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빛 (눅1:74-79)
본문
성탄절이 가까우면 세상은 온통 달라져 버린다. 모든게 화려해진다. 길거리에 장식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행복을 향해서 움직이게 된다. 거리에도 상점에도 화려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 받으 며 기쁜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불신자들까지도 모두 들뜬 마음으로 계 절을 맞이한다. 이것이 누구나 가지는 성탄절의 일반적인 이해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라면 엄청나다. 12월에 들어서면 온통 축제 분위 기가 된다. 집집마다 거리마다 아름다운 장식이 생겨난다. 도시마다 대형 성탄절 트리가 세워지고 화려한 불들이 켜진다. 라디오를 틀건 TV를 보건 온통 축제요 캐롤이다. 그들에게 12월은 성탄절에만 해당되는 상품으로도 나라의 GNP가 크게 달라진다. 그야말로 긴긴 기간의 엄청난 축제이다. 동네마다 집집마다 성탄절 장식도 대단해서 경연대회를 열기도 한다. 어디나 휘황찬란한 전등들이 집 전체를 빛내고 있다. 그것보러 이 동네 저동네로 차타고 다니면서 구경을 하기도 한다. 똑같은 동네가 성탄절의 달이 되면 전혀 달라진다. 사람들도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매리 크리스 마스"를 외친다. 기쁜 성탄을 맞으라고 축복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들이 의미하는게 무엇인가 이 모든 축제와 장식과 불들이 어떤 의미를 주는가 때로 신자는 세상것에서 영적인 의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 성탄절은 새로운 삶이 세상에 내려온 첫날이다. 전에 없던 전혀 새 세상이 나타난 것이다. 새로운 인종이 신처럼 사는 인간이 새시대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성경은 말한다. 세상에는 빛이 없었다. 모두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의 영혼에서 생명이 꺼졌기 때문이다. 영혼이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어야 했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했다. 스스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 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그들의 영혼은 죽었다. 빛을 만드는 기름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빛이 사라진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 안에만 있었다. 성경은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한다. 영혼은 하나님을 받음으로 생명을 가지게 된다. 마음은 빛으로 채 워져 모든 것을 바로 보게 된다. 그 빛이 세상에 내려온 날이 성탄절인 것이다. 사람들이 만든 형형색색의 모든 장식들은 모두가 성탄절의 빛을 상 징한다. 그들이 모르고 했어도 하나님은 그것으로 택한자들에게 말한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 게 빛이 비취도다"(사 9:2). 그러나 이 빛은 영적인 것이었다. 죄로 짓눌 린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한다. "빛이 어두움에 비 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
결과적으로 성탄이 왔고 새세상이 왔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빛이 도달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성탄절의 난리통에도 전혀 이 분위기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들이다. 그들에게는 성탄절 트리도 선물도 즐거움도 없다. 그 들에게 성탄절은 아무 의미 없는 날이다. 온세계가 들뜨고 불신자들도 그 러는데 오직 유대인들만은 성탄이 없다. 그들에게 성탄절은 보통날보다도 못하다. 그들은 성탄절에 특별히 냉담하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원후에 살지만 여전히 영혼은 기원전이다. 아직 구세주가 오 지 않은 상태이다. 그들에게 엄격한 종교적 예식과 전통이 있다. 제사장 도 있고 성전도 있다. 지켜야 할 율법도 있다. 그러나 빛은 없다. 생명도 없다. 죄사함도 능력도 없다. 하늘의 위로는 더욱 없다. 그들은 끝없이 짊어지고 갈 인생의 질고만이 있을뿐이요 영원한 어두움뿐이다. 여기 덧붙여 불신자들도 기원전에 살고 있다. 불신자들에게도 구세주 가 오셨지만 영접하지 않는다. 아무리 불을 밝히고 선물을 주고 받아도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밤을 지새어도 그들 속에는 축복이 없다. 성탄절 후의 장식들처럼 공허한 것이다. 이들이 할 일은 속히 생명의 빛을 모셔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은 어떠한 상태인가 우리는 기원후의 사람으로 그 특권 을 누리고 있는가 새 세상을 느끼면서 거기서 살고 있는가 새로운 인종 이 자기 속에서 다시 태어나서 그 힘으로 살고있는가 다른 신자들이 어 떠하든 상관 없이 하늘의 빛나는 사람으로 예수처럼 살고 있는가 영적인 불빛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유대인의 상태에 머물어 있다. 이 빛은 사람으로 왔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가 세상을 지으셨다. 그가 은하계의 비밀을 가지고 수많은 별을 만들었다. 그가 해 와 달과 별을 만들었다.
