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는 비결 (눅19:1-10)
본문
오늘 설교 제목을 읽으시고 여러 가지 느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이라 " 참으로 듣고 싶은 말씀을 오늘 듣게 됐구나! 그런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있고 우리 스스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때마다 은혜 주시면 얼마든지 세상을 이기고 행복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저는 참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고 또 여러 모양으로 문제도 많고 눈물도 많은 사람이였지만 불행하지 않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고 오늘까지 또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앞에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최소한도 이 손 목사처럼, 손 목사 이상으로 은혜를 받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 그게 제 마음의 소원입니다. 그렇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은혜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느냐 다시 말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리고성의 삭개오란 사람이 은혜를 받는 그러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삭개오처럼만 하면 됩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고 또 사람과 사는 상황을 다르지만 하나님은 동일합니다. 때문에 삭개오처럼 하면 우리도 언제든지 어디서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이 세 가지 단계를 밟아야 은혜를 받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참으로 은혜 받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오. .
첫째 단계는 무엇이든지 시작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시작이 잘못되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첫 번째 단계가 무엇인가 하면 오늘 본문에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 간 것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야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은혜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봐도 예외 없이 전부다 뽕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은혜를 받겠다고 심지어 아무리 기도해도 뽕나무에 올라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 듣지 않습니다. 절대로 은혜 못 받습니다. 받았다고 하는데 잘못 받은 것입니다. 악령이 들어 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뽕나무에 올라 간 자에게만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여리고성의 세리장입니다. "여리고"라 함은 그 당시 예루살렘 다음 가는 제 2의 큰 도시입니다. 무역이 성행하는 상업 도시인데 바로 삭개오는 이 여리고성의 세리장입니다. 요즘 말하면 광주 국세청 지방청장과 격이 같은 겁니다. 그리고 부자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신분을 가진 사람이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길가에 서 있는 뽕나무에 올라갔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장난도 아닐 것이고, 그냥 해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비상한 사건입니다. 어떻게해서 그 여리고성의 세리장이고 부자가 뽕나무에 올라갔을까! 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만일에 이 삭개오가 "내가 세리장인데 내가 부자인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 네가 어떻게 뽕나무에 올라가나" 자기의 체면과 자기 위신을 생각했더라면 뽕나무에 죽어도 못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본문에 "뽕나무에 올라가!"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삭개오가 자기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삭개오가 자기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벗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뽕나무에 올라 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뭐가 문제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는 왜 은혜를 못 받느냐 " 아까도 말했습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 봉사합니다.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바로 그 이유는 자기가 깨지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것이 너무 강해요. 자존심, 자기 의식, 심지어 신앙생활 하면서도 어떻게 신앙생활 하는가 하면 " 내가 제일 잘해야 되겠다. 내가 제일 잘 믿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내가 기도도 제일 많이 해야 되겠다." 바로 그 "자기"라고 하는 것, 자기를 높이고 세운다는 그 "자아" 그것이 깨지지 않는 한은 선한 일에서도 의로운 일에서도 하나님 앞에 용납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참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먼저 철저하게 깹니다. 아주 처절하게 깨뜨리십니다. 뭐 적당히 깨는 게 아니라 완전히 100% 깨뜨립니다. 아주 무서울 정도로 깹니다. 어떤 사람은 병으로 깹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부부간에 많은 갈등이 일어나서 처참하게 무너지게 만듭니다. "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우리 가정이 뭐냐!" 참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얼굴에 부어 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식을 통해서 하나님이 참으로 서럽도록 깹니다. 자식이 잘못 될 때 부모는 제일 가슴이 슬프고 아픈 건데 그 자녀로 인해서 부모된 내가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그 외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깨뜨리 실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깨뜨리셨습니다. 