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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용납하라 (눅18: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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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입장식에서 가장 돋보였던 아이디어는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한 어린이였다.세계 언론은 이 아름다운 시적 장면을 서울 올림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삼았다.이 아이가 등장했을 때는 모든 음악을 멈추고 사람들은 숨죽였다.아이의 순진무구함이 주는 평화로움에 전인류는 감동했다.어린이는 바로 우리의 내일이다.어린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 곧 내일의 세계를 바르게 열어가는 것이다.부모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바르게 키우도록 신으로부터 위탁받은 청지기들이다.
첫째로, 어린이들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 예수님의 만져 주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가져왔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온 것도 그것을 기대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병들었거나 신체 장애를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열심 때문에 이들을 가로막았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아이들까지 상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모처럼 쉬시고 계시는데 성가시게 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성가신 존재로 천대받고 있다.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에서는 우리의 흥미를 끄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10: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행동에 화를 내셨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꾸짖으신 정도가 아니라 분히 여기셨다.그분께서는 앞서 성전이 장사판으로 변한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다(요2:13-16). 그러나 제자들에게 화를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고 피곤하셨다. 쉼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가로막는 제자들에게 꾸짖으셨고 아이들을 반기셨다. 아이들이 주님께 나오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그분을 언짢게 하는 행동이다. 아이들을 교회로 나가게 하고 나가려고 하는 것을 가로막지 말라. 교회는 어린이들을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예배시에 아이들이 통제되지 않은 채 버려두라는 뜻은 아니다.
둘째로, 어린이들의 접근을 받아주어야 한다.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사는 노인들이 점점 중가하고 있다. 노인들이 자식들 눈치 보지 않고 지내는 것이 편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자식들이 귀찮아 하고 성가신 존재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자녀를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우리 중 얼마나 많은가! 방해된다고 여겨지면 네 방에 가서 해라거나 나가서 놀아라고 말한다. 피곤하니까 네가 알아서 해 하면서 멀리한다.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감독과 보호는 선진국일수록 철저하다. 미국 국민학교에는 어디가나 선생님을 돕는 패러프로(패러프로페셔널)라는 조수가 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 후 휴식시간에 담임 대신 아이들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로 학부모회 엄마 아빠들이 교대로 맡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 직원을 쓰기도 한다. 어린이는 언제나 어른의 가시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독일 로텐부르크시 암 네카 아파트에 살던 곽노의씨(서울교대교수)는 어느 일요일 교회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아이가 교회옆 마당에서 놀자, 주민이 대뜸 일요일에 여기서 놀아서는 안된다고 꾸짖었다. 어린 아이들이 골목이나 공터에서 놀면 위험하다는 얘기다. 일본서도 골목길이나 아파트 주차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발견하기란 정말 힘들다. 반드시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놀도록 감시하고 있다. 영국에 5년째 체류중인 장의경씨(36)도 엇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장씨는 런던시내 몰던센터라는 구민회관에서 한국엄마들과 이야기하면서 습관처럼 아이들을 회관옆 놀이터에 나가 놀라고 했다. 30분쯤 뒤 찾아가보니 이웃집 할머니가 당신같은 어머니는 처음 본다며 장씨를 노려봤다. 할머니는 아이들끼리만 놀고 있어 당신이 나타날 때까지 30분동안 내가 애들을 지켰다며 경찰에 신고하려던 참이었다고 얼굴을 찡그렸다. 캘리포니아 형법 11166조는 어린이들을 혼자 놔두거나 음식을 주지 않는 것을 포함, 아동학대에 관한 신고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만약 미국에서 잠들어 있는 어린애를 무심코 승용차 안에 두고서 잠시 백화점에 들어갔다가는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현청씨는 미국 일리노이 유니트 포인트 유치원에 다니는 세라
(6)를 기다리다가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스쿨버스를 놓친 딸이 잠시 길에서 서성이자 곧바로 누군가 경찰에 신고해버린 것. 일본 와세다대학 부근 도쓰카 제1유치원. 매일 아침 유치원 정문에서 엄마-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인사한다. 유치원이 끝나면 엄마는 아이와 손을 잡고서 나란히 선생님께 인사한다. 그럼 내일 또. 이것은 보호자와 선생님이 정확하게 아이들을 매일 인수인계를 하는 절차이다. 15세이하의 어린이는 친언니일지라도 아이를 데리러 갈 자격이 없다. 이웃집 엄마가 대신 데리러 갈 때는 선생님에게 미리 전화로 양해를 받아야 한다. 싱가포르에 사는 김홍수씨는 어느 날 딸보다 한시간 늦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는 스쿨버스 운전사와 딸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놀고 있었다. 아무도 안계시니다른 아이들을 다 내려준 후 다시 왔어요. 스쿨버스 운전사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엄마나 아빠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 우리는 나가 놀아라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만, 미국 공원 놀이터에서 어린이가 놀고 있으면 대개 구석 벤치서는 엄마가 책을 읽고 있다. 일본 유치원서는 귀가길에 아이들이 엄마손을 팽개치고 혼자서 뛰어가지 못하도록 유치원부터 지도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 꼭 그와 같이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고 직장 같다 와서 피곤하더라도 아이들과 대화하고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아이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고 변론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한 명 세우셨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눅9:48) 어린아이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통해서 배운다. 심지어 어리석은 사람을 통해서도 배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도 배우지 못한다. 예수님은 얼마 전에 야심을 가진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취하셔서 그들 가운데 두고 교훈을 주셨다. 어린아이와 같음이란 단순한 믿음을 뜻한다. 그들은 어른이 말해주면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 저것 따져묻지 않는다. 또한 부모에 대한 밀착감을 뜻한다. 그들은 엄마로부터 책망받아도 그때뿐이고 금방 엄마 품을 다시 찾는다. 심지어는 울면서도 엄마 품으로 달려든다. 그러나 청소년들이나 다 자란 자식의 경우는 어떤가. 아마 하루 종일이나 며칠씩 부모 얼굴도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가. 겸손과 receptiveness, meekness, a simple application to and trust in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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