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행차 (눅19:28-40)
본문
종려주일은 오랜동안 교회가 축하해 왔다.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세상의 왕으로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서 깔고 종려나무 잎을 놓았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황토흙을 까는 것과 같은 예우이다. 그가 세상에 오신지 33년 공생애 3년 만에 드디어 사람들에게 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신자들이 이해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이다. 행차가 자신들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는 대다수의 신자들에게 간과되었다. 그의 삶 전체는 자 신을 위한 것이 없었다. 탄생부터 죽움 그리고 부활 승천까지의 모든 과 정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을뿐이다. 특별히 그의 예 루살렘 입성이 주는 의미는 우리에게 너무도 실제적이고 강한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자신의 왕됨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이유 가 무엇인가 예수의 삶은 무조건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전제를 놓고 생각할 때 바른 대답이 나온다. 그것도 우리를 위해서였다. 즉 그와 하나된 그를 믿는 사람들은 그와 함께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그 일을 몸소 행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1. 그는 노예된 사람들 위해 오셨다. 스스로 인간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은 왕이 아니다. 자연과 운명에 휘둘리는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가 세상에서 큰 소리치며 힘있게 살고 싶어하지 만 그렇게 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부끄럽 고 고통스러운게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이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지 않으셨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그리고 복을 주고 이르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 . 땅에 움직 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7-28) 모든 생물은 영적인 것도 포함 된다. 그야말로 세상에 움직이는 모든 것을 지배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복을 주셨 다명령하셨다"이다. 인간에 주어진 보배가 3위일체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어졌으며 거기다가 왕으로서의 복을 받았고 더 나아 가서는 왕노릇하라는 명령까지 받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형상과 복은 왕노릇하기 시작하면서 보여지기 시작한다. 열매가 맺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문제가 생긴다. 첫 번 사람이 이 명령대로 했더라 면 세상이 이 모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명령에 반대로 움직였다. 그래서 사탄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그에게 복종하였다. 사탄은 인간에 게 자기의 본성을 부과하였다. 그래서 죽음이 들어오고 모든 어둠의 세력 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게 인간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 었다. 복은 사라졌다.
그러므로 명령을 지킬 수도 없다. 혹시 지배하려고 해도 그것은 사탄의 방법이다. 남을 괴롭히고 착취해야 한다. 감시해야 하고 남에게 덜 주어야 내가 버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수를 내서라도 힘 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서는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다. 그는 우리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난다. 나도 한 때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부모를 원망한 적이 있 었다. 굴레이기 때문이다. 그는 빈약한 외모로 왔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 기지 않았다. 아무런 기회도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민초였다. 그가 머리가 좋았던가 기막히게 운이 좋았던가 높은 사람이 그를 잘보았던가 아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 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잘 보라. 그의 모습을. 그는 우리 중에 가장 환경이 열악한 사람보다 훨씬 어려운 사정을 가지고 왔다.
2. 그는 왕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배자였다. 그는 그 부족한 상황에서도 온 우주의 왕 됨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는 이미 왕이었다. 사람들이 알건 모르건 그는 육적 세상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영적 세상에서도 왕이셨다. 그가 세상 을 창조했고 다스렸다. 그러나 자기가 만든 세상에 오실 때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로서 오셨다. 우리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폭풍우를 잠잠케했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죽어 나흘되어 썩은 시체를 일으켰다. 물위를 마치 육지처럼 걸었다. 오천명의 사람들이 보리떡 다섯 개로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였다. 귀신들이 그를 보면 벌벌 떨었다. 소경과 앉은뱅이와 벙어리가 그와 접촉 하자 그대로 회복되었다. 예수는 자연과 초자연을 지배하는 왕이었다. 이제 그것을 극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입성이다. 그 가 왕으로 오시는 것은 우리를 위함이다. 그가 인류의 대표로서 모든 사람들이 본래 가졌던 왕권을 회복했음을 증명해 준다. 그는 보통 사람의 상황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우리도 알고 원하기만 하면 그처럼 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환영의 인파는 구름처럼 몰렸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너희도 나를 받아들이면 나처럼 된다. 