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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하되 (눅18:35-43)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많은 것을 깨닫게 하시고 도전하는 하는 말씀입니다. 천하디 천한 한 사람 소경 거지 그 이름은 바디매오 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천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운명을 바꾸었는가! 절망적인 삶에서 어떻게 소망이 넘치는 새로운 삶을 갖게 되었는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이러한 것들을 오늘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이 바디매오라는 소경이 오늘 우리들에게 도전의 말을 합니다. "당신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왜 절망합니까" 바디매오가 우리를 향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말합니다. "나를 보십시오. 나는 당신보다 더 저주스러운 운명 속에 사는 사람이요. 나는 어디로 보나 절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저주스런 운명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 나처럼 해 보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도 나와 똑같은 큰 은혜와 기적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에게 본문을 통해서 강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소경 거지가 어떻게 운명을 바꿔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가 이 사람을 보면 거지와 소경이라는 두 모습입니다. 거지라고 하는 면을 보면 사람의 노력에 따라서는 벗어 버릴 수 있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소경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벗을 수 없는 족쇄입니다. 운명의 족쇄요. 고리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운명의 고리를 꺾고 벗어난 사람이 됐습니다. 두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될 뿐 아니라 그저 하나님 은혜가 아니라 비상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기적이 필요한 그런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바디매오를 통해서 비상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감히 고백한다면 저는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만 소경 바디매오처럼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첫째로, 40절과 41절을 보면 예수님께 이 소경 바디매오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간절히 부르짖는 이 소경의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내게 가까이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가까이 데려온 이 소경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41절에 "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질문을 하십니다. 이 질문을 받은 소경은 거침없이 준비된 대답을 했습니다. "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 대답을 들은 예수님도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저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보아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고 즉시 눈이 열렸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펄펄 뛰면서 예수님을 따라 갔다는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소경의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됩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소경 거지 바디매오에게 "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 이 질문이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 손 목사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 분명히 대답해라. 가슴이 떨리는 질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 속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너는 너의 문제를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너의 문제가 뭐냐 또 그 문제를 얼마만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느냐 사람이 그래요. 지금 참 어려운 상황이고, 심각한 문제이고, 갇혀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자기 문제, 자기 상황을 분명히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그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요한계시록 3:17절에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아주 태평스럽습니다. 왜 태평스럽습니까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인데" 왜 그걸 모르느냐 그래서 예수님이 물은 것입니다. "네 문제가 무엇이냐 가슴을 치고 눈물을 쏟을 만한 문제가 있느냐 알고 보면 퍽퍽 울어도 시원찮은 문제가 있는데 왜 그러느냐 두 번째 질문은 그러면 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너에게 그런 문제가 있고 그런 눈물이 있다면 그럼 너에게 뭐가 필요하느냐 여러분! 뭐가 필요합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죠 돈, 건강 등등.
