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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케 하는 것 (눅17:1-4)

본문

요즘에 이 나라 백성들이 처참하게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고, 생명줄 같은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고, 이리저리 힘없는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누가 이런 사람을 돌보겠습니까 누가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이런 백성들을 챙겨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거 대통령도 못하는 것 당신 코도 석자나 빠진 분이 어떻게 저 밑바닥에 있는 백성들 한사람 한사람을 돌아보겠습니까 참 어려운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작은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가 책임이 크다." 작은자라는 것은 연약한자, 보잘 것 없는자, 힘없는자인데 그런 작은자 하나를 실족케하고, 죽게 만들고, 다치게 만들고, 망하게 만들면 그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죽는게 났다. 바다에 빠져 죽어버려라"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세상도 나라도 정부도 돌보지 못하는 지극히 작은자를 누가 돌보겠습니까 참 하염없이 쓸쓸하고 무정한 세상이고 또 누굴 탓할 수 없습니다. 다 각기 살기 바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옆에 사람 붙잡아 줄 여유도 없고, 손을 펴서 도와줄 그런 여유있는 세상이 아니라 나도 당장 죽게 생겼는데 누굴 돌아볼 수도 없는거고, 온 세상이 그러잖아요. 대통령 당신부터도 걱정이고, 다 이런 판에 누가 나를 챙겨주겠습니까!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의 예수님 말씀은 " 지극히 작은자 하나가 죽어가고, 실족을 해서, 고통을 당하고, 망해가는 그걸 보시고 탄식하시고, 안타까워 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세상이 돌보지 못하고 세상이 내팽개쳐 버리고, 그 누구도 손쓸 수 없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작은자 하나를 예수님은 안타깝게 보시고, 사랑하시고, 그를 살려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세상은 어쩔수 없지만 나는(예수님) 버리지 않는다. 작은자 하나를 세상은 버리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런 예수님의 그 뜨거운 작은자 하나를 생각하고 안타까워 하시는 예수님의 기막힌 사랑의 마음이 이 말씀속에 들어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다. 이 길밖에 없군요.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작은자 우리 백성들이 살 길이 여기 있구나" 하고 소망을 갖게 됐는데 오늘 말씀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그저 좋은 말씀이다 그 말씀만이라도 고맙다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실족 당한자, 죽어가는자, 버림받은자 , 내팽개침을 받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님안에 예수님의 사랑의 손에서 다시 살아나고, 세상을 이기는 그런 예수님의 은혜안에 사는 실제로 그렇게 살게 되시는 그런 은혜를 오늘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두가지로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뒤죽박죽입니다. 여러분 신문이나 TV를 보시는데로 이 지구 자체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홍수, 난데 없이 여름인데 눈이 쏟아 지고, 추운데 이상고온이 일어나고 이 지구 자체가 어찌 보면 큰 땅덩어리 지구이지만 또 보면 조그마한 땅덩어리 지구예요. 이게 몸살과 뒤죽박죽하니 거기 개미때 같이 붙어 사는 이 인생들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실 자체도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이게 뭐냐 그거에요. 이런걸 보고, 듣고 또 그런 재앙속에, 그런 환난속에 나도 들어가서 실제로 내 자신이 고통을 당하고, 내 가정이 지금 죽느냐 사는냐 하는 절박한 가운데 있다. 현실이에요. 이것이 무슨 의미냐 그거죠! 찬송가 256장에 " 눈을 들어 하늘보라 어지러운 세상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자여 어이할고" 이게 이 나라 백성들에 모습입니다. "어이할고" 이게 무슨일이냐 우리가 안전하다, 든든하다, 이만 하면 살겠다, 뽑내고 자랑한 것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무너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는 안전하다 할것이 없고, 이만하면 든든하다 할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게 다 무슨 뜻이냐 다른게 아닙니다. 곧 이 세상에 정체를 지금 벗겨내는 것입니다. " 너희들 이 세상이 좋다, 살만하다, 든든하다, 안전하다 뭐 너희들 그렇게 세상을 의지하고 살더니 이게 다 무너지는 것이다.터" 바닥이 무너지는 것이다. 폴 틸리히 같은 신학자는 " 터가 흔들리는 세상이다." 기본 바탕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리는데 거기다 지어놓은 빌딩이 아무리 튼튼하고 높은들 무슨 소용이예요. 오히려 땅이 흔들리니까 높이 지은 빌딩일수록 더 크게 무너지는 거예요.
