 아기 예수님이 꼭 오 셔야만 합니다. 그 예수님이 오시면, 이 땅에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모든 자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 "온 백성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찾아오셔도 소용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에 나타난 유대 베들레헴의 사관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베들레헴의 사관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곳입니다. 성탄의 놀라운 역 사의 가장 중심지입니다. 하늘의 기쁨, 축복, 위로, 평화가 가장 먼저 나 타난 곳입니다. 베들레헴의 그 사관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축복의 중 심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관에 방마다 사람들로 가득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있었지 만, 그들에게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아기 예수님이오신 것으로 인하여 은혜를 받거나, 축복을 받거나, 변화된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곳에는 아기 예수님이 오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 예수님은 그런 곳에는 오시지 않습니다. 아니 가셔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에 안 오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시간 아기 예수가 오셔도 아무 소용이 없는 곳,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찾아 오시지 않는 곳은 어떤 곳인가를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한 사관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방마다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있을 방이 없었습니다.(There was no room for Him) 예수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말구유 밖에 없었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도 계실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작년에도, 그작년에도, 매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다른 것으로 가득차 있어서 예수님이 계실 곳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잘 될때는 먹고 마시느라고, 정신이없었습니다. 나라가 잘 안될 때는 바쁘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도 가실 곳 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는 이 땅에 오시지를 않습니다. 가도 있을 곳이 없는데, 무엇하러 그곳에 또 가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많은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도 계실 방이 없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뉴욕 타임즈 토픽스란에 실려 있었다. 켈리포니아 의 한 사나이는 쓰레기 수집이 취미다. 남이 버린 것들을 10년간 주어 모 았는데집안은 쓰레기로 가득찼다. 이것은 소방법 위반이어서 결국 동네 사람들이 두 추럭이나 되는 쓰레기들을 내다버렸다. 오랜만에 깨끗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나이는 그 다음 날부터 다시 쓰레기 수집을 시작했 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도, 쓸데 없는 쓰레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 다가 보니 가장 귀한 예수님이 계실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생각, 더러운 생각, 놀 생각, 이기적인 생각, 원한, 등등 수 많은 잡동사니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차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산 타크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 주는 선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망년회 할 생각으 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진정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와 소망을 가져다 주시는 예수님이 찾아 오시 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마음을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오십니다. 아일랜드 북쪽에 볼리메나(Ballymena)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천주교인이 몇 명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독교 에 대하여 아주 적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기독교인인 부인이 자기 작은 집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그래서 자기 옆집에 사는 천주교 교인인 부인에게 "내일 우리 집 에서 집회를 하니 오시지 않겠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 천주교인은 "가지 않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 집회가 있는 후에 천주교 부인은 옆집에서 있었던 집회의 결과가 궁 금했다. 그래서 "어제 집회를 잘 마쳤느냐 "고 물었다. 그 부인은 "참으로 놀라운 집회였다. 대성공이였다. 35 명이 모였는데, 우리 집에 가득찼다"고 대답을 했다. 그 다음주에도 집회가 그 집에서 있었고, 그 부인은 옆집의 천주교인인 부인을 또 초대했고, 그녀는 오지 않겠다고 대답을 하고, 집회가 끝난 후에는 똑같은 질문을 또했다. 그 부인은 "어제는 51명이 모였다"고 자랑하며 말을 했다. 이제 다음 주에 마지막 3번째 집회가 있다. 그래서 그 부인은 천주교인인 이웃집 부인에게 한번 꼭 와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천주교인은 거 절을 했다. 3번째 집회를 마쳤다. 천주교인인 부인은 몹씨 궁굼해서 그 집회의 결 과에 대해서 물었다. 그 부인은 "참으로 놀아운 집회였다. 대성공이였다. 61명이 모였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천주교인인 부인은 "피"하고 웃으면서 "거짓말 하지 말아요. 그 조그만 집에 어떻게 61명이 들어갈 수 있어요"하고 빈정댔다. 부인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방에 있는 가구며, 모 든 것을 다 밖에 내 놓았다. 그리고 사람이 들어가니 61명이 들어갔다." 고 말을 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우리 삶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구들을 주님을 위하여 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우리 삶속에 들어 올 수 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 주님이 우리 삶속에 찾아 오시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삶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추운 겨울에 연약한 여인이 초산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헛간에 누 워 있습니다. 그 추운 밤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가 구유에 누어 있읍니다. 