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자세 (눅17:11-19)
본문
성공학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IQ나, 재능이나,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기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와 자세가 다른 어떠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정신과의사인 Victor Frankl은 비엔나 의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독일의 Hitler 나치정권때 유대인 집단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살아남은 분입니다. 그는 "의미를 향한 인간의 탐색"(Ma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에서 그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 그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신체적으로 튼튼하고 건장한 사람들이 연약한 자세와 태도 때문에 수용소의 지옥과 같은 환경을 견디지 못해 일찍 쓸어져 죽었지만, 신체적으로는 몹씨 허약한 사람들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와 태도로 인하여 지옥과 같은 환경속에서 끝까지 살어남더라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어남은 사람들은 자기 몸이 성치 못한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간호하고 돌보며 위로한 사람들, 자기도 배고파 먹어야하는 빵한조각을 더 배고파 하는 사람들과 나누워 먹는 적극적이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주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감사의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삶에서 만족과 기쁨을 맞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속에서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성령님께서 내안에 내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감사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패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승리를 주심을 믿기에 항상 감사의 자세를 가지고 살수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카 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감사는 학습을 통해 배워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감사할줄 아는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린 아기들을 보십시오. 아기들의 천사같은 모습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기적을 우리는 알게됩니다.
그런데 천사같은 아기와함께 있어보면, 아기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오래 인내하지 못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아기들은 부모를 향하여 끊임없이 안아주고,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흔들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는 것이 늦어지면 금방 크게 울어대고 떼를 씁니다. 물론 아기들은 말을 하지 못하기에 우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아기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감사한다는 말을 배워가며, 부모와 형제와 누이에게, 하나님에게 감사드리는 것을 배워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여러 가지 덕목가운데 최상의 덕은 감사입니다. 성숙한 크리스챤의 표식은 감사의 자세입니다. 성숙치 못한 크리스찬은 원망과 불평의 영을 가지고 살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영을 가지고 삽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사이에 있는 어느 마을을 통과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짓었습니다. 그당시 문둥병자들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접근하는 것이 금지 되어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적어도 50야드 정도 떨어져있어야만 했으며, 사람들이 모르고 그들에게 접근하면 "부정하다부정하다"고 외쳐야만 했습니다. 문둥병자들이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를 긍휼이 여겨달라고 외칠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등병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그들의 병, 불치의 병이 기적적으로 다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등병을 낮게된 10명중 오직 한사람, 그것도 사마리아사람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돌아와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몸의 병인 문등병만 낫게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도 구원을 받게되는 축복을 받게된것입니다. 그는 감사를 드림으로 몸의 병이 낫게되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인 구원의 축복도 받게된것입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삶에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항상 넘치게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미국인들은 일년에 한번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지만 한국교회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봄농사가 끝난 것을 감사하는 맥추감사예배도 드립니다. 감사주일예배를 일년에 두번 드리는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의미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농사를 짓지는 않치만, 금년도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지나간 전반기 동안 나의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금년도 후반기의 삶도 지켜주실 것을 기원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예배가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세상에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나보다 훨씬 능력이 많고, 나보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훨씬 앞서 있으며, 나보다 더 생각과 비wus등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예수님을 주로 믿고 구원받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나같은 사람을 영원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나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게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음으로 나를 구원받은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 . 우리가 원수 되었을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8-11)."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음으로 은혜가운데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릴수가 있기를 원합니다. 어느 가난한 사람이 그의 평생의 꿈인 호화여객선을 타고 크루즈여행을 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호화 여객선의 크루즈여행에 관한 광고문을 본 이후로 한 주간만이라도 망망대해에서 신선한 바다공기를 마시며 호화로운 분위기속에서 즐기는 꿈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수년간에 걸쳐 여비를 장만하기위하여 필요한 물건도 사지 않으며 돈을 절약하고 또 절약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승선권을 구입할만한 정도의 돈을 모았습니다. 그는 여행사로 찾아가서 크르즈항해에 관한 소책자들을 살펴본다음, 그의 마음을 끄는 항해를 택한후에 그동안 애써 모은 돈을 지불하고 승선권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안내용 소책자에 사진으로 나와 있는 호화스러운 음식들을 사먹을 형편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여행중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랜기간동안 검소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저축한 돈전부를 승선권을 구입하느라고 사용하였기에 값비싼 식당의 음식을 사먹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일주일 동안 빵과 땅콩버터를 가지고 항해하면서 먹으리라고 작정을 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호화여객선의 크루즈여행은 정말 멋이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자기 방에서 빵에다 피넛버터를 발라먹었으며, 나머지 시간을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호화여객선을 타고 크루즈하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사나흘이 지난후 그는 식당의 호화로운 음식을 먹지않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가 갑판에 앉아 있을때나,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혹은 자신의 객실 밖으로 걸어나올때마다, 사환이 룸 서비스를 청한 사람에게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들고 지나갔습니다.