야고보서 4: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참 힘없는게 인생이다는 거예요. 알고보면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예요. 야고보서 5:1-3절에 " 들으라 부한 자들아(세상에 많이 쌓아놓고 있는 자들)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허망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런걸 의지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그게 좀 있다고 든든하게 생각했던 세상인데 이게 다 무너지는 것이죠. 이게 뭐냐 하나님께서 세상이 든든하고, 세상이 살만하니까 이것들이 " 하나님 모르고, 하나님 없어도 살수 있어!" 국민소득이 8,000$이다 10,000$이다. 하니까 다 배가 불러서 하나님 안 찾아요. 믿는 사람들 조차도 건성이야! 정신이 완전 딴데 가 있는거에요. 그게 실족입니다. 그게 망하는 징조거든요.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셔서 하나님 품으로 다시 불러 들이는데 방법이 없어요! 안돌아온다는 거예요. 세상 것이 많고, 세상속에 사는 것이 재미가 있으니까 하나님을 생각도 안하고, 안돌아오는 거에요. 그러니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놔뒀다가는 영 망하는거고, 그렇게 살다가는 영영 지옥가는 것이고,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 어리석은 인생들을 하나님 품으로 불러 들이는 방법이 어디 있습니까 때릴 수밖에 없어요, 꺽어 버리는 방법밖에 없어요. 저들이 든든하다, 안전하다 하는 것들을 무너지게 만들어야지. 그게 지금 이 세상이 되어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무서운 일들은 뭐냐 "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그렇게 들으면 그 사람은 삽니다. 그렇게 보고, 그렇게 듣고, 그렇게 깨달으시길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21:28절에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이런 환난과 고통이 일어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두 번째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나같은 자가 살수 있는가 온 세상이 무너지는 판에, 터가 무너지는 판에 나 같은 작은자가 무슨 방법으로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걱정을 많이 하니까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하시기를 " 야! 네가 걱정한들 뭐 할꺼냐! 네가 걱정하는 것은 좋지만, 걱정은 해야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목사 네가 걱정한다고 해서 김 집사가 사느냐 박 집사가 사느냐 어쩌냐 저들을 살려주는 이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만 전해라" 그렇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날 뿐만 아니라 이기는 방법 네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지극히 작은자 하나 실족하는 것도 안타까워 하시고 사랑하시는 그분 그분에게 가야 합니다. 저는 그걸 체험을 해서 알아요. 제가 시골 교회에 있을 때 정말로 작은자, 집이 기울어 졌는데 그걸 세우지 못해요. 얼마나 가난한지  곧 무너지고, 주저 앉을 것 같은데, 그 남편된 사람은 머리가 조금 이상해서 생활 능력이 별로 없어요. 그저 모 심고, 지게지고 그런 일이나 하지, 머리를 굴리고, 어떻게 할 능력이 없는 남편이에요. 그렇게 참 험하게 사는데, 태어나는 자녀들이 아빠가 그래서 그런지 애들도 그래요. 막내 하나 그 애만 똑똑하단 말이에요. 그 애 하나만 똑똑하니까 부인이 그 막내에게 재미를 붙이고,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인데도 "하나님께 나오시오. 교회에 나오시오. 믿으시오." 불쌍하니까 더 전해 지는데 안들어요. 가난하다고 해서 믿는것이 아니 더라구요. 가난한 사람들이 고집이 더 세더라구요.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 안 나와요. 부자만 교만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나름대로 고집이 있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그 마지막 소망이고, 재미인 막내 아들이 이제 서너살 먹어서 재롱도 피고, 뛰어 다니고
그런데 이 아이가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와 가지고 걷지도, 뛰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어요. 다리부터 마비가 온겁니다. 그러니 어찌합니까 청천병력처럼 놀래가지고 이걸 등에 업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이 병원, 저 병원, 큰 병원을 쫓아 다녔는데 없는 살림에 치료비도 없지만, 쫓아 다녔지만, 치료 불가능 이라고 판정이 내려 졌어요. "참 하늘이 무너져, 땅이 무너져 마지막 이 아이 한테 정붙이고 사는데 이 아이 마져 이렇게 되느냐!" 하면서 진짜로 대성통곡 하는거에요. 저도 그 말을 듣고 "당신 이래도 하나님 앞에 안나오겠느냐 " 그때 나오더라고요. 그 애를 업고요. 사람이란게 그래요. 다 죽게 되어야! 뭐 남아 있으면 안나와요! 그거 붙잡고 안나온다구요. 그래 그 아이를 들쳐 업고 교회에 나왔는데 하나님께서 그 인생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정말로 티끌만도 못한 인생인데요. 하나님이 그 인생을 받아주셨어요. 저도 안수기도 해주고 했지만 제가 안수기도 해서 그런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아주셔서 병원에서 치료 불가였고 버린 아이인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 하겠습니까 아이가 낳은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나 같은 인생을 하나님이 받아주시는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여러분! 좀 진심으로 예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건성으로 하지 마세요.
