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을 누리자 (눅1:8-16)
본문
여호와 하나님은 한 천사를 보내셔서 당신의 뜻을 땅에 나타내기로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고, 성취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1.하나님은 당신앞에서 사는 자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자의 직무를 하나님앞에 행할세’ 이 사가랴에 대해서 조금더 오늘 본문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입니다. 그들 부부는 하나님앞에서 말씀으로 살았던 사람이고, 그렇지만 자녀가 없었고,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가랴는 지금 자기 반열의 순서에 따라 제사장직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당시의 유대에는 제사장이 약18,000명정도가 있었다고 사람들이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들이 한꺼번에 일을 한다고 한다면 아마 성전에 제사장들로만 득실거릴 것이다. 그래서 24반으로 편성해서 돌아가면서 각기 일년에 두주간씩 봉사를 했습니다. 오순절,유월절,장막절 온 백성이 모여드는 절기에는 모든 제사장이 다 함께 수종들었지만 그 외에는 6개월 한 번정도씩 예루 살렘에 올라왔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고향에 내려가서 살다가 또 반년후에 올라와서 봉사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때는 마침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 반열이 봉사하는 주간이었습니다. 사가랴는 여느때와 같이 자기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6절과 8절에 반복되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앞에’라고 하는 말이다. 8절에 그는 제사장로서의 직무를 하나님앞에 감당하기 전에, 6절이 말하기를 보통 삶을 살때에도 하나님앞에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주간동안 살때에 보통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살던 사람이 예배시간에 하나님앞에서 살수 있습니다. 사는 것은 마음대로 살아왔던 사람이 예배하는 시간에 갑자기 거룩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은 불연속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걷고 있는 걸음은 영원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평소에 모든 삶이 하나님앞에서 되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봉사하는 일도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때에도 하나님앞에서 그 직무를 수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사장의 직무는 일년에 정해진 기간, 다 틀어서 5주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47주간은 동네에서 보통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남편이요, 가장으로서 생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 생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그는 하나님앞에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앞에서 했다고 기록될수 있습니다. 직분이 맡겨져 있어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맡기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므로 감당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자기의 뜻을 밝혀 주시기를 기뻐하실까요 사가랴처럼 하나님앞에 사는 사람일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뜻을 자기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밝혀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제사장의 직무 이전에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앞에서 했던 사람입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고난 다음부터 갖는 마음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는 소원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마음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고 싶다면 그러면 하나님앞에서 사는 훈련을 해보라. 주부들은 한주간 어떻게 살아 가는가 일주일에 21번 밥상을 차려야 하고, 빨래도 몇차레 해야하고, 또 하루에 한 번 이상 집이라도 치워야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겠지요 어떤 사람은 부엌에 들어갈때에 우리집 식구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들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생각할때에 어떻게 다른 식구들을 부엌에 들어가게 하는가 내가 할수 없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집안일을 할 때도 하나님앞에서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뜻을 자기 앞에 늘 사는 사람에게 공개해 주고 싶어 한다. 교회당 밖에서나 예배하는 순간에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앞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기의 뜻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수 있습니다. 신자의 삶의 현주소는 하나님앞에라 말속에 나타나야 한다. 여러분들이 매사를 하나님앞에 사시면 여러분은 신앙인답게 살고 있는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고 있고, 말하고 있을까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할까 하는 사람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그것이 옳지 않는 것 같으면 아무도 살피는 눈이 없어도 쓰레기를 함부로 갖다 내버리는 것은 옳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을 갈라 놓는 시금석입니다. 우리가 방청소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난 누구를 먼저 생각을 하는가 누구의 눈을 의식합니까 교회에 오는것도 그렇고, 들어오면서 헌금을 하는것도 그렇고, 그것이 누구를 의식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이런 일들에 사람의 눈을 자꾸 의식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사는 능력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주소가 변경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현주소가 하나님앞에서로 바뀌어 져야 합니다. 죽음의 권세가 다스리는 영역에서 환환 빛가운데로 들어오신 분들은 더 이상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모든 일들을 하는 사람입니다.
2.기도하는 자에게 자기 뜻을 나타내십니다.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서 제비를 뽑아서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일주일에 두 번 한주간씩 봉사하는데 올라온 제사장들이 어떤 일을 분담할 것인지는 심지를 뽑아 결정을 했습니다. 서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분향하는 일들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18,000명 제사장들이 분향하는 일을 다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비를 반드시 뽑아서 했다. 그로 한 번 제비를 뽑아 분향하는 일에 당첨되면 분향하는 그 일을 두고는 다시 뽑는 일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분향할수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서 아침,저녁 제사를 번제 수종드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지만 성전안에 들어가서 향불을 피워들고 백성들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그 일은 누구나 제사장이라면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생에 단 한 번 할수 있는 할수 일이 사가랴에게 당첨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전례를 따라서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그래서 우리가 배경을 알아야 같이 감동을 한다. 당첨이 되는 순간부터 사갸랴의 가슴은 흥분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면 감동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일생일대에 한 번있는 것이다. 아파트 당첨은 두 번도 할수 있다.
