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여 울지 말라 (눅17:11-17)
본문
인생을 사노라면 여러 가지 슬픔을 맛보게 된다. 가난, 실패, 질병, 이별, 사랑의 배신, 그리고 죽음, 그 중에서도 사별(죽음의 이별)은 슬픔의 극치일 것이다.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1) 우연론:죽고 사는 것이 다 팔자소관이지.
2) 운명론:다 운명인 걸 어떻게 해, 운명에 맡겨야지.
3) 심리학, 정신의학:그럴 땐 실컷 울게 그냥 두어야지
4) 철학:인생은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것, 만남이 있으면 또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5) 현실주의:다 잊어 버랴. 그저 잊는 게 상책이야. 그러나 이런 말로 사별의 슬픔이 가실 수 없으며 참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참된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
1. 나인성의 장례 행렬 예수님의 일행이 나인이라는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 마을로부터 나오는 한 장례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장례 행렬의 사연은 참으로 딱한 것이었다.-남편과 사별한 과부, 생명과 같은 그녀의 외아들의 죽음.-이 여인에게 있어서의 자식은 자기 생명 이사의 존재, 곧 인생의 의미-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과부, 그녀가 느낀 허무. 이런 때에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2. 예수님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1)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말라고 하심-주님의 깊은 사라을 가리킨다.-사랑은 모든 기적의 원동력과 같다.-아픔을 느껴 본 자가 아픔을 알고 울지 말라고 위로할 수 있다.
2) 관에 손을 대시고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라.-관에 손을 대면 율법상 부정하게 된다.-율법과는 무관하게 고낭의 장소로 내려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다.-일어나라:살아나라-살아나는 것만이 여인에게 위로가 된다.-죽음에는 진리, 선, 아름다움, 위로, 소망도 없다.
3)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주님에게 생명이 있다. 주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으려면.
1. 생명의 중함을 알아야 한다.-평소에는 재산, 명예, 소유가 중대한 관심사처럼 보인다.-일단 죽음 앞에 서면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재산을 다 파고 며예르 다 주고라도 생명만 건질 수 있다며 예수님: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2. 주님 앞에서 멈추어 서야 한다.
1) 장례 행렬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멈추어 섰다.-주님이 다가가셔서 상여에 손을 대시자 상여행렬이 멈추었다.-그 행령의 목적지는 묘지이다.-서둘러 봤자 묘지에 좀 더 빨리 갈 뿐이다.
2) 이 죽음에로의 행렬이 우리의 모습이다-필요한 것은 행렬의 속도가 아니다.-주님 앞에 서서 그 생명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3. 말씀을 들어야 한다.
1)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는 길이다.-슬픔으로 가슴이 메어질 때,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여인은 그 슬픔 중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그래서 아들의 생명을 얻었다.
2) 이 현실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여인이여, 울지 말라. 나에게 길이 있다. 진리가 있다.” “청년아, 일어나라. 내게 부활이 있고 생명이 있다.” (요6:63)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교훈
1.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
1) 공동묘지로 가던 자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2) 슬픔의 행렬이 기쁨의 행렬로 바뀌었다.
3) 장송곡이 찬송으로, 탄식이 감사의 노래로 바뀌었다.
2.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장례식이 선교의 장으로 바뀐다.
1) 온 성이 생명의 축제로 기뻐했다.
2) 이것이 복음이다. 멈추어 서라. 우리의 계획도, 생각도 멈추자. 주님의 말씀을 듣자. 생명을 얻자.
1) 우연론:죽고 사는 것이 다 팔자소관이지.
2) 운명론:다 운명인 걸 어떻게 해, 운명에 맡겨야지.
3) 심리학, 정신의학:그럴 땐 실컷 울게 그냥 두어야지
4) 철학:인생은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것, 만남이 있으면 또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5) 현실주의:다 잊어 버랴. 그저 잊는 게 상책이야. 그러나 이런 말로 사별의 슬픔이 가실 수 없으며 참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참된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
1. 나인성의 장례 행렬 예수님의 일행이 나인이라는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 마을로부터 나오는 한 장례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장례 행렬의 사연은 참으로 딱한 것이었다.-남편과 사별한 과부, 생명과 같은 그녀의 외아들의 죽음.-이 여인에게 있어서의 자식은 자기 생명 이사의 존재, 곧 인생의 의미-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과부, 그녀가 느낀 허무. 이런 때에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2. 예수님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1)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말라고 하심-주님의 깊은 사라을 가리킨다.-사랑은 모든 기적의 원동력과 같다.-아픔을 느껴 본 자가 아픔을 알고 울지 말라고 위로할 수 있다.
2) 관에 손을 대시고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라.-관에 손을 대면 율법상 부정하게 된다.-율법과는 무관하게 고낭의 장소로 내려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다.-일어나라:살아나라-살아나는 것만이 여인에게 위로가 된다.-죽음에는 진리, 선, 아름다움, 위로, 소망도 없다.
3)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주님에게 생명이 있다. 주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으려면.
1. 생명의 중함을 알아야 한다.-평소에는 재산, 명예, 소유가 중대한 관심사처럼 보인다.-일단 죽음 앞에 서면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재산을 다 파고 며예르 다 주고라도 생명만 건질 수 있다며 예수님: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2. 주님 앞에서 멈추어 서야 한다.
1) 장례 행렬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멈추어 섰다.-주님이 다가가셔서 상여에 손을 대시자 상여행렬이 멈추었다.-그 행령의 목적지는 묘지이다.-서둘러 봤자 묘지에 좀 더 빨리 갈 뿐이다.
2) 이 죽음에로의 행렬이 우리의 모습이다-필요한 것은 행렬의 속도가 아니다.-주님 앞에 서서 그 생명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3. 말씀을 들어야 한다.
1)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는 길이다.-슬픔으로 가슴이 메어질 때,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여인은 그 슬픔 중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그래서 아들의 생명을 얻었다.
2) 이 현실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여인이여, 울지 말라. 나에게 길이 있다. 진리가 있다.” “청년아, 일어나라. 내게 부활이 있고 생명이 있다.” (요6:63)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교훈
1.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
1) 공동묘지로 가던 자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2) 슬픔의 행렬이 기쁨의 행렬로 바뀌었다.
3) 장송곡이 찬송으로, 탄식이 감사의 노래로 바뀌었다.
2.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장례식이 선교의 장으로 바뀐다.
1) 온 성이 생명의 축제로 기뻐했다.
2) 이것이 복음이다. 멈추어 서라. 우리의 계획도, 생각도 멈추자. 주님의 말씀을 듣자. 생명을 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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