아주 철저하게 깨뜨리세요. 조금이라도 "나"라는게 올라오면, "나"라는 것이 나타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용납 안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는 눈물이 있습니다. 아픔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그거죠! 참 받아 드리기 어려워요. 또 그렇게 산 다는 것이 너무 창피스럽고, 내가 이렇게 산 다는 것이 용납이 안되는 거에요. 나한테" 내가 왜 이렇게 사는가! 내가 왜 이렇게 낮은 자리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 수 있느냐" 그것이 용납이 안되는 거에요. 받아 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까 더 몸부림을 치죠. "이 부끄러움을 빨리 벗어야 겠다. 소문 나기 전에 빨리 빨리 해결해서 그렇게 좀 자랑스런 모습으로, 떳떳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이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부끄러움과 고통의 멍에를 벗으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얽히는 것입니다. 더 꼼짝할 수 없도록 일이 더 얽히고 설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 드리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첫째 단계입니다. 이게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고통과 눈물과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이 자만심 많은 , 교만한 나는 죽으면 죽었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점점 깨달아 지는 게 있습니다. " 아! 이 고통과 이 아픔은 하나님이 나를 꺾으시는 것이구나! 나를 깨뜨리시는구나! 나를 죽이시는 것이구나!" 그렇게 이제 받아 들이기 시작합니다. 거역하고 원망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어 놓고 그것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 부끄러움과 수모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걸 하나님이 지켜보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금까지 깨뜨리시고 낮아지게 하신 하나님이 그걸 받아 들이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불어 주십니다. 세워 주시기 시작하십니다. 높이시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순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마 오늘까지 많이 분하고, 받아 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까지 이 수수께끼 같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받아 들이기 어려운 모든 고통과 눈물을 오늘부터는 아! 하나님이 나를 깨뜨리시려고 이런 것을 허락하셨다 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이제 받아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깨뜨리고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이럴 때 중심에 불이 붙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손을 들 때 그때부터 하나님은 큰 역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부활이 시작됩니다. 오늘 바로 새로운 부활의 자리가 이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단계는 뽕나무에 올라 갈 정도로 삭개오의 마음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길가에 나가 본즉 너무나 사람이 많아 도저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고 더구나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삭개오가 물러간 것이 아닙니다. " 천천히 다음에 보자! 많은 날이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하고 물러서지 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삭개오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간절한 마음으로 살펴본 다음에 " 아 내가 저 길가 뽕나무에 올라가면 예수님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뽕나무에 올라 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주일날에 교회 나오는 여러분의 심정이 어떤 심정 인지요 어떤 마음으로 나는 하나님 앞에 나갑니까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 갈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한 마음, 물러서지 않는 마음, "내가 꼭 예수님을 만나 봐야 되겠다" 그걸 포기하지 않는 마음, 오늘 내가 주일날에 교회 온 것은 그저 주일날이니까 그저 한시간 예배드리고 가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꼭 은혜 받아야 되겠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꼭 만나야 되겠다 "하는 목마르고 간절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꼭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사람 생각으로는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지요. 사실 무슨 특별한 문제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손 목사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목에서 피가 넘어 올 정도로 구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어요. 너무도 제자신이 어리석고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고, 힘 주시고, 지혜 주시고 또 제 마음을 주장해 주셔야 하루하루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을 너무도 많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좀 자고한 마음으로 하나님 의지하는 마음을 좀 해이하게 갔고 등한하고 미지근하게 갔고 살면 꼭 문제가 생깁니다. 복잡해지고 견딜 수가 없어요 괴로워요 " 아! 하나님 알았습니다 "그걸 하도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중심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구경이 아닙니다. 그저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은 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서 살기 위해서 나왔으니까 내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간절해지고 물러서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 중심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것있니다. 