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때를 위하여 (눅16:19-31)
본문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전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전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전 3: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 가 있으며 (전 3: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전 3: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전 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모든 것에는 이렇게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 ‘때’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사람이 태어났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라 하는 이름을 가진 이가 살았습니다. 부자는 많이 소유하였기에 살았을 때에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라 하는 이름을 가진 이는 가진 것이 없었기에 부잣집 대문간에서 구걸해서 얻어먹고 살아야 할 거지로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부자가 부자로서 즐기며 살았으며, 나사로가 거지로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 똑같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가 많이 소유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조금밖에 소유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가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하거나 잘못되었다 할 수 없고, 또 어떤 이가 적게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잘했다고, 인생은 그런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믿음 안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부자는 안되고 가난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많이 소유할 수 있고, 주시지 않아서 적게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이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성공이고, 적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실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얼마만큼 소유했느냐 하는 소유의 유무다소가 그 인생의 전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약 1: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다르게 말하면, 소유를 많이 했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소유를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기죽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이 땅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많이 소유한 사람이든, 적게 소유한 사람이든 그 소유한 것을 가지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소유한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가야할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2절-‘이에 그 거지가 죽어.’ ‘부자도 죽어.’ 부자든 거지든 이 땅에서 아옹다옹하는 모든 것을 두고 죽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여러분과 저도 오늘 분명히 내 가슴에 기억합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 내게 일어날 일, 내 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나중에, 다음에, 차자 이런 일을 당해야지 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아니면 내가 원하는 때에 죽게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올 때에는 순서 있게 왔지만 갈 때에는 순서 없이 갑니다. 건강하다고 보장된 것이 아니라 건강해도 사고로도 갑니다. 나이가 젊다고 아직 나는 멀었다가 아니라 어린이들도 갑니다. 이 죽음에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장사는 없습니다. 이것을 당할 지혜와 지식이 없습니다. 지난밤에도 수만의 사람들이 이 세상의 생을 마치고 영혼이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생명을 가지고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생각하십니까 저가 오늘 이 거룩한 주일 아침에 기분 나쁜 말씀을 들려주어서 죄송합니다만 은 저는 여러분들을 기분 나쁘게 하려고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부자와 나사로가 당했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게 일어날 일이 된다는 것, 그래서 언제 내가 그런 일을 맞았을 때에라도 후회함이 없는 그런 생의 끝을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자로 세워지기를 원해서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 종을 통해서 전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오늘 내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언젠가 내게 닥쳐올 일들을 잘 준비된 자로 준비하는 자로 살아 라고 주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지금 생명 있을 때에 언젠가 닥쳐올 일들을 위하여 잘 준비된 자로 세워져야 하겠습니까 두 번째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2.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으면 끝이 되어버리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습니다.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베풀며 살든 움켜쥐며 살든, 하든 안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과 더불어 히브리서 9장27절은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합니다. 심판이 있다는 이 말은
1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참 안타까운 소식을 듣습니다. 몇칠전에도 빚을 져서 채무에 시달리다 못해 갚을 길이 없자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려 한 젊은 청년이 자살을 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십대들의 우상이었던 인기 가수가 삶의 공허와 허무를 달랠 길 없어 자살을 했습니다. 죽으면 그런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얼마나 경제가 어렵습니까 중소기업을 하는 한 사람은 도저히 회생가능성이 없자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합니다. 또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심정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이 중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때로는 자신의 문제로, 때로는 가정의 문제로, 때로는 자신의 장래와 일들에 너무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하고, 고통을 받을 때 ‘차라리 콱 죽어 버릴까 보다’, 아니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분명한 것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가 아니라,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로는 육신과 세상의 당한 현실로부터는 끝이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우리가 자연사를 하던, 병이 들어 죽던 죽으면 끝이다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왜 끝이 아닙니까 우리 사람들은 육체와 영혼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육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곧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없어진다. 즉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이유가 눈에 보이는 육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끝이라고 여기고, 또 그 육체를 땅에 묻으니 썩어 없어짐을 보고 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영혼입니다. 영혼은 비물질적인 것입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제한 받지 않기에 죽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삽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몸속에 있는 영혼이 육체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떠나서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영혼이라는 것은 담겨있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육체를 떠난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끝이 아니라 이 육신의 삶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영원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보십시오. 