그가 지상의 모든 신기한 짐승들과 나무들을 만 들었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가 자기가 만든 사람이 되어 서 사람들의 영혼에 생명을 주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생명의 주를 알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를 영접 하는 이에게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 그 영광의 빛을 볼 수 있게 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빛이었다. 그리하여 그 빛에 의해서 사람들은 이끌린다. 그들 속에 주어진 빛은 그 영원한 빛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빛과 영원한 빛은 하나가 되고 그들은 영원한 생명 속에 산다. 그랜드 케년을 보기 위해서 이틀을 운전해 갔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넋을 잃었다. 하지만 놀라운건 그게 아니다. 몇 분 서서 보았더니 감정이 없어진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스 위스의 산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은 전혀 흥미 도 없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다. 거기 생명의 빛이 없다.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부부상담을 받는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렇게 좋던 사람이 결혼하고 보니까 싫어졌다. 그것이 세상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새로운 빛으로 눈을 뜬 사람은 전혀 다른게 보인다. 아내가 남편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스럽고 좋아 보인다. 보는 눈에 생명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만난 뒤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무와 풀과 돌이 금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어제와 똑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생기를 발하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축복의 빛으 로 가득차 있었다. 이것이 새롭게 열리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주려는 것이었다. 누구든 눈이 열리면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은 눈에서 비눌이 벗겨졌다고 한다. 칸트는 물자체를 보기 위해서 모든 논리를 다 동원했다. 하지만 생명의 빛이 눈을 밝혀주면 새 로운 물자체를 본다. 그냥 세상의 눈으로 보는 그런 생명없는 물건이 아니다. 광채가 넘친다. 흑백의 영상이 색깔을 받는 것과 같다. 그 생명력 은 모든 것을 다 바꾸어준다. 그리고 더욱 그 생명의 힘으로 살게 한다. 좋은 장식이 비싼 꽃이 없어도 좋다. 황량한 환경, 문제와 고통 속에 서도 색깔을 넣어준다. 생명을 가지고 보게 한다. 거기 창조가 있고 거기 사랑이 있다. 거기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아. 우리가 이 생명 의 빛을 받은 것을 우리 모두 알게 되기를. 그리고 그 빛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되기를 얼마나 원해 왔던가! 완전한 기원후의 사람이 되기를! 그가 가져오신 생명의 빛이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놓는 힘이다. 그는 말한다. "나를 영접하는 자 곧 내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 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준다. 이것은 선물이다. 그냥 주는 것이다. 그러 니 손벌려 받으라. 마음을 열고 나의 영을 받으라. 그러면 내가 모든 것 을 다 바꾸어 놓을 것이다. 자, 나를 받으라 영접하라.
성탄 선물이다." 그와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권세인가 모든 것을 바꾸는 권세이다. 세상 것들의 한계를 보라. 돈과 명예를 우리가 얼마나 사모하는가! 사랑도 권력도 정의도 우정도 애국심과 도덕도 다 높이 평가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어떠한 아름다운 단어도 다 세상수준의 힘만을 제공할 뿐이다. 성경도 세상의 단어로 하늘 복을 준다. 그 말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요, 죄사함이 그것이다. 의롭게 만들어주고 능력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면 우리가 재벌보다 권력자보다 부요하고 힘이 많은가 아니, 우리의 것은 그들의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이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모든 단어 에 새로운 힘을 넣어준 것이다. 거룩한 탄생이 가져 온 것이다. 보라. 그가 주신 생명을. 세상의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목숨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이다. 어느 집에 심방을 갔다. 그 집에 안믿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축복해 주었다. "오 하나님, 이 어머니께서 성탄의 선물을 받아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하소서." 그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웃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생명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신 사랑이 어떤 것인가 인간 수준이 아니다. 가족이나 내게 잘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게 아니다. 장세동의 의리수준이 아니다. 하나님 수준이다. 예수는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는 자기를 못박는 사람들의 용서를 구했다. 다함이 없는 사랑이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같은 사랑이 표현된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주신 의가 어떤 것인가 도덕의 의인가 부처나 공자의 의인가 아니 하나님 수준의 의이다.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덮고도 남을 의이다. 우리 악함을 없애준다. 영원한 천국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준의 의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의이다.
그리고 그 의는 성탄절에 이 세상에 소개 되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받아 누리는 감격스런 의이다. 그가 주신 능력이 어떤 것인가 수 천 억의 재산을 협박해서 모으는 것인가 명령 한 마디에 수천 수백을 학살하는 힘인가 아니면 바다를 메 꾸고 산을 헐어버리는 힘인가 그의 능력은 그 이상이다. 귀신을 몰아내 고 죽음을 물리친다. 파도를 잠자게 하고 태양을 머물게 한다. 바다를 가 르고 뱀을 밟는다. 오. 우리게 주신 그 힘을 믿기를 얼마나 바라는가. 그가 주신 모든 덕은 세상 수준이 아니다. 하늘 수준이다. 그와 함께 하늘은 이땅에 내려왔다. 이 땅과 함께 어울렸다. 인간 속에 하나님이 머 물게 된 것이다. 그것이 성탄이다. 누구든지 이 선물을 받으면 일단 모두 다 주어진다. 그리고 그대로 믿고 움직인다면 그것을 경험한다. 우리는 그 덕의 완전을 향해서 움직여 나가는 새로운 인종이다. 하늘 사람이다. 성탄은 세상에 생명을 보내주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왔다. 하 늘이 어둔 세상에 내려온 것이다. 하나님 족속의 탄생이다. 세상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의 그림자이다. 생명의 빛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을 명상하라.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사랑하는 이들여! 부디 이 축복을 누리라. 여기 붙어있으라. 그 힘으로 살기를 다시 결심하라.
