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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은 어디에 (눅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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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불편한 몸을 가 지고 있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물질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특히 특히 갑작스런 재난이 생겨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을 향한 물질적인 도움은 절대로 필요한 실정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렇게 보이는 것 에 대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려움을 당했을 때의 마음의 위로나 지 식을 통하여 또는 지혜를 가지고 남을 도와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도있음을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보이는 것에 대한 도움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도움이 더 간절하 고 궁극적인 해결을 가져올 때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서울같은 큰 도시들 중에는 "생명의 전화"나 "여성의 전화" 같은 상담을 할 수 있는 전화를 설치 해 놓기도 하는데 이러한 전화를 이용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청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자료들을 보면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짐작케 해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적인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적 으로도, 물질로도, 정신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아니 오히려 이러한 문제 들은 신앙적으로 도움을 주게 될 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적인 도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신앙적인 도움은 사람이 도울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힘으로 도울 수 있는 것들은 지극히 적고 우리의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능력만이 해결할 샷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1. 주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나 사람의 힘으로나 물질이나 기타 세상적인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나 강하게 느끼느냐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힘이 그만큼 크다고 하겠습니다.
(1) 오늘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0명 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모두 문둥병에 걸려 시달림을 당하는 사람 들이쑥향윱구. 당시에는 문둥병자들이 식구들과 함께 살지를 못하고 격리되어 살았으 므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문둥병은 특히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걸리는 병으로 오늘과 같이 의학이 발 달하지 못한 시절에서는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무서운 병이어서 사람들로 부터도 저 주를 받고 멸시 천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게 되었을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는 도중 이들을 만나시게 되었 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에수 님이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라 해도 자신들이 돌아다니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다시없는 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하든지 자신들의 병을 고침받을 수 있는 도움을 청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도 의사의 도움으로도 물질로도 기타 어떠한 약으로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기네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도움의 손길이라는사실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움의 손길임을 깨닫고 오직 그리스도께만 의지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 이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다른 길도 있겠지, 세상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설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믿음밖에는 없으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은 간절한 부르짖음이 그 속에서 생겨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믿는 신앙생활 속에 서는 가장 먼저 해결을 받아야 할 것이 영적인 문제임을 깨닫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됩니다. 모든 세상적인 문제,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영적인데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고 아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의 필요를 아시고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강하게 느낄 때에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를 얼마나 강하게 느끼느냐 에 따라서 하나님의 도움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하겠습니다.
2. 도움의 필요를 강하게 느꼈을 때
(1)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 도움을 청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임을 깨달은 그들은 비록 가까이 갈 수 없는 율법에 묶여 멀리 서서 예수님을 만나야 되었지만 소리높여 부르짖었습니다. 도움을 청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아무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깨달았 다 해도 도움을 구체적으로 청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길을 가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도 누구에갉 도움을 청하지 않는 다면 그 어린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이루어 주시지만 청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불 쌍히 여기셔서 무조건 도와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2)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치료하심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외면치 않으시고 언제나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은 때로 우리가 이해하기 곤란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놀라우신 주님의 손길을큔윤구 하시는 일에 우리는 다만 순종할 뿐입니다.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문둥병자 열명이 주님께 도움을 청했을 때 주님은 "가서 제사장 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율법에는 제사장만이 문둥병 에 걸렸는지,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이 나아서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도 되는지를 판별하게 되어져 있었습니다. 주님도 이러한 율법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만 하셨지 어떻 게 된다는 것인지, 무슨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등의 말씀은 하나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문둥병자들은 그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아무 이의도 없이 그대로 행 했습니다. 제사장이 있는 곳을 향하여 그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 어났습니다. 길을 가다가 보니까 언제 낫는지 모르게 나은 자신의 몸을 발견하게 되 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께서 시키는대로 순종했더니 어느 사이엔지 자신들의 병이 이미 완쾌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님의 이러한 능력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역사하시는 능력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뇹 성도님들 속에도 주님께서 역사 하고 계시는 능력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언제 그런일이 일어 났는지도 모르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기적의 역사가 여러분들이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주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도움을 청했을 때 그 이상의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부분적인 것을 위하여 도움을 청했으나 주님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이 주십니다. 시편 34편 10절 말씀에는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 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축복 을 받은 사람, 한가지의 도움을 청했으나 그 이상의 좋은 것까지도 허락하신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열명이 똑같이 육체적인 질 병을 위하여 주님께 간청을 하여 모두 다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명 사마리아 사람은 영적으로 구원받고 고침을 받는 축복이 함께 하였습니다. 무엇때문일까요
(1)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복을 깨달았습니다. 열명이 똑같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허락한 육신의 질병이 낫는 복을 받았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했으나 이 사 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질병이 나은 것을 안 순간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을 주셨다는 것 을 깨닫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고 자만하던 유대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취급을 받지 못한 사마리아인은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들 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도 영광을 돌리지 않는데 오히려 처음 하나님을 믿은 사람 들이 복을 받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있습니다.
(2) 한 명의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께 돌아와 감사하였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열명중 한 명이었습니다.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들은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는 것보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 친구들 가 까운 이웃들에게 자신의 질병이 나음을 입었음을 먼저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기쁜 나머지 그런 행동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깨 닫고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많지만 이를 깨닫고 감사한 자는 얼마나 될까요 열 명중에 한 명 정도 밖에 안될지도 모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열 번 중에 한 번 정도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감사함을 물질로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 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3) 그는 자신에게 온 복을 깨닫고 돌아와감사하였을 때 자신이 필요로 하던 도움 보다 더 많은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속에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신적인 은혜에 감사한 이방인에게 영적인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은 이 사람은 더욱 큰 축복인 영적인 구원까지도 받을 수 있었 습니다.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사람은 그 받은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우리의 필요를 주님께 구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결과에 감사할 줄 아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을 소유하여 더 많은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분을 만나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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