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된다 (눅18:1-8)
본문
오늘 예수님 말씀 속에 원한에 사무친 한 여인이 나옵니다. 원한과 한, 많은 슬픔과 상처를 지닌 한 가련한 여인, 더구나 혼자 사는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고, 또 그 상처가 얼마나 많았던지 한이 맺혔습니다. 남자고, 여자고, 어린 아이고, 나이든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그런 원한이 있습니다. 저도 참 원한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란 게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해주고, 싸매주고 사는 것이 당연한 도리입니다만, 실제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우선 가정부터 들여다 보면, 사랑의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 안에서부터 상처가 생깁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하루에도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 받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가슴에 한으로 남겨집니다. 그렇지 않아야 하겠습니다만은, 들여다 보면, 이 땅의 수많은 가정들이 말할 수 없는 한이 쌓여진 가정들입니다. 상처 투성이 입니다. 당연히 따뜻한 부모의 가슴에 안겨서 곱게 곱게 자라야 될 어린이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부모에게 상처를 받으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의 영혼이 얼마나 쓸쓸하고 얼마나 허전한 지 이런 영혼들이 자라서 또 상처를 받고 또한이 맺혀지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한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가정 밖의 세상 속에 들어가면 더욱 잔인하고 인정 사정 없는 짖밟힘이 있습니다. 정글의 법칙이라고 하나요 약육 강식의 세계에서 약한 자는 사정없이 짖 밟힘을 받고, 꺾어지고, 내어 쫓기는, 피와 눈물이 없는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리 가도, 저리를 가도 상처만 쌓이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상처가 쌓이는 것입니다. 이런 한과 억울함, 슬픔과 눈물, 이것이 다 있습니다. 이러한 원한과 상처가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은 절대로 불행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처와 분함과 원한이 있는 사람은 또 상처를 잘 받습니다. 화를 잘 낸다는 겁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타격을 받습니다. 상처를 건들면 상처가 터지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고, 화를 잘 내고 신경질을 잘 내고, 이런 사람들이 한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또 이런 사람은 자기도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줘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하는 투가 그렇고 자기도 모르게 뱉는 말이 그렇고, 표정이 그렇고,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하고 같이 사는 게 참 피곤합니다. 참 어려워요. 그러니까, 그런 부부끼리 사니 하루 하루가 참 말로는 못할 지옥입니다. 너무 어려워요. 할 수 없이 살긴 살지요. 그리고 이런 원한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데, 얼굴에 평화가 있겠습니까 다 굳어져 있어요. 성질이 나 있어요. 이렇게 화가 나 있어요. 폭발 직전의 화살 같아요. 평화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나의 마음부터 아픈데 누구를 사랑합니까 그래서 이 고통과 원한을 어떻게 무엇으로 푸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 이 여인이 자신의 맺힌 원한을 풀기 위해서, 자기는 힘이 없으니까 법이라고 하는, 법의 힘을 통해서 자기 원한을 풀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법에다 호소를 했습니다. 나를 때린 자에게 내가 힘이 있으면 쳐버릴 터인데, 내가 힘이 없으니까 나라의 법의 힘으로 때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한이 풀어지겠습니까 그런 방법은 나를 때리니까 나도 너를 때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것은 오히려 더 원한 위에 원한을 쌓는 것입니다. 피는 피를 부르는 것입니다. 자자 손손 원수지간이 됩니다. 그것은 끝없는 다툼과 저주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재판관이 "내가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리라" 물론 풀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 과부를 괴롭힌 사람에게 일년 징역을 선고했다고 합시다. 우선은 그게 풀어진 것 같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여인의 원한이 풀어졌겠습니까 아닙니다.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이 시원할 리도 없는 법입니다. 또 징역살이한 사람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를 갈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신다." 하나님이 풀어주시는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 원한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어주셔야 근원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오늘 여기 앉아있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다 원한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 없습니다.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고, 슬픔을 안고 있고, 분하이 있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원한이 오늘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님의 치유 안에서 모든 원한이 오늘로부터 풀어지게 되는 그런 큰 은혜와 승리가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가지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첫째로, 이 원한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의 상처와 슬픔, 그 근원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다른 게 아닙니다. 