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을 정결케 하자 (눅19:45-46)
본문
본문은 개혁 바람이 불던 문민정부 초기에 자주 인용되던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시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참된 개혁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일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계획되고 의도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11-19절에 의하면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그 날 늦게 성전에 들어가셔서 여기저기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이미 저물었기 때문에 베다니에 가서 밤을 보내셨습니다(막11:11). 그 다음 날 성전을 정결케 하려는 의도를 가지시고 다시 성전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공적인 사역을 처음 시작하실 때에도 그렇게 하셨습니다(요2:13-17).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2:13-17) 하나님의 집이 그 본래 설립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 뜻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정결케 하는 것은 한 차례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이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시며 인용하신 이사야서 56장 7절은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소년이었을 때 육신의 부모와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절기를 마치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율법 선생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먼저 길을 떠났던 부모가 되돌아와서 걱정했음을 알리자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눅2:49)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셨는데 그 때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2:16) 이처럼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이 무엇이 뜻하는지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의 집은 한국아파트 0동 0호입니다. 저는 단지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저의 집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 편의상 이 점을 무시하고 말하겠습니다. 저의 집에서는 제가 주인입니다. 저는 다른 누가 저의 집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집에 오시면 개인적으로 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집안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며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제 취향이나 전문분야를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두 명이나 있지만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다투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제가 엄격하게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책꽂이에 저질만화나 폭력이나 귀신을 다루는 이야기책이 없는 것을 보며 제가 그런 것들을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안의 가구나 물품들을 보면서 제가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옷장 안에 청바지와 같은 캐주얼 옷이 없고 정장 위주로 있는 것을 보며 제가 양복을 즐겨 입는 신사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길거리에서 저를 만나거나 교회사무실에서 저를 만나는 것보다 저의 집에서 저를 만날 때 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소유하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그 안에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성전만이 아닙니다. 성전이 있기 전에 있었던 성소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의 몸도 성령님 하나님의 집입니다(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교회도 하나님의 집입니다(딤전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천국도 하나님의 집입니다(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둘째,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 56장 7절은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도 밝혀줍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집에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성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기도에도 그 곳이 기도하는 장소라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종과 종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왕상8:30,33,41,42)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인의 관습을 좇아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행3:1) 베드로와 요한이 왜 하필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갔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에서 공적 제사가 이른 아침과 9시(오후 3시), 매일 두 차례 드려졌으며 이와 함께 공적 기도예배가 수반되고 일몰에도 예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행위는 출애굽기 29장 38-42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전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과의 화목과 죄 사함을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특히 화목제와 속건제와 속죄제가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아무데서나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할 수 있고 산에서도 할 수 있고 기도원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느 곳보다도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이곳이 특별한 의미에서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몸이 병들어 고통받을 때 이곳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여러 가지 일로 답답함을 느낄 때 이곳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아삽이라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회의를 품었으나 하나님의 집인 성소에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시73:1-17). 예배시간 전에 여유 있게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새벽에 시간을 내서 나와 기도하십시오. 그 외에 어느 때라도 기도하고 싶을 때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듯이 당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집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듣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의 상세한 설계도를 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29:42,43) 우리는 온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139편 7-10절에서 고백했듯이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고 음부에 내려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새벽 날개를 치고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더 특별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다윗은 왕이었지만 하나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기서.네게 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결케 하신 후 날마다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말씀을 전하고 들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체험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자들의 이곳에서 하는 행동에 따라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분명한 인식 하에 두렵고 떠림으로 예배를 드리며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신 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장사하며 떠드는 것이 예배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서 큰 소리로 외치고 구매자들과 값을 놓고 흥정을 벌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물건 값 때문에 서로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곳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예배시간에 아이들 통제를 당부드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제 멋대로 돌아다니고 장의자를 건너타고 다녀도 본 체 만 체한다면 과연 누가 이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정결케 되지 않을 때 그분께서 엄히 책망하십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방관하시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었지만 도가 지나쳤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기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성소에서 제사를 다 마치기 전에 사람들이 드리는 제물 중 좋은 것을 강탈하곤 했습니다. 성경은 이 행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하나님께서는 자식들의 그러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던 엘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3:13)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예배당에서 제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경건해야 할 예배를 멸시하고 짓밟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목사는 주님의 위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옳지 못한 일들이 행해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금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직무 유기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자주 아이들 통제를 부탁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게 미리 통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교회가 지역사회에 파고들기 위하여 다양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장례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공부방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각종 문화행사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실태를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래 목적인 말씀 선포와 기도가 이로 인해 지장을 받고 위축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결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을 정결케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합당치 못한 것을 몰아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목적대로 살게 하십니다. 아직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분을 영접하여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 구원받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치 못한 것이 있다면 목욕하고난 후에도 발을 씻듯이 자백함으로 정결함을 받기 바랍니다.