미국에 몰링 케로도스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은혜를 처음 받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환상이 있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연결되어 있는 사닥다리인데 새까맣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닥다리에 붙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겠다고, 천국에 가겠다고. 그래서 새까맣게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그 사닥다리를 올라가는데 거이 다 올라가서 팔부쯤 되는 곳에서 검은 큰 폭풍이 있습니다. 그 폭풍 속으로 사닥다리가 서 있는데 새까맣게 올라온 사람들이 그 폭풍 속에 들어가는데 폭풍 속에 들어가자 마자 그렇게 새까맣게 올라온 수많은 사람이 전부다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걸 보여 준 것입니다.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요. 그 중의 소수의 사람들만 새까만 폭풍을 뚫고 올라가 마침내 광명한 곳에 이르는 그걸 하나님이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 케로도스야! 너는 이 두 가지 인생 중에 어느 쪽이냐 가다가 떨어지는 인생이냐 끝까지 올라가는 인생이냐"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으려고 할 때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 장애물은 이 삭개오를 통해서 보면 시사적인 것입니다. "삭개오가 키가 작아 사람들이 많아 볼 수 없어" 이 두 가지 의미가 참 깊은 부분입니다. 자기가 키가 작아 볼 수 없다는 거에요. 내가 은혜를 받아야 되겠는데 내 속에서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은혜를 못 받게 하느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에게 은혜를 주실까 이 의심이 나로 하여금 눌려 버립니다. 나로 하여금 키가 작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의심 앞에 막 눌려서 포기해 버립니다. 구경꾼으로만 남습니다. 여러분! 이런 의심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에게도 올라 옵니다. 이 의심을 쳐부수고 나가야 됩니다.
둘째로 내 안의 게으름입니다. 안이한 마음 , 적당하게 하려고 하는 거에요. 적당하게 하고도 은혜를 받겠다는 그런 게으른 마음이 꼭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적당히 하고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물며 지금 죽고 사는 문제를 놓고 어떻게 적당히 할 수 있습니까 불이 붙어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밖으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 볼 수 없었다. 그와 같이 이제는 시내밖에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또 여러 가지 일로 인해 거리낌이 생겨서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래요. " 나 누구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 " 그래서 포기합니다. 주저앉습니다. 그 사람만 손해입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꼭 만나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번 두 번 기도해서 응답이 없다! 하나님 응답 안하신다. 아닙니다. 바로 그때가 고비입니다. 지금까지 응답이 없어도 바로 더 계속해서 매 달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꼭 들어주십니다. 세 번째 단계가 내가 과연 은혜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그런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 있을 때 그 밑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이 삭개오가 올라 와 있는 뽕나무 밑에 오셔서 머물러 섰습니다. 그리고는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생각밖에 예수님께서 삭개오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삭개오야! " 그러신 다음에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는가 하면 "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삭개오는 뽕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그 뽕나무 밑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으로 삭개오는 만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는데 그런 삭개오에게 머물러 서시고 쳐다보면서 그 이름을 부르신 다음에 그것으로 "잘있어라 이제 네 마음이 기쁠 것이다"그걸로 끝나지 안했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삭개오가 바라는 것은 이 정도쯤 됩니다. 예수님만 봐도 너무도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그것도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큰 천 배, 만 배의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은혜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바 은혜를 생각하면 뭐 이 정도만 줘도 부스러기만 줘도 정말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신는 것만 해도 만입이 있어도 찬송하기 부족한 넘치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천 배, 만 배,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은혜를 계속 부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과 슬픔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물과 슬픔을 씻어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런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나를 향하신 요구입니다. 이 예수님 말씀 앞에서 내가 마지막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삭개오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했느냐! "즐거워 급히 내려와 집으로 모시고 같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삭개오가 삭개오의 집으로 가는데 따라 왔던 수많은 사람이 뒤에서 수근거리면서 뭐라고 했는가 하면 " 야!