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 (눅19:1-10)
본문
요즘 국민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숨은 그림찾기'가 그려진 '셀리를 찾으라'라는 것과 같은 책들이 인기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책을 펼쳐 보면 그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을 가득히 그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서 특색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매우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이 처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재미를 위하여 '특색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수 많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 중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백성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만세 전부터 잃버렸던 사람을 찾아 해매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헤멜 때의 모습을 상상해 봅 시다. 오늘 본문에 우리 주님의 모습이 이러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백성을 찾아 구원하시는 '삭개오의 찾음'에서 구원에 대한 2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의 주관(뜻)안에 성취됨 예수님께서는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이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던 중에 여리고에 이르렸습니다. 이 고 을의 세리장은 삭개오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삭개오는 아마 세리장이였기 때문에 그는 통행세를 거두는 일하면서 그 고을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예수님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1) 만날 수 없는 조건 그러나, 삭개오는 인간들이 보았을 때는 예수님과 만나지 못할 조건이 있었 습니다.
a.먼저, 당시 사람들이 삭개오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그 당시에는 '세 리(稅吏)'라는 직분은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지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창기와 같이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7절). 그것도 죄인 중 에서 대장 격인, 세리중에 '세리장(稅吏長)'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유대인의 매국노요, 유대사회에 동참할 수 없는 사람없었습니다. 그는 죄인임 으로 구원받지 못할 사람으로서 따돌림을 받고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았을 때는 그는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할 버 림받은 사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권세가 있으면 무 엇합니까 명예가 있으면 무엇합니까 자신을 진정하게 만족을 주지 못한데 요. 더욱 그는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데요. 그에게 친구있습니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필 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조건에 있는 그에게 예수님의 소문이 '죄인의 친구'라는 소문을 들었던 것입니다(참고 눅 5장). 그 소문을 들으면 들게 될수록 한번 만이라도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천대 받은 죄인이였습니다.
b.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두번째는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하여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 지만, 수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 가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얼 굴이라도 한번만이라도 보기를 원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키는 작고, 사람들 로 무시를 당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히 갈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이러한 조건에서 '罪人의 친구'인 예수라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보기를 원했 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데, 2가지 장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선입견과 자신의 단점이 장벽으로 막고 있었 습니다.
(2) 만날 수 있는 조건 하지만, 하나님께는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간절한 마음 이 그를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게 했습니다. 저는 이 간절한 삭개오의 마음을 저의 동생을 통해서 이해 했습니다. 동생이 중 3때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불신의 부모님이 교회가지 못하게 막았 습니다. 교회를 가다오면 아버님이 지게를 바치는 나무 작대기로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주일이 되면 교회 갔다오면 맞게 될 줄 알지만 뒷문 으로 해서 교회에 가는 동생을 보았습니다. 그 때는 동생이 얼마나 어리석던지 요. 하지만 지금은 이해합니다. 그는 주님이 매우 그리워서 인간의 핍박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벽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라도 올라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을 지 나시다가 삭개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삭개오의 모습을 보시고 그에게 내려오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그토록 만나길 원했던 '罪人의 친구'인 예수님이 자신의 집 에서 머물러야 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하여 왕으로 삼으실 때에 무엇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은 외모(外貌)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中心)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삼상 16:7).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삭개오의 깊은 마음을 통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보시고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첫째는 삭개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만나려는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6). 이 준비는 마태복음 5장 8절에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삭개오가 사람들의 눈에는 악한 죄인으로 보이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심령속에 메시야를 영접할 마음인 청결한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둘째는 그는 인간의 비웃음을 넘어셨습니다
(7). 예수님이 삭 개오의 집에 들어간 것에 대해 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수군거렸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여 신앙 생활에 대한 것을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셋째는 그는 간사한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자신의 이권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 삭개오는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자신 의 재산을 나누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구원받지 못한 버림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지 않고 찾아 구원해 주셨 습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삭개오와 반대되는 생활하고 있는 관원인 부자 청년이 구원을 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 장, 18 장에 보면 그는 율법적으로 모든 것을 행허습니다. 유대 종교적 모든 법도를 다 지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잃어버린 삭개오를 찾아서 구원하셨던 것입니다(10).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인간의 선행의 조건을 따지 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선행은 50보, 100보인 것입니다. 업적을 이 루었다고 자신의 공덕을 나타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키 않습니다. 삭개오같이 구원의 손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간절히 예수님만 붙드는 사람들 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適 用:지금도 예수님은 삭개오와 같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찾아 오십니다. 그래서, 자신 홀로 구원의 길을 찾 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 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에 누 구엔가 위로받고 싶은 영혼이 있습니까 상처받은 영혼들을 고치시고, 싸매시 고, 치료하시여 자신의 친구로 만드시는 주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삭개오의 중심을 보시고, 영혼을 고치신 것처럼 여러분의 영혼을 고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가지 우리 주위에는 세상의 풍파에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잃어 버린 영혼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혼들을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2. 구원받은 사람의 삶의 태도 구원을 받을 때에 인간의 선행이 있어야 구원을 받느냐 선행이 없어도 구원 을 받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들 주위에서는 우리를 구원관(救援觀)을 혼동시키 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잘 읽어보면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8절 말씀을 보면,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음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 로다'고 삭개오에게 구원을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의 순서대로 보면, 삭개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좋은 일을 행 하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것은 구원은 사람들이 선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태국같은 불 교의 나라는 종교심으로 아침마다 스님들을 봉향합니다. 이들이 구원을 받습니 까 절대로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엡 2:8,9). 성경에서는 사람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 로 하나님깨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놓았던 것과 구원 의 관계가 어려운 숙제로 작용합니다. 왜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내놓을까요 그 대답은 삭개오는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재물, 자신에게 지금 세리장이라는 직책에 있게 하신 것 등-즉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 다는 것을 깨닭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유를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 주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삭개오가 선행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가치(價置)를 알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 게 주신 물질을 통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베푸렀던 것입니다.