그런데 일생에 딱 한 번 할수 없는 것인데 사가랴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보면서 같은 마음을 좀 품어야 한다. 모든 백성들은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들어가서 분향하고 있는 동안에 바깥 뜰에서 기도합니다. 성전의 구역은 나누어져 있어서 성전바로 다음 성전을 중심으로 남자들이 들어올수 있었고, 그리고 여자, 그리고 이방인들의 뜰같이 정해져 있다. 어쨌든 모여있는 사람들이 향불이 올라가는 그 시간에 각자 자기의 소원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분향하는 것을 보면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사람들은 우리 기도와 관련를 시킨다. 우리 기도도 하나님께 올라가야 하니까 향을 피우면서 거기에 기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을 했습니다. (시141: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141:2)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내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게하시고, 내가 손을 들때에 저녁제사와 같게 되게해주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저녁 제사를 드린후에 분향하는 시간을 가졌다. (계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 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앞에 엎드려 거문고를 가졌다는 것은 찬양을 상징하는 것이고, 향이 가득한 금대접은 기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영물들을 통해서 그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 장면을 볼수 있습니다.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 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계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향연이 하늘로 올라 갈때에 땅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요한은 밧모에서 성령님의 사로잡혀 하늘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장엄한 하늘 장면을 보게 되었을때에 거기 보좌가 있고, 보좌앞에 인봉된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을 보고 싶은데 아무도 그 인을 뗄자가 없었습니다. 천지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통곡했을때에 울지말라. 유다지파의 사자가 이기었다. 그가 떼시기에 합당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책의 인들이 하나씩 떼어지고난 다음에 8:3-4절에 향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이 떼어지는 역사도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지고, 향이 올라가고난 다음에 경고의 울려 펴지는것도 성도의 기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가랴는 생의 처음으로 이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 직무를 수행하려 들어 가서 기도하고 싶었던 순간 사가랴의 마음속에 맺혀 있던 기도제목이 있지 않았겠는가 기도시간이 되어서 내가 무슨 기도하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드려왔던 기도가 불현 듯 생각났을지도 모릅니다. 자식하나 가져보았으면 하는 기도를 젊은날부터 드려 왔는데 그에게는 그런 응답이 없었다. 나중에는 자기의 나이는 다 잊어 버리고 기도를 드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나은 것을 기억한다면,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두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상상해 보십시오. 바깥에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그 거룩하신 성소에 드셔서 당신의 백성의 기도를 받아 주옵소서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눈을 뜨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향단우편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순간에, 기도하고 있는 그때에 자기뜻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누가는 어떤 복음서 기자보다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내 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도 백성들과 제사장이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세례를 받을때에 하늘문이 열렸다고 말하고 있다. (눅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변화산 사건에도 같은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기도하시던 중에 그 얼굴이 변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이 않는 모습들이 누가복음에 기록하고 있다. 하늘의 계시가 기도와 동시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계시가 주어지는 합당한 환경이 기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밝혀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향단우편에 천사가나타나는 환상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 밝혀진다. 새로운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것에는 종료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여기 다 밝혀주고 계신다. 우리가 믿고 구원받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밝혀놓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밝혀져 있는 이 뜻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도할때에 하나님이 열어 주신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라는 최초의 지시가 제9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는 중에 비몽사몽간에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금식하며 기도할때에, 진지하게 기도할때에 우리에게 자기의 뜻을 밝혀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참 한심할때가 많다. 나같은 경우를 보면 한참기도하다가 다른 것을 생각하고 끊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3.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자기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자기의 뜻을 나타낼뿐만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자기의 뜻을 보여주는 것 뿐아니라, 기도하는 순간에 자기의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성도는 기도의 특권을 누리는 자이다. 구약 시대에는 성막안으로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 여자들은 바깥뜰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과 저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 이문제는 내 기도가지고 안될거야, 집사님한테 부탁할까, 목사님한테 부탁할까’ 그래서 자신이 안서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은 열려져 있는 휘장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는 이런 특권이 있다. 제사장들이 일생의 한 번가질수 있는 특권을 우리들은 언제든지 누릴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특권은 하나님과의 면대함을 위함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이야기 할 줄 즐기는 사람이 성숙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저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여러분들을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면대하는 일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하므로 이 특권의 기도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자. 이 특권을 잘 활용을 하자. 결론 하나님앞에 사는 사람,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나타내시고, 성취하신다. 