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 " 라고 했습니다. 죄인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간다. 예수님께서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했을 때 삭개오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 예수님 그저 예수님 얼굴 보는 것으로 족합니다. 저는 참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냥 이것으로 족합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못 받았을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삭개오가 큰 은혜를 받습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이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못 받는가 하면 "하나님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나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런 죄책감 때문에 예수님 앞에 담대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멀리 서서 다른 사람 은혜 받는 것을 보고 " 저 사람은 저만하니 은혜을 받지!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저 사람처럼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10년, 20년 신앙생활 하면서도 항상 멀리 서서 다른 사람 은혜 받는 것 구경만 하는 그리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니까 나는 안되는 거야!" 이러한 쓸쓸하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삭개오에게 죄인에게 지금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가 그대로 받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바로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시려고 하냐면 이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오시려고 하십니다. 가장 부끄러운 사람에게 오시려고 하십니다. "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구하러 함이 아니요 죄인을 구하러 왔다." 그 예수님 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의로워서 은혜 받을 만큼 깨끗해서 은혜 받는 것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오해를 해요! 목사님은 깨끗하니까, 경건하니까, 기도 생활 많이 하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은혜 주시겠죠 절대 아닙니다. 물론 저는 기도하려고 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하고, 순종하려고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님 앞에 가서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 내가 이렇게 기도했고, 내가 이 만큼 순종했으니 예수님 저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안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절대로 은혜 못 받습니다. 예수님 앞에 은혜를 받을 때에 내 의를 나타내고, 내 의를 주장하고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맞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은혜를 받는가 하면 아무리 의롭게 살았고, 경건하게 산다 할지라도 역시 죄인이고 부족하거든 그래서 항상 예수님 앞에 나갈 때는 " 오! 하나님 저는 참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 같은 죄인을 받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받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이 아주 중요한 것인데 "어째서 내가 은혜를 못 받느냐" 내가 은혜 받을 자격이 있어야지! 내가 술도 먹고 담배도 먹고 내가 십일조 생활도 못하는 사람이고 밤 예배도 못 나가는 사람이니까 당연하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입니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내가 네 집에 오늘 들어가야 겠다." 삭개오의 집이 죄인의 집인지 알고 계십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있는 것도 알고 그 이름도 아시고, 그가 뭘 원하는 것도 아시는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죄인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나에게 오시려고 하십니다. 오늘 여기 있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가장 부끄러운 사람에게, 가장 죄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이 오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 주여! 오시옵소서" 즐거이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때 예수님께서 이제는 여러분과 함께 사시면서 날마다 동행하시면서 우리의 범사의 생활에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때부터 새로운 부활의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 가운데 살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은혜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느냐 다시 말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은혜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리고성의 삭개오란 사람이 은혜를 받는 그러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삭개오처럼만 하면 됩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고 또 사람과 사는 상황을 다르지만 하나님은 동일합니다. 때문에 삭개오처럼 하면 우리도 언제든지 어디서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이 세 가지 단계를 밟아야 은혜를 받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참으로 은혜 받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오. .
