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조심하라 (눅17:1-4)
본문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신앙과 생활에 관한 교훈입니다, 그것은 조심하라 녕계하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라 와 '하지 말라'의 두 가지 명령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것은 곧 신앙생활이란 완충지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적당히 타협하고 절층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구조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 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살인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해야 답니다. 계명은 좋은 것은 하라고 명령하고 나쁜 것은 하지 말라고 명령 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대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을바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세 가지 명령 을 찾고 실천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1. 스스로 조심하라 1-2절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려거든 차라리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어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는 교훈입니다. 본래 '실 족케 한다'는 말의 뜻은 씸승을 잡기 위해 꽈 놓은 함징 을 의미합니다. 남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 놓고 거기 빠지게 하는 행위를 실족 케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것은 인간의 심성이 어떠한가를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함정이 많습니다. 남을 해롭게 하고 무너뜨리고 파멸시키기 위해 파 놓은 함정이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1절에서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는 재앙과 심판을 의미 합니다. 2절을 보면 남을 실족케 한 사람이 받아야 할 화의 내용이 기록되 어 있습니다. 그것은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아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고대 로마나 수리아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공공질서를 파괴하고 안 녕을 어지럽힌 사람들의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던지는 사형 법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살 가치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남을 실족시키는 비열한 방냅들이 있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리는 행 위, 모략하고 증상하는 행위, 헐뜯고 상처내는 행위, 미워하고 시기 하는 행위, 근거없는 말을 퍼뜨리는 행위는 모두 남을 실족시키는 것 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습니다. 한마디로 그런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재 가 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 후에 주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조심하여 함정애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증을 날아 다니는 참새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한 새 그물에 걸리 지 않습니다. 물고기도 미끼라는 유흑을 물리치면 절대로 낚시에 걸 리지 않습니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는 무조건 욕심 많은 놈이거니라 고 치부하면니다, 쥐도 욕심 부리고 안방으로 침입하면 매 맞아 죽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는 함정이 많습니다만 스스로 조심하는 사람들은 그 함정 에 빠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은 스스로 자기 욕심을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우린 흔히 '인격자'라는 말을 씁니다만 인격자란 자기 욕망을 자제하고 스스로 자기 분수를 지킬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합니다. 자기 입술도 다스리지 못해 헤프게 놀려대고 측망도 다스리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인격자가 못되는 것입니다. 내 입술. 내 마음, 내 행동은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가령 말이 헤픈 사람이 친구더러 나는 입이 가벼운게 단점이야 자 네가 내 입 좀 막아 줘'라고 한다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들째는 스스로 조심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함정에 빠지는 것도 잘못입니다만 남을 빠뜨리기 위 해 함정을 파는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어느 동네에 원수처럼 지내는 두 집안이 있었습니다. 4대째 내려오는 원수 집안이었습니다. 사사건런 맞서기 일쑤였고 때론 패싸움도 벌렸습니다. 어느날 밤 김씨네 집안 남자들이 몰래 최씨네 집 식구들 이 다니는 통행로에 깊은 응덩이를 파고 오물을 채운 뒤 나무가지와 짚단으로 덮고 흙을 깔았습니다.날이 새면 최씨네 집안 식구가 지나 다 빠지라는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 던 김씨 마누라가 아침일찍 일어나 동이를 이고 물길러 가다가 함정 에 빠졌습니다. 제가 판 함정에 제가 빠진 꼴입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뿌리고 내가 거둔다는 말과 같습니다. 남을 헤 치기 위해 함정을 파면 자신이 그 함정에 빠집니다. 그것을 알고 스 스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법칙은 변수가 있습니다만 자연법칙은 정직합니다. 콩 을 심으면 콩이 납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신앙법칙도 정 직하고 정확합니다.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으면 천당캅니다. 안 믿으면 구원받지 못 합니다.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갑니다. 충성하 면 상받고 불층성하면 벌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기 위해 함정을 파면 자기가 그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스스로 조심하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조심합시다.
