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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 (눅18:15-17)

본문

철인 소크라테스가 임종을 앞둔 1년 전, 그의 보행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만약 아테네의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여러분은 보이는 돌 맹이까지도 몽땅 금덩어리(돈)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금덩어리를 모 두 들여 어린이교육에 더 정성을 기울여 교육할 생각이 없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어린이가 인정 못 받고 살던 시대에 철인 소크라테스의 말은 역시 무게가 있고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조국의 먼 장래를 내다 본 식견 있는 사람의 예언자적 소리같이 들려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언덕에 올라가 그 시민들에 게 외치고 싶던 어린이 교육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표본으로 어린아이를 지목하고 저들 가운데 어린아이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하나를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하면 곧 예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 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8:14). 어린아이가 바로 천국에서 제일 큰 자라 고 하였습니다(마 18:1-4). 이런 예수님이시고 보면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는 소원 의 충동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 중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일까 왜 데리고 왔을까 누구에게 데리고 왔을까 그 결과는 어떠했 을까
I. 아마 은혜를 받은 어린이의 부모들일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5절에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 기를 데리고 오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나옵니다. 먼저 '어린아이'라고 하는 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한 단어는 파 이디아인데, 이 본문에는 브레페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여기 어린아이들은 '유아'를 의미합니다. 자기 발로 자립해서 걷고 말로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될 유아들도 데리 고 왔다는 뜻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자유로 행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일반 어린이들도 예수님을 따 라 군중 속에 있던 목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디베랴 언덕에 모인 무리들 중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된다고 한 성경이 이 사실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던 무 리들 중에도 어린아이들의 뜨거운 함성이 있었음을 봅니다. 우리 본문의 경우 유아 된 어린아이를 의미합니다. 누가 데리고 왔을까 그 아이들의 부모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에는 자기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오 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예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들의 아이들도 예수께 데리고 가고 싶었던 이상한 영의 충동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저들은 참 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부모들입니다.
Ⅱ. 누구에게 데리고 왔던가 예수였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5절은 다시 말하기를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 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가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죄인의 구주이십니다.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앉은뱅이를 걷게 하신 예수이십니다. 문 둥이를 깨끗하게 하신 예수이십니다. 귀머거리의 귀를 여신 예수이십니다. 죽 은 자를 살리신 예수이십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신 예수이십니다(마 11:5).
※ 말하자면 빛이신 예수, 자유케 하시는 예수, 깨끗게 하시는 예수, 부활 의 예수, 인생의 막힌 곳을 열어 주시는 예수, 구세주 예수였습니다. 어린이 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예수,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였습니다. 영육을 치료하시는 구원의 예수, 생명의 의사이신 예수였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께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부다에게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허무주의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공자, 맹자에게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수신제가치국 평천하의 길로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데리고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이상적 윤리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마호멧에게 데리고 가 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알라의 종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점장이나 다른 잡 신에게나 아니면 어떤 철학관장에게 데리고 가지도 않았숩니다.
그렇다면 운 명론자가 되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자기 아이를 예수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참으로 옳은 부모요 인도자였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에게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바로 여 기에 그리스도인 된 부모의 본질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부모 된 자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그 자녀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 아이에 게 큰 축복입니다. 저는 부모의 인도로 예수께 나가지 못했습니다. 부모가 불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는 장로 아들인 친구의 인도로 예수께 갔습니다. 그 만 큼 예수를 배우고 따르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된 부모의 자녀들은 뱃속에서부터 예수에게 나갑니다. 그리고 어머니 품에 안기 고 등에 업히어 예수에게 나가고, 그 후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예수에게 나갑니다. 인생 출발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모든 사람들 앞서서 달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Ⅲ. 왜 데리고 갔습니까 예수의 축복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5절은 다시 말하기를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 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만져 줌'이란 단어 하프테타이는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어린 아이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저들이 자 기 아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온 목적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축복을 받기 위 함이었습니다. 이때 예수의 제자들은 저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부모들이 자기에게 데리고 온 아이들에 대해서 결정적인 반응을 나타내셨습니다.
1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눅 18:16).
2 어린아이들을 가까이 하였습니다(눅 18:16).
3 어린아이들을 예수의 품에 안았습니다(막 10:16).
