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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을 앞두고 (눅1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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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새로운 고용 창출은 커녕 각 기업체에서 감원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직장인들이 원치 않는 실직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실직을 앞둔 한 사람에 관한 비유를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낯선 나체촌에 던저져서 강제로 발가벗겨진 기분이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기업체에 감원선풍이 불기 시작하고 10년만인 90년대 초에 이르러 그 숫자가 5백만명을 돌파하면서 느닷없이 일자리를 잃게된 대부분의 50-60대 실업자들은 그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퇴직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들조차 "감량경영 혹은 기구축소 경우의 퇴직대상 0순위"라는 자격지심 탓에 퇴직을 결정한 사람들이고 보면 그것은 50대 이후 직장인들의 공통된 느낌일는지도 모른다. 발행일:96년8월12일
첫째로, 우리는 작은 것에서부터 충성되어야 합니다. 한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집안 일과 재산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청지기가 종의 신분이었는지 고용인의 신분이었는지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이 청지기가 자신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퇴직을 명하고 결산처리를 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입니다. 요즘 같이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영합리화를 해야 합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쓸 데 없는 지출을 줄이고 과감하게 필요 없는 인원은 감축하고 능력 없는 사람은 퇴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시간을 초로 환산하며 초관리를 외치기도 합니다. 조금도 근무시간에 딴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회사 소유를 허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비싼 임금을 지불하며 계속 그 사람을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가 실직하게 된 것은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그 이면에는 여러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작은 일에 충성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교훈 부분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절). 물론 그도 처음에는 열심히 일해서 주인의 신뢰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신뢰가 깊어지게 되자 언제부터인가 작은 것들을 소홀히하게 되었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손해를 주인에게 끼치게 된 것입니다. 작은 것은 하찮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감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대상명단에 포함될 것입니다. 작은 것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은 큰 것도 챙기지 못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또한 무책임하게 일했습니다. 주인의 것이 곧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자기 받을 것만 받으면 된다는 사고를 가졌습니다. 월급만 받으면 된다는 사람은 결국 일자리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회사가 잘 되야 내가 잘 된다는 믿음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주인이 있건 없건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할 것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6:5-8)
둘째로, 우리는 장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주인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은 청지기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실직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다”고 한 말을 미루어 볼 때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년퇴직과 명예퇴직이 확산되면서 퇴직 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에 퇴임 후를 대비하여 재단을 세우기도 하고 비자금을 조성하여 유가증권과 부동산을 구입하기도 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청지기는 많은 궁리 끝에 그는 주인의 것으로 선심을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채무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그들의 빚을 경감해주고 증서를 다시 작성했습니다. 청지기의 생각은 자신이 실직하여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이 청지기를 칭찬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불의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 같이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가 이 비유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목적만 좋다면 회사 공금을 횡령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적만 좋다면 공직비리로 돈을 모아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주인이 칭찬한 것은 실직을 지혜롭게 대비한 것이지 주인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지기를 가리켜서 주님은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부르셨음도 유의해야 합니다(8절).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장래를 대비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우리는 본문의 청지기가 그랬듯이 실직할 때를 예견하고 미리부터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바로는 애굽의 7년 풍년 동안 흉년을 대비하라는 제안을 한 요셉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그런 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내일을 대비하고 장래를 대비하는 것이 불신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보험을 부정시하고 심지어는 은행에 저금하는 것도 꺼려합니다. 이들은 그렇게 믿는 근거로 산상수훈에 나오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는 말씀을 제시합니다(마6:34). 그러나 이 말씀은 지나친 염려로 인해 삶의 의욕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 장래에 대한 대비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 자체도 장래에 대한 대비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이라고 하겠습니까 이 청지기는 실직을 대비했지만 대비해야 할 것은 실직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퇴직의 때를 대비하여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병이 들었을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후를 대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돈을 우상으로 받들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9절). 이 말씀이 이 비유의 두 번째 장애물입니다.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회사 공금을 횡령하여 자선하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공직비리로 돈을 모아 친구들과 즐기라는 뜻입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그런 뜻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불의의 재물”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에 불의가 개입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렇게 부르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재물을 친구로 삼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뒤에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는 말씀에 비춰볼 때 영혼 구령하는 일에 재물을 써서 그들이 구원받게 되면 장차 천국에서 그들의 환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재물을 신처럼 받드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절) 돈 앞에서 굴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이 흔히 가지기 쉬운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돈을 전능한 신으로 받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할 수 없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유력한 경제신문인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 돈에 대한 작자미상의 글이 하나 실렸습니다. “돈이란 천국을 제외하고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는 세계적인 여권이며, 행복을 제외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만물상으로 사용되는 품목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청지기 일을 청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대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의 청지기처럼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 가난한 사람을 도우십시오. 선을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힘껏 선을 베푸십시오.구제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열심히 구제하십시오. 선교하는 데 적극적으로 지원하십시오. 주님께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제나라 맹상군은 후세사람들로부터 멋진 인생을 산 사람으로 널리 공인받고 있다. 이조시대의 고가사로 맹상군가라는 것이 있다. 거기 '천추전 존귀키야 맹상군만 하랴마는.'이라는 구절이 등장할 만큼 만복을 두루 갖춘 사람이란 말이다. 이런 맹상군도 자기가 거느린
3,000명의 식객을 치다꺼리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당면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민하던 그는 이 문제의 타개책으로 자기의 식량이 나오는 설(薛)지방 사람들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돈을 받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일을 풍환이라는 종에게 맡겼다. 맹상군의 명을 받고 출발하기에 앞서 풍환은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올 때 사가지고 올 만한 것이 없는가를 맹상군에게 물었다. 이때 맹상군은 집안에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고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풍환이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풍환은 맹상군의 이름으로 그들의 빚을 모조리 탕감해 주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온 풍환을 보고 화가 난 맹상군이 불쾌한 표정으로 힐책을 하는데 풍환은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 사람들에게 돈을 받으면 무엇을 사가지고 돌아올까 궁리해 보니 이 집에 없는 것이라곤 오직 의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의를 구하다 보니 결국 불쌍한 사람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저는 만금을 주고 정의를 사가지고 왔으니 주인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잘한 일이 없다고 믿습니다.'라고 넉살 좋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 맹상군은 제나라 왕의 미움을 사서 정승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3천명의 식객들은 자신들의 보신을 위하여 뿔뿔히 흩어졌고 그는 결국 자기 몸뚱아리 하나 안심하고 맡길 만한 곳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때 풍환은 주인을 설지방으로 인도했다. 맹상군은 거기서 의외의 환대를 받았고 아울러 설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다시 멋지게 기사회생함으로써 그의 진면목을 온 천하에 과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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