2, 경계하라 3절 끝을 보면 '난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죄 자체를 경게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을 등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 죄를 경계하지 않으면 죄의 종이 돼 버리고 맙니다 죄 없는 곳은 없습니다. 사람이 머무는 곳은 그 곳이 어디든 죄가 있습니다 안방에도, 사무실에도, 차 안에도 죄는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죄를 경계하지 않으면 죄가 나의 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2월 한국 소비자 보호원이 시중에 시판되고 있는 카페인 함유 식품 S6개 제품을 모아 카페인 함량을 분석시험 했습니다 그 결과 익스턴트 커피 한잔에 평균 54.7mg, 홍차에는 S6.6mg, 콜라 캔 1개에는 24.2mg, 코코아 한잔에는 S.4mg, 초콜릿 l백그램 l개에는 15.4mg의 카페인이 들어 있었습니다. 카페인의 부작용은 임산부, 성 장기의 어린이, 협심증 환자, 위궤양 환자에게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루 5잔 이상의 커피를 마실 경우 안마실 때보다 관상 동맥 질환에 걸릴 위험이 2-S배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주변과 냉장고 안에는 그런 음료들이 널려 있 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경계 해야 합니다. 한국사람은 대체적으로 술을 조금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반주 정도는 보약이라고 여기고 자주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술의 해독은 적게 마시거나 많이 마시거나 별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체내에서 저항력의 가장 중요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티 임파구'와 '백혈구' 인데 술은 그 것을 약하게 만들어 암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 퍼진다는 사실이 실험 을 통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마실 경우는 암이 퍼지는 속도가 l0-2o배로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술 없는 곳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안방에도 있고 구멍가게 에도 있고 백화점에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모든 가게들이 대부분 오후가 되면 문을 닫습니다만 24시간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쎄븐일 레븐이나 리꼬 스토어인데 술을 파는 가게입니다. 백화점이나 생필품 가게는 문을 닫지만 술파는 가게는 문을 밤새도록 엽니다. 그것은 밤새도록 술사다가 마시라는 것과 같습니다. 제아무리 먹지말라, 마시지 말라고 외쳐도 결국은 자기가 알아서 경계 해야 합니다. 시증에 나도는 주간지 월간지 가운데 술광고에 외제 담배광고 없는 것들이 어떤 것입니까 세계 언론은 자기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계할 것들이 많습니다. 들째 죄의 유흑자를 경계하라는 것입더다. 현대인의 경우 죄의 감염경로가 정해져 있습니다. 죄를 배우고 닮 고 세뇌당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매스컴을 통해서 입니다. 사람을 통해 죄를 배우고 익힙니다. 그리고 신문. 잡지, 텔레비젼,영화, 심지어 컴퓨터 통신을 통해 죄를 배웁니다. 그것을 경계해야 답니다. 사람을 골라서 만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죄를 짓는 사람과 죄로 나를 유혹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죄를 범하게 된다면 당연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바른 신앙과 삶 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3. 용서하라 3절끝을 보면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용서에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이 죄짓고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스 라엘이 범죄하고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셨습니다. 들째아들이 아버지 떠나 방탕하고 죄짓다가 돌아와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자비인 것입니다. 문제는 진정으로 회개 했 느냐에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첫째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들째 그 잘못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셋째 잘못을 아파하는 것입니다. 넷 그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그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다시는 그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곱째하나님깨로 온전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회개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회개한 사람을 용서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밝히 고 았습니다. 하루에 일곱 번 죄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 하라고 했숩니다. 마태복음 18:22에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습니다만 예수님은 일혼 번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단 회개해야 합니다. 앞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지은 수도 없습니다. 계속 죄를 짓고 았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하니섬 주셨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생각하고 내가 받은 죄는 씰 수도 잴 남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용서를 생각해야 조심 합시다. 경계 합시다. 용서 합시다
1. 스스로 조심하라 1-2절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려거든 차라리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어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는 교훈입니다. 본래 '실 족케 한다'는 말의 뜻은 씸승을 잡기 위해 꽈 놓은 함징 을 의미합니다. 남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 놓고 거기 빠지게 하는 행위를 실족 케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것은 인간의 심성이 어떠한가를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함정이 많습니다. 남을 해롭게 하고 무너뜨리고 파멸시키기 위해 파 놓은 함정이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1절에서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는 재앙과 심판을 의미 합니다. 2절을 보면 남을 실족케 한 사람이 받아야 할 화의 내용이 기록되 어 있습니다. 그것은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아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고대 로마나 수리아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공공질서를 파괴하고 안 녕을 어지럽힌 사람들의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던지는 사형 법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남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살 가치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남을 실족시키는 비열한 방냅들이 있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리는 행 위, 모략하고 증상하는 행위, 헐뜯고 상처내는 행위, 미워하고 시기 하는 행위, 근거없는 말을 퍼뜨리는 행위는 모두 남을 실족시키는 것 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습니다. 한마디로 그런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재 가 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 후에 주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조심하여 함정애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증을 날아 다니는 참새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한 새 그물에 걸리 지 않습니다. 물고기도 미끼라는 유흑을 물리치면 절대로 낚시에 걸 리지 않습니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는 무조건 욕심 많은 놈이거니라 고 치부하면니다, 쥐도 욕심 부리고 안방으로 침입하면 매 맞아 죽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는 함정이 많습니다만 스스로 조심하는 사람들은 그 함정 에 빠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은 스스로 자기 욕심을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우린 흔히 '인격자'라는 말을 씁니다만 인격자란 자기 욕망을 자제하고 스스로 자기 분수를 지킬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합니다. 자기 입술도 다스리지 못해 헤프게 놀려대고 측망도 다스리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인격자가 못되는 것입니다. 내 입술. 내 마음, 내 행동은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가령 말이 헤픈 사람이 친구더러 나는 입이 가벼운게 단점이야 자 네가 내 입 좀 막아 줘'라고 한다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들째는 스스로 조심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함정에 빠지는 것도 잘못입니다만 남을 빠뜨리기 위 해 함정을 파는 것은 더 큰 잘못입니다. 어느 동네에 원수처럼 지내는 두 집안이 있었습니다. 4대째 내려오는 원수 집안이었습니다. 사사건런 맞서기 일쑤였고 때론 패싸움도 벌렸습니다. 어느날 밤 김씨네 집안 남자들이 몰래 최씨네 집 식구들 이 다니는 통행로에 깊은 응덩이를 파고 오물을 채운 뒤 나무가지와 짚단으로 덮고 흙을 깔았습니다.날이 새면 최씨네 집안 식구가 지나 다 빠지라는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 던 김씨 마누라가 아침일찍 일어나 동이를 이고 물길러 가다가 함정 에 빠졌습니다. 제가 판 함정에 제가 빠진 꼴입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뿌리고 내가 거둔다는 말과 같습니다. 남을 헤 치기 위해 함정을 파면 자신이 그 함정에 빠집니다. 그것을 알고 스 스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법칙은 변수가 있습니다만 자연법칙은 정직합니다. 콩 을 심으면 콩이 납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신앙법칙도 정 직하고 정확합니다.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으면 천당캅니다. 안 믿으면 구원받지 못 합니다.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갑니다. 충성하 면 상받고 불층성하면 벌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기 위해 함정을 파면 자기가 그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스스로 조심하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조심합시다.
