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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사람 (눅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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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갈보리교회 성도님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위에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무엘 죤슨 보스웰은 "감사는 훌륭한 교양의 열매이기 때문에 천한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일에 대하여 기뻐할 줄모르는 사람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고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정서가 풍부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열 사람의 나환자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 사람은 불치의 병을 고침받고서도 그 병을 고쳐주신분에 대하여 아무런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괘씸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목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한 후 실의에 빠져서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새로운 힘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면 그가 예수님을 만난 길은 "실패로"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건강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으나 불치의 병에 걸려 인간의 힘으로는 고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은 후에 하나님 앞에 돌아와 지난 날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한다면 그는 병로에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기 주장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슴을 무시하고 주의 종이 타일러 주는 권고까지 못 들은 체 하고 제 멋대로 살다가 거듭되는 실패와 역경 속에서 한숨을 쉬면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듭되는 근심과 걱정 속에서 주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새로운 결단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서 지난 날을 회개하며 기쁨을 맛보기를 원합니다.따라서 그들은 "근심로 걱정로 고통로"를 통해서 주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침을 받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은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달려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그는 "감사로"에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실패로, 근심로, 병로, 고통로 등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세상의 어두운 길목을 헤매이다가 주님 앞에 돌아와 나의 고통을 짜내어 주님을 부를 때에 주님을 만나는 것과 감사함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을 통해서 주님을 만날 때에는 뼈아픈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를 통해서 주님을 만날 때에는 기쁨으로 주님을만날 수가 있으며 또한 감사로를 통하여 주님을 만날 때에는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예수님께서 미리 응답을 가지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길목에서 나를 만나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감사가 생활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그 "감사로"에서 주님을 만나는 비결을 깨닫고 항상 감사 속에서 주님을 만나서 기쁨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고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생활을 영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특권을 가지고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방 사람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미라이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조금도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마음에 있기 때문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특권에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는 것도 은혜를 받는 것도 모두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받았고 나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할 마음이 생기지 아니했던 모양입니다. 나만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지만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족한 사람입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입니다. 주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내가 탈락되지 않은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라리아인은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기대 이상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은 "교만은 감사하는 마음을 죽인다. 그러나 겸손한마음은 감사가 자연히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자긍하는 자는 좀처럼 감사할줄 모른다. 그는 결코 자기가 받을 만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기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도 잘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 자신은 기대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 뜨겁게 감사합니다. 결국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죄스러웠고 불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감사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귀한 것을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줄 압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만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느낄 때 감사하게됩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렸습니다. 보는 눈과 생각을 바로 가져야 감사할 줄알게 됩니다. 내게 이루어진 일을 엄청난 큰 축복을 받아들이는 자는 감사합니다. 그것이 축복인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어떻게 감사했습니까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병고침을 받은 사실을 아는 순간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예수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감사를 드리겠다고 미루거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일을 나중으로 미루면 감사의 마음이 반감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사의 마음은 곧 늙는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마음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뜻을 표하는 순간 감사를 받을 사람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줄 때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병고침을 받은 사마리안은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병을 고쳐 주신예수님께 돌아와서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감사는 외적으로 포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찬송함으로 표현합니다. 경배함으로 표현합니다. 사례함으로 표현합니다. 은혜를 자랑함으로 표현합니다. 정성이 담긴 예물을 표현합니다. 섬기고 봉사함으로 표현합니다. 은혜는 값이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갚아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것은 값어치를 따질 수 있는 것이나 뇌물이 아닙니다. 또한 감사를 할 때는반대 급부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감사는 순수한 감사로 끝내야 합니다. 감사하는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덧붙이거나 형식적인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은혜를 입힌 사람이 요구를 하지 않아도 받은 자가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와서 하는 사례일 뿐입니다. 의무가 아닙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것 뿐입니다. 사마리이안이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감사가 복받는 감사이며, 순수한 감사인 것입니다.
셋째. 감사하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임했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더욱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 때가 바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나에게 구원의은총과 함께 풍성한 하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에게는 늘 응답이 있습니다. 이 응답을 알기 때문에 감사가 끝날 줄을 모릅니다. 감사가 주는 기쁨과 감격은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만이 경험해 볼 수 있는 신앙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움을 받습니다. 행복한 삶을 삽시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마음은 황량한 광야와 같습니다. 감사는 마음에 기쁨을 일으키는 기쁨 바람의 진원지가 되기도 합니다. 은혜와감사와 기쁨은 언어나 상태가 서로 비슷합니다. 헬라어로 은혜,감사,기쁨은 같은 어원인 "기뻐하다"에서 나왔습니다 감사와 기쁨은 동시적인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감사하고 감사에는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분 각자에게 주님께서는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실 지도 모릅니다. "작년에 생명 연장의 축복을 준 사람이 많건만 지금 그들이 다 어디 있느냐사업을 번창케 해 주었고 올 해도 더 많은 것으로 채움을 받았던 사람 중에 지금 여기 있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물질의 축복을 내려 주었고 자녀의 축복을 내려 주었던 그 사람들은 지금어디에 있느냐"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향하신 예수님의 근심스러운 질문이 되지 않도록 늘깨어 있으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로"에서 주님을 만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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