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기도하십니까 ? (눅18:9-14)
본문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기도다. 오늘 본문 18:1 에서 항상 낙망치 말고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눅18:7'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 우리는 끓임 없이 기도해야만 한다. 우리의 기도 소리가 작아지고 기도 시간이 없어질 때 그것은 곧 믿음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한다. '눅18:8'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이 말씀은 주님의 오실 때 쯤은 믿는자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믿음을 바로 기도로 보고 있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오실 때 쯤은 기도 하는자가 없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기도와 믿음은 비례하는 것이다. 기도해야 믿음이 생기고 , 기도해야 능력 받고, 응답 받고, 치료받는다. 본문에 나온 과부처럼 부르짖어야 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기도를 강조하신 주님은 그 다음에 우리에게 기도를 하더라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부르짖으라고 했다고 무조건 부르짖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기도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힘을 얻을 수 없다. 예수를 믿는 자라면 기도가 중단되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죽은 자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기도를 어떻게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지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본문에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고있다. 두 사람이 모두 성전에서 기도했다. 한 사람은 종교인 바리새인이었고 한 사람은 국가 공무원인 세리였다. 이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잘 보고 너희가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깨달으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밤낮 부르짖고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오늘 잘 보고 듣고 깨달아서 주님께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바리새인의 기도 '눅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 바리새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 들이다. 이들은 하루에 3번(9시, 12시, 3시)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 속에는 자신들은 완벽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도를 왜 해야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랑이었다. 두 가지를 자랑하였다. 하지 않은 것 토색, 불의, 간음. 한 것 금식과 십일조. 바리새인은 또 상대방 세리를 멸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의롭다고 여겼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랑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찬 기도였다. 우리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기도이다. 바리새인처럼 이런 잘못된 기도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기도는 자신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받을 축복까지도 빼앗기고 만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기도가 잘못하면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바리새인의 기도가 어떤 것이지 살펴보자!
1.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기도이다. 9절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있었다. 놀랍웁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선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설 때 결코 거절당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실 만큼 충분한 선을 가졌다고 믿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 질 수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롬3:10)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의롭다고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9:13) 말씀하셨다. 성경은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의로워 질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있는 길을 없다. 예수를 뜨겁게 믿으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2.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기도를 드렸다. 11절에 "이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세리를 멸시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 멸시한다는 것은 상대를 깔보고 무시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자신만이 하나님 앞에 귀중한 존재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들 중에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상대방을 멸시하고 깔보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행13:4
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3. 자신에게 하는 기도였다. 11절에서 분명히 하나님이여 기도를 시작했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한테 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기도였다. 스스로 자신의 자랑만 내세우는 기도를 하고 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자신의 자랑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가 무엇을 자랑하기 위함입니까 바리새인은 "하나님 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했습니다하나님 내가 십일조를 드렸습니다하나님 내가 죄를 짖지 아니했습니다저 타락한 자들과 같이 살지 아니했습니다 " 우리에게 신앙적으로 자랑할 수 있다는 것 아주 좋은 것이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많이 드리는 것 자랑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한 것 간증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거룩한 삶 사는 것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바리새인 같은 마음으로 자랑하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보이기 위해서 기도했다. 