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풀어 주지 않겠느냐? (눅18:1-8)
본문
오늘의 본문은 윤리성이나 사회질서, 도덕을 논하려는데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7장 후반부를 일겅 보면 이는 말세에 믿는 자들이 기도를 계속하라는 권면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습관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교인이라면 모두가 긍정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며 기도 제목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하지만 쉽게 포기하는 경험을 몇번씩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이 기도하려는 결단이 얼마나 쉽게 좌절될 수 있는가를 잘 이해하셨습니다. 이렇게 문제 해결도 못한 채, 노력과 시간만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고통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온 힘을 쏟으셨습니다.
1.주님께서 기도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기도의 특권과 가능성에 대한 예수님의 주장들은, 우리들의 옅은 믿음에서 보면 지나치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가령 예수님은 기도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다수의 특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언덕길을 상당히 높이 올라간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터덜터덜 걸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합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마7: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기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가 아무리 강한 자일 경우에도 실패가 찾아올 올 수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 어느 날 예수님은 바로 직전에 엄청난 실패를 당한데, 흥분하고 당황하는 제자들을 목격하셨습니다. 어떤 부모가 제자들에게 병든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병을 고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비웃음을 찾고, 믿고 병든 아들을 데리고 왔던 부모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등장하시므로써 실패는 승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과 남게 되었을 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의 실패를 정확히 진단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부모와 그 아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무관심한 탓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노력이 부족하여 실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심각하고도 진지한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제자들의 실패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의 도움을 받고서도 힘에 부치는 일을 하였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진단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원인이 기도의 부족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 나갈 때,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여도 실패를 면할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그가 기도에 대하여 행하신 것은 더욱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11:1)하고 말했던 것은 기도에 관한 설교가 끝난 후가 아니라 스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기도의 진실성과 가치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이런 기도를 어느 정도는 자신들도 드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2)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주님은 바쁘고 승리하는 삶 가운데서 기도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셨던 것일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은 기도에 최우선을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중심은 祈禱였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기도가 전투의 준비 작업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 기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투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상을 타러 가듯 승리자가 그 정복한 전리품을 가지러 가듯 기도하면서 살아 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그의 온 힘을 쏟아 부으시며 사력을 다하여 투쟁에 임하고 계시는지 그의 땀이 굵은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활동하시는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등하고 투쟁하던 때는 어느 때였고 평온하고 안정되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투쟁하던 때는 언제나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에게 혼신의 힘이 요청되었던 일은 바로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마친 후에는 승리자가 되어 기도하던 자리를 떠나 승리의 전리품을 가지러 나아갔습니다.
2.기도에서 오는 보답은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을 우리의 삶으로 영접해 들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문을 두드리면서 모셔들이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께 문을 열어 드리는 행동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분이 됩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언제나 새롭게 경험하는 일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는 물론 한 집단으로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으신 적이 있다면 중요한 결과는 이 응답을 통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가게 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물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선물을 주시는 자보다는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주는 가장 풍성한 보답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2)기도는 새로운 용기와 새로운 힘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큰 위험 앞에 서 있고, 우리의 적이 아무리 잔인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침착한 마음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사40:31)고 말하였을 때 이 말은 타인의 조언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곤란한 일을 당하여도 힘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스탠리는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리빙스턴을 만나 후 하나님을 만났는데 기도하지 않는 그의 동료들이 가지지 못한 힘과 용기를 갖게 되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삶의 문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를 하십시오. 다니엘이 승리를 거둔 이야기는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바벨론의 대신들이 앞으로 30일동안에는 아무도 왕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기도 드려선 안 된다는 법률에 대한 왕의 재가를 받았을 때 이들은 다니엘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형 영장에 대한 서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기 방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예전과 같이"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는 그의 생활의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이 습관은 다니엘을 굳건한 자세로 서게 만들어 주었으며 시련기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페허가 된지 오래입니다. 오늘날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할 줄을 알았던 다니엘입니다. 기도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3)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수단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었습니다. 시몬이 시험에 들 것을 내다보신 예수님은 시몬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헤어지기 전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눈앞에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그를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간구하셨을 때 바로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믿는다면 기도는 영광 받으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 하나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훌륭하게 본받았던 바울은 기도에 대한 신앙도 본받았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전도하여 믿게된 사람들과 친구들을 기억하였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 생활을 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타락한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잘못된 교인들이 기도 생활을 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약한 믿음을 가진 자라도 기도를 통하여 은총과 능력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기도)함으로 도우라"(고후1:11)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였지만 때로는 도울 수 있는 길이 기도일 뿐일 때도 있습니다. 돈이 있다면 선교 단체에 헌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라도 헌금하기 어려운 만큼 기도를 통하여 도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길이 기도 이외의 다른 길이 없을 때가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마저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기도가 유일한 수단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과 친구들을 위하여 밤낮으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기도를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4)기도를 쉬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수단이기 때문에 기도는 특권을 넘어서는 하나의 엄숙한 義務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삼상12:23).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뜨겁지도 않고 힘도 없다면 기도하십시오. 목회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성가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교회학교에서 일하는 분들과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도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때에 무익한 교회가 되거나 무익한 예배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므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비켜 자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오랜 세월 동안 강도들과 함께 피고석에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다른 사람이 당한 상처에 싸메어 주지 않는 것도 잘못이지만 또한 기도를 통하여 그를 돕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A.기도의 응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때 기도를 쉽니다. 이는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자기에 대한 극단적인 무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나의 부족함은 알았지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모르는 행위입니다. 나 스스로 얼마든지 후회하고 뉘우치고 자책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십자가의 사랑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할 만큼 자기를 꾸짖는 것은 새로운 출발에 대한 뉘우침이 아니라 자학행위이기 때문에 죄입니다.
