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믿음이란? (눅18:16-17)
본문
18세기를 가리켜 민중을 발견한 때라고 하며,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 고,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억압 당하고, 짓눌리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8세기부터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함으로써 민중이나 여자, 어린이의 인권이 존중되게 되었고 사회적인 지위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의 지위와 인권도 가장 소홀히 취급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B.C. 1세기경 힐다리온 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어 사내아이면 잘 키우고 여자아이면 내다버리라고 하는 내용을 썼다는 것 입니다. 쎄네카는 "우리는 약하고 못생긴 아이들은 키우지 아니한다."라고 했답니다. 이러한 사실은 어린이들이 어떠한 대접을 받아왔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숫자를 세는데 있어 어린이를 포함 시키지 않았던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오늘과 같이 어린이 주일을 제정하게 만들었으며, 어린 이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어린이를 올바로 평가하고 바르게 양육하 며, 동시에 본문의 말씀과 같이 어린이를 통한 신앙적 교훈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두 가지 방향으로 말씀을 증거하고 자 합니다. 어린이를 올바로 양육하는 자세와, 어린이가 상징하며 교훈하는 신앙 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어린이를 바르게 양육하는 길은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어린이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는 사고와 판단이 미성숙하여 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답답한 때가 있고, 그것도 못하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과 말은 유치하기 쉽고 어근들의 양에 안차게 되 어져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모를 심어놓고 매일 논에 가서 벼를 자꾸 뽑아 올리더랍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벼가 빨리 자라서 열매를 맺었으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벼는 자라지도 못하고 누렇게 떠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모든 것이 성장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어린이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하고픈 일들이 있을 것이고 즐기는 것이 있을텐데, 우리 어른들 입장에서 그러한 심리와 일들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어린이들은 어른과 사회에 대하여 반항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것 입니다.
둘째는 관심을 가져 주는 일입니다. 어린이들이 제안하고 부탁하는 일은 유치한 것이기에 종종 어른들이 그들의 말에 대하여 무관심을 가질 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 입장에서는 중요한 관심사인데 말입니다. 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보미라는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발표회가 있 어서 아빠를 학교로 초청하게 되었답니다. 보미는 연극을 마치고 아빠에게 달려가서 "아빠 내 연기 어떠했어요" 하고 묻자 아빠는 마침 친한 사람을 만난터라 "보미야, 귀찮게 굴지마. 지금 아빠 이야기하고 있잖니" 하였다는 것이지요. 어린 딸의 관심사항이 무엇인지를 아빠는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딸 에게 큰 상처를 준 것입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같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셋째는 칭찬을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26세된 한 청년이 상담을 요청했답니다. 이 청년은 늘 열등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얼굴도 잘 생겼고 똑똑한 것 같기도 한데,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 보니까, 이 청년은 어렸을적부터 한 번도 칭찬을 들어 본 경험이 없다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 생각에 기억되고 있을 박한상이란 청년도 그 부모를 살 해까지 하게 된 이유가 그는 어렸을 적부터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칭찬하게 되면 다른 부족한 면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면을 들추어 내기 보다는 좋은 면을 칭찬해 주고, 격 려해 줌으로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줄 수 있어야 겠습니다.
넷째는 사랑의 채찍을 가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칭찬과 함께 잘 조화를 시켜야 할 것입니다. 칭찬만 해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하고도 지혜로운 채찍질에 의해 아이들을 독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훌륭한 어머니를 꼽을 때 꼭 기억되는 분입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꺽어 버리라. 이것을 빨리 꺽을수록 더욱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잘못된 악습을 자녀들에게 기르게 한다.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 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말을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듯이 자녀들에게 사랑의 채찍을 때린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별로 해 주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혼내고 매를 댈 수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한편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결과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서는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 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고, 잠언 13장 24절에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 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결국 사랑의 채찍질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깨달아 알 수 있 을 것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 아들이 고3이 되어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길래 물었답니다. 장로님이 말씀 하시길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 다시 교회에 잘 나 오겠답니다" 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더니 결국 이듬해 대학시험에 그 아들이 떨어졌다는 것이지요.
