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눅16:19-31)

본문

저는 언제 보고 또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신데렐라', '콩쥐 팥쥐', '춘향전' 등입니다. 그 중에 춘향전은 판소리로 듣거나 영화 로 보아도 언제나 긴장감을 느끼며 감격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이몽 룡이 암행어사 출도해서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어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 하는 변사또 일행을 잡아들이는 장면입니다. 특히 춘향가 중에 어사되어 남원 변사또가 벌인 잔치에 나타난 이몽룡이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 골(毛骨)이 송연(然)하게 한 시를 읊을 때면 긴장감이 감도는 역전극이 예상되어 흥미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그 흥미진진한 대목은 다음과 같 습니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아름다운 술항아리에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고운 접시에 맛 있는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요' 촉루낙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촛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흥겨운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이 높다' 백성들의 혈세로 온갖 사치와 음란을 일삼아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 한 변 사또의 행각에 백성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떨어지며 피골이 상접 하여 몰골이 말이 아니며 원성이 드높다는 암행어사의 통쾌한 고발입니다. 곧 이어 암행어사 출도 하여 목숨걸고 끝까지 절개를 지킨 춘향은 극 적으로 구출되어 어사 부인되고 변 사또 일행은 한양으로 압송되고 맙니다. 인생에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지 않는다면 삶에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부자가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에 영원한 고통을 당하고, 거지는 천국에 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이 역전극이야말로 고달픈 이 세상의 삶에 소망과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기독교는 인생으로 하여금 역전(逆轉) 드라 마를 연출케 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사람들을 택 하여 지혜 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여 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세상의 천한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을 택하여 있는 사람들을 폐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26-28) 십자가에 맥없이 죽어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난 것 같은데 사흘만에 다시 살아 사망 권세를 깨뜨린 것이 기독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역전된 삶의 모습을 통쾌하 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어떤 부자가 있는데 한 벌에 1천만 원이 훨씬 넘는 호화스런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즐기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가 죽어 들어 간 곳은 물 한 모금 없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고통 당하는 지 옥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라 하는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그 부잣집에 서 구걸하며 병든 몸을 이끌고 고생스런 삶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천사에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 즉 천국에서 아주 행복하게 영원히 살 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끊임없이 태워지는 고통 중에 있는 부자가 눈을 들어 멀리 보니 생전에 안면이 있는 나사로가 아 브라함의 품에 있어 아브라함을 불러서 간청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그러자 아 브라함이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 게 하였느니라."고 대답합니다. 고통 중에 부자는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 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 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면서 지금 생존해 있는 형제들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미 네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 이 있으니 듣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고통 중에 부자는 어려운 부탁을 합니다. "어지간해서는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만일 죽었던 사람, 나사로를 부활시켜 내 형제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 하면 그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복음을 받아드리지 아니할 것이다."며 거절합니다.
3.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부자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지옥불에 들어가 영원히 꺼지지않는 불꽃에 태워지는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까 부자가 거 지를 발길질하며 썩 꺼지라며 학대했습니까 먹을 것을 구걸할 때 문전 박대(門前薄待)하며 매질했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거지 나사로에게 무관 심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정죄를 당한 것은 굶주리고 헐벗으며 병든 거 지 나사로에게 얼마든지 자기가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라도 주어서 생명 을 연명하게 하고 병으로 죽어가는 몸을 조금이라도 돌볼 수 있었는데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외면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수 천 만 원을 홋가하는 사치스런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잔치를 벌이면서도 고 통받는 이웃을 전혀 외면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시대에는 나이 프나 포크, 내프킨이 없었습니다. 음식은 손으로 먹었는데 아주 부유한 집에서는 두껍게 썬 빵덩어리에다 손을 닦았으며 그 후 그 빵은 내어 버 렸습니다. 나사로가 목이 타게 바라고 있던 것이 바로 부자가 더러운 손 닦고난 부스러기 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자는 혼자서만 온갖 사치와 허영에 인생을 허비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들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부자가 저 세상에서 고통을 받은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를 자신의 이기적 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였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부 자체는 악이 아니요 인간이 피해야 할 죄도 결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를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데에만 사용할 때 그에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니다른 생에서 쓰라린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부자를 지옥에 들어가게 한 것은 그가 강도짓이나 도둑질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 것은 그 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의 죄는 이 세상의 고통과 궁핍을 방관한 것입니다.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 가는 거지 를 보고서 마음 속 깊이 불쌍히 여기며 그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웃의 굶주림과 고통을 보고도 그것을 위하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고통지수(실업률에다 소비자 물 가 상승률을 더한데서 실질 GDP를 뺀 것)는 OECD가입 24개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고통지수가 높을수록 국민 들의 체감하는 삶의 고통과 불행이 가중되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고통지수가 아주 높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가 행복하고 만족 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기 보다는 고통 속에서 마지못해 살고 있다는 것 을 말하는 것으로 중산층이 사라지고 못 가진 자가 극히 소수의 가진 자 (권력, 금력)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실업자들 가운데 20.3%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22%는 사회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사회적 불안요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1917년 10월 제정 러시아를 무너지게 한 볼쉐비키 당원은 4만 명에 불과 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의 몰락을 가져오게 한 공산당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귀족들과 가진 자들이 행복을 독차지하고 농노들, 못 가진 자 등을 모 른 체한 결과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산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춥고 배고픈 이웃을 못 본 체하는 사랑의 냉각현상이 그대로 계 속된다면 언제 어느 순간에 무슨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지수가 높아질 것이 뻔합니다.