B.지나친 역영과 환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고통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사방이 꽉막힌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도 어쩔수 없지 않는가 기도해도 별수 없다고 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했기에 죄입니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하나님도 하시고, 내가 할수 없는 일은 하나님게서도 할수 없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어느 정도 기도하다가 급해지면 오히려 기도를 포기해 버립니다. 이것이 나아가면 사신론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경우에 낙심하며 기도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C.하나님게서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지금은 너무 니쳐서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에 기도할 힘마저 없어지고만 것입니다.
D.교만입니다. 의식적으로 하나님 없이도 살만하다고 생각하기 대문입니다. 허구헌 날 기도해 봐야 무슨 특별한 수라도 있었던가 예수 안 믿고 기도 안하는 사람이 더 잘살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될것 같은 이 무서운 교만이 기도를 쉬게하는 시험에 들게 합니다.
3.기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
1)뜻한 바를 이루려면 진지하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성의하고 힘없는 기도에 대하여 최선의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위력을 갖는 것은 진지하고 힘찬 기도합니다. 존 녹스가 하나님에게 "저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지 않으면 저는 죽어 버리겠습니다."고 기도하였을 때 그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셨습니다. 스코틀랜드 백성에게 영적인 건강함을 가져다 주려고 이렇듯 시력을 다하는 존 녹스의 손에 하나님의 스코틀랜드 백성을 맡기실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서 최선의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진지한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최선을 다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하십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때입니다. 대강하는 기도로써는 가치 있는 일이 이룰수 없습니다. 효과적으로 기도하려면 진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기대를 갖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란 기이하고 이상한 경험이 아닙니다 기도는 건전한 생각과 상식의 절정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간청을 듣고 응답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느냐"(마7:9) 아무리 악한 아비라 하더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어 아들의 이빨을 부러뜨릴 만큼 무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도 자식의 기도를 들어 줄진대 완전하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안겠습니까 (성경 이야기) 어떤 마을 사람이 한밤중에 뜻하지 않는 손님을 맞나 당황하였습니다. 그는 손님에게 접대할 음식이 없어 매우 난처하였습니다. 성실한 그는 친구의 집을 찾아가 방문을 노크하였습니다. 친구는 잠자리에 들어 있었습니다. 음식을 좀 꾸고자 간청하러 온 이 사람은 친구의 가족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꾸어 주었습니다. 아야기의 절정에 이르러 예수님은 아비나 친구들만이 아니라 심지어 <냉혹한 불한당까지도 기도를 들어 주는 법>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무기력한 인간을 상징하는 과부는 이 잔인하고 비뚤어진 재판관에게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간청하였습니다. 이 재판관은 자신에게 관심도없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간청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재판관은 과부의 간청에 시달리기 싫어서 그 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이런 못된 재판관도 간청을 들어준다면 의로운 재판관이시며 사랑하는 친구이시며 완전한 아버지이시기도 한 하나님에게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3)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게 하기 위하여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임을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결혼식 예식장에 축하차 참석한 일이 있는데 신부가 15분이나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웅성거렸지만 신랑은 침착한 가운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부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포기 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가 꼭 올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기다렸습니다. 신랑이 기다린 것은 신부를 오게 하기 위해서 아니었습니다. 신부가 꼭 올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18:7-8). 사실이 이와 같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쉴수도 없고 끊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일은 다 중단할수 있어도 기도만큼은 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구제야 하다가 돈이 없으면 못하고, 몸으로 하는 봉사도 병들고 힘없으면 못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쉴수 있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 죽어가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도는 무엇입니까 내 소원대로 되면 좋고 안되도 그만 이라는 식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으로 끝난다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주신 최상의 축복이라고 믿으면서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끝까지 주를 찬양하는 기도를 하게 될 때에 이 기도가 진정으,로 쉬지 않는 기도요, 낙방하지 않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1.주님께서 기도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기도의 특권과 가능성에 대한 예수님의 주장들은, 우리들의 옅은 믿음에서 보면 지나치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가령 예수님은 기도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다수의 특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언덕길을 상당히 높이 올라간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터덜터덜 걸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합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마7: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기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가 아무리 강한 자일 경우에도 실패가 찾아올 올 수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 어느 날 예수님은 바로 직전에 엄청난 실패를 당한데, 흥분하고 당황하는 제자들을 목격하셨습니다. 어떤 부모가 제자들에게 병든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병을 고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비웃음을 찾고, 믿고 병든 아들을 데리고 왔던 부모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등장하시므로써 실패는 승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과 남게 되었을 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의 실패를 정확히 진단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부모와 그 아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무관심한 탓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노력이 부족하여 실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심각하고도 진지한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제자들의 실패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의 도움을 받고서도 힘에 부치는 일을 하였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진단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원인이 기도의 부족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 나갈 때,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여도 실패를 면할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그가 기도에 대하여 행하신 것은 더욱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11:1)하고 말했던 것은 기도에 관한 설교가 끝난 후가 아니라 