그들은 금식할 때 머리를 풀고 슬픈 기색을 띠며 기도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주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기도였고 옆에 사람들에게 잘 보이도록 하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기도였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했으니까 " 하는 기도는 다시 말해서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까 나를 더 축복 해달라는 육적인자의 기도뿐이 될 수밖에 없다. Give and Take ! 주었으니 달라는 기도 ! 이런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기도를 많이들 하고 있다. 기도는 축복의 통로이다. 우리의 기도가 잘못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복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란다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주님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라고 말씀하셨다. 외식이라는 말은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서 연극하는 자를 의미. 다시 말해서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외식이다 우리는 이런 자를 위선자라고 부른다. 찬양을 드릴 때도 내 마음의 찬양이 아니라면 위선이다. 기도 드릴 때도 진정한 내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면 난 외식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진정한 마음으로 드리지 아니한다면 외식이다. 합당한 기도를 드려도 응답이 빨리 오지 않은데 외식으로 드리는 우리 믿음에 무슨 축복이 오겠는가 마 23장에는 외식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을 7번씩이나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7번의 심판을 말씀하시고 외식하는 자들에게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이 (마 7: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드린다면 그런 기도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바리새인 같은 기도는 곧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이다. 그런 기도는 주님이 제일 싫어하는 기도이다. 무조건 부르짖는다고 다 기도는 아니다는 것을 알어야 한다. 내 자신만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 너무나 위험한 기도라는 것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란다. 내 육만 위해서 드리는 기도 또한 너무 위험한 기도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기도를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목사님의 귀에 "내" 자라는 말이 너무 크게 들렸다. 목사님이 한 번 세어 보았다. "내" 자만 120번을 세다가 그만 두었다. 온통 내 부모, 내 가정, 내 자식, 내 사업, 내 동생, 내 건강 내 일, 내 친구, 하고 있었다. 또한 사람은 어느 처녀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 처녀 "내" 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 망에 꼭 맞는 사람과 금년에 꼭 결혼하게 해 주세요" 나중에 그 자매에게는 목사님이 불러다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신랑감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자기만을 위한 기도 바리새인의 기도임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그러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인가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했다 우리의 형제, 친척, 모두들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의 기도의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는 알고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치 못할 때는 우리의 기도가 바리새인 같은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중거하고 있다. '마6:3
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기도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있습니까 그의 나라와 주님의 나라이고 그의 의는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교회를 위해서 맨 먼저 기도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이 교회를 위해서 맨 먼저 우선적으로 기도하고 계십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했다면 여러분의 그 어떤 기도를 했다 할지라도 바리새인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 마6:33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문제만 놓고 부르짖고 있는지 모른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바리새인의 기도의 모습을 이제 버려야 할 때이다. 위선적인 우리의 모습 이제 버리시기를 바란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얼마나 무서운 기도인지 깨달아야 한다 합당한 기도의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세리의 기도 '눅18:1
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바리새인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면 세리는 성전 밖 이방인 뜰에 서서 기도하였는데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1)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못했다.
2) 가슴을 치고 있었다.
3) 불쌍히 여기 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했다는 것은 죄인 중의 죄인임을 고백. 가슴을 쳤다 애통함을 가지고 회개하는 모습이다 불쌍히 여기 시옵소서 용서를 비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숨을 쉬는 호흡이다. 호흡이 멈추어지면 우리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다. 사람이 호흡을 멈추고 7분이 지나면 우리의 뇌가 썩기 시작한다고한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다. 다른 것은 좀 게으르게 한다 할지라도 기도만큼은 잠시도 쉬어 있으면 안된다.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런데 이 중요한 기도를 할 때 너무나도 우리는 모르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말씀만 배우는 게 아니라 기도도 배워야만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우리도 주기도문만 줄줄 형식적으로 외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도를 배워서 올바르게 해야만 한다. 주님은 오늘 본문의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기도의 3단계를 가르쳐주고 계신다.