첫째 단계는 무엇이든지 시작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시작이 잘못되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 첫 번째 단계가 무엇인가 하면 오늘 본문에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 간 것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야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은혜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봐도 예외 없이 전부다 뽕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은혜를 받겠다고 심지어 아무리 기도해도 뽕나무에 올라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 듣지 않습니다. 절대로 은혜 못 받습니다. 받았다고 하는데 잘못 받은 것입니다. 악령이 들어 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뽕나무에 올라 간 자에게만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여리고성의 세리장입니다. "여리고"라 함은 그 당시 예루살렘 다음 가는 제 2의 큰 도시입니다. 무역이 성행하는 상업 도시인데 바로 삭개오는 이 여리고성의 세리장입니다. 요즘 말하면 광주 국세청 지방청장과 격이 같은 겁니다. 그리고 부자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신분을 가진 사람이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길가에 서 있는 뽕나무에 올라갔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장난도 아닐 것이고, 그냥 해보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비상한 사건입니다. 어떻게해서 그 여리고성의 세리장이고 부자가 뽕나무에 올라갔을까! 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만일에 이 삭개오가 "내가 세리장인데 내가 부자인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 네가 어떻게 뽕나무에 올라가나" 자기의 체면과 자기 위신을 생각했더라면 뽕나무에 죽어도 못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본문에 "뽕나무에 올라가!"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삭개오가 자기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삭개오가 자기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벗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뽕나무에 올라 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뭐가 문제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는 왜 은혜를 못 받느냐 " 아까도 말했습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 봉사합니다.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바로 그 이유는 자기가 깨지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것이 너무 강해요. 자존심, 자기 의식, 심지어 신앙생활 하면서도 어떻게 신앙생활 하는가 하면 " 내가 제일 잘해야 되겠다. 내가 제일 잘 믿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내가 기도도 제일 많이 해야 되겠다." 바로 그 "자기"라고 하는 것, 자기를 높이고 세운다는 그 "자아" 그것이 깨지지 않는 한은 선한 일에서도 의로운 일에서도 하나님 앞에 용납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참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먼저 철저하게 깹니다. 아주 처절하게 깨뜨리십니다. 뭐 적당히 깨는 게 아니라 완전히 100% 깨뜨립니다. 아주 무서울 정도로 깹니다. 어떤 사람은 병으로 깹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부부간에 많은 갈등이 일어나서 처참하게 무너지게 만듭니다. "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우리 가정이 뭐냐!" 참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얼굴에 부어 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식을 통해서 하나님이 참으로 서럽도록 깹니다. 자식이 잘못 될 때 부모는 제일 가슴이 슬프고 아픈 건데 그 자녀로 인해서 부모된 내가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그 외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깨뜨리 실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깨뜨리셨습니다. 아주 철저하게 깨뜨리세요. 조금이라도 "나"라는게 올라오면, "나"라는 것이 나타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용납 안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는 눈물이 있습니다. 아픔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그거죠! 참 받아 드리기 어려워요. 또 그렇게 산 다는 것이 너무 창피스럽고, 내가 이렇게 산 다는 것이 용납이 안되는 거에요. 나한테" 내가 왜 이렇게 사는가! 내가 왜 이렇게 낮은 자리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 수 있느냐" 그것이 용납이 안되는 거에요. 받아 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까 더 몸부림을 치죠. "이 부끄러움을 빨리 벗어야 겠다. 소문 나기 전에 빨리 빨리 해결해서 그렇게 좀 자랑스런 모습으로, 떳떳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이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부끄러움과 고통의 멍에를 벗으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얽히는 것입니다. 더 꼼짝할 수 없도록 일이 더 얽히고 설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 드리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첫째 단계입니다. 이게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고통과 눈물과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이 자만심 많은 , 교만한 나는 죽으면 죽었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점점 깨달아 지는 게 있습니다. " 아! 이 고통과 이 아픔은 하나님이 나를 꺾으시는 것이구나! 나를 깨뜨리시는구나! 나를 죽이시는 것이구나!" 그렇게 이제 받아 들이기 시작합니다. 거역하고 원망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어 놓고 그것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 부끄러움과 수모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걸 하나님이 지켜보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금까지 깨뜨리시고 낮아지게 하신 하나님이 그걸 받아 들이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불어 주십니다. 세워 주시기 시작하십니다. 