마음의 우환, 아! 괴롭다. 이것은 곧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사랑을 받지 못한 영혼의 탄식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얻어 맞기만 했고 눌림만 당했지 그 누가 나를 정말로 사랑해 주는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못 만난 것이예요.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부모는 부모로되 그 부모가 정말로 나를 사랑해 주었는가 할 때에 그렇지 않죠. 현실입니다. 실제입니다. 그게 그렇게 시작해서 오늘에 이 나이 먹도록 정말로 그 누가 나를 정말로 사랑해 주었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슬픔과 상처 밖에 남는 게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모습이예요. 그러니 이 억울함과 이 슬픔과 이 두려움과 이 한을 근본적으로 푸는 방법은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거기서부터 내 얼음 덩어리가 풀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 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결혼을 여섯 번 합니다. 왜 결혼을 여섯 번 했는가 첫번째 결혼한 남자에게서 사랑을 찾았더라면 다른 곳으로 갔겠습니까 이유야 어떻든지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했습니다. 그 사람의 가슴에서 안정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쓸쓸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섯 번째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놓고 세상 사람들은 그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잘못 된 여자다. 형편 없는 여자다. 그러니 이 여인에게 남는 것은 마음의 쓰디쓴 상처만 남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져 버리는 인생입니다. 이 깨져버리는 인생이 양철 조각, 휴지 조각 같이 찢겨지고 으깨어진 이 병든 영혼이 우물가에 물 길러 갔을 때 한 이상한 남자를 만납니다. 대낮 열두시에 이상한 남자하고 대화를 하는 가운데 이상한 느낌이 이 여인의 가슴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 이 나이 먹도록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런 이상 한 사람이구나! 그 분이 말하기를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또 그 분이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여인아, 네 말이 옳다" 바로 이 한마디가 이 여인의 가슴을 쿵 울린 겁니다. 왜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인아, 네 말이 옳다. 옳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는 잘못 되었다. 너는 틀렸다. 너는 왜 그 모양인가! 항상 부정, 항상 판단만 받고, 정죄만 받았던 여인이 생전 처음으로 네가 옳다. 나를 세워준 말, 나를 인정해 준 말, 나를 대접해 준 말을 처음 들어본 것입니다. 나를 보고 옳다는 분이 다 있구나! 이거 참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상처 받습니까 너는 틀렸다. 그겁니다. 너는 틀렸다. 그것이 그렇게 아픈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아, 네 말이 옳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여인아,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는데, 지금 있는 남편도 너의 남편이 아니니라아! 이 분은 나를 아시는구나! 내 비밀을 감추고 싶고 덮어 버리고 싶은 나의 부끄러움도 아시는구나!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삶을 훤히 알고 계시는구나!"
그런데. 그런데. 왜 이렇게 따뜻할까. 이렇게 왜 푸근한가. 그 가슴에 기대고 싶어. 그 가슴에 안기고 싶어.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뛰어가서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나와 보시오. 나의 행한 일 을 다 말한 사람들 와 보시오.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십니까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나를 참으로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라 그 말이예요. 그리스도란 말은 비로소 이 여인은 그 마음이 안길 곳, 기댈 곳을 찾은 것입니다. 처음으로 이 여인을 이해해 주고 나쁘다고 하지 않고 참으로 품어 주는 분, 사랑의 가슴을 만난 것입니다. 이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저도 형편없는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세상에 태어나서 제 의식이 깨어난 후로부터 상처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 상처가 쌓이고 쌓이고 쌓였습니다. 젊은이의 가슴에 이런 저런 일로 억울한 일, 분한 일, 슬프고 외로운 일들, 춥고 배고픈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아!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꼭 그 사마리아 여인 같았어요. 내 모든 부끄러움, 내 모든 죄, 덮어버리고 싶고, 감추고 싶은 죄까지도 훤히 아시면서도 나를 사랑해 주시는분을 만났을 때, 그 분이 예수님임을 알았을 때,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5였습니다. 25년동안 쌓인 그 슬픔은, 그 한이 몇 날 몇 일을 주님의 가슴에서 울었어요. 그게 하루 아침에 녹아지겠습니까 그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때로 이런 저런 상처를 받고, 또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한 번 나를 품으신 주님은 더 끌어안아 주시고 더 붙잡아 주시고, 더 세워 주셔서, 이제는 주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좀 어지간한 상처를 받아도 괜찮아요. 