첫째 단계:죄인임을 고백하는 단계.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한 세리의 모습은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했다. 세리는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다는 것을 알았다. 세리는 너무나 하나님 마음을 많이도 아프게 했기 때문에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고 기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기도 자세였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짖고도 의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누구가 더 하나님 보시기에 불쌍히 여김을 받을까요 여러분은 기도 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먼저 자신의 죄를 먼저 회개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할 때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고 기도한다면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만 기도 일 것이다. 우리는 죄를 철저히 고백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형식적인 죄의 고백으로는 안된다. '사59:1-
2' "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 내 죄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가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죄를 고백해야만 한다. 두 번째 단계: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세리는 죄를 고백하는데 가슴을 치며 기도를 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애통함을 나타내고 있다. 죄에 대한 자신의 무력한 존재를 나타내는 행동이다 성도여러분 ! 내가 저지른 죄에 입술로만 형식적으로 고백하는 회개는 이제 바꾸어져야만 한다. 옷을 찢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가 있어야만 한다 성경은 증거 한다 '욜2:1
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 성도 여러분 ! 죄에 대해서 어떻게 회개하고 있습니까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애통함으로 회개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옷을 찢는 회개는 많이 있지만 마음을 찢는 회개는 보기 힘든 시대이다. 옷을 찢는 회개는 형식적인 회개이다 이런 회개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왜 자꾸 지은 죄를 또 짖고 죄를 밥먹듯이 짖고 있는가 우리에게 마음을 찢는 회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찢는 기도를 드릴 때 회개하는 사람은 그 죄에 대해서 다시는 내가 짖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다짐할 것이다 주여! 죄 앞에서 이 연약한 저를 도와 달라고 애통해 할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의 애통한 회개 기도를 잘 알고 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베드로의 죄는 철저함 애통함이 있을 때 죄 사함 받았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 가운데서 가장 철저히 회개를 드린 사람이라면 우리는 다윗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다윗이 악한 죄를 저질렀는가 다윗의 죄는 6 가지로 본다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인 살인죄. 부하의 아내를 넘본 음란죄. 부하의 아내를 겁탈한 간음죄. 부하를 속인 거짓말 죄.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 하나님을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이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의 죄를 지적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시편에 보면 다윗의 얼마나 회개의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다 시편에는 회개 시가 7편이 나오는데 그 중에 5편이 다윗의 회개 시다. 다윗이 얼마나 철저한 회개의 사람인가를 볼수 있다 '시6: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 '왕상15: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 우리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애통함으로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마다 우리는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한다 우리의 심령이 깨끗함이 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은 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는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회개 기도하는 것은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어서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가 되길 원해서 회개 기도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 반드시 제물을 드렸는데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려졌다. 만약 흠이 있으면 제물이 열납되지 아니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몸을 거룩하게 드리라고 한다 이것이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다. (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 드릴 때, 기도를 드릴 때 철저한 애통함으로 우리의 회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예배. 기도 무의미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명심 하시기 바란다 세 번째 단계:자비를 구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는 죄에 대한 자비를 하나님께 간구 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고백하고 애통해 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죄가 사함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우리가 애통함으로 죄를 고백한다고 죄가 용서함 받은것은 아니다 애통함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그렇게 한다고 다 용서함 받은 것은 아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죄에 애통함만 있다고 죄가 다 용서함 받은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 죄를 씻어 주어야만 한다 성경은 증거 한다 '히9:2
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죄를 우리가 고백하고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은 우리가 죄를 사함 받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죄 사함이 죄를 고백하고 애통해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의 회개 기도가 얼마나 많이 여기에서 중단되는지 모른다 예수의 피로 내 죄가 씻음 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 때까지 부르짖어야만 한다. 예수의 뜨거운 피가 내 죄를 사해 주었다는 확신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만 한다. 잠깐 내 죄를 고백하고 조금 마음을 아파하고 내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일어나서는 안된다. 왜 우리가 죄에 대해 가슴을 아파하지 않고 또 범죄 하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의 피를 만나보지 못해서 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생각해 보라 ! 내가 죄를 또 지으면 예수의 피가 또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또 피를 흘려야만 한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은 또 피를 흘리셔야만 한다 그 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는 자비를 받았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한다.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로 씻어 주시옵소서 "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기도의 결과 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주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는 책망 하셨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칭찬 하셨다.
바리새인은 사람들에게 인정은 받았지만 하나님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리는 사람들에게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는 의인으로 인정받았다.