그 추운데 초산을 하느라고 마리아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겠으며, 해 산의 고통이 끝난 후에는 크 찬 공기에 얼마나 추위가 몰려 왔겠습니까 어머니 배속에서 따듯하게 있다고 이 땅에 태어난 어린 아기 예수님은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형편을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 하 나도 그들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추운 밤에 산모와 갓 태어난 피덩어리가 바깥 헛간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무관심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관은 사랑이 메마른 곳입니가. 인정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수가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그 고생을 하셨으니, 사랑이 없는 이 땅 에 다시 오시고 싶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때 그 고생을 하시고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지금 도 우리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시고, 위로를 주시기 위하여 또 찾아 오십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머니 마리아는 산통를 격느라 땀을 흠뻑흘린 그 몸으로 밖에 추운 곳에 누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갓 태어난 핏덩어리의 몸으로 구유에 누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기 예수님께관심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이 목사 부터 관심이없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들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무관심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수가 없습니다. 마귀 사단은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도 아무런 효과가 없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인간들을 다 무관심속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 나라는 다 지금 무관심의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문학가이며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C.S. Lewis)의 명작 "The screwtape Letters"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악마 (Devil) 가 그의 조카 웜우드 (Wormwood) 를 훈련하는 과정에서 말한다. "나쁜 인간을 만들려고 애쓸 것 없다. 내게 필요한 인간은 오직 남에게 관심없는 인간이란 말이야. 인간으로 하여금 '나는 빼달라'(Include me out!)고 주장하게만 만들면 우리 일은 성공한거야." 이웃과의 문제에 포함되기를 거부하는 이기적 개 인주의는, 인간의 무관심은 악마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이 무관심 때문에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이 땅의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단테가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은 가장 큰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에 남아 있는 자다"고 말을 했다. 우리 인간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이 땅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변 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은 무엇입니까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고 나오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한 목사님이 "무지와 무관심"(Ignorance and Indifference)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했다. 교회에 온 교인 하나가 주보에 나와 있는 "무 지와 무관심"이란 제목을 보고는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뜻 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난 몰라. 나하고는 상관 없어"(I don't know and I don't care)라고 대답을 했다. 이 "난 몰라. 나하고는 상관 없어"하는 사상이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시 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른 때에는 무관심 했다고 하더라도, 이 성탄절 만큼이라도 관심을 가 지고 사랑합시다. 초산을 하느라고 산통을 겪으며, 수 많은 땀을 흘리 고, 힘이 없이 저 추운 헛간에 누워 있는 마리아, 갓 태어난 어리 생명이 이 추운 날씨에 구유에 누워 있는 예수님께 눈을 돌려 관심과 사랑을 보이 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이번에는 놓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이사 아구스도가 모든 로마 사람과 로마가 통치하는 식민지 백성 들은 다 호적을 하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온통 난리였습니다. 명절에 귀성전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온 세상이 복잡하고, 바빴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몰라 보았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깥 구유에 처박아 두고 말았습니다. 너무 바 쁘고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기쁨과 평화와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 일에 너무 바빠서 그 예수님을 바깥에 버려두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는 것은 오셔도,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예수님께 시간을 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이렇게 될 것을 마태복음 22장에서 말씀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금이 왕자의 결혼 맞아 초청장을 냈습니다. 임금이 그 렇게 잔치상을 잘 차리고 사람들을 정중하게 초청했지만, 그들은 "밭에 가 야한다", "사업상 약속이 있어서 못간다"는 핑계를 대고는 오지 않았읍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 일로 너무나 바쁩니다. 하루 24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 낼 시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 찬치, 성경 잔치, 새벽기도 잔치, 성가대 잔치, 교회학교 잔치, 등 각가지 잔치를 베풀어 놓고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예수님께 오지 않습니다. 요즘은 정말로 너무 바빠졌습니다. 미국의 명문 여자 대학인 브린 모 어(Bryn Mawr)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아이 둘을 가진 미국 주부가 청소, 부 엌일, 아이 양육 등 가사에 쓰는 시간이 매주 80 시간이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빨래를 하는데, 70년대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합니다. 지금은 세탁기나 세제가 발달했지만, 옛날에 비해 빨래감이 훨씬 많아지고, 깨끗한 것에 대한 기대 치가 훨씬 높아져 와이셔츠를 날마다 빨개 되므로 주부가 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보다는 남편이나, 자녀가 더 까까워 보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초청에 대해서는 시간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일에 바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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