왜요 모자란 부분은 주님이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사랑 받지 못해서 쓸쓸하고 허전하고 분하고 그럴 때마다 주님이 채워 주시고 또 채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그 원한과 뿌리 깊은 그 슬픔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방법이 없어요. 그것을 풀지 못한 한은 영원히 불행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십니다. 내게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그 원한이 아닙니까 한! 슬픔!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예수님의 가슴에 여러분의 그 억울함과 그 분함과 그 슬픔과 그 한을 예수님의 가슴에 다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셔야 되요. 저는 그냥 거기에 기대었습니다. 너무 좋아서요. 또 날마다 그래요. 괴로우면, 주님! 또 슬프면, 또 주님. 또 괴로운 일 당하면 또 주여! 왜요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다. 나도 사람이니까, 나를 때렸어. 좋아, 나는 두 대로 때린다. 이런 생각이 일어납니다. 또 그렇게 되면 안되거든요. 그럴때마다 주님께서 싸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예수님의 가슴에 안기셔서 거기다가 다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둘째로, 원한을 풀어주시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그게 사람의 방법이고 세상 방법이죠 네가 내 이 하나 뽑았으니 나는 두 개 뽑는다, 집게 가져와서 뽑죠. 그러면 그 사람이 가만히 있답니까 그 사람은 박살 내어 버리려고 달려듭니다.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원한을 어떻게 풀어주시느냐면 이렇게 풀어 주시더군요. 나를 꽈악 끌어 안으신 다음에 주님의 사랑 안에 사는 사람 다 그렇잖아요. 사랑하시고 싸매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들아, 용서해 줘라." 그러십니다. 용서해 주어라. 네 부모도, 부모이지만 용서해 줘라. 그겁니다. 왜요 부모님이 내게 상처 주었으니까. 얼마나 운지 아세요 그 때 그 마음이 "아들아, 뭐 그런 일 가지고 그러니. 용서해 줘라." 그게 안되는 겁니다. 용서란 말은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겁니다. 용서는 예수님만이 하시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래야 되겠다 하면서도 이게 안 잊어져 버립니다. 다 잊어 버려야지 하면서도 불쑥 생각나고, 불쑥 생각나고, 푹 올라오고, 한 번 올라오면 다 헝클어져 버리고 열이 나고, 그럴 때마다 주님 끌어안아 주시면서 나를 싸매 주시면서 내 힘으로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나를 바로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꺼번에 안되는거죠. 조금씩 조금씩, 싹 나듯이 나를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셔요. 나를 만든단 말이예요. 그리하면 그 사람이 불쌍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래야 용서가 나와요. 그렇겠구나!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또 그 사람도 얼마나 슬픔이 많은 사람인가. 그렇게 되니까, 그 영혼도 나보다 더 춥지, 나보다 더 상처 많은 사람이지, 보니까 그렇구나! 나 보다 더 상처가 많은 사람이구나! 나보다 더 쓸쓸한 사람이구나!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이구나! 그렇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주님 가신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야, 이렇게 되어야 내 마음의 원한이 뿌리부터 없어지는 것이지, 그저 적당한 믿음으로 그저 만나면 겉으로 웃고 용서한 것 같이 친절하게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그대로 있어요. 뿌리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순 거짓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품 안에서 주님께서 내 가슴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분하지! 그러나 용서해주어라. 용서해 줘라." 하고 나를 만들어 주심으로 내 속에서 부터 그 원한이 없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원한이 내 속에서 부터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입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승리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요. 내가 먼저 죽어요. 내가 괴로워서 죽어요. 이 원한은 꼭 암세포 같아요. 그 억울함, 그 분한 마음이 나를 잡아 뜯어 먹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내 영혼 속에 십자가를 확실하게 심어 놓으시고 십자가로 이겨라 하십니다. 그렇게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됩니까 그러나 주님이 되게 해 주십니다. 세번째 방법은 왜 내가 상처를 받고 무시를 당하고 눌림을 당합니까 이유가 있지요. 내가 힘이 없으니까 그래요, 힘이 없으니까. 내가 예수님 안에서 용서하고 용서하니까 힘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아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나를 주님의 형상으로 바꾸셔서 용서함으로 십자가로 승리하게 하시면서 또 하나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 갔던 길입니다. 자!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 자기 형들에게 형들이 원수가 되어가지고 이 요셉을 얼마나 괴롭혔습니까 애굽에 팔려서 손과 발에 무거운 쇠고랑을 채우고 움직일 때마다 쇠고랑이 철거덩 철거덩 소리가 나면서 그 쇠고랑에 매여 살 때에 얼마나 이가 갈리고 분했겠습니까 그러나, 이 요셉을 하나님이 끌어 안으시고 "요셉아, 요셉아, 네 형들을 용서해 주어라. 용서해 주어라. 용서 못해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리하지 않으면 네가 진다. 그리고 앞으로 네게 예비한 축복을 못받는다. 네 마음에 원한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축복을 하겠느냐 용서해 주어라."