그런데 정말로 그걸 구하면 되겠습니까 그게 있으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겠는가! 간단한 질문 같지만 우리의 영혼을, 우리의 인격과 정신 자체를 꿰뚫어 보는 말씀입니다. 너는 도대체 뭘 구하는 자인가 세 번째 중요한 질문은 "너의 그 문제가 정말로 해결되길 원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럼 해결되기 원하지 누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돈만 있으면 되는 줄 아느냐 돈보다도 요즘 사업이 안되어서 문제가 많다고 그러는데 사업이 잘 풀리면 만사가 해결되는 줄 아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야. 너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근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해! 그게 뭐냐 하면 바로 너 자신이 변화가 되어야 돼!" 예수님은 그걸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자신이 변화되지 아니하고는 너의 문제는 해결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묻는 말씀이 요한복음 5장 6절에 "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셨습니다. 38년 된 병을 고친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너 자신이, 너라고 하는 전체가 몸의 어떤 부분만 병든 사람이 아니라 영과 혼이 병든 사람이야! 그걸 고침 받기 원하느냐! 곧, 너 자신이 뒤집어지기 원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소경 바디매오가 대답하기를 "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 본다는 게 뭡니까 단순히 보지 못하는 소경이 눈이 열린다는 단순한 그런 의미만은 아닙니다. 눈뜨고도 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보게 된다는 것은 이 소경에 있어서 지금까지 몇 십년 살아온 그 사람의 삶의 울타리 그 나름대로 거기에는 캄캄함과 어두움이 있지만 거기에서 그대로 굳어지고 익숙해진 그런 자기 나름대로 수 십년 살아온 그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보는 세계로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입니다. 단순히 보게 됐으니 기쁘고 좋다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소경은 바로 그것을 원했던 겁니다. "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 라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대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소경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운명을 바뀌게 했습니다.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뀌게 했습니다. "그걸 받아 드릴 마음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는 소리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렇게 준비된 자에게는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소경의 삶과 운명은 완전히 바꾸어 졌습니다.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바디매오처럼 보지 못하는 자가 보게 됐다는 것 이것 한가지만 해도 굉장한 사건이고 놀라운 은혜고 놀라운 축복이지만은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도 오늘 새벽에야 보게 됐습니다. 보십시오. 이 바디매오 소경이 보지 못하던 세계에서 보는 세계로 들어갔을 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새로운 삶에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많은 일들이 바디매오에게 한꺼번에 몰려 닥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는 지금까지는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는데 길거리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손만 벌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 푼 던저주면 목숨은 연장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 생계 수당까지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눈뜬 사람이 손 벌리고 앉아 있으면 누가 줍니까 운명이 바꿔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지만 또한 거기에는 새로운 부담, 새로운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어떤 형제가 저에게 슬피 탄식하면서 하는 말이 " 목사님! 이렇게 어렵고 복잡할 줄 알았더라면 내가 예수를 안 믿었을 것인데요" 그런 말을 해요. "그러면 믿지 마시오."하니 " 아니요. 나갈순 없구요. 분명히 해야 되는데 그게 너무 어렵습니다." 빛이 열렸다 하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수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또 우리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소경 바디매오가 이제 보게 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여기에는 놀라운 축복이 하나 있습니다. 바디매오로 하여금 보게 만드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주님께서 날마다 순간마다 은혜를 부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동행해 주시는 삶이 근본적인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는 새로운 운명과 새로운 삶이 두렵고 떨리지만 눈을 열어 주셨던 예수님께서 이제는 걸음마다 동행하시고 은혜를 부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또 붙잡아 주시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분명하게, 풍성하게 그리고 승리에 찬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담대하십시오. 우리가 들어온 이 새로운 삶에 나 혼자 있는것이 아닙니다. 나로 하여금 이 자리에 있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은총을 주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날마다 순간마다 걸음마다 강한 손으로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또 하나 넘어가야 될 큰 고개가 있습니다. 이 거지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애처롭게 부르짖을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39절에 " 꾸짖어 잠잠하라 " 그냥 잠잠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꾸짖어 잠잠하라. "시끄럽다. 조용히 해! 거지 주제에 떠들고 야단이야! 입다물어!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고개를 내밀어! " 참으로 가슴 아픈 순간입니다. "들어가 잠잠해! 네가 떠든다고 뭔 일이 있겠느냐!" 만일 이때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입을 다물었다면 어찌 됐겠습니까 이 소경 거지는 "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더욱 힘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더욱 심히 소리질러"라는 원어는 악을 쓰듯 소리를 지른 겁니다. 자기들이 내 운명을 돌아 볼 수 있나! 잠잠하라니! 분한 마음으로 소리를 지른 겁니다. 그래서 그는 받게 됐고 승리했습니다. 오늘도 지금도 이렇게 " 잠잠해! 네가 아무리 떠들어 바라. 하나님이 돌아 보는 줄아느,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고개 숙이고 고개 들지 말어!" 이러한 잠잠하라는 소리 " 너는 그렇게 살다가 끝난 인생이야! 네 운명을 바꾼다! 너 한테 해당되는 소리 아니야! 