바리새인의 기도의 결과는 두 가지 저주가 내려졌다.
1. 기도의 응답이 없었다.
2. 위선자라고 버림을 받았다. 어떤 바리새인은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 세상의 단 두사람이 의인이 있다면 그 두사람은 나와 나의 아들이다. 만일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얼마나 교만한 기도인가 바리새인은 자기가 얼마나 의인인가를 하나님께 알리러 가는 기도였다 세리 기도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 마디로 축복뿐이었다. 두 가지 축복을 받았다
1.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2. 높은 자라고 칭함을 받았다 인간이 의로워 질 수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다 높아지는 것 역시 인간 스스로 될수 없다. 하나님이 의롭다 해야 의인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높여 주어야만이 높아질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떤 기도의 결과를 얻기 원하십니까 바리새인입니까 세리입니까 기도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리같이 기도해서 세리가 받았던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짧은 시간에 기도에 대한 것을 모두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이제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시작해야 하는지 잘 아셨을 것이다 기도처럼 쉬운 것도 없지만 또 기도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아르헨티나 목사님 후안 까롤로스 오르띠즈 분이 책을 썼는데 우리 나라에도 그 책이 번역되어져 나왔다. 책제목이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 이름처럼 책제목 또한 길다. 그 책 내용 하나를 소개하면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나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90% 이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간구하지만 응답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우리는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친구되신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주님과 친교를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친구들 중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올 때마다 요구 사항을 잔뜩 적어서 가져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이런 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 주님은 그 날밤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다. 그러나 그 날밤의 주님의 기도는 다른 날과는 기도 내용이 달랐다. 너무나도 처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주님의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 내렸다. 그 땀은 곧 피로 변하여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시던 그 날 밤 주님의 하신 기도 생각나십니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기도 어떻습니까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이제껏 드리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가 기도가 올바로 드려져야 할 때이다. 어린아이 때는 말 같지 않는 말 지껄여도 귀엽게 보아주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다면 바보 취급 받은다. 때가 마지막 때이다. 이제 성숙한 신앙인 이 되어야 하고 성숙한 기도를 드려야 할 때이다. 육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 영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쉬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합당한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믿음을 바로 기도로 보고 있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오실 때 쯤은 기도 하는자가 없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기도와 믿음은 비례하는 것이다. 기도해야 믿음이 생기고 , 기도해야 능력 받고, 응답 받고, 치료받는다. 본문에 나온 과부처럼 부르짖어야 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기도를 강조하신 주님은 그 다음에 우리에게 기도를 하더라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부르짖으라고 했다고 무조건 부르짖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기도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힘을 얻을 수 없다. 예수를 믿는 자라면 기도가 중단되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죽은 자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기도를 어떻게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지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본문에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고있다. 두 사람이 모두 성전에서 기도했다. 한 사람은 종교인 바리새인이었고 한 사람은 국가 공무원인 세리였다. 이 두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잘 보고 너희가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깨달으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밤낮 부르짖고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오늘 잘 보고 듣고 깨달아서 주님께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바리새인의 기도 '눅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 바리새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 들이다. 이들은 하루에 3번(9시, 12시, 3시)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 속에는 자신들은 완벽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도를 왜 해야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랑이었다. 두 가지를 자랑하였다. 하지 않은 것 토색, 불의, 간음. 한 것 금식과 십일조. 바리새인은 또 상대방 세리를 멸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의롭다고 여겼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랑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찬 기도였다. 우리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기도이다. 바리새인처럼 이런 잘못된 기도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기도는 자신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받을 축복까지도 빼앗기고 만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기도가 잘못하면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바리새인의 기도가 어떤 것이지 살펴보자!