첫째,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시며 인용하신 이사야서 56장 7절은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소년이었을 때 육신의 부모와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절기를 마치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율법 선생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먼저 길을 떠났던 부모가 되돌아와서 걱정했음을 알리자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눅2:49)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셨는데 그 때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2:16) 이처럼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이 무엇이 뜻하는지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의 집은 한국아파트 0동 0호입니다. 저는 단지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저의 집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 편의상 이 점을 무시하고 말하겠습니다. 저의 집에서는 제가 주인입니다. 저는 다른 누가 저의 집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집에 오시면 개인적으로 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집안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며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며 제 취향이나 전문분야를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두 명이나 있지만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다투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제가 엄격하게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책꽂이에 저질만화나 폭력이나 귀신을 다루는 이야기책이 없는 것을 보며 제가 그런 것들을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안의 가구나 물품들을 보면서 제가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옷장 안에 청바지와 같은 캐주얼 옷이 없고 정장 위주로 있는 것을 보며 제가 양복을 즐겨 입는 신사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길거리에서 저를 만나거나 교회사무실에서 저를 만나는 것보다 저의 집에서 저를 만날 때 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소유하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그 안에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성전만이 아닙니다. 성전이 있기 전에 있었던 성소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의 몸도 성령님 하나님의 집입니다(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교회도 하나님의 집입니다(딤전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천국도 하나님의 집입니다(요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둘째,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 56장 7절은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도 밝혀줍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집에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성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기도에도 그 곳이 기도하는 장소라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종과 종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왕상8:30,33,41,42)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인의 관습을 좇아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행3:1) 베드로와 요한이 왜 하필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갔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에서 공적 제사가 이른 아침과 9시(오후 3시), 매일 두 차례 드려졌으며 이와 함께 공적 기도예배가 수반되고 일몰에도 예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행위는 출애굽기 29장 38-42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전에서 행해지는 제사의식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과의 화목과 죄 사함을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특히 화목제와 속건제와 속죄제가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아무데서나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할 수 있고 산에서도 할 수 있고 기도원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느 곳보다도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이곳이 특별한 의미에서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몸이 병들어 고통받을 때 이곳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여러 가지 일로 답답함을 느낄 때 이곳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아삽이라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회의를 품었으나 하나님의 집인 성소에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시73:1-17). 예배시간 전에 여유 있게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새벽에 시간을 내서 나와 기도하십시오. 그 외에 어느 때라도 기도하고 싶을 때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듯이 당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집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듣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의 상세한 설계도를 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29:42,43) 우리는 온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139편 7-10절에서 고백했듯이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고 음부에 내려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새벽 날개를 치고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에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더 특별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다윗은 왕이었지만 하나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기서.네게 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결케 하신 후 날마다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말씀을 전하고 들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체험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자들의 이곳에서 하는 행동에 따라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분명한 인식 하에 두렵고 떠림으로 예배를 드리며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신 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장사하며 떠드는 것이 예배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서 큰 소리로 외치고 구매자들과 값을 놓고 흥정을 벌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물건 값 때문에 서로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곳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예배시간에 아이들 통제를 당부드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제 멋대로 돌아다니고 장의자를 건너타고 다녀도 본 체 만 체한다면 과연 누가 이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정결케 되지 않을 때 그분께서 엄히 책망하십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방관하시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었지만 도가 지나쳤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기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성소에서 제사를 다 마치기 전에 사람들이 드리는 제물 중 좋은 것을 강탈하곤 했습니다. 성경은 이 행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하나님께서는 자식들의 그러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던 엘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3:13)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예배당에서 제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경건해야 할 예배를 멸시하고 짓밟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목사는 주님의 위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옳지 못한 일들이 행해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금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직무 유기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자주 아이들 통제를 부탁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게 미리 통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교회가 지역사회에 파고들기 위하여 다양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장례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공부방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각종 문화행사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실태를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래 목적인 말씀 선포와 기도가 이로 인해 지장을 받고 위축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결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을 정결케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합당치 못한 것을 몰아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목적대로 살게 하십니다. 아직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분을 영접하여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 구원받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치 못한 것이 있다면 목욕하고난 후에도 발을 씻듯이 자백함으로 정결함을 받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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