본래 하나님이 주셨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의 능력을 회복한다. 하늘의 모든 복 이 다 주어진다. 순식간에 새사람으로 변한다. 나도 너희들처럼 연약한 외모에 열악한 상황 속에 살았다. 그러나 거기 지배 당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라는가 "이제 본래의 명령대로 움직이라. 자신이 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라. 권리를 찾으라.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 그것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내 안에서 어떠 한 존재이며 내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깨닫는 것이다." 여기 그냥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 있다. 그에게는 타고갈 마차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차를 요구하지 않고 나귀 그것도 새끼를 원했다. 그가 어떻게 구했는가! 왕으로서의 그의 믿음이다. 나귀를 명하고 제자들에게 그 일을 시켰다. 제자들은 나귀를 끌고 왔다. 주인이 제지하자 "주가 쓰 십니다"고 말했다. 그것이 다였다. "당신 주가 누구요"묻지도 않았다. 그의 속에는 하늘 나라가 다 들어 있었다.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 이 다 그 속에 있었다. 그가 명령하면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에게는 통장도 집도 호위병도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움직이는 나라가 다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가 명하면 천사도 귀신도 나귀의 주인도 복 종했다. 명령하면 물고기가 돈을 가지고 왔다. 죽은자도 일어나 나왔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라. 누가 왕인가 누가 지배하는가 하나님은 회복해 주셨다. "자기의 형상대로" 다시 낳아주셨다. "하늘의 복 을 주셔서" 권능을 회복해 주셨다. 이제 명령을 주신다. "나가서 자신의 삶을 지배하라." 현재 고민스러운게 무엇인가 마음을 돌이키라. 내가 거 기 노예될 존재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지배하는 사람이다.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그리고 하나님 곧 나를 낳아주시고 내게 능 력을 지금 공급하시는 분에게 문제들을 맡기라. 그분이 말씀으로 모든 상 황에 임재하시고 영이신 말씀으로 일하심을 상상하라. 그리고 자신은 그 문제의 지배자임을 확인하라. 자신이 지배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러 한 상태를 유지하라.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상황도 바꾸어 놓는다. 이제 마음을 여기 집중해 보자. 이것이 왕이 하는 일이다. 왕이 마음 을 먹으면 된다. 예수께서는 그 비결을 말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 .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1-22) 왕으로서의 확신이다.
3. 그처럼 사랑으로 지배하자 이제 가장 중요한 원리로 나가 보자. 그것은 예수께서 어떻게 지배했 느냐는 것이다. 세상 지배는 힘으로 굴복시켜야 된다. 남을 넘어뜨려야 한다. 이간시키고 욕하고 죽이고 전쟁도 일으킨다. 이것이 세상이 지배하는 원리이다.
그러므로 왕으로 지배하라고 하면 이기적인 생각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의 지배요 세상적 지배요 마귀적 지배이다. 주의 지배는 하나님처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지배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말을 잘하고 예언을 하고 지식이 한이 없고 권세가 많고 믿음이 넘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 니라고 바울을 선언한다. 구제 많이 하고 훌륭한 이름을 얻고 높은 자리 에 올라가고 위대한 존재가 되어도 사랑 없으면 그리스도의 일이 아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온유하다. 질투하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고 교만 하지 않는다. 무례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성내지 않는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롤 좋아하지 않고 진리와 함게 기뻐한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향해서 행하신 모든 일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왕의 능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다시 회복된 것이 바로 이 것이다. 이 사랑은 엄청난 힘이 있다. 그것이 천지를 창조하였다. 그것이 병을 고치고 마귀를 몰아낸다. 그것이 강하게 하고 그것이 아름답게 한다. 나를 지혜롭게 하고 나의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게 이 사랑이다. 그것 이 내 사업을 번창하게 하고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건강하게 한다. 없는 사랑 곧 내 수준의 사랑으로 사랑하는게 아니다. 믿음으로만 이 사랑의 힘은 나온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 사함 받음을 안다. 구원 받았음 을 믿음으로 안다. 의로워졌고 능력 받았음도 믿음으로 안다. 느낌으로 아는게 아니다. 오감의 경험이 말하지도 않는다. 이 믿음으로 제일 좋은 것을 누려야 한다. 즉 주의 사랑이 내 속에 부어졌음을 믿음으로 안다. 스스로 고백해 보라. "오감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겠습니다. 주의 사랑이 내 속에 부어진 것도 믿겠습니다. 이제 이 사랑으로 그리스도처럼 지배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매사에 명령 하라. 하지만 사랑으로 명령해야 한다. 경쟁자를 축복하라. 미운 사람도 축복하라. 그래야 진짜 힘이 나온다. 예수처럼 우주를 지배하는 권세이다. 왕의 행차는 보여준다. 예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했고 강했다. 그는 진실로 왕이었고 지배자였다. 이제 또 다른 왕의 행차들을 보라. 바로 우리의 가는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사랑 의 왕으로 지배한다. 주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주를 사랑하 고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우리에게는 항상 종려주일만 있으리라.
