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알지 못한다니? (눅19:47-20:19)

본문

우리는 얼마 전 국회에서 열렸던 한보청문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증인으로 소환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했습니다.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정말 모르고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더 난처한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말을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처럼 부정직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로서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추궁하다가 오히려 추궁당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역시 “모른다”는 말로 사태를 얼버무리려 했습니다. 인간 법정에서는 이런 식으로 통할 지 모르나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도전을 맞받아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주장하시고자 하는 진리를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모른다는 말로 핑계 대서는 안될 것들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나 요구하실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비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구약성경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서 5장 7절에는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19절에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여기서 농부들이 종교지도자들인 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일반 백성들까지 농부에 포함시켜도 무방하고 포도원과 나무에만 한정시켜도 무방합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공들여서 가꾸어 놓았습니다. 이사야서 5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히 기름진 산을 선택하여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었고 가장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가운데 망대도 세웠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그 후에 이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준 것이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사5:1-4)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매순간 호흡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 땅 위에서 활동하며 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갖추어 주셨습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5,28) 얼마 전에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콘도가 목회자 친교회 장소로 정해져서 갔다 왔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집보다도 훨씬 좋았습니다. 기본적인 가구와 싱크대가 갖추어져 있고 물론 텔레비젼과 전화도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부엌에 취사도구도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쌀과 부식들을 가져다가 음식을 해서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떠날 때에는 처음 있던 그대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물론 사용한 것에 대해서 숙박비를 지불해야 됩니다. 평수도 커서 한 20명쯤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숙박비가 6-7만원 정도였으니 정말 싼 편이지요. 여름캠프 때 그런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싶었습니다. 욥의 고백처럼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빈 손으로 태어났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역시 빈 손으로 떠나갑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즐기고 붙들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다 그분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우리는 콘도나 호텔에서 숙박한 후에 객실 이용료를 내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롯데월드나 자연농원에 들어갈 때 입장료 내는 것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있는 희한한 놀이시설들을 즐기는 데 이용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요구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이 땅 위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신 것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요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은 훗날 이 사실을 몰랐었다는 말로 하나님께 핑계 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별히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좋은 열매 맺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공평과 의로움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을 어찜인고.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5:4,7)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4) 또한 그분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기를 원하시며 그분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수입의 일부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십일조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기쁨으로 구제할 것을 요구하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나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신15:7,8)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19:17)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갈2:10) 우리가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위한 특별헌금을 하는 것도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런 것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이 정결케 되기를 원하시며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1:6)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합법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고 백성들을 가르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주님께서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신 듯이 보여지나 회피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그 답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로부터 세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습니다(13절). 주인이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주장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여러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십니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이미 하셨던 일들과 지금 하시는 일들은 다 하나님의 권세(권위)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침례 요한의 사역에 관해서 질문하셨습니다.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4절)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님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요1:29) 요한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제사장이었으며 부모 모두 의로움이 돋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은 그런 부모에게 태어나서 광야에서 일반적인 음식을 거부하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기이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불 같은 멧세지를 전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받아들이고 회개하며 그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눅7:29). 사실상 그는 구약시대의 선지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눅16:16).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침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침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눅7:29,30)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16)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곤궁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침례를 거부했습니다(눅7:30). 예수님을 거부한 것 역시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증거를 거부했음을 나타냅니다. 문제는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자신들을 돌로 칠 것을 우려해서 공개적으로 침례 요한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대답한 것이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서, 천사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증거하기도 하셨고, 친히 그 사실을 증거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친히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서 이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증거하는 내용도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것을 건성으로라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훗날 이 사실을 몰랐다는 말로 하나님께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운 심판이 있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마지막으로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주인이 보낸 종들에게 했던 것 같이 그 아들에게 행했으며 그들에게 했던 것보다 더 악하게 그 아들에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계시의 마지막 사자이십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그분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유대인 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할 경우 무섭고도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기회는 또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말고 그분께 순종하고 믿으라고 권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히2:2,3)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기를 거부할 때 그들은 그분을 심판주로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거치는 돌이 되어 그들로 깨어지게 할 것이며 그들을 가루로 만들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2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