온 가족이 슬픔에 잠겼다가 그 주일에 교회에 나오게 되어 목사님은 "하나님을 먼저 공경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 아니겠냐"고 권면했더니 진지하게 받아 들이더랍니다. 누구든지 자식들에겐 약합니다.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싶고 뒷바라지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공경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 복되고 소 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공경하여 천국을 차지할 수 있는 자녀가 된다면 이 땅에 서 다소 부족하고 잘못 뒷바라지 해 주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냔 말이지 요. 어렸을적부터 주일 성수를 철저히 배우지 못하면 커서도 할 수 없고 십일조를 배우지 못하면 커서도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이 땅에서와 저 천국에서도 복을 복는 아이가 되기를 원한다면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을 철저히 가르치는 신앙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대로 행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와 신앙이 좋은 모습 뿐아니라, 말과 행동에 있어 본이 되어 야겠습니다. 가정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는 가정적인 아이가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혈기 잘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혈기를 잘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모 공경을 잘하는 가정의 집에서는 효도하는 자녀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 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는데,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시게 되었는가 하 면 바로 열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열두 제자중 자신들은 천국에 대한 자신감에 누구라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무리 나의 직계 제자이지만 어린아 이와 같은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상황에서 누가 크냐하고 다투는 가운데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며 들려지고 있는 말씀 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 가운데 주님께서는 천국은 이런자의 것 이라는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런자라는 말은 어린아이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상과 같이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과 어린자의 것이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천국을 차지하기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가를 설명해 주 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합당한 자는 바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 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수하고 악이 없을 때만이 주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과, 억지로 오리를 동행하자면 10리를 동행해 주라는 말씀이나,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도 주라 하셨으니 우리가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결 코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은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진정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저 오른뺨을 치는자,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자, 속옷을 달라하는 자를 향해 필요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생각할 것 이상은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바로 이 점에 충실하게끔 되어있습니다. 무서우면 울고, 기쁘면 웃고 자신의 감정표현은 정확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너무나 순 수하고 담백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에 대하여 가르칠 때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 며"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악한 것을 계획하지 않고 악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린아이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것이든 이웃에게 기대하지도 말고 주님을 바라보 면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주님께 맡겨야 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 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 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121)는 말씀의 차원을 경험하도 록 합시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들라'라든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 라'는 말씀 등을 해석할 때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의지하듯이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라는 뜻이다' 라든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 라'는 쪽으로 말씀을 풀이하기도 합니다만 진정 정통한 해석이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고 순수하고 담백한 성격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들은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수록 교활해지고 거칠어지기 쉬운 존재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우리 인간들의 속성이므로 어린아이가 되어져 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이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님과 말씀과 기도로 전진해 갈 수 있도록 하십시 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어린아이의 심령을 향해 침노해 가도록 합시다. 침노하는 여러분을 향해 성령님의 도우심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순수하고 악이 없고 단순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잃지 않도록 우리 모두 전진해 가도록 합시다.
첫째는 어린이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는 사고와 판단이 미성숙하여 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답답한 때가 있고, 그것도 못하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과 말은 유치하기 쉽고 어근들의 양에 안차게 되 어져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모를 심어놓고 매일 논에 가서 벼를 자꾸 뽑아 올리더랍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벼가 빨리 자라서 열매를 맺었으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벼는 자라지도 못하고 누렇게 떠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모든 것이 성장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어린이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하고픈 일들이 있을 것이고 즐기는 것이 있을텐데, 우리 어른들 입장에서 그러한 심리와 일들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어린이들은 어른과 사회에 대하여 반항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것 입니다.
둘째는 관심을 가져 주는 일입니다. 어린이들이 제안하고 부탁하는 일은 유치한 것이기에 종종 어른들이 그들의 말에 대하여 무관심을 가질 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 입장에서는 중요한 관심사인데 말입니다. 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보미라는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발표회가 있 어서 아빠를 학교로 초청하게 되었답니다. 보미는 연극을 마치고 아빠에게 달려가서 "아빠 내 연기 어떠했어요" 하고 묻자 아빠는 마침 친한 사람을 만난터라 "보미야, 귀찮게 굴지마. 지금 아빠 이야기하고 있잖니" 하였다는 것이지요. 어린 딸의 관심사항이 무엇인지를 아빠는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딸 에게 큰 상처를 준 것입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같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셋째는 칭찬을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26세된 한 청년이 상담을 요청했답니다. 이 청년은 늘 열등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얼굴도 잘 생겼고 똑똑한 것 같기도 한데,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 보니까, 이 청년은 어렸을적부터 한 번도 칭찬을 들어 본 경험이 없다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 생각에 기억되고 있을 박한상이란 청년도 그 부모를 살 해까지 하게 된 이유가 그는 어렸을 적부터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칭찬하게 되면 다른 부족한 면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면을 들추어 내기 보다는 좋은 면을 칭찬해 주고, 격 려해 줌으로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줄 수 있어야 겠습니다.