닷새째 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배가 고파, 신선한 공기와 일광욕을 하는 것 조차 매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견딜수가 없었습니다.마침내 , 그는 사환(poter)을 불러 세우고는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음식들을 좀 먹을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맛있는 음식이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랍니다. 저 음식들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거들어 드리겠어요"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은 승선권을 갖고 계시지 않나요" 라고 그 사환이 물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갖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구입하느라고 있는 돈을 다 써버려서 음식을 살 돈이 없어요"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환은 "선생님, 승선권을 구입하시면 음식 서비스도 당연히 받으실 수 있는데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것 만큼 아무 것이나 다 드실수 있답니다." 그걸 모르고 계셨나요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무한히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여 날마다 말라비틀어진 음식만 먹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다 할수 없는 은혜의 선물을 이미 주셨고, 오늘도 더 부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구원과 영생,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토록 내재하십니다. 최후의 승리가 나에게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러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어야겠습니다. 어떠한 고통과 고난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문제를 능히 감당할 수 있게됩니다. 건성으로 아내를 따라 교회를 가끔 출석하던 어느분이 사업을 하다가 몇 억의 부채를 지고, 채권자들을 피해다니다가 지쳐 자살하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죽기전 예배나 한번 드리고 죽겠다고 생각하고 기도원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회개한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믿게되었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담대히 살아보겠노라고,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를 영원토록 사랑하시는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는 주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나의 가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수 있어야겠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에게 가정이란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곳이었다. 그러하기에 직장에서 퇴근할 때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나가곤 했다. 그러나 경제위기경제체제하에서 사람들은 나의 직장이 평생직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회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위해 존재함을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진정 힘이 되어주는 것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임을 알게 된것입니다. 사회가 어려워 질수록, 삶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내 삶의 근원지요 보금자리인 기적의 중요함을 사람들은 알게됩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위하여 기도해줄 사람은 결국 나의 아내요, 나의 남편이요, 나의 아이들인 것입니다. 가정이 없다면 우리는 든든히 설수 있는 기반과 토대가 없게됩니다. 우리가 가정으로부터 받는 지원(support)과, 사랑, 돌봄, 그리고 관심이 없다면 다른 데에서 받을수가 없습니다. 시편 127편에 1절보면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 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말합니다. 이 시편의 마지막절에는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문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회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중심지를 말하며,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세워주신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즉 믿음의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승리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생활에서의 승리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일시적으로 실패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가정에서 받는 넉넉한 위로가 있다면, 나에게 낙심한 영혼이 쉴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새로운 능력을 충전받을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있는 성령님충만한 가정이 나에게 있다면, 우리는 사회생활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서 재기 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바뿐 사람가운데 하나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주말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철저하게 자기 가족과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한 가정이라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두가지 유형의 집 짓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은 모래 위에, 한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두 집은 겉모양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쳐 홍수사태가 나자 모래위에 세워진 집은 금방 무너졌지만, 반석위에 세워진 집은 그대로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초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우리의 가정이 주님에게 주신 말씀과 사랑, 은혜와 존중, 용서와 이해 위에 기초해있다면, 아무리 큰 위기와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우리는 요동치 아니하고 든든히 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갈수 있게 될것입니다. 프란시스 로버츠는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습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 조각 빵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외로운 사람의 갈급함은 이 세상의 모든 보화를 가지고도 채울 수 없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정에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삶의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게됩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가운데 하나가 "화요일을 모리와 함께"(Tuesdays with Morrie)라는 책입니다. 