조금씩 조금씩 녹아지는데 마침내는 예.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날사랑하시니 하나님 사랑으로 족합니다. 예, 하나님! 사람이란 그렇습니다. 다 그런 건데 예. 다 용서하겠습니다.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데. 뭐. 그까짓것.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높이 들어서 애굽의 총 리로 세워놓았을 때 누가 그를 무시합니까 한나가 실로 성소에 기둥을 붙들고 슬피 울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내 마음이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으니이다." 그랬습니다. 이 한나의 슬픔과 원통함과 격동을 어떻게 풉니까 브닛나를 용서했어요 브닛나가 눈물의 씨앗이지요, 브닛나는 너는 자식도 못낳는 여자다 하고 자꾸 한나를 무시하고 괴롭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슬픔과 마음의 원통과 격동함이 많은 이 한나를 사랑하사 그의 원통과 격동함을 풀어주시는데 어떻게 풀어주셨습니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품에 안겨주심으로 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품으시고 용서하게 하시되, 우선 내 마음이 녹아져서 용서하게 하시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나를 높이 세우십니다. 거기까지 가야합니다. 내가 없이 살아보십시오. 할 수 없어요. 내 속에 예수님이 계셔도 무시 받아요. 교회에서도 무시받아요. 그러니 어찌합니까 되어야 하는데 되는 방법이 어디있습니까 가진 것 없고 힘 없는데 어떻게 됩니까 궁핍하죠. 그러니까 잘 되어야죠.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1절에 "항상 기도하되 낙망치 말라." 그리고 7절에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이 말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서, 주여. 결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요셉도, 다윗도, 한나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뭔가에 무시받는 겁니다.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합니까 억울하면 출세하라고까지 하지요. 그러니까 무시 안받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 없고 힘이 없으니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시니까, 그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오 하나님! 오 아버지!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받지 않도록. 참말로 그렇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억울하고 분하니까, 그러니까 더 하나님을 의지했어요. 나를 사랑하신 이는 하나님 밖에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를 반드시 높이 세우십니다. 이 길 밖에는 없어요. 지금은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 감히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도록 좀더 높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하나님밖에 없어요. 다시는 무시받기 싫거든 오늘부터 밤낮으로 부르짖으세요. 하나님께서 꼭 그렇게 되게 해 주십니다. 지혜도 주시고, 길도 열어 주시고 힘도 주시고, 눈을 열어 주시고, 쇠빗장도 꺾어 주시고 홍해 바다도 갈라지게 해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해 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 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처와 분함과 원한이 있는 사람은 또 상처를 잘 받습니다. 화를 잘 낸다는 겁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타격을 받습니다. 상처를 건들면 상처가 터지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고, 화를 잘 내고 신경질을 잘 내고, 이런 사람들이 한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또 이런 사람은 자기도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줘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하는 투가 그렇고 자기도 모르게 뱉는 말이 그렇고, 표정이 그렇고,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하고 같이 사는 게 참 피곤합니다. 참 어려워요. 그러니까, 그런 부부끼리 사니 하루 하루가 참 말로는 못할 지옥입니다. 너무 어려워요. 할 수 없이 살긴 살지요. 그리고 이런 원한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데, 얼굴에 평화가 있겠습니까 다 굳어져 있어요. 성질이 나 있어요. 이렇게 화가 나 있어요. 폭발 직전의 화살 같아요. 평화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나의 마음부터 아픈데 누구를 사랑합니까 그래서 이 고통과 원한을 어떻게 무엇으로 푸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 이 여인이 자신의 맺힌 원한을 풀기 위해서, 자기는 힘이 없으니까 법이라고 하는, 법의 힘을 통해서 자기 원한을 풀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법에다 호소를 했습니다. 나를 때린 자에게 내가 힘이 있으면 쳐버릴 터인데, 내가 힘이 없으니까 나라의 법의 힘으로 때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원한이 풀어지겠습니까 그런 방법은 나를 때리니까 나도 너를 때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것은 오히려 더 원한 위에 원한을 쌓는 것입니다. 피는 피를 부르는 것입니다. 자자 손손 원수지간이 됩니다. 