4 저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여 주었습니다(막 10:16, 마 19:15). 5 하나님 나라의 표본(겸손, 섬김)이라고 하였습니다(눅 18:17, 막 19:14). 자기 아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간 사람들은 이렇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 의 품에 안기고, 예수의 어루만짐을 받고, 예수의 안수기도를 받은 그 아이들 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아들을 죽음의 자리에서 살림을 받아 데리고 갔습니다(막 9:17, 21, 25-27). 자기 아이를 예수께 데리고 간 아버지는 정말 좋은 결과를 보았습니다. 큰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건강한 아들, 새 아들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저들에 게는 엄청난 가능성의 잠재력이 있습니다. 저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보낸 정권대사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가 정의 기쁨과 웃음과 춤과 노래를 불러 일으키는 자가 누구인가 어린아이입니다. 가정의 화목과 대화의 채널이 누구인가 어린아이입니다. 젖먹이들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높은 어른이 누구인가 형식상으로는 할아버지요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실세는 어린아이가 아닌가 온 가족이 그 어린아이 앞에 쩔쩔매 고, 어쩔 줄 모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 아이의 요구를 누가 거절할 것인 가 그 아이가 아플 땐 온 가족이 다 달라붙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울면 온 가족이 그 울음을 멈추기 위하여 합동 쇼를 벌이지 않는가 잔센호는 미국과 뉴질랜드 사이를 왕복하던 여객선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 히도 폭풍을 만나 100일 동안이나 바다에서 표류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식량 은 다 떨어지고, 다른 배로부터 도움을 받을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무전기가 나오기 전이고 보면 통신수단을 써서 구조요청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때였습니다. 보이기를 기다리는 육지의 모습은 그림자조 차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포자기와 실의에 빠져 이제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선장 부인과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그의 갓난아이 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 갓난아이는 누구를 보아도 생글생글 웃어 주었습니다. 그 아기는 지금 그 배가 어떤 지경 속에 빠져 있는 지를 알 리가 없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언제나 생글생글 웃음을 주는 그 아이를 보면서 '그렇다. 어떤 곤경에서라도 이 배 안에 있는 저 아이만은 살려야 한다. 우리 기운 을 냅시다.'라고 하면서 용기를 얻고, 인내심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선실을 덮었던 공포와 불안과 무거운 절망은 그 어린아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활기를 띠면서 사라져 갔습니다. 모두가 그 아이를 쳐다보고 웃으면서 기운을 내어 고통을 감내하는 중에 배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 선장의 고백이 이러했습니다. "이 배의 실제의 선장은 내가 아니라 이 갓난아이였습니다. 이 아이의 해맑게 웃는 얼굴이 선원과 승객들을 격려하 였습니다. 이 갓난아이의 웃음은 폭풍보다 더 위력이 있었습니다."라고 하였 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그마한 자석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린아이들 에게는 어른에게 없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어느 교회에 집사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함께 교회 문제를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느 분이 "목사님, 교회가 부흥이 안됩니다. 올해는 단 한 명의 교인도 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전도가 안 되는 최 악의 해였습니다. 그렇지만 교인 한 사람이 오기는 왔습니다. 그는 '모팻'이 라는 어린아이입니다. 너무 어린아이라서 교인이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후 세월은 흘렀고, 모팻의 육체적 성장과 함께 구원에 이르는 믿음도 자랐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 한평생 선교사역을 마치고 조국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영국의 왕도 자리에 일어서서 모자를 벗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정말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미래적 가능성이 있는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미취학 아동(영아유치부)부터 대학생까지 주일학생 재 적이 5,0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 미취학 아동이 617명입니다. 그 아 이들은 제1교육국 소관입니다. 이들을 영아1주일학교, 유치1주일학교, 유치2 주일학교로 분할하여 각각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초등학생들을 지역별로 분할하여 초등1, 2, 3, 4, 5, 6주일학 교로 독립된 학교를 운영합니다. 이들은 제2교육국 소관입니다. 초등주일학교 에는 약 2,200여 명의 학생들이 있는데, 각 주일학교마다 1-6학년까지의 학생 들이 있습니다. 제3교육국은 중고대학부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약 2,0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입니다. 특별히 이 중에서 미취학 아동부인 영아부는 1-3세까지의 꼬마들입니다. 약 120여 명이 모입니다. 이 그룹에서는 주일날 반드시 어머니가 직접 아이를 데 리고 주일학교에 나옵니다. 이 모임의 열성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유치1, 2주 일학교 그룹에서도 부모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그 어린아이의 일생일대를 좌우하는 참으로 중요한 교육이 됩니다. 더욱이 50여 곳에서 모이는 어린이 새소식반은 어린이를 예수께로 데리고 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손뼉치며 노래 부르고, 함께 헌금하고, 함께 춤추고, 함께 예배드립니다. 튼튼한 인생의 기 초 작업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세는 바로 어린아이에 게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도 각급 주일학교별로 여름어린이 성경학교가 이미 지난주간에 개최 되었습니다. 그리고 SFC 친구들의 여름수련회와 개척교회 봉사 활동이 시 작됩니다. 우리 모든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나오는 축복을 받았는 가 이웃에 사는 남의 아이들도 예수께 데리고 오는 축복을 받기 받았는가 지난주간 성경학교가 열리는 교실을 제가 죽 둘러보았는데 정말 그 열기는 대 단했습니다. 모든 부모들은 어린아이에게 예수의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근본을 배우고, 영원한 구원의 복음을 받는 축복을 받 게 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또한 더 적극적으로 자기 아이들을 받은 달란트대로 예수님께 헌신시키기 위하여 데리고 와야 합니다. 매주일 아니 날마다 예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더욱 열 심을 내어 예수께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한나가 사무엘 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데리고 갔습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축복이 따랐습니다. 어린이 새소식반을 위한 여러 봉사자들, 각급 주교 교사님들, 이 일에 협력 하는 여러 제직들 그리고 담당 사역자들 위에 크신 주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 합니다. 무더운 여름에 많은 어린이를 예수께 데리고 오는 멋진 별들의 전쟁 에서의 승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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