그렇다. 성탄절은 새로운 삶이 세상에 내려온 첫날이다. 전에 없던 전혀 새 세상이 나타난 것이다. 새로운 인종이 신처럼 사는 인간이 새시대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성경은 말한다. 세상에는 빛이 없었다. 모두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의 영혼에서 생명이 꺼졌기 때문이다. 영혼이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어야 했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했다. 스스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 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그들의 영혼은 죽었다. 빛을 만드는 기름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빛이 사라진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 안에만 있었다. 성경은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한다. 영혼은 하나님을 받음으로 생명을 가지게 된다. 마음은 빛으로 채 워져 모든 것을 바로 보게 된다. 그 빛이 세상에 내려온 날이 성탄절인 것이다. 사람들이 만든 형형색색의 모든 장식들은 모두가 성탄절의 빛을 상 징한다. 그들이 모르고 했어도 하나님은 그것으로 택한자들에게 말한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 게 빛이 비취도다"(사 9:2). 그러나 이 빛은 영적인 것이었다. 죄로 짓눌 린 사람들은 볼 수 없었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한다. "빛이 어두움에 비 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
결과적으로 성탄이 왔고 새세상이 왔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빛이 도달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성탄절의 난리통에도 전혀 이 분위기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들이다. 그들에게는 성탄절 트리도 선물도 즐거움도 없다. 그 들에게 성탄절은 아무 의미 없는 날이다. 온세계가 들뜨고 불신자들도 그 러는데 오직 유대인들만은 성탄이 없다. 그들에게 성탄절은 보통날보다도 못하다. 그들은 성탄절에 특별히 냉담하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원후에 살지만 여전히 영혼은 기원전이다. 아직 구세주가 오 지 않은 상태이다. 그들에게 엄격한 종교적 예식과 전통이 있다. 제사장 도 있고 성전도 있다. 지켜야 할 율법도 있다. 그러나 빛은 없다. 생명도 없다. 죄사함도 능력도 없다. 하늘의 위로는 더욱 없다. 그들은 끝없이 짊어지고 갈 인생의 질고만이 있을뿐이요 영원한 어두움뿐이다. 여기 덧붙여 불신자들도 기원전에 살고 있다. 불신자들에게도 구세주 가 오셨지만 영접하지 않는다. 아무리 불을 밝히고 선물을 주고 받아도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밤을 지새어도 그들 속에는 축복이 없다. 성탄절 후의 장식들처럼 공허한 것이다. 이들이 할 일은 속히 생명의 빛을 모셔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은 어떠한 상태인가 우리는 기원후의 사람으로 그 특권 을 누리고 있는가 새 세상을 느끼면서 거기서 살고 있는가 새로운 인종 이 자기 속에서 다시 태어나서 그 힘으로 살고있는가 다른 신자들이 어 떠하든 상관 없이 하늘의 빛나는 사람으로 예수처럼 살고 있는가 영적인 불빛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유대인의 상태에 머물어 있다. 이 빛은 사람으로 왔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가 세상을 지으셨다. 그가 은하계의 비밀을 가지고 수많은 별을 만들었다. 그가 해 와 달과 별을 만들었다.