이 놀라운 특권을 누릴수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1.하나님은 당신앞에서 사는 자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자의 직무를 하나님앞에 행할세’ 이 사가랴에 대해서 조금더 오늘 본문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입니다. 그들 부부는 하나님앞에서 말씀으로 살았던 사람이고, 그렇지만 자녀가 없었고,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가랴는 지금 자기 반열의 순서에 따라 제사장직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당시의 유대에는 제사장이 약18,000명정도가 있었다고 사람들이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들이 한꺼번에 일을 한다고 한다면 아마 성전에 제사장들로만 득실거릴 것이다. 그래서 24반으로 편성해서 돌아가면서 각기 일년에 두주간씩 봉사를 했습니다. 오순절,유월절,장막절 온 백성이 모여드는 절기에는 모든 제사장이 다 함께 수종들었지만 그 외에는 6개월 한 번정도씩 예루 살렘에 올라왔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고향에 내려가서 살다가 또 반년후에 올라와서 봉사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때는 마침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 반열이 봉사하는 주간이었습니다. 사가랴는 여느때와 같이 자기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6절과 8절에 반복되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앞에’라고 하는 말이다. 8절에 그는 제사장로서의 직무를 하나님앞에 감당하기 전에, 6절이 말하기를 보통 삶을 살때에도 하나님앞에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주간동안 살때에 보통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살던 사람이 예배시간에 하나님앞에서 살수 있습니다. 사는 것은 마음대로 살아왔던 사람이 예배하는 시간에 갑자기 거룩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은 불연속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걷고 있는 걸음은 영원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평소에 모든 삶이 하나님앞에서 되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봉사하는 일도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때에도 하나님앞에서 그 직무를 수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사장의 직무는 일년에 정해진 기간, 다 틀어서 5주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47주간은 동네에서 보통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남편이요, 가장으로서 생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 생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그는 하나님앞에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앞에서 했다고 기록될수 있습니다. 직분이 맡겨져 있어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맡기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므로 감당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자기의 뜻을 밝혀 주시기를 기뻐하실까요 사가랴처럼 하나님앞에 사는 사람일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뜻을 자기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밝혀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제사장의 직무 이전에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앞에서 했던 사람입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고난 다음부터 갖는 마음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는 소원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마음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고 싶다면 그러면 하나님앞에서 사는 훈련을 해보라. 주부들은 한주간 어떻게 살아 가는가 일주일에 21번 밥상을 차려야 하고, 빨래도 몇차레 해야하고, 또 하루에 한 번 이상 집이라도 치워야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겠지요 어떤 사람은 부엌에 들어갈때에 우리집 식구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들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생각할때에 어떻게 다른 식구들을 부엌에 들어가게 하는가 내가 할수 없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집안일을 할 때도 하나님앞에서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뜻을 자기 앞에 늘 사는 사람에게 공개해 주고 싶어 한다. 교회당 밖에서나 예배하는 순간에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앞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기의 뜻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수 있습니다. 신자의 삶의 현주소는 하나님앞에라 말속에 나타나야 한다. 여러분들이 매사를 하나님앞에 사시면 여러분은 신앙인답게 살고 있는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고 있고, 말하고 있을까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할까 하는 사람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그것이 옳지 않는 것 같으면 아무도 살피는 눈이 없어도 쓰레기를 함부로 갖다 내버리는 것은 옳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을 갈라 놓는 시금석입니다. 우리가 방청소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난 누구를 먼저 생각을 하는가 누구의 눈을 의식합니까 교회에 오는것도 그렇고, 들어오면서 헌금을 하는것도 그렇고, 그것이 누구를 의식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이런 일들에 사람의 눈을 자꾸 의식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사는 능력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주소가 변경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현주소가 하나님앞에서로 바뀌어 져야 합니다. 죽음의 권세가 다스리는 영역에서 환환 빛가운데로 들어오신 분들은 더 이상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모든 일들을 하는 사람입니다.
2.기도하는 자에게 자기 뜻을 나타내십니다.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서 제비를 뽑아서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일주일에 두 번 한주간씩 봉사하는데 올라온 제사장들이 어떤 일을 분담할 것인지는 심지를 뽑아 결정을 했습니다. 서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분향하는 일들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18,000명 제사장들이 분향하는 일을 다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비를 반드시 뽑아서 했다. 그로 한 번 제비를 뽑아 분향하는 일에 당첨되면 분향하는 그 일을 두고는 다시 뽑는 일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분향할수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서 아침,저녁 제사를 번제 수종드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지만 성전안에 들어가서 향불을 피워들고 백성들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그 일은 누구나 제사장이라면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생에 단 한 번 할수 있는 할수 일이 사가랴에게 당첨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전례를 따라서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그래서 우리가 배경을 알아야 같이 감동을 한다. 당첨이 되는 순간부터 사갸랴의 가슴은 흥분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면 감동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일생일대에 한 번있는 것이다. 아파트 당첨은 두 번도 할수 있다.