이책은 Mitch Albom이란 사람이 보스톤 부근의 명문대학인 브랜데이스대학의 교수였던 그의 스승 Morrie Schwartz가 질병으로 사망하기 전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 인생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것을 내용으로 하는 책입니다. 그 책에보면 Morrie 교수는 어느날 심장마비로 사망한 자기 동료교수의 장례식에 참석한후 의기소침과 depression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장례식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조사를 통하여 사망한 동료교수에 관한 아름답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말했지만, 소천한 동료교수는 그 칭찬하는 말들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Morrie Schwartz박사는 갑지기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 장례식에도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기리는 추모사를 할터인데, 죽은 나는 그 칭찬하는 아름다운 말들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할터이니 그 아름다운 추모사들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니 내가 죽기전에 장례식을 미리 한번 실습함으로써, 나에 관한 칭찬하는 조사를 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Morrie교수는 living funeral 죽기전에 장례식을 미리 실습하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날짜에 친한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가족들이 그의 집에 다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조사를 통해 Morrie교수를 추모하며 그에 관한 칭찬, 아름다운 일화, 본받을 만한 점, 감동과 배움과, 영향을 받은점들을 말했습니다. 마치 모리교수가 죽은 것처럼 생각하며 조사를 하면서 모두가 웃음과 눈물을 나누는 매우 감동적인 죽기전 장례식 실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Morrie교수는 자기가 죽은후에 사람들이 자기에 관하여 칭찬하는 말, 아름다운 말들을 죽은 후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 듣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을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격려하며, 칭찬하며 위로를 하여야지 죽은후에는 아무리 칭찬과 아름다운 말을 해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식구들은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기간동안만 함께 가족공동체를 이루며 사는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며, 용서하며, 화목하며, 이해하며 살어야합니다.
어느 어린이가 주일학교에서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가 자기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천국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요" 그러자 신앙이 좋은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아, 천국은 마치 우리집과 같단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국은 마치 우리집과 같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우리가정에 사랑과 용서,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까 우리 가정에서 천국의 맞을 미리 맞볼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가정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릴수 있어야 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만 가는 이때,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맛볼 수 있는 가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수 있어야겠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인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몸이 되는 교회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이 한국에 처음 전파되었을 때 조선은 너무나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라는 한국 사람이 절간의 쥐처럼 가난하다는 말을 한 일이 있었고, 춘원 이광수는 여러분, 조선 사람이 얼마나 가난한지 아십니까"라고 외친일이 있었습니다. 초기한국교회의 찬송가 가사가운데 "옷과 밥을 주시고 좋은 것을 다 주네!천국 떡을 날 싫도록 먹여주오"라는 가사가 있는 것처럼 얼마나 한국사람들이 빈곤의 서러움이 가슴에 메였으며 이러한 내용의 찬송가 가사가 있었겠습니까 한국이 이렇게 가난했어도 초대하박국교회는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성장한 교회였습니다. 1900년에 한국에 교회가 840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20개 정도가 부분적으로 선교사의 보조를 받고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가 자력으로 세워진 교회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역사상 유래가 없느 일들입니다. 한국이 너무나 가난했었지만 1987년 인도에 참혹한 기근으로 아사가 겹칠 때, 한국 최초의 교회였던 황해도 장연의 솔내교회가 그때 돈으로 56원 84전을 연보해서 인도에 보낸일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현금이 아주 귀한 때라 이만한 액수의 모금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현금이 없는 여인들은 금가락지를 뽑아 보내었다고 합니다. 이일은 한국의 복음이 들어온지 겨우 12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당시 선교사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수만리 타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를 믿어 성령님의 감화하심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이면 어찌 이러한 일을 할수 있으리요." 한국의 초대교회는 미신타파, 도박, 술 담배의 절제운동, 남녀평등운동, 한글보급과 문맹퇴치사업에 앞장섰으며,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워 한국을 근대화하는 일에 선구자적인 일을 감당했습니다. 교회는 또한 구제사업도 활발하게 벌였습니다. 교회는 사회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예수의 향기를 높히 피우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세상사라들로부터 크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는데, 한국의 초대교회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말처럼, 복음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때에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애국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정도로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높히 평가되었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위상은 많이 추락했습니다. 교회가 복음으로 사회에 영햐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새롭게 갱신되며 거듭남으로, 교회 본질적인 모습과 사명을 되 찾아야할것입니다. 