그가 지상의 모든 신기한 짐승들과 나무들을 만 들었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가 자기가 만든 사람이 되어 서 사람들의 영혼에 생명을 주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생명의 주를 알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를 영접 하는 이에게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 그 영광의 빛을 볼 수 있게 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빛이었다. 그리하여 그 빛에 의해서 사람들은 이끌린다. 그들 속에 주어진 빛은 그 영원한 빛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빛과 영원한 빛은 하나가 되고 그들은 영원한 생명 속에 산다. 그랜드 케년을 보기 위해서 이틀을 운전해 갔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넋을 잃었다. 하지만 놀라운건 그게 아니다. 몇 분 서서 보았더니 감정이 없어진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스 위스의 산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은 전혀 흥미 도 없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다. 거기 생명의 빛이 없다.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부부상담을 받는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렇게 좋던 사람이 결혼하고 보니까 싫어졌다. 그것이 세상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새로운 빛으로 눈을 뜬 사람은 전혀 다른게 보인다. 아내가 남편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스럽고 좋아 보인다. 보는 눈에 생명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만난 뒤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무와 풀과 돌이 금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어제와 똑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생기를 발하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축복의 빛으 로 가득차 있었다. 이것이 새롭게 열리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주려는 것이었다. 누구든 눈이 열리면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은 눈에서 비눌이 벗겨졌다고 한다. 칸트는 물자체를 보기 위해서 모든 논리를 다 동원했다. 하지만 생명의 빛이 눈을 밝혀주면 새 로운 물자체를 본다. 그냥 세상의 눈으로 보는 그런 생명없는 물건이 아니다. 광채가 넘친다. 흑백의 영상이 색깔을 받는 것과 같다. 그 생명력 은 모든 것을 다 바꾸어준다. 그리고 더욱 그 생명의 힘으로 살게 한다. 좋은 장식이 비싼 꽃이 없어도 좋다. 황량한 환경, 문제와 고통 속에 서도 색깔을 넣어준다. 생명을 가지고 보게 한다. 거기 창조가 있고 거기 사랑이 있다. 거기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아. 우리가 이 생명 의 빛을 받은 것을 우리 모두 알게 되기를. 그리고 그 빛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되기를 얼마나 원해 왔던가! 완전한 기원후의 사람이 되기를! 그가 가져오신 생명의 빛이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놓는 힘이다. 그는 말한다. "나를 영접하는 자 곧 내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 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준다. 이것은 선물이다. 그냥 주는 것이다. 그러 니 손벌려 받으라. 마음을 열고 나의 영을 받으라. 그러면 내가 모든 것 을 다 바꾸어 놓을 것이다. 자, 나를 받으라 영접하라.
성탄 선물이다." 그와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권세인가 모든 것을 바꾸는 권세이다. 세상 것들의 한계를 보라. 돈과 명예를 우리가 얼마나 사모하는가! 사랑도 권력도 정의도 우정도 애국심과 도덕도 다 높이 평가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어떠한 아름다운 단어도 다 세상수준의 힘만을 제공할 뿐이다. 성경도 세상의 단어로 하늘 복을 준다. 그 말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요, 죄사함이 그것이다. 의롭게 만들어주고 능력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면 우리가 재벌보다 권력자보다 부요하고 힘이 많은가 아니, 우리의 것은 그들의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이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모든 단어 에 새로운 힘을 넣어준 것이다. 거룩한 탄생이 가져 온 것이다. 보라. 그가 주신 생명을. 세상의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목숨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이다. 어느 집에 심방을 갔다. 그 집에 안믿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축복해 주었다. "오 하나님, 이 어머니께서 성탄의 선물을 받아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하소서." 그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웃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생명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신 사랑이 어떤 것인가 인간 수준이 아니다. 가족이나 내게 잘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게 아니다. 장세동의 의리수준이 아니다. 하나님 수준이다. 예수는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는 자기를 못박는 사람들의 용서를 구했다. 다함이 없는 사랑이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같은 사랑이 표현된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주신 의가 어떤 것인가 도덕의 의인가 부처나 공자의 의인가 아니 하나님 수준의 의이다.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덮고도 남을 의이다. 우리 악함을 없애준다. 영원한 천국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준의 의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의이다.
그리고 그 의는 성탄절에 이 세상에 소개 되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받아 누리는 감격스런 의이다. 그가 주신 능력이 어떤 것인가 수 천 억의 재산을 협박해서 모으는 것인가 명령 한 마디에 수천 수백을 학살하는 힘인가 아니면 바다를 메 꾸고 산을 헐어버리는 힘인가 그의 능력은 그 이상이다. 귀신을 몰아내 고 죽음을 물리친다. 파도를 잠자게 하고 태양을 머물게 한다. 바다를 가 르고 뱀을 밟는다. 오. 우리게 주신 그 힘을 믿기를 얼마나 바라는가. 그가 주신 모든 덕은 세상 수준이 아니다. 하늘 수준이다. 그와 함께 하늘은 이땅에 내려왔다. 이 땅과 함께 어울렸다. 인간 속에 하나님이 머 물게 된 것이다. 그것이 성탄이다. 누구든지 이 선물을 받으면 일단 모두 다 주어진다. 그리고 그대로 믿고 움직인다면 그것을 경험한다. 우리는 그 덕의 완전을 향해서 움직여 나가는 새로운 인종이다. 하늘 사람이다. 성탄은 세상에 생명을 보내주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왔다. 하 늘이 어둔 세상에 내려온 것이다. 하나님 족속의 탄생이다. 세상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의 그림자이다. 생명의 빛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을 명상하라.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사랑하는 이들여! 부디 이 축복을 누리라. 여기 붙어있으라. 그 힘으로 살기를 다시 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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