스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기도의 진실성과 가치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이런 기도를 어느 정도는 자신들도 드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2)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주님은 바쁘고 승리하는 삶 가운데서 기도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셨던 것일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은 기도에 최우선을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중심은 祈禱였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기도가 전투의 준비 작업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 기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투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상을 타러 가듯 승리자가 그 정복한 전리품을 가지러 가듯 기도하면서 살아 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그의 온 힘을 쏟아 부으시며 사력을 다하여 투쟁에 임하고 계시는지 그의 땀이 굵은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활동하시는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등하고 투쟁하던 때는 어느 때였고 평온하고 안정되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투쟁하던 때는 언제나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에게 혼신의 힘이 요청되었던 일은 바로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마친 후에는 승리자가 되어 기도하던 자리를 떠나 승리의 전리품을 가지러 나아갔습니다.
2.기도에서 오는 보답은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을 우리의 삶으로 영접해 들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문을 두드리면서 모셔들이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께 문을 열어 드리는 행동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분이 됩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언제나 새롭게 경험하는 일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는 물론 한 집단으로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으신 적이 있다면 중요한 결과는 이 응답을 통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가게 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물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선물을 주시는 자보다는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주는 가장 풍성한 보답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2)기도는 새로운 용기와 새로운 힘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큰 위험 앞에 서 있고, 우리의 적이 아무리 잔인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침착한 마음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사40:31)고 말하였을 때 이 말은 타인의 조언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곤란한 일을 당하여도 힘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스탠리는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리빙스턴을 만나 후 하나님을 만났는데 기도하지 않는 그의 동료들이 가지지 못한 힘과 용기를 갖게 되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삶의 문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를 하십시오. 다니엘이 승리를 거둔 이야기는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바벨론의 대신들이 앞으로 30일동안에는 아무도 왕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기도 드려선 안 된다는 법률에 대한 왕의 재가를 받았을 때 이들은 다니엘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형 영장에 대한 서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기 방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예전과 같이"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는 그의 생활의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이 습관은 다니엘을 굳건한 자세로 서게 만들어 주었으며 시련기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페허가 된지 오래입니다. 오늘날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할 줄을 알았던 다니엘입니다. 기도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3)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수단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었습니다. 시몬이 시험에 들 것을 내다보신 예수님은 시몬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헤어지기 전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눈앞에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그를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간구하셨을 때 바로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믿는다면 기도는 영광 받으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 하나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훌륭하게 본받았던 바울은 기도에 대한 신앙도 본받았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전도하여 믿게된 사람들과 친구들을 기억하였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 생활을 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타락한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잘못된 교인들이 기도 생활을 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약한 믿음을 가진 자라도 기도를 통하여 은총과 능력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기도)함으로 도우라"(고후1:11)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였지만 때로는 도울 수 있는 길이 기도일 뿐일 때도 있습니다. 돈이 있다면 선교 단체에 헌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라도 헌금하기 어려운 만큼 기도를 통하여 도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길이 기도 이외의 다른 길이 없을 때가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마저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기도가 유일한 수단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과 친구들을 위하여 밤낮으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기도를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4)기도를 쉬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수단이기 때문에 기도는 특권을 넘어서는 하나의 엄숙한 義務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삼상12:23).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뜨겁지도 않고 힘도 없다면 기도하십시오. 목회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성가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교회학교에서 일하는 분들과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도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때에 무익한 교회가 되거나 무익한 예배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므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비켜 자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오랜 세월 동안 강도들과 함께 피고석에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다른 사람이 당한 상처에 싸메어 주지 않는 것도 잘못이지만 또한 기도를 통하여 그를 돕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A.기도의 응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때 기도를 쉽니다. 이는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자기에 대한 극단적인 무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나의 부족함은 알았지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모르는 행위입니다. 나 스스로 얼마든지 후회하고 뉘우치고 자책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십자가의 사랑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할 만큼 자기를 꾸짖는 것은 새로운 출발에 대한 뉘우침이 아니라 자학행위이기 때문에 죄입니다.