1.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기도이다. 9절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있었다. 놀랍웁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선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설 때 결코 거절당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실 만큼 충분한 선을 가졌다고 믿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 질 수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롬3:10)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의롭다고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9:13) 말씀하셨다. 성경은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의로워 질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있는 길을 없다. 예수를 뜨겁게 믿으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2.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기도를 드렸다. 11절에 "이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세리를 멸시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 멸시한다는 것은 상대를 깔보고 무시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자신만이 하나님 앞에 귀중한 존재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들 중에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상대방을 멸시하고 깔보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행13:4
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3. 자신에게 하는 기도였다. 11절에서 분명히 하나님이여 기도를 시작했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한테 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기도였다. 스스로 자신의 자랑만 내세우는 기도를 하고 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자신의 자랑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가 무엇을 자랑하기 위함입니까 바리새인은 "하나님 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했습니다하나님 내가 십일조를 드렸습니다하나님 내가 죄를 짖지 아니했습니다저 타락한 자들과 같이 살지 아니했습니다 " 우리에게 신앙적으로 자랑할 수 있다는 것 아주 좋은 것이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많이 드리는 것 자랑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한 것 간증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거룩한 삶 사는 것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바리새인 같은 마음으로 자랑하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보이기 위해서 기도했다. 그들은 금식할 때 머리를 풀고 슬픈 기색을 띠며 기도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주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기도였고 옆에 사람들에게 잘 보이도록 하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기도였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했으니까 " 하는 기도는 다시 말해서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까 나를 더 축복 해달라는 육적인자의 기도뿐이 될 수밖에 없다. Give and Take ! 주었으니 달라는 기도 ! 이런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기도를 많이들 하고 있다. 기도는 축복의 통로이다. 우리의 기도가 잘못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복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란다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주님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라고 말씀하셨다. 외식이라는 말은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서 연극하는 자를 의미. 다시 말해서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외식이다 우리는 이런 자를 위선자라고 부른다. 찬양을 드릴 때도 내 마음의 찬양이 아니라면 위선이다. 기도 드릴 때도 진정한 내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면 난 외식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진정한 마음으로 드리지 아니한다면 외식이다. 합당한 기도를 드려도 응답이 빨리 오지 않은데 외식으로 드리는 우리 믿음에 무슨 축복이 오겠는가 마 23장에는 외식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을 7번씩이나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7번의 심판을 말씀하시고 외식하는 자들에게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이 (마 7: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드린다면 그런 기도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바리새인 같은 기도는 곧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이다. 그런 기도는 주님이 제일 싫어하는 기도이다. 무조건 부르짖는다고 다 기도는 아니다는 것을 알어야 한다. 내 자신만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 너무나 위험한 기도라는 것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란다. 내 육만 위해서 드리는 기도 또한 너무 위험한 기도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기도를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목사님의 귀에 "내" 자라는 말이 너무 크게 들렸다. 목사님이 한 번 세어 보았다. "내" 자만 120번을 세다가 그만 두었다. 온통 내 부모, 내 가정, 내 자식, 내 사업, 내 동생, 내 건강 내 일, 내 친구, 하고 있었다. 또한 사람은 어느 처녀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 처녀 "내" 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 망에 꼭 맞는 사람과 금년에 꼭 결혼하게 해 주세요" 나중에 그 자매에게는 목사님이 불러다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신랑감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자기만을 위한 기도 바리새인의 기도임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그러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인가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했다 우리의 형제, 친척, 모두들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의 기도의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는 알고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치 못할 때는 우리의 기도가 바리새인 같은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중거하고 있다. '마6:3
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기도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있습니까 그의 나라와 주님의 나라이고 그의 의는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교회를 위해서 맨 먼저 기도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이 교회를 위해서 맨 먼저 우선적으로 기도하고 계십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했다면 여러분의 그 어떤 기도를 했다 할지라도 바리새인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 마6:33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문제만 놓고 부르짖고 있는지 모른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바리새인의 기도의 모습을 이제 버려야 할 때이다. 위선적인 우리의 모습 이제 버리시기를 바란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얼마나 무서운 기도인지 깨달아야 한다 합당한 기도의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세리의 기도 '눅18:1
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바리새인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면 세리는 성전 밖 이방인 뜰에 서서 기도하였는데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1)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못했다.