한국민족을 향한 빛과 소금으로, 한국의 양심으로서의 사명을 우리는 감당해야겠습니다. 교회가 하여야할 사명가운데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진 지도자들을 키우는 일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머리가 우수하고 유능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결여 되어있습니다. 공동체 전체의 유익보다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먼저 추구합니다. 국가의 외환부도의 위기를 경고하지 아니하고, 한화를 거액의 달러로 바꾸는데 앞장을 섰으며,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한화를 빨리 달러로 바꾸어 놓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5개의 불량 은행이 우수은행들과 합병과정에서 퇴출은행의 직원들이 자기들의 퇴직금으로 450억원을 분배한일들, 인수작업 협조거부는 물론, 조직적인 전산망 교란과 서류파기등은 우리에게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인정신(public spirit)이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구라파는 말할것도 없고, 가까운 일본의 예를 보아도 우리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작년에 폐업한 일본의 야마이치 증권은 청산작업을 끝내기 위해 7천여 임직원이 며칠씩 밤샘근무를 하다 경리과장이 과로로 사망하기까지 했으며, 같은 운명의 또 다른 증권회사의 과장은 고객들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와 내 가정의 삶의 터전인 직장을 잃어버리는 심정은 얼마나 아프고 실망이 되는 일이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나의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 나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인정신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러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훈련의 문제입니다. 한국교회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기도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르치는데 힘써야만 할 것입니다.
사회의 어느 단체는 학교에서 이일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교회가 이일을 행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인들 가운데는 도덕성과 윤리관을 가르치지 않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아예 가정에서 부모가 학교 교과과정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Home Schooling을 행하는 부모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자녀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가르쳐 대학에 진학시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들이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르치지 않차 큰 교회들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을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지식을 전단하는 기독교교육이 아니라, 인격과 성품훈련, 멘토링을 통하여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 책임의식, 셰게관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로 청소년들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만이 이 일을 행할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겠습니다. 교회가 더욱더 교회다워지기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교회가 없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교회가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는 것을 어디에서 배울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두가지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는 가정입니다. 가정이라는 제도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여 가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다음은 이스라엘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를 통하여 죄인을 회개케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며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 나라가 확장케되게 하기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맥추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를 더욱 더 생각하고 사랑하며 기도하고 아끼므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위해 날마다 기도하는 우리 온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감사는 학습을 통해 배워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감사할줄 아는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린 아기들을 보십시오. 아기들의 천사같은 모습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기적을 우리는 알게됩니다.
그런데 천사같은 아기와함께 있어보면, 아기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오래 인내하지 못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아기들은 부모를 향하여 끊임없이 안아주고,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흔들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는 것이 늦어지면 금방 크게 울어대고 떼를 씁니다. 물론 아기들은 말을 하지 못하기에 우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아기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감사한다는 말을 배워가며, 부모와 형제와 누이에게, 하나님에게 감사드리는 것을 배워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여러 가지 덕목가운데 최상의 덕은 감사입니다. 성숙한 크리스챤의 표식은 감사의 자세입니다. 성숙치 못한 크리스찬은 원망과 불평의 영을 가지고 살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영을 가지고 삽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사이에 있는 어느 마을을 통과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짓었습니다. 그당시 문둥병자들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접근하는 것이 금지 되어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적어도 50야드 정도 떨어져있어야만 했으며, 사람들이 모르고 그들에게 접근하면 "부정하다부정하다"고 외쳐야만 했습니다. 문둥병자들이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를 긍휼이 여겨달라고 외칠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등병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그들의 병, 불치의 병이 기적적으로 다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등병을 낮게된 10명중 오직 한사람, 그것도 사마리아사람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돌아와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몸의 병인 문등병만 낫게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도 구원을 받게되는 축복을 받게된것입니다. 