4.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부 다카쓰키시의 에무라 시장이 지난 10일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임기 1년을 남긴 시점이었고, 오는 4월30일 시청을 떠납니다. 사퇴 이유는 '병든 집사람을 돌보기 위해서'라고 일본 시사주 간지 아에라는 보도했습니다. 한 살 연상인 부인 도미코씨는 94년 왼쪽 다리가 불편해졌고, 지난 해 봄부터는 대소변도 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 게 됐습니다. 파킨슨씨병, 치매 증상도 나타났습니다. 에무라 시장은 바쁜 공무와 부인간호를 병행했습니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 줬고, 대변은 며느리와 함께 처리했습니다. 변비 때는 40분 정도 걸린다 고 합니다. 밥을 따스하게 데워 부인에게 먹였습니다. 여기에 대략 2시간 이 걸립니다. 점심때도 자전거로 돌아옵니다. 밤에 만찬 등이 있으면 집 부근에 사는 큰 딸에게 부탁합니다. 만찬이 있던 어느 날 밤 9시쯤 돌아 와 보니 부인이 자고 있었습니다.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평화로운 부인 얼굴을 보고 깨우질 못했습니다. 결국 다음날 새벽 2시 부 인의 신음에 잠을 깨 기저귀를 갈아줬습니다. 지역 기반이 더없이 탄탄한 에무라 시장은 지난 80년 오사카부 수도부 기술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했 고, 84년 4월 주위의 권유에 떼밀려 출마,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인물이 었습니다. 15년간 시장직을 통해 육상경기장, 도서관, 문화회관, 평생 학 습관 등을 잇따라 건설했습니다. 하수도 보급률은 그의 취임전 17%에서 76%로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첫 당선 뒤 치러진 3번 선거 결과는 압승이 었고, 5기 당선도 확실했습니다. 그런 에무라 시장은 어느 날 관용차 타 고 입원한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시장이 한가하구먼이란 비 판이 귀에 들렸습니다. 그래서 부인을 찾아갈 때의 교통수단은 즉각 자전 거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시청-집-병원을 오가는 사이 이러다간 공무에 지장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부 인간호와 공무 병행이 한계에 다다랐을때, 시장은 남편 이 됐고 부인을 선택했습니다. 사퇴발표 뒤 부인에게 한 말은 시장이란 정말 매력없는 자리야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카쓰키시 주부들은 내가 시장부인이라면 참 행복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고 아에라는 보도했습니다. 에무라 시 장은 사퇴선언을 계기로 기자들이 몰려오자 훈계했습니다. 당연한 일 아닌가. 촌스럽게, 또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소동들 떨지 말라.(조선일보, 2월25일자)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 곧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하나를 돌보지 아니한 사람은 영벌에, 돌본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태복음 25:45-46)
5. 나사로는 전형적인 거지로 온 몸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이 살이 문 드러져 고름이 흐르는 나창병에 걸려 그 병 때문에 제대로 얻어 먹지도 못한데다 동네 개들이 덤벼들어 살점을 뜯어 먹는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 야 했던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이 땅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저 세상에 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가 이처럼 구원을 받은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천대받던 소외 계층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 '나 사로'의 뜻인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사실이 암시하듯이 그는 어디까지 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가난 그 자체가 죄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권장할 만한 것도 아니며 구원의 보상을 얻는 근거도 될 수 없습니다. 가난함이란 말은 절대적인 빈곤 상태로 누군 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의 슬픔과 고통을, 그리고 소 외당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늘만을 쳐다보고 하나님 만을 의존해서 사는 사람을 "가난한 자"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만으로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데 천국은 바로 이런 사람의 것입니다. 나사로 자기 이름대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날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는 시점에서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의 사정을 생각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품음으 로써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져 가고 있습니다.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 대해 무관심하여 그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므로 결국 정죄를 당하여 물 한 모금 구걸 할 수 없는 영원한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비록 세상에서 거지에 병든 몸을 이끌고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아 천국을 소 유한 영원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내세의 소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시들어 없어질 들의 꽃과 같으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이 성도에게 있을 것이니 이는 약속된 백성이 영원한 기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롬 8:18-21) 이 기업을 상속받을 자는 이 세상에서 부하든 부하지 않든 궁극적인 소망을 하늘에 두고 있으므로 진정한 부를 마음에 품은 자의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채프만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떤 거지가 노신사를 향 해 "10센트만 동냥해 주십시오."하고 손을 내밀고 구걸했답니다. 말을 마 치고 고개를 들던 거지는 그 신사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노신사가 바로 자기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너무 놀라 뒷걸음질치는 모습 을 보며 그제야 노신사도 아들의 얼굴을 알아차렸습니다. "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니 내가 너를 18년 동안 찾아다니고 있는데 10센트 내가 가 진 것이 다 네 것인데 10센트를 구걸하다니. 아무 말 말고 당장 나하고 가자." 그렇습니다. 부자 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거지에게 10센트 동냥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 믿고 여러분은 세상에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 "징계 를 받아 죽은 자 같으나 살고 죽임을 당하지 아니 한 자"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자"로,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 게 하는 자"로,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2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