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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는가 (눅17:22-37)

본문

사람들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세상 나라와 현실 정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나라를 동경해 왔습니다.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이상적인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그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고 언제 그 나라가 임하는지 궁금해 하며 그분께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20절과 21절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의미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는 그 당시에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삶 가운데 모셔들인 그리스도인 안에 영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장차 임할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언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 나라는 임하게 됩니다. 성경은 언제 그분께서 다시 오실지, 언제 하나님 나라가 임할지 정확히 알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그러나 대략적인 때를 예견해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 22-25절에서 그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22절).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이전에는 임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25절). 하나님 나라는 그 옛날 예수님과 함께 팔레스타인 땅을 걸었던 제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임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22절).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에 대한 여러 헛소문들이 나돈 후에나 임하게 될 나라입니다(23절). 하나님 나라는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는 나라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임하는 나라입니다(24절). 예수님께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그 때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흡사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이 말씀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은 우리 시대와도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 나라는 세상이 노아의 때와 같을 때 임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27절) 예수님께서는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는 것으로 노아의 때를 특징지우셨습니다. 우리는 왜 이것이 그 시대만의 특징이 되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하는 일인데 그것이 무슨 특이한 점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나이 들면 장가 들고 시집가는 것이지 그것이 다른 시대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 의문점은 우리가 창세기 6장에서 그 시대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해소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corrupt, 도덕적 타락, 썩어빠짐) 강포(violence, 폭력, 잔인함)가 땅에 충만한지라”(창6:11)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창6:13)
그 시대는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 정도로 죄악과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따라서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를 즐긴 것은 그들이 정상적이고 기본적인 식생활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죄가 될 정도로 과도한 식도락과 음주문화를 즐겼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술이 있는 곳에 거친 말이 있고 흥분이 있고 폭력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음식의 양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질을 따지고 맛을 따지고 분위기를 따지게 되었습니다. 한 끼 먹는 데 몇 만원씩 드는 메뉴를 보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음주문화는 어떻습니까 한 번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2차, 3차까지 간다지 않습니까 술 종류도 값싼 막걸리나 소주가 아니라 맥주와 위스키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외식문화가 많이 발달했고 생기는 것이 음식점이고 술집(호프집, 단란주점, 소주방)입니다. 각종 폭력물에 노출되다 보니 술을 마시지 않고도 쉽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데, 술까지 즐기니 사회 폭력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장가 들고 시집가는 것도 문란한 성도덕과 결혼관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2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누구를 뜻하는지에 대해서 신학적인 논쟁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이들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1부1처제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개의치 않고 아내로 삼았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어떻게 한 남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한 여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남자를 남편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목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쉽게 하는 이혼과 재혼입니다. 시험 결혼 또는 계약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한 남자가 둘 이상의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이 사회에 빈번하게 될 때 어찌 노아의 때와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하나님 나라는 세상이 롯의 때와 같을 때 임합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28절) 롯의 때에도 사람들은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는 일에 탐닉했습니다. 특히 동성애가 극에 달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2:6-8) 또한 그때에는 장사하는 일이 성행했고 건축 붐이 일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상업에 종사하고 세계를 상대로 활발히 무역을 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뿐인가요 매년 도시개발로 논밭과 산림이 갈아 앞어지고 각종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기술력과 부의 상징인 최고층 건물을 짓겠다는 열심도 대단합니다. 