그는 감사를 드림으로 몸의 병이 낫게되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인 구원의 축복도 받게된것입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삶에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항상 넘치게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입니다. 미국인들은 일년에 한번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지만 한국교회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봄농사가 끝난 것을 감사하는 맥추감사예배도 드립니다. 감사주일예배를 일년에 두번 드리는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의미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농사를 짓지는 않치만, 금년도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지나간 전반기 동안 나의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금년도 후반기의 삶도 지켜주실 것을 기원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예배가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세상에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나보다 훨씬 능력이 많고, 나보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훨씬 앞서 있으며, 나보다 더 생각과 비wus등 모든 면에서 앞서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예수님을 주로 믿고 구원받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나같은 사람을 영원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나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게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음으로 나를 구원받은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 . 우리가 원수 되었을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8-11)."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음으로 은혜가운데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릴수가 있기를 원합니다. 어느 가난한 사람이 그의 평생의 꿈인 호화여객선을 타고 크루즈여행을 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호화 여객선의 크루즈여행에 관한 광고문을 본 이후로 한 주간만이라도 망망대해에서 신선한 바다공기를 마시며 호화로운 분위기속에서 즐기는 꿈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수년간에 걸쳐 여비를 장만하기위하여 필요한 물건도 사지 않으며 돈을 절약하고 또 절약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승선권을 구입할만한 정도의 돈을 모았습니다. 그는 여행사로 찾아가서 크르즈항해에 관한 소책자들을 살펴본다음, 그의 마음을 끄는 항해를 택한후에 그동안 애써 모은 돈을 지불하고 승선권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안내용 소책자에 사진으로 나와 있는 호화스러운 음식들을 사먹을 형편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여행중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랜기간동안 검소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저축한 돈전부를 승선권을 구입하느라고 사용하였기에 값비싼 식당의 음식을 사먹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일주일 동안 빵과 땅콩버터를 가지고 항해하면서 먹으리라고 작정을 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호화여객선의 크루즈여행은 정말 멋이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자기 방에서 빵에다 피넛버터를 발라먹었으며, 나머지 시간을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호화여객선을 타고 크루즈하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사나흘이 지난후 그는 식당의 호화로운 음식을 먹지않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가 갑판에 앉아 있을때나,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혹은 자신의 객실 밖으로 걸어나올때마다, 사환이 룸 서비스를 청한 사람에게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들고 지나갔습니다.
닷새째 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배가 고파, 신선한 공기와 일광욕을 하는 것 조차 매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견딜수가 없었습니다.마침내 , 그는 사환(poter)을 불러 세우고는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음식들을 좀 먹을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맛있는 음식이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랍니다. 저 음식들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거들어 드리겠어요"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은 승선권을 갖고 계시지 않나요" 라고 그 사환이 물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갖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구입하느라고 있는 돈을 다 써버려서 음식을 살 돈이 없어요"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환은 "선생님, 승선권을 구입하시면 음식 서비스도 당연히 받으실 수 있는데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것 만큼 아무 것이나 다 드실수 있답니다." 그걸 모르고 계셨나요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무한히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여 날마다 말라비틀어진 음식만 먹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다 할수 없는 은혜의 선물을 이미 주셨고, 오늘도 더 부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구원과 영생,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토록 내재하십니다. 최후의 승리가 나에게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러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어야겠습니다. 어떠한 고통과 고난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문제를 능히 감당할 수 있게됩니다. 건성으로 아내를 따라 교회를 가끔 출석하던 어느분이 사업을 하다가 몇 억의 부채를 지고, 채권자들을 피해다니다가 지쳐 자살하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죽기전 예배나 한번 드리고 죽겠다고 생각하고 기도원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회개한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믿게되었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담대히 살아보겠노라고,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를 영원토록 사랑하시는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는 주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나의 가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수 있어야겠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에게 가정이란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곳이었다. 