그것은 끝없는 다툼과 저주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재판관이 "내가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리라" 물론 풀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 과부를 괴롭힌 사람에게 일년 징역을 선고했다고 합시다. 우선은 그게 풀어진 것 같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여인의 원한이 풀어졌겠습니까 아닙니다.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이 시원할 리도 없는 법입니다. 또 징역살이한 사람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를 갈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신다." 하나님이 풀어주시는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 원한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어주셔야 근원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오늘 여기 앉아있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다 원한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 없습니다.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고, 슬픔을 안고 있고, 분하이 있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원한이 오늘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님의 치유 안에서 모든 원한이 오늘로부터 풀어지게 되는 그런 큰 은혜와 승리가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가지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첫째로, 이 원한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의 상처와 슬픔, 그 근원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다른 게 아닙니다. 마음의 우환, 아! 괴롭다. 이것은 곧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사랑을 받지 못한 영혼의 탄식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얻어 맞기만 했고 눌림만 당했지 그 누가 나를 정말로 사랑해 주는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못 만난 것이예요.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부모는 부모로되 그 부모가 정말로 나를 사랑해 주었는가 할 때에 그렇지 않죠. 현실입니다. 실제입니다. 그게 그렇게 시작해서 오늘에 이 나이 먹도록 정말로 그 누가 나를 정말로 사랑해 주었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슬픔과 상처 밖에 남는 게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모습이예요. 그러니 이 억울함과 이 슬픔과 이 두려움과 이 한을 근본적으로 푸는 방법은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거기서부터 내 얼음 덩어리가 풀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 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결혼을 여섯 번 합니다. 왜 결혼을 여섯 번 했는가 첫번째 결혼한 남자에게서 사랑을 찾았더라면 다른 곳으로 갔겠습니까 이유야 어떻든지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했습니다. 그 사람의 가슴에서 안정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쓸쓸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섯 번째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놓고 세상 사람들은 그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잘못 된 여자다. 형편 없는 여자다. 그러니 이 여인에게 남는 것은 마음의 쓰디쓴 상처만 남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져 버리는 인생입니다. 이 깨져버리는 인생이 양철 조각, 휴지 조각 같이 찢겨지고 으깨어진 이 병든 영혼이 우물가에 물 길러 갔을 때 한 이상한 남자를 만납니다. 대낮 열두시에 이상한 남자하고 대화를 하는 가운데 이상한 느낌이 이 여인의 가슴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 이 나이 먹도록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런 이상 한 사람이구나! 그 분이 말하기를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또 그 분이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여인아, 네 말이 옳다" 바로 이 한마디가 이 여인의 가슴을 쿵 울린 겁니다. 왜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인아, 네 말이 옳다. 옳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는 잘못 되었다. 너는 틀렸다. 너는 왜 그 모양인가! 항상 부정, 항상 판단만 받고, 정죄만 받았던 여인이 생전 처음으로 네가 옳다. 나를 세워준 말, 나를 인정해 준 말, 나를 대접해 준 말을 처음 들어본 것입니다. 나를 보고 옳다는 분이 다 있구나! 이거 참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상처 받습니까 너는 틀렸다. 그겁니다. 너는 틀렸다. 그것이 그렇게 아픈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아, 네 말이 옳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여인아,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는데, 지금 있는 남편도 너의 남편이 아니니라아! 이 분은 나를 아시는구나! 내 비밀을 감추고 싶고 덮어 버리고 싶은 나의 부끄러움도 아시는구나!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삶을 훤히 알고 계시는구나!"
