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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쓰시겠다면 (눅19:28-35)

본문

본문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수난이 낀 마지막 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살렘 입성이 주일에 있었고 수난은 금요일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다수 견해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도 보지만 이름 모르는 또한 사람도 보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나귀새끼를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31-33).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 중에는 스가랴서 9장 9절도 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을 지근거리에 두고 있으므로 주님께서는 그 예언이 성취되도록 하기 위해서 나귀새끼를 필요로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 두 명을 맞은 편 마을로 보내시며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성경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처음 것을 주님께 드리라”는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동물의 처음 난 것이고, 곡식의 처음 거두어들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런저런 용도로 다 쓰고난 후에 남은 것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예절도 웃어른을 그런 식으로 받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그 나귀새끼를 나중에 돌려주지 않았겠는가 예루살렘 입성시에만 필요했다 주님께서는 나귀를 타실 정도로 겸손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21:5) 왕이나 귀인이 간혹 나귀를 타는 경우가 성경에 나와 있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결코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겸손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나귀는 천한 동물이다. 왕이라면 응당 말을 타고 늠름하게 위풍당당하게 입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자들이 나귀를 발견하고 묶인 줄을 풀려고 할 때 임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제지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일러준 대로 단지 그에게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만 전했습니다. 나귀 주인은 예수님을 믿는 제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에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는 입으로만 예수님을 주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인정한 것입니다. 바로 앞의 열 므나 비유에서 주님께서는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나귀 주인은 그들과 달리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나귀새끼를 요구하실 권한이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둘째,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쓰시고자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태초에 나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원하신다면 또 다시 창조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름 모르는 제자가 가지고 있는 나귀를 사용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친히 만나를 내리셔서 한 민족을 먹이셨고 원하신다면 또 다시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아이의 수중에 있었던 오병이어를 사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먹을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사역은 대부분 후자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나귀새끼를 사용하고자 하신 것 같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주리신다면 우리가 당연히 먹을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목마르시다면 당연히 마실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지금도 굶주리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지금도 헐벗고 계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25:35,36,40,45) 이 말씀은 이 땅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한 주님께서 주리시는 것이고 이 땅에 병든 사람이 있는 한 주님께서 병드신 거나 마찬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주님께서는 남한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북한에도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그 옛날 육신으로 이 땅에 계셨을 때 몇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한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15:32)
그렇다면 몇 끼 정도가 아니라 벌써 오랫동안 제대로 먹을 것을 먹지 못한 북한주민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불쌍히 여기시겠습니까 “내가 네가 가진 것을 좀 쓰겠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수중에 음식을 가지고 계셨다면 그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보시고서 가만히 계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주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가능케 한 것도 한 아이가 자기의 점심으로 준비해 온 것을 드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0,21)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6:9,13) 북한의 천국이라고 하는 평양시민들마저 5월 중순에 4월분 식량인 옥수수 6되씩 받았다. 다른 부식은 없다. 북한에 주둔하고 있는 국제적십자사 대표도 2년여 평야에 주둔해서 전국을 누비며 다니고 있지만 창고에 식량은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영양실조 때문에 앞으로 북한에 사는 주민들의 몇 세대가 신체와 두뇌에 큰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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