그러하기에 직장에서 퇴근할 때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나가곤 했다. 그러나 경제위기경제체제하에서 사람들은 나의 직장이 평생직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회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위해 존재함을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진정 힘이 되어주는 것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임을 알게 된것입니다. 사회가 어려워 질수록, 삶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내 삶의 근원지요 보금자리인 기적의 중요함을 사람들은 알게됩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위하여 기도해줄 사람은 결국 나의 아내요, 나의 남편이요, 나의 아이들인 것입니다. 가정이 없다면 우리는 든든히 설수 있는 기반과 토대가 없게됩니다. 우리가 가정으로부터 받는 지원(support)과, 사랑, 돌봄, 그리고 관심이 없다면 다른 데에서 받을수가 없습니다. 시편 127편에 1절보면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 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말합니다. 이 시편의 마지막절에는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문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회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중심지를 말하며,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세워주신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즉 믿음의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승리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생활에서의 승리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일시적으로 실패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가정에서 받는 넉넉한 위로가 있다면, 나에게 낙심한 영혼이 쉴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새로운 능력을 충전받을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있는 성령님충만한 가정이 나에게 있다면, 우리는 사회생활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서 재기 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바뿐 사람가운데 하나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주말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철저하게 자기 가족과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한 가정이라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두가지 유형의 집 짓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은 모래 위에, 한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두 집은 겉모양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쳐 홍수사태가 나자 모래위에 세워진 집은 금방 무너졌지만, 반석위에 세워진 집은 그대로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초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우리의 가정이 주님에게 주신 말씀과 사랑, 은혜와 존중, 용서와 이해 위에 기초해있다면, 아무리 큰 위기와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우리는 요동치 아니하고 든든히 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갈수 있게 될것입니다. 프란시스 로버츠는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습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 조각 빵으로도 만족할 수 있지만, 외로운 사람의 갈급함은 이 세상의 모든 보화를 가지고도 채울 수 없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정에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삶의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게됩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가운데 하나가 "화요일을 모리와 함께"(Tuesdays with Morrie)라는 책입니다. 이책은 Mitch Albom이란 사람이 보스톤 부근의 명문대학인 브랜데이스대학의 교수였던 그의 스승 Morrie Schwartz가 질병으로 사망하기 전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 인생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것을 내용으로 하는 책입니다. 그 책에보면 Morrie 교수는 어느날 심장마비로 사망한 자기 동료교수의 장례식에 참석한후 의기소침과 depression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장례식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조사를 통하여 사망한 동료교수에 관한 아름답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말했지만, 소천한 동료교수는 그 칭찬하는 말들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Morrie Schwartz박사는 갑지기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 장례식에도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기리는 추모사를 할터인데, 죽은 나는 그 칭찬하는 아름다운 말들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할터이니 그 아름다운 추모사들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니 내가 죽기전에 장례식을 미리 한번 실습함으로써, 나에 관한 칭찬하는 조사를 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Morrie교수는 living funeral 죽기전에 장례식을 미리 실습하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날짜에 친한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가족들이 그의 집에 다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조사를 통해 Morrie교수를 추모하며 그에 관한 칭찬, 아름다운 일화, 본받을 만한 점, 감동과 배움과, 영향을 받은점들을 말했습니다. 마치 모리교수가 죽은 것처럼 생각하며 조사를 하면서 모두가 웃음과 눈물을 나누는 매우 감동적인 죽기전 장례식 실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Morrie교수는 자기가 죽은후에 사람들이 자기에 관하여 칭찬하는 말, 아름다운 말들을 죽은 후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 듣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을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격려하며, 칭찬하며 위로를 하여야지 죽은후에는 아무리 칭찬과 아름다운 말을 해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식구들은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기간동안만 함께 가족공동체를 이루며 사는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며, 용서하며, 화목하며, 이해하며 살어야합니다.