1. 그는 노예된 사람들 위해 오셨다. 스스로 인간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은 왕이 아니다. 자연과 운명에 휘둘리는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가 세상에서 큰 소리치며 힘있게 살고 싶어하지 만 그렇게 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부끄럽 고 고통스러운게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근본적으로 이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지 않으셨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그리고 복을 주고 이르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 . 땅에 움직 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7-28) 모든 생물은 영적인 것도 포함 된다. 그야말로 세상에 움직이는 모든 것을 지배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복을 주셨 다명령하셨다"이다. 인간에 주어진 보배가 3위일체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어졌으며 거기다가 왕으로서의 복을 받았고 더 나아 가서는 왕노릇하라는 명령까지 받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형상과 복은 왕노릇하기 시작하면서 보여지기 시작한다. 열매가 맺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문제가 생긴다. 첫 번 사람이 이 명령대로 했더라 면 세상이 이 모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명령에 반대로 움직였다. 그래서 사탄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그에게 복종하였다. 사탄은 인간에 게 자기의 본성을 부과하였다. 그래서 죽음이 들어오고 모든 어둠의 세력 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게 인간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 었다. 복은 사라졌다.
그러므로 명령을 지킬 수도 없다. 혹시 지배하려고 해도 그것은 사탄의 방법이다. 남을 괴롭히고 착취해야 한다. 감시해야 하고 남에게 덜 주어야 내가 버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수를 내서라도 힘 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서는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다. 그는 우리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난다. 나도 한 때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부모를 원망한 적이 있 었다. 굴레이기 때문이다. 그는 빈약한 외모로 왔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 기지 않았다. 아무런 기회도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민초였다. 그가 머리가 좋았던가 기막히게 운이 좋았던가 높은 사람이 그를 잘보았던가 아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 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잘 보라. 그의 모습을. 그는 우리 중에 가장 환경이 열악한 사람보다 훨씬 어려운 사정을 가지고 왔다.
2. 그는 왕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배자였다. 그는 그 부족한 상황에서도 온 우주의 왕 됨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는 이미 왕이었다. 사람들이 알건 모르건 그는 육적 세상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영적 세상에서도 왕이셨다. 그가 세상 을 창조했고 다스렸다. 그러나 자기가 만든 세상에 오실 때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로서 오셨다. 우리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폭풍우를 잠잠케했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죽어 나흘되어 썩은 시체를 일으켰다. 물위를 마치 육지처럼 걸었다. 오천명의 사람들이 보리떡 다섯 개로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였다. 귀신들이 그를 보면 벌벌 떨었다. 소경과 앉은뱅이와 벙어리가 그와 접촉 하자 그대로 회복되었다. 예수는 자연과 초자연을 지배하는 왕이었다. 이제 그것을 극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입성이다. 그 가 왕으로 오시는 것은 우리를 위함이다. 그가 인류의 대표로서 모든 사람들이 본래 가졌던 왕권을 회복했음을 증명해 준다. 그는 보통 사람의 상황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우리도 알고 원하기만 하면 그처럼 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환영의 인파는 구름처럼 몰렸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너희도 나를 받아들이면 나처럼 된다. 본래 하나님이 주셨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의 능력을 회복한다. 하늘의 모든 복 이 다 주어진다. 순식간에 새사람으로 변한다. 나도 너희들처럼 연약한 외모에 열악한 상황 속에 살았다. 그러나 거기 지배 당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라는가 "이제 본래의 명령대로 움직이라. 자신이 왕으로 만들어졌음을 알라. 권리를 찾으라.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 그것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내 안에서 어떠 한 존재이며 내 안에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깨닫는 것이다." 