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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제사를 드리자 (눅17:11-19)

본문

예수님께서 하루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주위에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을 멀리서 보고 그분이 소문에 듣던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줄 것을 애타게 호소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제사장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가는 도중에 몸이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한 치유였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똑같이 고침 받은 나머지 아홉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각 사람에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았느냐 왜 너희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감사드리고 영광 돌리지 않느냐” 성경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50: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가운데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사람이 너무나 적은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왜 그렇습니까
첫째, 감사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중에는 과자 한 개만 주어도 고맙습니다 하며 꾸벅 절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과자 한 상자를 주어도 덥썩 받기만 하고 마는 아이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감사를 표하는 능력을 타고 났기 때문에 감사를 잘 하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를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것을 배웠는가 배우지 못했는가의 문제입니다. 감사하는 것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모든 훈련과 마찬가지로 자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많이 포착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저절로 감사가 나올 정도로 굉장한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은 것에 대해서부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상점에서 소비자가 제 값 주고 물건을 건네 받으면서도 탱큐 하고 점원은 점원대로 돈을 받으면서 탱큐 합니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에도 탱큐 하고 의자에 앉으라는 말에도 탱큐 합니다. 겉치례 같은 인사말에도 탱큐를 합니다. 그들이 하루 종일 가장 많이 쓰는 말이 탱큐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손해나지 않는 말이 “감사합니다”입니다. 예수님은, 수천 명이 먹을 것이 없는 난처한 상황에서도 보잘 것 없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작은 것에 대한 감사는 큰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평안으로 마음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외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비가 와도 걱정하고 안 와도 걱정하는 할머니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가 오면 짚신 파는
둘째 아들 장사 안되어서 걱정하고 비가 안 오면 우산 파는
첫째 아들 장사 안되어서 걱정합니다. 이 할머니가 감사하지 못하고 걱정하고 시름에 젖는 근본 이유는 중심이 잘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할머니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태평한 사람이라면 비가 오면
첫째 아들 장사 잘 되어서 감사하고 비가 안 오면
둘째 아들 장사 잘 되어서 감사하니 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하면 늘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 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셋째, 현재의 고난을 부정적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고난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므로 감사가 생활화 된 사람은 고난에 대해서 감사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1)고난으로 인한 긴장은 생기 있는 삶을 만들어 줍니다. 실험에 의하면 이상적인 환경에 놓여 있는 동물은 그렇지 못한 환경에 놓여 있는 동류보다 먼저 병들어 죽거나 생기를 잃는다고 합니다.
2)고난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더욱 붙들게 됩니다(시119:71). 고난을 통해서 믿음으로 복귀하고 성숙해집니다.
3)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롬8:28).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이란 수를 놓은 천을 보는 것 같다. 천의 뒷면을 보면 많은 색깔의 실이 무질서하게 얽혀 보기에 나쁘다. 고통을 다만 괴로움이나 부조리로 보는 것은 뒷면만 보기 때문이다. 천의 앞면을 보면 혼란하던 실들은 형태와 색채의 조화로 아름답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무질서 너머의 아름다운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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