높이시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순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마 오늘까지 많이 분하고, 받아 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까지 이 수수께끼 같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받아 들이기 어려운 모든 고통과 눈물을 오늘부터는 아! 하나님이 나를 깨뜨리시려고 이런 것을 허락하셨다 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이제 받아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깨뜨리고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이럴 때 중심에 불이 붙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손을 들 때 그때부터 하나님은 큰 역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부활이 시작됩니다. 오늘 바로 새로운 부활의 자리가 이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단계는 뽕나무에 올라 갈 정도로 삭개오의 마음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길가에 나가 본즉 너무나 사람이 많아 도저히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고 더구나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삭개오가 물러간 것이 아닙니다. " 천천히 다음에 보자! 많은 날이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하고 물러서지 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삭개오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간절한 마음으로 살펴본 다음에 " 아 내가 저 길가 뽕나무에 올라가면 예수님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뽕나무에 올라 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주일날에 교회 나오는 여러분의 심정이 어떤 심정 인지요 어떤 마음으로 나는 하나님 앞에 나갑니까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 갈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한 마음, 물러서지 않는 마음, "내가 꼭 예수님을 만나 봐야 되겠다" 그걸 포기하지 않는 마음, 오늘 내가 주일날에 교회 온 것은 그저 주일날이니까 그저 한시간 예배드리고 가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꼭 은혜 받아야 되겠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꼭 만나야 되겠다 "하는 목마르고 간절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꼭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사람 생각으로는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지요. 사실 무슨 특별한 문제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손 목사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목에서 피가 넘어 올 정도로 구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어요. 너무도 제자신이 어리석고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고, 힘 주시고, 지혜 주시고 또 제 마음을 주장해 주셔야 하루하루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을 너무도 많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좀 자고한 마음으로 하나님 의지하는 마음을 좀 해이하게 갔고 등한하고 미지근하게 갔고 살면 꼭 문제가 생깁니다. 복잡해지고 견딜 수가 없어요 괴로워요 " 아! 하나님 알았습니다 "그걸 하도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중심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구경이 아닙니다. 그저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은 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서 살기 위해서 나왔으니까 내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간절해지고 물러서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 중심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것있니다. 미국에 몰링 케로도스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은혜를 처음 받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환상이 있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연결되어 있는 사닥다리인데 새까맣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닥다리에 붙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겠다고, 천국에 가겠다고. 그래서 새까맣게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그 사닥다리를 올라가는데 거이 다 올라가서 팔부쯤 되는 곳에서 검은 큰 폭풍이 있습니다. 그 폭풍 속으로 사닥다리가 서 있는데 새까맣게 올라온 사람들이 그 폭풍 속에 들어가는데 폭풍 속에 들어가자 마자 그렇게 새까맣게 올라온 수많은 사람이 전부다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걸 보여 준 것입니다.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요. 그 중의 소수의 사람들만 새까만 폭풍을 뚫고 올라가 마침내 광명한 곳에 이르는 그걸 하나님이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 케로도스야! 너는 이 두 가지 인생 중에 어느 쪽이냐 가다가 떨어지는 인생이냐 끝까지 올라가는 인생이냐"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으려고 할 때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 장애물은 이 삭개오를 통해서 보면 시사적인 것입니다. "삭개오가 키가 작아 사람들이 많아 볼 수 없어" 이 두 가지 의미가 참 깊은 부분입니다. 자기가 키가 작아 볼 수 없다는 거에요. 내가 은혜를 받아야 되겠는데 내 속에서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은혜를 못 받게 하느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에게 은혜를 주실까 이 의심이 나로 하여금 눌려 버립니다. 나로 하여금 키가 작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의심 앞에 막 눌려서 포기해 버립니다. 구경꾼으로만 남습니다. 여러분! 이런 의심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에게도 올라 옵니다. 이 의심을 쳐부수고 나가야 됩니다.