여기 그냥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 있다. 그에게는 타고갈 마차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차를 요구하지 않고 나귀 그것도 새끼를 원했다. 그가 어떻게 구했는가! 왕으로서의 그의 믿음이다. 나귀를 명하고 제자들에게 그 일을 시켰다. 제자들은 나귀를 끌고 왔다. 주인이 제지하자 "주가 쓰 십니다"고 말했다. 그것이 다였다. "당신 주가 누구요"묻지도 않았다. 그의 속에는 하늘 나라가 다 들어 있었다.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 이 다 그 속에 있었다. 그가 명령하면 되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에게는 통장도 집도 호위병도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움직이는 나라가 다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가 명하면 천사도 귀신도 나귀의 주인도 복 종했다. 명령하면 물고기가 돈을 가지고 왔다. 죽은자도 일어나 나왔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라. 누가 왕인가 누가 지배하는가 하나님은 회복해 주셨다. "자기의 형상대로" 다시 낳아주셨다. "하늘의 복 을 주셔서" 권능을 회복해 주셨다. 이제 명령을 주신다. "나가서 자신의 삶을 지배하라." 현재 고민스러운게 무엇인가 마음을 돌이키라. 내가 거 기 노예될 존재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지배하는 사람이다.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그리고 하나님 곧 나를 낳아주시고 내게 능 력을 지금 공급하시는 분에게 문제들을 맡기라. 그분이 말씀으로 모든 상 황에 임재하시고 영이신 말씀으로 일하심을 상상하라. 그리고 자신은 그 문제의 지배자임을 확인하라. 자신이 지배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러 한 상태를 유지하라.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상황도 바꾸어 놓는다. 이제 마음을 여기 집중해 보자. 이것이 왕이 하는 일이다. 왕이 마음 을 먹으면 된다. 예수께서는 그 비결을 말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 .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1-22) 왕으로서의 확신이다.
3. 그처럼 사랑으로 지배하자 이제 가장 중요한 원리로 나가 보자. 그것은 예수께서 어떻게 지배했 느냐는 것이다. 세상 지배는 힘으로 굴복시켜야 된다. 남을 넘어뜨려야 한다. 이간시키고 욕하고 죽이고 전쟁도 일으킨다. 이것이 세상이 지배하는 원리이다.
그러므로 왕으로 지배하라고 하면 이기적인 생각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의 지배요 세상적 지배요 마귀적 지배이다. 주의 지배는 하나님처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지배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말을 잘하고 예언을 하고 지식이 한이 없고 권세가 많고 믿음이 넘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 니라고 바울을 선언한다. 구제 많이 하고 훌륭한 이름을 얻고 높은 자리 에 올라가고 위대한 존재가 되어도 사랑 없으면 그리스도의 일이 아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온유하다. 질투하지 않는다. 자랑하지 않고 교만 하지 않는다. 무례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성내지 않는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롤 좋아하지 않고 진리와 함게 기뻐한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향해서 행하신 모든 일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왕의 능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다시 회복된 것이 바로 이 것이다. 이 사랑은 엄청난 힘이 있다. 그것이 천지를 창조하였다. 그것이 병을 고치고 마귀를 몰아낸다. 그것이 강하게 하고 그것이 아름답게 한다. 나를 지혜롭게 하고 나의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게 이 사랑이다. 그것 이 내 사업을 번창하게 하고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건강하게 한다. 없는 사랑 곧 내 수준의 사랑으로 사랑하는게 아니다. 믿음으로만 이 사랑의 힘은 나온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 사함 받음을 안다. 구원 받았음 을 믿음으로 안다. 의로워졌고 능력 받았음도 믿음으로 안다. 느낌으로 아는게 아니다. 오감의 경험이 말하지도 않는다. 이 믿음으로 제일 좋은 것을 누려야 한다. 즉 주의 사랑이 내 속에 부어졌음을 믿음으로 안다. 스스로 고백해 보라. "오감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겠습니다. 주의 사랑이 내 속에 부어진 것도 믿겠습니다. 이제 이 사랑으로 그리스도처럼 지배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매사에 명령 하라. 하지만 사랑으로 명령해야 한다. 경쟁자를 축복하라. 미운 사람도 축복하라. 그래야 진짜 힘이 나온다. 예수처럼 우주를 지배하는 권세이다. 왕의 행차는 보여준다. 예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했고 강했다. 그는 진실로 왕이었고 지배자였다. 이제 또 다른 왕의 행차들을 보라. 바로 우리의 가는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사랑 의 왕으로 지배한다. 주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주를 사랑하 고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우리에게는 항상 종려주일만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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