바벨탑 사건의 재판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려지고 심판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34, 35절) 롯은 사위들에게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멸망하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가족들과 방주만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은 그를 “의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그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경고했으며 회개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행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이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가족들과 함께 짓고 있던 방주가 완성되는 날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도 가지지 않고 먹고 마시는 일에 빠졌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엄청난 식량을 방주로 옮기던 날에도 두려움도 없이 장가 들고 시집가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각종 짐승과 새들이 짝을 지어 방주로 몰려들던 날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자마자 홍수가 쏟아졌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방주에 들어가고난 후 7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였다고 말합니다(창7:10). 그 7일 동안 어느 누구도 방주로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방주와 홍수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와 민족들은 약간씩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구 전역을 휩쓸었던 대홍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배를 뜻하는 한자 선(船)은 배 주(舟)에 여덟 팔(八)과 입 구(口)를 합성한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 없이 지낸 삶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일본의 태평양함대가 미국 최대의 해군기지인 하와이제도 오아후섬의 진주만(眞珠灣)을 기습했던 1941년 12월 7일 오전7시 30분. 오아후섬의 레이더기지 근무자인 리카르도 일병은 스크린에 대규모 비행기단의 영상이 나타나자 인근 정보센터의 타일러 소위에게 이 상황을 2차례나 보고했다. 이때 타일러 소령이 보인 반응은 "무시해버려!"였다. 그는 이날 본토의 육군폭격기들이 훈련비행을 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더의 스크린에 나타난 비행단을 미육군의 폭격기 쯤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의 기습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7시 55분. 일본전폭기가 북쪽에서 급강하,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공격목표는 진주만에 닻을 내리고 있는 수십 척의 전함들과 히캄공군기지의 수백대의 전투기들. 일본기의 동시다발 폭격으로 위용을 자랑했던 전함 캘리포니아호 등 수 척의 전함과 함정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볕 좋은 일요일 아침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던 병사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전함과 함께 수장됐다. 미국의 피해는 엄청났다. 사망자는 총 2천3백30명. 8척의 전함과 10척의 함정이 침몰하거나 박살이 났으며 비행기 1백88대가 피격, 파괴됐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탄식처럼 "12월 7일은 미국인에게 치욕의 날"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불길 속에 싸여 있을 때,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난 데 없이 재빠른 비행기 편대가 나타났습니다. 잠시 후 시가 상공을 두어 번 선회하던 비행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얀 삐라를 하늘에 날리고 수평선 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온 시민은 갑자기 뿌려진 한 조각의 종이 쪽지를 들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인즉, 조그마한 종이 쪽지는 미국 공군에 의한 것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경고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히로시마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8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투하되는 폭탄은 신형 원자폭탄이다!" 수십만의 시민들은 이 영문모를 경고장에 대하여 각기 나름대로 가슴을 조여가며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공갈이다.설마 무슨 일이 있을려고,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그 때, 가봐야 알지." 그러기에 그들은 무서운 경고를 받고도 꼼짝달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중 몇몇 소수만이 급히 가산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정든 히로시마를 눈물로 작별하고 50리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다만 한 장의 종이 쪽지에 적힌 경고를 믿고서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1329기 폭격기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나 상공을 두어 번 선회하더니 낙하산에 매달린 시커먼 물체 하나를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십 만 시민들은 죽음 몇 초 직전의 숨막히는 상황인데도 그 공포를 거의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구경꾼처럼, "낙하산이 내려온다" 하며, 반공호 속에서 근심 어린 눈으로 쳐다 보았습니다. 천천히 내려오던 시커먼 물체가 지상 600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섬광과 함께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순간 햇빛보다 수천 배나 밝은 강한 빛이 온 시가지를 휘감았고, 상상도 못할 대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며, 거대한 불기둥과 버섯 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폭풍과 파편들이 전 시가지로 대포알처럼 날면서 주택, 빌딩은 물론 나무 전신주 등 닥치는 대로 파괴해 버렸습니다. 하늘은 암흑으로 뒤덮이고 곳곳에 무서운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온몸을 피로 목욕한 듯 처참한 화상을 입고 곳곳의 건물 밑에 깔려 비명과 신음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소리, 엄마를 찾아 울부짖는 아이들의 소리, 자녀를 부르는 소리,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찾아 제각기 목이 터져라 부르는 그 소리들.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체들과 너무나 갑작스런 큰 충격에 정신을 잃고 그냥 거리를 뛰는 사람, 냇물로 뛰어들어 머리를 쳐 박는 사람, 물 속에서 다시 뛰쳐나오는 사람, 남자도 여자도 수치를 잊고 벗은 몸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모습, 모습들. 히로시마 인들은 3일간의 기회와 대피하여 생명을 구하라는 경고를 왜 외면하고 명분도 보람도 없이 감당치 못할 이 끔찍한 죽음을 당해야만 했는가 마지막 시간까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불신의 대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순식간에 히로시마 시민 30여만 명의 생명과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원자탄의 위력을 잘 알지 못했으나 한 조각의 종이 쪽지의 경고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수의 무리들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의 증인으로 살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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