둘째로 내 안의 게으름입니다. 안이한 마음 , 적당하게 하려고 하는 거에요. 적당하게 하고도 은혜를 받겠다는 그런 게으른 마음이 꼭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적당히 하고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물며 지금 죽고 사는 문제를 놓고 어떻게 적당히 할 수 있습니까 불이 붙어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밖으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 볼 수 없었다. 그와 같이 이제는 시내밖에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또 여러 가지 일로 인해 거리낌이 생겨서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래요. " 나 누구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 " 그래서 포기합니다. 주저앉습니다. 그 사람만 손해입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꼭 만나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번 두 번 기도해서 응답이 없다! 하나님 응답 안하신다. 아닙니다. 바로 그때가 고비입니다. 지금까지 응답이 없어도 바로 더 계속해서 매 달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꼭 들어주십니다. 세 번째 단계가 내가 과연 은혜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그런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 있을 때 그 밑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이 삭개오가 올라 와 있는 뽕나무 밑에 오셔서 머물러 섰습니다. 그리고는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생각밖에 예수님께서 삭개오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삭개오야! " 그러신 다음에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 무슨 말씀이었는가 하면 "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삭개오는 뽕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그 뽕나무 밑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으로 삭개오는 만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는데 그런 삭개오에게 머물러 서시고 쳐다보면서 그 이름을 부르신 다음에 그것으로 "잘있어라 이제 네 마음이 기쁠 것이다"그걸로 끝나지 안했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삭개오가 바라는 것은 이 정도쯤 됩니다. 예수님만 봐도 너무도 기쁘고 만족스럽습니다. 그것도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큰 천 배, 만 배의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은혜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바 은혜를 생각하면 뭐 이 정도만 줘도 부스러기만 줘도 정말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신는 것만 해도 만입이 있어도 찬송하기 부족한 넘치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천 배, 만 배,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은혜를 계속 부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과 슬픔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물과 슬픔을 씻어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런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나를 향하신 요구입니다. 이 예수님 말씀 앞에서 내가 마지막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삭개오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했느냐! "즐거워 급히 내려와 집으로 모시고 같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삭개오가 삭개오의 집으로 가는데 따라 왔던 수많은 사람이 뒤에서 수근거리면서 뭐라고 했는가 하면 " 야!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 " 라고 했습니다. 죄인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간다. 예수님께서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했을 때 삭개오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 예수님 그저 예수님 얼굴 보는 것으로 족합니다. 저는 참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냥 이것으로 족합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못 받았을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삭개오가 큰 은혜를 받습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이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못 받는가 하면 "하나님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나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런 죄책감 때문에 예수님 앞에 담대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멀리 서서 다른 사람 은혜 받는 것을 보고 " 저 사람은 저만하니 은혜을 받지!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저 사람처럼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10년, 20년 신앙생활 하면서도 항상 멀리 서서 다른 사람 은혜 받는 것 구경만 하는 그리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니까 나는 안되는 거야!" 이러한 쓸쓸하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삭개오에게 죄인에게 지금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가 그대로 받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바로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시려고 하냐면 이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오시려고 하십니다. 가장 부끄러운 사람에게 오시려고 하십니다. "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구하러 함이 아니요 죄인을 구하러 왔다." 그 예수님 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의로워서 은혜 받을 만큼 깨끗해서 은혜 받는 것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오해를 해요! 목사님은 깨끗하니까, 경건하니까, 기도 생활 많이 하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은혜 주시겠죠 절대 아닙니다. 물론 저는 기도하려고 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하고, 순종하려고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님 앞에 가서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 내가 이렇게 기도했고, 내가 이 만큼 순종했으니 예수님 저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안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절대로 은혜 못 받습니다. 예수님 앞에 은혜를 받을 때에 내 의를 나타내고, 내 의를 주장하고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맞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은혜를 받는가 하면 아무리 의롭게 살았고, 경건하게 산다 할지라도 역시 죄인이고 부족하거든 그래서 항상 예수님 앞에 나갈 때는 " 오! 하나님 저는 참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 같은 죄인을 받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받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이 아주 중요한 것인데 "어째서 내가 은혜를 못 받느냐" 내가 은혜 받을 자격이 있어야지! 내가 술도 먹고 담배도 먹고 내가 십일조 생활도 못하는 사람이고 밤 예배도 못 나가는 사람이니까 당연하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입니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내가 네 집에 오늘 들어가야 겠다." 삭개오의 집이 죄인의 집인지 알고 계십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있는 것도 알고 그 이름도 아시고, 그가 뭘 원하는 것도 아시는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죄인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나에게 오시려고 하십니다. 오늘 여기 있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가장 부끄러운 사람에게, 가장 죄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이 오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 주여! 오시옵소서" 즐거이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때 예수님께서 이제는 여러분과 함께 사시면서 날마다 동행하시면서 우리의 범사의 생활에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때부터 새로운 부활의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 가운데 살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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