2, 경계하라 3절 끝을 보면 '난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죄 자체를 경게하라는 것입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을 등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 죄를 경계하지 않으면 죄의 종이 돼 버리고 맙니다 죄 없는 곳은 없습니다. 사람이 머무는 곳은 그 곳이 어디든 죄가 있습니다 안방에도, 사무실에도, 차 안에도 죄는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죄를 경계하지 않으면 죄가 나의 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2월 한국 소비자 보호원이 시중에 시판되고 있는 카페인 함유 식품 S6개 제품을 모아 카페인 함량을 분석시험 했습니다 그 결과 익스턴트 커피 한잔에 평균 54.7mg, 홍차에는 S6.6mg, 콜라 캔 1개에는 24.2mg, 코코아 한잔에는 S.4mg, 초콜릿 l백그램 l개에는 15.4mg의 카페인이 들어 있었습니다. 카페인의 부작용은 임산부, 성 장기의 어린이, 협심증 환자, 위궤양 환자에게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루 5잔 이상의 커피를 마실 경우 안마실 때보다 관상 동맥 질환에 걸릴 위험이 2-S배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주변과 냉장고 안에는 그런 음료들이 널려 있 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경계 해야 합니다. 한국사람은 대체적으로 술을 조금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반주 정도는 보약이라고 여기고 자주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술의 해독은 적게 마시거나 많이 마시거나 별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체내에서 저항력의 가장 중요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티 임파구'와 '백혈구' 인데 술은 그 것을 약하게 만들어 암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 퍼진다는 사실이 실험 을 통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마실 경우는 암이 퍼지는 속도가 l0-2o배로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술 없는 곳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안방에도 있고 구멍가게 에도 있고 백화점에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모든 가게들이 대부분 오후가 되면 문을 닫습니다만 24시간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쎄븐일 레븐이나 리꼬 스토어인데 술을 파는 가게입니다. 백화점이나 생필품 가게는 문을 닫지만 술파는 가게는 문을 밤새도록 엽니다. 그것은 밤새도록 술사다가 마시라는 것과 같습니다. 제아무리 먹지말라, 마시지 말라고 외쳐도 결국은 자기가 알아서 경계 해야 합니다. 시증에 나도는 주간지 월간지 가운데 술광고에 외제 담배광고 없는 것들이 어떤 것입니까 세계 언론은 자기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계할 것들이 많습니다. 들째 죄의 유흑자를 경계하라는 것입더다. 현대인의 경우 죄의 감염경로가 정해져 있습니다. 죄를 배우고 닮 고 세뇌당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매스컴을 통해서 입니다. 사람을 통해 죄를 배우고 익힙니다. 그리고 신문. 잡지, 텔레비젼,영화, 심지어 컴퓨터 통신을 통해 죄를 배웁니다. 그것을 경계해야 답니다. 사람을 골라서 만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죄를 짓는 사람과 죄로 나를 유혹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죄를 범하게 된다면 당연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바른 신앙과 삶 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3. 용서하라 3절끝을 보면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용서에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이 죄짓고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스 라엘이 범죄하고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셨습니다. 들째아들이 아버지 떠나 방탕하고 죄짓다가 돌아와 회개했을 때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자비인 것입니다. 문제는 진정으로 회개 했 느냐에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첫째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들째 그 잘못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셋째 잘못을 아파하는 것입니다. 넷 그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그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다시는 그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곱째하나님깨로 온전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회개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회개한 사람을 용서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밝히 고 았습니다. 하루에 일곱 번 죄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 하라고 했숩니다. 마태복음 18:22에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습니다만 예수님은 일혼 번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단 회개해야 합니다. 앞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지은 수도 없습니다. 계속 죄를 짓고 았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하니섬 주셨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생각하고 내가 받은 죄는 씰 수도 잴 남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용서를 생각해야 조심 합시다. 경계 합시다. 용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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