(2). 예수님을 믿는다는게 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 믿어요 예수 믿는다는 것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살기위한 몸부림입니다.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생명의 줄에 꽉 매달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그런 마음 ,그런 자세,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매달려야 예수님이 그런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살려줍니다. 예수 믿는 다는게 뭔지 알아야 합니다. 왜! 당신 예수 믿습니까 제게 물어보면 답이 하나에요. 목사니까 아니에요. 나는 살기 위해서 믿어요.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내 가정이 살기 위해서, 그러니까 어떻게 믿겠어요 거기다 전부를 쏟아 붇는 것이지요. 예수 믿는게 내 삶에 가장 중심이고 전부지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시간나면 교회가고, 바쁘면 안가고 그런게 아니란 말이죠. 왜 나는 믿어도 별거 없느냐 별거 없을 수밖에 예수 믿는일에 거기다 얼마나 생명을 걸었나요 자기도 안 걸었는데 예수님이 돌아볼 일이 없잖아요.믿는 것은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거다." 그래요. 그래야 되요.
(3). 예수님을 믿다가 어려움도 당합니다. 그래서 때로 어떤 사람은 믿다가 실족하기도 합니다. " 나는 예수 믿어도 어려운 일 당하니 믿어 봤자 소용없는 일 아닌가! " 그때가 참 중요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 내가 이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믿었는데 왜 이렇게 어려움이 있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축복을 받기 위한 연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단계 축복하실 때 반드시 우리를 시험에 봐요. test해 봅니다. 한 번 흔들어 본단 말이에요. 여러분! 직장에 계신 분들 진급할때 시험 안봅니까 평점을 내리잖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갈 때 시험 안보고 하나요 똑 같에요.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 살면서 어려운일 당하면 " 아! 이건 축복을 받기 위한 연단이다" 그렇게 알고 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낙심하면 제자리에 머무는 거지요.
(4).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때에 제일 중요한게 있습니다. " 실족하는 자가 있다" 그 말입니다. 넘어집니다. 우리가 어디 완전한 사람입니까 우리도 수없이 실족하고, 넘어지고, 거꾸러 지고, 때로는 죄도 짖고, 탈선도 합니다. 저 자신도 수없이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때가 제일 중요합니다. "나는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렇게 넘어졌구나! 나는 안될 사람이다." 포기하면 완전히 실족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구렁텅이에 빠져 버리는 거에요. 마귀가 그러는거에요. " 너 같은건 형편없다, 너는 포기해라, 너 같은 인생은 포기해라" 그러면 완전히 실족하는거에요. 완전히 죽어버리는거에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 말씀이 3절 4절이 그겁니다. " 형제가 죄를 보고 형제가 내가 잘못 했다고 돌아오거든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받아줘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실족하는게 아니냐 너라고 해서 안 넘어졌느냐 네 남편만 넘어지느냐 너는 너대로 얼마나 넘어지느냐 네 남편이 넘어졌거든 돌아오면 받아줘라! 돌아와서 또 넘어질지라도,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돌아오면 받아주라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들도 너희들끼리 서로 받아주라고 하셨는데 하물며 예수님은 우리를 안받아 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열두번 넘어지고 백번, 천번 넘어질지라도 사는 길은 어디있습니까 이렇게 넘어지고 실족하는 나를 받아주시는 분! 백번도 받아주시고, 천번도 받아주시는 분 그 예수님! 그분때문에 나는 삽니다. 나는 다시 일어설수 있고, 나는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절대로 부끄러워 하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다시 일어서십시오. 사람이야 여러분 보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야! 저거 형편없는 인간이다 무슨 얼굴로 하나님 앞에 나왔을까 사람은 나를 안 받아주고, 사람은 나를 조롱 할지라도 예수님은 절대로 그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시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여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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