2) 가슴을 치고 있었다.
3) 불쌍히 여기 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했다는 것은 죄인 중의 죄인임을 고백. 가슴을 쳤다 애통함을 가지고 회개하는 모습이다 불쌍히 여기 시옵소서 용서를 비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숨을 쉬는 호흡이다. 호흡이 멈추어지면 우리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다. 사람이 호흡을 멈추고 7분이 지나면 우리의 뇌가 썩기 시작한다고한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다. 다른 것은 좀 게으르게 한다 할지라도 기도만큼은 잠시도 쉬어 있으면 안된다.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런데 이 중요한 기도를 할 때 너무나도 우리는 모르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말씀만 배우는 게 아니라 기도도 배워야만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우리도 주기도문만 줄줄 형식적으로 외우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도를 배워서 올바르게 해야만 한다. 주님은 오늘 본문의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기도의 3단계를 가르쳐주고 계신다.
첫째 단계:죄인임을 고백하는 단계.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한 세리의 모습은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했다. 세리는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다는 것을 알았다. 세리는 너무나 하나님 마음을 많이도 아프게 했기 때문에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고 기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기도 자세였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짖고도 의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누구가 더 하나님 보시기에 불쌍히 여김을 받을까요 여러분은 기도 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먼저 자신의 죄를 먼저 회개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할 때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고 기도한다면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고만 기도 일 것이다. 우리는 죄를 철저히 고백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형식적인 죄의 고백으로는 안된다. '사59:1-
2' "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 내 죄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가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죄를 고백해야만 한다. 두 번째 단계: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세리는 죄를 고백하는데 가슴을 치며 기도를 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애통함을 나타내고 있다. 죄에 대한 자신의 무력한 존재를 나타내는 행동이다 성도여러분 ! 내가 저지른 죄에 입술로만 형식적으로 고백하는 회개는 이제 바꾸어져야만 한다. 옷을 찢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가 있어야만 한다 성경은 증거 한다 '욜2:1
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 성도 여러분 ! 죄에 대해서 어떻게 회개하고 있습니까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애통함으로 회개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옷을 찢는 회개는 많이 있지만 마음을 찢는 회개는 보기 힘든 시대이다. 옷을 찢는 회개는 형식적인 회개이다 이런 회개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왜 자꾸 지은 죄를 또 짖고 죄를 밥먹듯이 짖고 있는가 우리에게 마음을 찢는 회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찢는 기도를 드릴 때 회개하는 사람은 그 죄에 대해서 다시는 내가 짖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다짐할 것이다 주여! 죄 앞에서 이 연약한 저를 도와 달라고 애통해 할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의 애통한 회개 기도를 잘 알고 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베드로의 죄는 철저함 애통함이 있을 때 죄 사함 받았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 가운데서 가장 철저히 회개를 드린 사람이라면 우리는 다윗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다윗이 악한 죄를 저질렀는가 다윗의 죄는 6 가지로 본다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인 살인죄. 부하의 아내를 넘본 음란죄. 부하의 아내를 겁탈한 간음죄. 부하를 속인 거짓말 죄.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 하나님을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이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의 죄를 지적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시편에 보면 다윗의 얼마나 회개의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다 시편에는 회개 시가 7편이 나오는데 그 중에 5편이 다윗의 회개 시다. 다윗이 얼마나 철저한 회개의 사람인가를 볼수 있다 '시6: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 '왕상15: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 우리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애통함으로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마다 우리는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한다 우리의 심령이 깨끗함이 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은 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는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회개 기도하는 것은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어서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가 되길 원해서 회개 기도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 반드시 제물을 드렸는데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려졌다. 만약 흠이 있으면 제물이 열납되지 아니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몸을 거룩하게 드리라고 한다 이것이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다. (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 드릴 때, 기도를 드릴 때 철저한 애통함으로 우리의 회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예배. 기도 무의미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명심 하시기 바란다 세 번째 단계:자비를 구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는 죄에 대한 자비를 하나님께 간구 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고백하고 애통해 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죄가 사함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우리가 애통함으로 죄를 고백한다고 죄가 용서함 받은것은 아니다 애통함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그렇게 한다고 다 용서함 받은 것은 아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죄에 애통함만 있다고 죄가 다 용서함 받은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 죄를 씻어 주어야만 한다 성경은 증거 한다 '히9:2