어느 어린이가 주일학교에서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가 자기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천국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요" 그러자 신앙이 좋은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아, 천국은 마치 우리집과 같단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국은 마치 우리집과 같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우리가정에 사랑과 용서,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까 우리 가정에서 천국의 맞을 미리 맞볼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가정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릴수 있어야 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만 가는 이때,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맛볼 수 있는 가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수 있어야겠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인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몸이 되는 교회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이 한국에 처음 전파되었을 때 조선은 너무나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라는 한국 사람이 절간의 쥐처럼 가난하다는 말을 한 일이 있었고, 춘원 이광수는 여러분, 조선 사람이 얼마나 가난한지 아십니까"라고 외친일이 있었습니다. 초기한국교회의 찬송가 가사가운데 "옷과 밥을 주시고 좋은 것을 다 주네!천국 떡을 날 싫도록 먹여주오"라는 가사가 있는 것처럼 얼마나 한국사람들이 빈곤의 서러움이 가슴에 메였으며 이러한 내용의 찬송가 가사가 있었겠습니까 한국이 이렇게 가난했어도 초대하박국교회는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성장한 교회였습니다. 1900년에 한국에 교회가 840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20개 정도가 부분적으로 선교사의 보조를 받고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가 자력으로 세워진 교회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역사상 유래가 없느 일들입니다. 한국이 너무나 가난했었지만 1987년 인도에 참혹한 기근으로 아사가 겹칠 때, 한국 최초의 교회였던 황해도 장연의 솔내교회가 그때 돈으로 56원 84전을 연보해서 인도에 보낸일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현금이 아주 귀한 때라 이만한 액수의 모금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현금이 없는 여인들은 금가락지를 뽑아 보내었다고 합니다. 이일은 한국의 복음이 들어온지 겨우 12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당시 선교사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수만리 타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를 믿어 성령님의 감화하심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이면 어찌 이러한 일을 할수 있으리요." 한국의 초대교회는 미신타파, 도박, 술 담배의 절제운동, 남녀평등운동, 한글보급과 문맹퇴치사업에 앞장섰으며,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워 한국을 근대화하는 일에 선구자적인 일을 감당했습니다. 교회는 또한 구제사업도 활발하게 벌였습니다. 교회는 사회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예수의 향기를 높히 피우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세상사라들로부터 크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는데, 한국의 초대교회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말처럼, 복음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때에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애국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정도로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높히 평가되었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위상은 많이 추락했습니다. 교회가 복음으로 사회에 영햐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새롭게 갱신되며 거듭남으로, 교회 본질적인 모습과 사명을 되 찾아야할것입니다. 한국민족을 향한 빛과 소금으로, 한국의 양심으로서의 사명을 우리는 감당해야겠습니다. 교회가 하여야할 사명가운데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진 지도자들을 키우는 일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머리가 우수하고 유능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결여 되어있습니다. 공동체 전체의 유익보다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먼저 추구합니다. 국가의 외환부도의 위기를 경고하지 아니하고, 한화를 거액의 달러로 바꾸는데 앞장을 섰으며,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한화를 빨리 달러로 바꾸어 놓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5개의 불량 은행이 우수은행들과 합병과정에서 퇴출은행의 직원들이 자기들의 퇴직금으로 450억원을 분배한일들, 인수작업 협조거부는 물론, 조직적인 전산망 교란과 서류파기등은 우리에게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인정신(public spirit)이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구라파는 말할것도 없고, 가까운 일본의 예를 보아도 우리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작년에 폐업한 일본의 야마이치 증권은 청산작업을 끝내기 위해 7천여 임직원이 며칠씩 밤샘근무를 하다 경리과장이 과로로 사망하기까지 했으며, 같은 운명의 또 다른 증권회사의 과장은 고객들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와 내 가정의 삶의 터전인 직장을 잃어버리는 심정은 얼마나 아프고 실망이 되는 일이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나의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 나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인정신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러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훈련의 문제입니다. 한국교회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기도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르치는데 힘써야만 할 것입니다.
사회의 어느 단체는 학교에서 이일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교회가 이일을 행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인들 가운데는 도덕성과 윤리관을 가르치지 않는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아예 가정에서 부모가 학교 교과과정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Home Schooling을 행하는 부모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자녀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가르쳐 대학에 진학시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들이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르치지 않차 큰 교회들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을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지식을 전단하는 기독교교육이 아니라, 인격과 성품훈련, 멘토링을 통하여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성, 책임의식, 셰게관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로 청소년들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만이 이 일을 행할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겠습니다. 교회가 더욱더 교회다워지기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교회가 없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교회가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는 것을 어디에서 배울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두가지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는 가정입니다. 가정이라는 제도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여 가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다음은 이스라엘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를 통하여 죄인을 회개케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오며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 나라가 확장케되게 하기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맥추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를 더욱 더 생각하고 사랑하며 기도하고 아끼므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위해 날마다 기도하는 우리 온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