이것에 반증하는 사건이 앞장 18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관원이면서 부자인 한 청년이 구원에 대한 진리를 알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그는 예수님 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계명을 아나 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 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0). 그는 랍비들이 가르쳤던 이 모든 율법들은 어렸을 때부터 모두 잘 지켜 왔다고 자신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행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한가지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 부족한 것을 바로 시험하셨습니다. 그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상급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재산을 팔아서 가난자들을 나누어 주었 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부자이기 때문에 고심하면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하는 삭개오와 아주 대조적인 말씀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보다는 물질을 사랑하였던 것을 볼 수 있고, 삭개오는 물질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해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서, 삭개오가 자신 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절반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그 만큼 깨닭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 질을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만물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 득하였던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깨닭은 사람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근원 た逃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약 2:26). 삭개오에게 있어 하나님께 진리를 깨닫고 가장 먼저 행할 수 있었던 것 이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마음에 구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확증시키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세상에서 큰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위로 를 받기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상처들 을 치료 받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치료를 받았다면 삭개오같이 하나님의 교회와 네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이웃을 돌아 보지 않는 성도는 아직은 완전한 영적인 치료가 되지 않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어린 아이들의 그림책과 같이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잃어버렸던 삭개오의 찾음도 누가복음의 세상에서 멸시받고, 고난받고 있는 영혼들을 찾아서 구원하시는 내용의 한 부분 입니다. 잃버렸던 내 영혼을 구원하시여 예수님의 친구로 삼아 주는 은혜를 입 었습니다. 이재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어떻게 무엇으로 보답하 겠습니까 행함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과거의 우리들처럼 방황하는 영혼을 구원하여 의사이신 예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2000년전에 삭개오를 찾아 가신 예수님은 바로 이 시간에 우리들에게 20세기의 삭개오를 찾오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의 주관(뜻)안에 성취됨 예수님께서는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이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던 중에 여리고에 이르렸습니다. 이 고 을의 세리장은 삭개오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삭개오는 아마 세리장이였기 때문에 그는 통행세를 거두는 일하면서 그 고을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예수님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1) 만날 수 없는 조건 그러나, 삭개오는 인간들이 보았을 때는 예수님과 만나지 못할 조건이 있었 습니다.
a.먼저, 당시 사람들이 삭개오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그 당시에는 '세 리(稅吏)'라는 직분은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지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세리는 유대인들로부터 창기와 같이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7절). 그것도 죄인 중 에서 대장 격인, 세리중에 '세리장(稅吏長)'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유대인의 매국노요, 유대사회에 동참할 수 없는 사람없었습니다. 그는 죄인임 으로 구원받지 못할 사람으로서 따돌림을 받고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았을 때는 그는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지 못할 버 림받은 사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권세가 있으면 무 엇합니까 명예가 있으면 무엇합니까 자신을 진정하게 만족을 주지 못한데 요. 더욱 그는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데요. 그에게 친구있습니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필 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조건에 있는 그에게 예수님의 소문이 '죄인의 친구'라는 소문을 들었던 것입니다(참고 눅 5장). 그 소문을 들으면 들게 될수록 한번 만이라도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천대 받은 죄인이였습니다.
b.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두번째는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하여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 지만, 수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 가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얼 굴이라도 한번만이라도 보기를 원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키는 작고, 사람들 로 무시를 당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히 갈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이러한 조건에서 '罪人의 친구'인 예수라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보기를 원했 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데, 2가지 장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선입견과 자신의 단점이 장벽으로 막고 있었 습니다.