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죄를 우리가 고백하고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은 우리가 죄를 사함 받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죄 사함이 죄를 고백하고 애통해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의 회개 기도가 얼마나 많이 여기에서 중단되는지 모른다 예수의 피로 내 죄가 씻음 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 때까지 부르짖어야만 한다. 예수의 뜨거운 피가 내 죄를 사해 주었다는 확신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만 한다. 잠깐 내 죄를 고백하고 조금 마음을 아파하고 내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일어나서는 안된다. 왜 우리가 죄에 대해 가슴을 아파하지 않고 또 범죄 하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의 피를 만나보지 못해서 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생각해 보라 ! 내가 죄를 또 지으면 예수의 피가 또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또 피를 흘려야만 한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은 또 피를 흘리셔야만 한다 그 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는 자비를 받았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한다.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로 씻어 주시옵소서 "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기도의 결과 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주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는 책망 하셨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칭찬 하셨다.
바리새인은 사람들에게 인정은 받았지만 하나님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리는 사람들에게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는 의인으로 인정받았다.
바리새인의 기도의 결과는 두 가지 저주가 내려졌다.
1. 기도의 응답이 없었다.
2. 위선자라고 버림을 받았다. 어떤 바리새인은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 세상의 단 두사람이 의인이 있다면 그 두사람은 나와 나의 아들이다. 만일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얼마나 교만한 기도인가 바리새인은 자기가 얼마나 의인인가를 하나님께 알리러 가는 기도였다 세리 기도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 마디로 축복뿐이었다. 두 가지 축복을 받았다
1.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2. 높은 자라고 칭함을 받았다 인간이 의로워 질 수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다 높아지는 것 역시 인간 스스로 될수 없다. 하나님이 의롭다 해야 의인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높여 주어야만이 높아질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떤 기도의 결과를 얻기 원하십니까 바리새인입니까 세리입니까 기도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리같이 기도해서 세리가 받았던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짧은 시간에 기도에 대한 것을 모두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이제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시작해야 하는지 잘 아셨을 것이다 기도처럼 쉬운 것도 없지만 또 기도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아르헨티나 목사님 후안 까롤로스 오르띠즈 분이 책을 썼는데 우리 나라에도 그 책이 번역되어져 나왔다. 책제목이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 이름처럼 책제목 또한 길다. 그 책 내용 하나를 소개하면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나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90% 이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간구하지만 응답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우리는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친구되신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주님과 친교를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친구들 중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올 때마다 요구 사항을 잔뜩 적어서 가져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이런 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 주님은 그 날밤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다. 그러나 그 날밤의 주님의 기도는 다른 날과는 기도 내용이 달랐다. 너무나도 처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주님의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 내렸다. 그 땀은 곧 피로 변하여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시던 그 날 밤 주님의 하신 기도 생각나십니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기도 어떻습니까 바리새인 같은 기도를 이제껏 드리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가 기도가 올바로 드려져야 할 때이다. 어린아이 때는 말 같지 않는 말 지껄여도 귀엽게 보아주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다면 바보 취급 받은다. 때가 마지막 때이다. 이제 성숙한 신앙인 이 되어야 하고 성숙한 기도를 드려야 할 때이다. 육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 영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쉬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합당한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