그런데. 그런데. 왜 이렇게 따뜻할까. 이렇게 왜 푸근한가. 그 가슴에 기대고 싶어. 그 가슴에 안기고 싶어.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뛰어가서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나와 보시오. 나의 행한 일 을 다 말한 사람들 와 보시오.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십니까 그리스도가 무엇입니까 나를 참으로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라 그 말이예요. 그리스도란 말은 비로소 이 여인은 그 마음이 안길 곳, 기댈 곳을 찾은 것입니다. 처음으로 이 여인을 이해해 주고 나쁘다고 하지 않고 참으로 품어 주는 분, 사랑의 가슴을 만난 것입니다. 이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저도 형편없는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세상에 태어나서 제 의식이 깨어난 후로부터 상처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 상처가 쌓이고 쌓이고 쌓였습니다. 젊은이의 가슴에 이런 저런 일로 억울한 일, 분한 일, 슬프고 외로운 일들, 춥고 배고픈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아!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꼭 그 사마리아 여인 같았어요. 내 모든 부끄러움, 내 모든 죄, 덮어버리고 싶고, 감추고 싶은 죄까지도 훤히 아시면서도 나를 사랑해 주시는분을 만났을 때, 그 분이 예수님임을 알았을 때,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25였습니다. 25년동안 쌓인 그 슬픔은, 그 한이 몇 날 몇 일을 주님의 가슴에서 울었어요. 그게 하루 아침에 녹아지겠습니까 그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때로 이런 저런 상처를 받고, 또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한 번 나를 품으신 주님은 더 끌어안아 주시고 더 붙잡아 주시고, 더 세워 주셔서, 이제는 주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좀 어지간한 상처를 받아도 괜찮아요. 왜요 모자란 부분은 주님이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사랑 받지 못해서 쓸쓸하고 허전하고 분하고 그럴 때마다 주님이 채워 주시고 또 채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그 원한과 뿌리 깊은 그 슬픔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방법이 없어요. 그것을 풀지 못한 한은 영원히 불행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십니다. 내게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그 원한이 아닙니까 한! 슬픔!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예수님의 가슴에 여러분의 그 억울함과 그 분함과 그 슬픔과 그 한을 예수님의 가슴에 다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셔야 되요. 저는 그냥 거기에 기대었습니다. 너무 좋아서요. 또 날마다 그래요. 괴로우면, 주님! 또 슬프면, 또 주님. 또 괴로운 일 당하면 또 주여! 왜요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다. 나도 사람이니까, 나를 때렸어. 좋아, 나는 두 대로 때린다. 이런 생각이 일어납니다. 또 그렇게 되면 안되거든요. 그럴때마다 주님께서 싸매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예수님의 가슴에 안기셔서 거기다가 다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둘째로, 원한을 풀어주시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그게 사람의 방법이고 세상 방법이죠 네가 내 이 하나 뽑았으니 나는 두 개 뽑는다, 집게 가져와서 뽑죠. 그러면 그 사람이 가만히 있답니까 그 사람은 박살 내어 버리려고 달려듭니다.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원한을 어떻게 풀어주시느냐면 이렇게 풀어 주시더군요. 나를 꽈악 끌어 안으신 다음에 주님의 사랑 안에 사는 사람 다 그렇잖아요. 사랑하시고 싸매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들아, 용서해 줘라." 그러십니다. 용서해 주어라. 네 부모도, 부모이지만 용서해 줘라. 그겁니다. 왜요 부모님이 내게 상처 주었으니까. 얼마나 운지 아세요 그 때 그 마음이 "아들아, 뭐 그런 일 가지고 그러니. 용서해 줘라." 그게 안되는 겁니다. 용서란 말은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겁니다. 용서는 예수님만이 하시는 것이 용서입니다. 그래야 되겠다 하면서도 이게 안 잊어져 버립니다. 다 잊어 버려야지 하면서도 불쑥 생각나고, 불쑥 생각나고, 푹 올라오고, 한 번 올라오면 다 헝클어져 버리고 열이 나고, 그럴 때마다 주님 끌어안아 주시면서 나를 싸매 주시면서 내 힘으로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나를 바로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꺼번에 안되는거죠. 조금씩 조금씩, 싹 나듯이 나를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셔요. 나를 만든단 말이예요. 그리하면 그 사람이 불쌍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래야 용서가 나와요. 그렇겠구나!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또 그 사람도 얼마나 슬픔이 많은 사람인가. 그렇게 되니까, 그 영혼도 나보다 더 춥지, 나보다 더 상처 많은 사람이지, 보니까 그렇구나! 나 보다 더 상처가 많은 사람이구나! 나보다 더 쓸쓸한 사람이구나!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이구나! 그렇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주님 가신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야, 이렇게 되어야 내 마음의 원한이 뿌리부터 없어지는 것이지, 그저 적당한 믿음으로 그저 만나면 겉으로 웃고 용서한 것 같이 친절하게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그대로 있어요. 