B.지나친 역영과 환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고통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사방이 꽉막힌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도 어쩔수 없지 않는가 기도해도 별수 없다고 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했기에 죄입니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하나님도 하시고, 내가 할수 없는 일은 하나님게서도 할수 없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어느 정도 기도하다가 급해지면 오히려 기도를 포기해 버립니다. 이것이 나아가면 사신론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경우에 낙심하며 기도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C.하나님게서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지금은 너무 니쳐서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에 기도할 힘마저 없어지고만 것입니다.
D.교만입니다. 의식적으로 하나님 없이도 살만하다고 생각하기 대문입니다. 허구헌 날 기도해 봐야 무슨 특별한 수라도 있었던가 예수 안 믿고 기도 안하는 사람이 더 잘살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될것 같은 이 무서운 교만이 기도를 쉬게하는 시험에 들게 합니다.
3.기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
1)뜻한 바를 이루려면 진지하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성의하고 힘없는 기도에 대하여 최선의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위력을 갖는 것은 진지하고 힘찬 기도합니다. 존 녹스가 하나님에게 "저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지 않으면 저는 죽어 버리겠습니다."고 기도하였을 때 그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셨습니다. 스코틀랜드 백성에게 영적인 건강함을 가져다 주려고 이렇듯 시력을 다하는 존 녹스의 손에 하나님의 스코틀랜드 백성을 맡기실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서 최선의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진지한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최선을 다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하십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때입니다. 대강하는 기도로써는 가치 있는 일이 이룰수 없습니다. 효과적으로 기도하려면 진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2)기대를 갖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란 기이하고 이상한 경험이 아닙니다 기도는 건전한 생각과 상식의 절정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간청을 듣고 응답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느냐"(마7:9) 아무리 악한 아비라 하더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어 아들의 이빨을 부러뜨릴 만큼 무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도 자식의 기도를 들어 줄진대 완전하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안겠습니까 (성경 이야기) 어떤 마을 사람이 한밤중에 뜻하지 않는 손님을 맞나 당황하였습니다. 그는 손님에게 접대할 음식이 없어 매우 난처하였습니다. 성실한 그는 친구의 집을 찾아가 방문을 노크하였습니다. 친구는 잠자리에 들어 있었습니다. 음식을 좀 꾸고자 간청하러 온 이 사람은 친구의 가족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꾸어 주었습니다. 아야기의 절정에 이르러 예수님은 아비나 친구들만이 아니라 심지어 <냉혹한 불한당까지도 기도를 들어 주는 법>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무기력한 인간을 상징하는 과부는 이 잔인하고 비뚤어진 재판관에게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간청하였습니다. 이 재판관은 자신에게 관심도없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간청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재판관은 과부의 간청에 시달리기 싫어서 그 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이런 못된 재판관도 간청을 들어준다면 의로운 재판관이시며 사랑하는 친구이시며 완전한 아버지이시기도 한 하나님에게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3)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게 하기 위하여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임을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결혼식 예식장에 축하차 참석한 일이 있는데 신부가 15분이나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웅성거렸지만 신랑은 침착한 가운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부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포기 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가 꼭 올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기다렸습니다. 신랑이 기다린 것은 신부를 오게 하기 위해서 아니었습니다. 신부가 꼭 올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18:7-8). 사실이 이와 같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쉴수도 없고 끊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일은 다 중단할수 있어도 기도만큼은 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구제야 하다가 돈이 없으면 못하고, 몸으로 하는 봉사도 병들고 힘없으면 못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쉴수 있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 죽어가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 기도는 무엇입니까 내 소원대로 되면 좋고 안되도 그만 이라는 식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으로 끝난다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주신 최상의 축복이라고 믿으면서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끝까지 주를 찬양하는 기도를 하게 될 때에 이 기도가 진정으,로 쉬지 않는 기도요, 낙방하지 않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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