그런데 일생에 딱 한 번 할수 없는 것인데 사가랴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겠는가 우리가 그것을 보면서 같은 마음을 좀 품어야 한다. 모든 백성들은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들어가서 분향하고 있는 동안에 바깥 뜰에서 기도합니다. 성전의 구역은 나누어져 있어서 성전바로 다음 성전을 중심으로 남자들이 들어올수 있었고, 그리고 여자, 그리고 이방인들의 뜰같이 정해져 있다. 어쨌든 모여있는 사람들이 향불이 올라가는 그 시간에 각자 자기의 소원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분향하는 것을 보면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사람들은 우리 기도와 관련를 시킨다. 우리 기도도 하나님께 올라가야 하니까 향을 피우면서 거기에 기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을 했습니다. (시141: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141:2)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내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게하시고, 내가 손을 들때에 저녁제사와 같게 되게해주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저녁 제사를 드린후에 분향하는 시간을 가졌다. (계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 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앞에 엎드려 거문고를 가졌다는 것은 찬양을 상징하는 것이고, 향이 가득한 금대접은 기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영물들을 통해서 그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는 장면을 볼수 있습니다.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 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계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향연이 하늘로 올라 갈때에 땅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요한은 밧모에서 성령님의 사로잡혀 하늘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장엄한 하늘 장면을 보게 되었을때에 거기 보좌가 있고, 보좌앞에 인봉된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을 보고 싶은데 아무도 그 인을 뗄자가 없었습니다. 천지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통곡했을때에 울지말라. 유다지파의 사자가 이기었다. 그가 떼시기에 합당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책의 인들이 하나씩 떼어지고난 다음에 8:3-4절에 향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이 떼어지는 역사도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지고, 향이 올라가고난 다음에 경고의 울려 펴지는것도 성도의 기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가랴는 생의 처음으로 이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 직무를 수행하려 들어 가서 기도하고 싶었던 순간 사가랴의 마음속에 맺혀 있던 기도제목이 있지 않았겠는가 기도시간이 되어서 내가 무슨 기도하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드려왔던 기도가 불현 듯 생각났을지도 모릅니다. 자식하나 가져보았으면 하는 기도를 젊은날부터 드려 왔는데 그에게는 그런 응답이 없었다. 나중에는 자기의 나이는 다 잊어 버리고 기도를 드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나은 것을 기억한다면,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두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상상해 보십시오. 바깥에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그 거룩하신 성소에 드셔서 당신의 백성의 기도를 받아 주옵소서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눈을 뜨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향단우편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순간에, 기도하고 있는 그때에 자기뜻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누가는 어떤 복음서 기자보다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내 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도 백성들과 제사장이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세례를 받을때에 하늘문이 열렸다고 말하고 있다. (눅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변화산 사건에도 같은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기도하시던 중에 그 얼굴이 변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이 않는 모습들이 누가복음에 기록하고 있다. 하늘의 계시가 기도와 동시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계시가 주어지는 합당한 환경이 기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밝혀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향단우편에 천사가나타나는 환상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 밝혀진다. 새로운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것에는 종료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여기 다 밝혀주고 계신다. 우리가 믿고 구원받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밝혀놓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밝혀져 있는 이 뜻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도할때에 하나님이 열어 주신다.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라는 최초의 지시가 제9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는 중에 비몽사몽간에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금식하며 기도할때에, 진지하게 기도할때에 우리에게 자기의 뜻을 밝혀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참 한심할때가 많다. 나같은 경우를 보면 한참기도하다가 다른 것을 생각하고 끊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3.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자기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자기의 뜻을 나타낼뿐만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자기의 뜻을 보여주는 것 뿐아니라, 기도하는 순간에 자기의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성도는 기도의 특권을 누리는 자이다. 구약 시대에는 성막안으로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 여자들은 바깥뜰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과 저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 이문제는 내 기도가지고 안될거야, 집사님한테 부탁할까, 목사님한테 부탁할까’ 그래서 자신이 안서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은 열려져 있는 휘장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는 이런 특권이 있다. 제사장들이 일생의 한 번가질수 있는 특권을 우리들은 언제든지 누릴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특권은 하나님과의 면대함을 위함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이야기 할 줄 즐기는 사람이 성숙된 사람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저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여러분들을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면대하는 일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하므로 이 특권의 기도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자. 이 특권을 잘 활용을 하자. 결론 하나님앞에 사는 사람,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나타내시고, 성취하신다. 이 놀라운 특권을 누릴수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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