뿌리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순 거짓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품 안에서 주님께서 내 가슴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분하지! 그러나 용서해주어라. 용서해 줘라." 하고 나를 만들어 주심으로 내 속에서 부터 그 원한이 없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원한이 내 속에서 부터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입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승리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요. 내가 먼저 죽어요. 내가 괴로워서 죽어요. 이 원한은 꼭 암세포 같아요. 그 억울함, 그 분한 마음이 나를 잡아 뜯어 먹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내 영혼 속에 십자가를 확실하게 심어 놓으시고 십자가로 이겨라 하십니다. 그렇게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됩니까 그러나 주님이 되게 해 주십니다. 세번째 방법은 왜 내가 상처를 받고 무시를 당하고 눌림을 당합니까 이유가 있지요. 내가 힘이 없으니까 그래요, 힘이 없으니까. 내가 예수님 안에서 용서하고 용서하니까 힘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아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나를 주님의 형상으로 바꾸셔서 용서함으로 십자가로 승리하게 하시면서 또 하나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 갔던 길입니다. 자!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 자기 형들에게 형들이 원수가 되어가지고 이 요셉을 얼마나 괴롭혔습니까 애굽에 팔려서 손과 발에 무거운 쇠고랑을 채우고 움직일 때마다 쇠고랑이 철거덩 철거덩 소리가 나면서 그 쇠고랑에 매여 살 때에 얼마나 이가 갈리고 분했겠습니까 그러나, 이 요셉을 하나님이 끌어 안으시고 "요셉아, 요셉아, 네 형들을 용서해 주어라. 용서해 주어라. 용서 못해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리하지 않으면 네가 진다. 그리고 앞으로 네게 예비한 축복을 못받는다. 네 마음에 원한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축복을 하겠느냐 용서해 주어라."
조금씩 조금씩 녹아지는데 마침내는 예.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날사랑하시니 하나님 사랑으로 족합니다. 예, 하나님! 사람이란 그렇습니다. 다 그런 건데 예. 다 용서하겠습니다.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데. 뭐. 그까짓것.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 요셉을 높이 들어서 애굽의 총 리로 세워놓았을 때 누가 그를 무시합니까 한나가 실로 성소에 기둥을 붙들고 슬피 울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내 마음이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으니이다." 그랬습니다. 이 한나의 슬픔과 원통함과 격동을 어떻게 풉니까 브닛나를 용서했어요 브닛나가 눈물의 씨앗이지요, 브닛나는 너는 자식도 못낳는 여자다 하고 자꾸 한나를 무시하고 괴롭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슬픔과 마음의 원통과 격동함이 많은 이 한나를 사랑하사 그의 원통과 격동함을 풀어주시는데 어떻게 풀어주셨습니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품에 안겨주심으로 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품으시고 용서하게 하시되, 우선 내 마음이 녹아져서 용서하게 하시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나를 높이 세우십니다. 거기까지 가야합니다. 내가 없이 살아보십시오. 할 수 없어요. 내 속에 예수님이 계셔도 무시 받아요. 교회에서도 무시받아요. 그러니 어찌합니까 되어야 하는데 되는 방법이 어디있습니까 가진 것 없고 힘 없는데 어떻게 됩니까 궁핍하죠. 그러니까 잘 되어야죠.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1절에 "항상 기도하되 낙망치 말라." 그리고 7절에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이 말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서, 주여. 결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요셉도, 다윗도, 한나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뭔가에 무시받는 겁니다.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합니까 억울하면 출세하라고까지 하지요. 그러니까 무시 안받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 없고 힘이 없으니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시니까, 그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오 하나님! 오 아버지!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받지 않도록. 참말로 그렇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억울하고 분하니까, 그러니까 더 하나님을 의지했어요. 나를 사랑하신 이는 하나님 밖에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를 반드시 높이 세우십니다. 이 길 밖에는 없어요. 지금은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 감히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도록 좀더 높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하나님밖에 없어요. 다시는 무시받기 싫거든 오늘부터 밤낮으로 부르짖으세요. 하나님께서 꼭 그렇게 되게 해 주십니다. 지혜도 주시고, 길도 열어 주시고 힘도 주시고, 눈을 열어 주시고, 쇠빗장도 꺾어 주시고 홍해 바다도 갈라지게 해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해 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 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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