넷째는 사랑의 채찍을 가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칭찬과 함께 잘 조화를 시켜야 할 것입니다. 칭찬만 해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하고도 지혜로운 채찍질에 의해 아이들을 독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훌륭한 어머니를 꼽을 때 꼭 기억되는 분입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꺽어 버리라. 이것을 빨리 꺽을수록 더욱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잘못된 악습을 자녀들에게 기르게 한다. 또 자녀들을 제멋대로 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 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말을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듯이 자녀들에게 사랑의 채찍을 때린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별로 해 주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혼내고 매를 댈 수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한편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결과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서는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 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고, 잠언 13장 24절에는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 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결국 사랑의 채찍질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깨달아 알 수 있 을 것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 아들이 고3이 되어서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길래 물었답니다. 장로님이 말씀 하시길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 다시 교회에 잘 나 오겠답니다" 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더니 결국 이듬해 대학시험에 그 아들이 떨어졌다는 것이지요.
온 가족이 슬픔에 잠겼다가 그 주일에 교회에 나오게 되어 목사님은 "하나님을 먼저 공경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 아니겠냐"고 권면했더니 진지하게 받아 들이더랍니다. 누구든지 자식들에겐 약합니다.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 싶고 뒷바라지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공경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 복되고 소 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공경하여 천국을 차지할 수 있는 자녀가 된다면 이 땅에 서 다소 부족하고 잘못 뒷바라지 해 주었다 한들 무슨 상관이냔 말이지 요. 어렸을적부터 주일 성수를 철저히 배우지 못하면 커서도 할 수 없고 십일조를 배우지 못하면 커서도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이 땅에서와 저 천국에서도 복을 복는 아이가 되기를 원한다면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을 철저히 가르치는 신앙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대로 행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와 신앙이 좋은 모습 뿐아니라, 말과 행동에 있어 본이 되어 야겠습니다. 가정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는 가정적인 아이가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혈기 잘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혈기를 잘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모 공경을 잘하는 가정의 집에서는 효도하는 자녀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 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는데,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시게 되었는가 하 면 바로 열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열두 제자중 자신들은 천국에 대한 자신감에 누구라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무리 나의 직계 제자이지만 어린아 이와 같은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상황에서 누가 크냐하고 다투는 가운데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며 들려지고 있는 말씀 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 가운데 주님께서는 천국은 이런자의 것 이라는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런자라는 말은 어린아이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상과 같이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과 어린자의 것이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천국을 차지하기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가를 설명해 주 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합당한 자는 바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 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수하고 악이 없을 때만이 주님의 말씀을 준행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과, 억지로 오리를 동행하자면 10리를 동행해 주라는 말씀이나,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도 주라 하셨으니 우리가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결 코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은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진정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저 오른뺨을 치는자,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자, 속옷을 달라하는 자를 향해 필요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생각할 것 이상은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바로 이 점에 충실하게끔 되어있습니다. 무서우면 울고, 기쁘면 웃고 자신의 감정표현은 정확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너무나 순 수하고 담백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에 대하여 가르칠 때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 며"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악한 것을 계획하지 않고 악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린아이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것이든 이웃에게 기대하지도 말고 주님을 바라보 면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주님께 맡겨야 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 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 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121)는 말씀의 차원을 경험하도 록 합시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들라'라든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 라'는 말씀 등을 해석할 때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의지하듯이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라는 뜻이다' 라든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 라'는 쪽으로 말씀을 풀이하기도 합니다만 진정 정통한 해석이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고 순수하고 담백한 성격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들은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수록 교활해지고 거칠어지기 쉬운 존재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우리 인간들의 속성이므로 어린아이가 되어져 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이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님과 말씀과 기도로 전진해 갈 수 있도록 하십시 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어린아이의 심령을 향해 침노해 가도록 합시다. 침노하는 여러분을 향해 성령님의 도우심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순수하고 악이 없고 단순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잃지 않도록 우리 모두 전진해 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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