너는 그렇게 살다 가! 그렇게 끝내면 되는 인생이야! 그냥 조용히 왔다 갔다만 해. 교회 다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지덕지 한 거냐 " 이런 억누름이 우리로 하여금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오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안타깝게도 벙어리 아닌 벙어리들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사람 중에 얼마나 많습니까 신앙생활 한지 1년, 5년, 10년 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한 번도 입을 열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 보지도,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러 보지도 못한 벙어리 아닌 벙어리, 가슴은 타 들어가는데 슬픔과 눈물은 가득히 쌓여 넘쳐 흘러가는데 입은 꽉 굳어 있어서, 누가 그 입은 채워 났는지 모르지만 쓸데없는 소리는 잘하면서도 부르짖으라 할 때는 부르짖지 못하는 벙어리들이 한 둘입니까 왜 부르짖지 못합니까 왜 입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부르지 못합니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유는 이 거지 소경만도 못한 무식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 사람 참 무식한 사람이다" 모멸을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모멸을 듣습니까 이 거지 소경이 공부를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초등 학교를 다녔겠습니까 유치원을 다녔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일자 무식한 거지 소경이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름대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여러 가지 들은 것입니다. 그러한 정보들을 스쳐 버리지 아니하고 자기 나름대로 종합하고 분석해 본 것입니다. 이 거지는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란 분이 어떤 분일까! 이런 저런 이상스러운 소문을 들을 때 이 소경은 그걸 가슴에 묻어 두고 생각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구나! 그리스도, 메시아,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소경과 거지를 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자손이시다. 그래서 이 소경의 가슴에 불이 붇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을 만나 봐야 겠구나! 이 분을 만나면 나도 살겠구나!" 드디어 다윗의 자손이 오셨을 때에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니까 " 뭐요!"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 다고" 말했습니다. 눈 뜬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다. 이 때 소경 바디매오가 그 말을 듣자 마자 그 입에서 폭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 다윗의 자손 예수여 " 그렇게 불렀습니다. 눈 뜬 사람들이 불러 보지 못한 소리를 이 소경이 부른 것입니다. " 메시아여! 그리스도시여!" 어찌 주님께서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들은 지가 몇 해입니까 나름대로 수많은 증거를 보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결론을 못 내리고, 아직도 마음이 우왕좌왕하고,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유식해서 그렇습니까 무식해서 그렇습니까 도대체 이 소경 거지 바디매오 만도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진리를 보여줬는데도 그걸 받아 들이지 못하고, 인정할 줄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한 증거를 주시지 않습니까 이제는 나도 이 소경 바디매오처럼 결론을 분명히 내야 되겠구나! 확신을 하십시요. " 그래 나도 이제부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분명히 믿어야겠다." 마음을 잘 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 이제 믿겠습니다. 분명히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께 내 일생을 의탁하고 살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분명히 돌아보십니다. 두번째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하디 천한 거지입니다. 앞 못보는 소경입니다. 지렁이만도 못한 인생입니다. 사람이 짓밟으면 짓밟힘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아무 힘이 없는 풀 한포기 같은 인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 잠잠하라"했을 때 스스로도 나같은 것이 잠잠해야지! 사람은 이러한 열등감, 부끄러움, 좌절감, 죄책감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이걸 알기 때문에 " 잠잠해, 잠잠해야!" 그러는 것입니다. 또한가지 이유는 마귀가 말합니다. " 야! 그 동안 많이 부르짖었잖아. 철야 기도도 해보고, 금식 기도도 해보고, 산 기도도 해보고, 기도원도 가보고 그거 들어주었나 소용없었잖아 입다물어. 너는 택한 백성이 아니야! " 마귀는 바로 이 소리를 합니다. 그래서 부르짖다가도 힘없이 입을 다물어 버리고 있는 성도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영원히 불행에 지고 맙니다. "잠잠하라 하되" 이 소경 바디매오는 "더욱 심히 소리질러" 이래야 됩니다. 백번 기도해서 응답이 없었습니까 저는 천번 합니다. 천번을 해도 응답이 없어요. 아니요. 계속 합니다. 왜요 꼭 응답 받아야 될 것이니까요.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며 반드시 해결 되야 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문제 가지고 20년 넘게 부르짖었습니다. 왜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드디어 하나님은 들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절망합니까 왜 포기합니까 오늘 이 소경 바디매오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여! 나를 보시오. 용기를 내시오. 예수님은 천하디 천한 인생에게 은혜를 주신 분입니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부르짖어서 응답을 받고, 기적을 받고, 승리하길 바랍니다. " 이것이 바디매오의 소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기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 아버지 이십니다. 입을 열어 담대하게 부르짖어 날마다 순간마다 승리에 삶이 오늘부터 분명히 시작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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