(2) 만날 수 있는 조건 하지만, 하나님께는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간절한 마음 이 그를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게 했습니다. 저는 이 간절한 삭개오의 마음을 저의 동생을 통해서 이해 했습니다. 동생이 중 3때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불신의 부모님이 교회가지 못하게 막았 습니다. 교회를 가다오면 아버님이 지게를 바치는 나무 작대기로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주일이 되면 교회 갔다오면 맞게 될 줄 알지만 뒷문 으로 해서 교회에 가는 동생을 보았습니다. 그 때는 동생이 얼마나 어리석던지 요. 하지만 지금은 이해합니다. 그는 주님이 매우 그리워서 인간의 핍박은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벽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라도 올라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을 지 나시다가 삭개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삭개오의 모습을 보시고 그에게 내려오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그토록 만나길 원했던 '罪人의 친구'인 예수님이 자신의 집 에서 머물러야 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하여 왕으로 삼으실 때에 무엇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은 외모(外貌)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中心)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삼상 16:7).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삭개오의 깊은 마음을 통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보시고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첫째는 삭개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만나려는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6). 이 준비는 마태복음 5장 8절에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삭개오가 사람들의 눈에는 악한 죄인으로 보이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심령속에 메시야를 영접할 마음인 청결한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둘째는 그는 인간의 비웃음을 넘어셨습니다
(7). 예수님이 삭 개오의 집에 들어간 것에 대해 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수군거렸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여 신앙 생활에 대한 것을 두려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셋째는 그는 간사한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자신의 이권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 삭개오는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자신 의 재산을 나누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구원받지 못한 버림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지 않고 찾아 구원해 주셨 습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삭개오와 반대되는 생활하고 있는 관원인 부자 청년이 구원을 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 장, 18 장에 보면 그는 율법적으로 모든 것을 행허습니다. 유대 종교적 모든 법도를 다 지켰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잃어버린 삭개오를 찾아서 구원하셨던 것입니다(10).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인간의 선행의 조건을 따지 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선행은 50보, 100보인 것입니다. 업적을 이 루었다고 자신의 공덕을 나타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키 않습니다. 삭개오같이 구원의 손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간절히 예수님만 붙드는 사람들 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適 用:지금도 예수님은 삭개오와 같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찾아 오십니다. 그래서, 자신 홀로 구원의 길을 찾 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 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에 누 구엔가 위로받고 싶은 영혼이 있습니까 상처받은 영혼들을 고치시고, 싸매시 고, 치료하시여 자신의 친구로 만드시는 주님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삭개오의 중심을 보시고, 영혼을 고치신 것처럼 여러분의 영혼을 고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가지 우리 주위에는 세상의 풍파에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잃어 버린 영혼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혼들을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2. 구원받은 사람의 삶의 태도 구원을 받을 때에 인간의 선행이 있어야 구원을 받느냐 선행이 없어도 구원 을 받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들 주위에서는 우리를 구원관(救援觀)을 혼동시키 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잘 읽어보면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8절 말씀을 보면,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음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 로다'고 삭개오에게 구원을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의 순서대로 보면, 삭개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좋은 일을 행 하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것은 구원은 사람들이 선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태국같은 불 교의 나라는 종교심으로 아침마다 스님들을 봉향합니다. 이들이 구원을 받습니 까 절대로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엡 2:8,9). 성경에서는 사람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 로 하나님깨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놓았던 것과 구원 의 관계가 어려운 숙제로 작용합니다. 왜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내놓을까요 그 대답은 삭개오는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재물, 자신에게 지금 세리장이라는 직책에 있게 하신 것 등-즉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 다는 것을 깨닭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유를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 주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삭개오가 선행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가치(價置)를 알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 게 주신 물질을 통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베푸렀던 것입니다.
이것에 반증하는 사건이 앞장 18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관원이면서 부자인 한 청년이 구원에 대한 진리를 알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그는 예수님 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계명을 아나 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 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0). 그는 랍비들이 가르쳤던 이 모든 율법들은 어렸을 때부터 모두 잘 지켜 왔다고 자신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행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한가지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 부족한 것을 바로 시험하셨습니다. 그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상급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재산을 팔아서 가난자들을 나누어 주었 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부자이기 때문에 고심하면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하는 삭개오와 아주 대조적인 말씀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하나님보다는 물질을 사랑하였던 것을 볼 수 있고, 삭개오는 물질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해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서, 삭개오가 자신 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절반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그 만큼 깨닭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 질을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만물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 득하였던 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깨닭은 사람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근원 た逃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약 2:26). 삭개오에게 있어 하나님께 진리를 깨닫고 가장 먼저 행할 수 있었던 것 이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마음에 구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확증시키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세상에서 큰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위로 를 받기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상처들 을 치료 받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치료를 받았다면 삭개오같이 하나님의 교회와 네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이웃을 돌아 보지 않는 성도는 아직은 완전한 영적인 치료가 되지 않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어린 아이들의 그림책과 같이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잃어버렸던 삭개오의 찾음도 누가복음의 세상에서 멸시받고, 고난받고 있는 영혼들을 찾아서 구원하시는 내용의 한 부분 입니다. 잃버렸던 내 영혼을 구원하시여 예수님의 친구로 삼아 주는 은혜를 입 었습니다. 이재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어떻게 무엇으로 보답하 겠습니까 행함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과거의 우리들처럼 방황하는 영혼을 구원하여 의사이신 예수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2000년전에 삭개오를 찾아 가신 예수님은 바로 이 시간에 우리들에게 20세기의 삭개오를 찾오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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