거지가 죽어 어디로 갔다고 합니까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국입니다. 부자가 죽어 어디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음부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지옥입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영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서 결정이 납니까 바로 육신의 생명이 있는 이 땅에서 결정이 납니다. 예수 안에서는 천국이요, 예수 밖에서는 아무리 고관대작이라고 해도 지옥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죄인이며 이 죄인 된 나를 위해 그분이 나의 죄를 담당하신 구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죽으면 천국에 이르게 될 줄 믿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나만 이런 은혜를 받아서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부모형제 친척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도 같이 죽어 천국에 이르도록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를 전합시다. 두 번째로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은
2이 땅에 살았을 때의 것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자면, 죽어 천국 가고, 지옥 간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사는 영혼의 때에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영혼의 때는 지옥에 있습니다.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는 영혼의 때의 모습은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그것도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영혼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불꽃으로 인하여 얼마나 목마른 고통이 있는지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라 구세주와 같은 영혼의 때로 보냅니다. 그가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육신의 때에는 부요한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영원히 거하는 영혼의 때는 자기집 대문밖에 있던 거지 나사로 보다 훨씬 가난한자가 되어 있습니다. 또 거지 나사로의 영혼의 때는 천국에 있습니다. 그의 영혼은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거하고 있습니다. 25절의 말씀에 보면 그는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의 때의 모습은 육신의 때에 가난한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요한 영혼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때에 어디서 보내는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로 보내는가, 가난한자로 보내는가 어떤 영혼의 때를 보내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혼을 영원히 보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의 때를 천국에서 보낼 때에 어떤 영혼을 영원히 보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혼의 때에 가난하자가 아니라, 부요한 자로 살수 있기 바랍니다. 영혼의 때에 적은 자가 아니라 큰 자로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의 때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의 때에 없는 자가 아니라 있는 자로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이 사실을 잊어버려 서는 안됩니다. 영혼의 때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 영혼의 때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숨을 쉴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이 영혼의 때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으면 끝이 아니라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3.영혼의 때에 부요한 자로 세워지려면 여러분들은 영혼의 때에 천국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음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 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주어진 기회를 믿음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영혼의 때에 부요하고, 가난한 것의 차이는 어디에서 옵니까 25절에 보면, ‘살았을 때에’라고 합니다. 살았을 때에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영혼의 때의 부요하고, 가난한 것이 좌우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 믿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가 되느냐, 가난한 자가 되느냐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음으로 심느냐, 믿음으로 심지 않느냐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가 되느냐 가난한자가 되느냐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열심히 주님을 믿고, 섬기느냐에 따라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가 되느냐 가난한자가 되느냐가 결정이 되어 집니다. 오늘 본문에 부자 나사로의 대문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부자 나사로에게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라고 주신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못합니다. 주어진 거기에 마음이 팔려 있어서 하나님도 필요 없었고, 거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의 때에 부요한 자로 세워주시기 위한 기회를 주신 줄 믿습니다. 시간 주셨습니다. 물질 주셨습니다. 믿음 주셨습니다. 건강 주셨습니다. 재능 주셨습니다. 은혜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엇입니까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게 하기 위한 기회인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엡 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 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3오늘이 나의 마지막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행하여야 합니다. (고후6: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 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내일은 나에게 보장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영혼의 때를 준비합시다. 우리가 지금 엉뚱한 생각, 엉뚱한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세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닙니다. 안일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히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가야 합니다. 주어진 오늘, 주어진 이 때에 영혼의 때에 부요한 자로 세워지도록 믿음으로 삽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지금 육신의 생명이 있을 이 때가 기회입니다. 27절 이하에 부자가 후회하며 간청합니다. 그러나 죽어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이 때만이 기회입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한 번은 죽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디서 영원을 보낼 것인가 어떤 영원을 보낼 것인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어진 육신의 때에 주신 환경에서 그 환경을 이겨 나가십시오. 주신 환경이 어떤 환경이든 주신 환경 그 상황에서 영혼의 때를 준비하십시다. 이 땅의 육신의 때는 잠시 잠간입니다. 그러나 이 육신의 때가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는 영혼의 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기 위해서 주신 육신의 때에 주어진 기회를 믿음으로 잘 선용하여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로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자.
1.사람이 태어났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라 하는 이름을 가진 이가 살았습니다. 부자는 많이 소유하였기에 살았을 때에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라 하는 이름을 가진 이는 가진 것이 없었기에 부잣집 대문간에서 구걸해서 얻어먹고 살아야 할 거지로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부자가 부자로서 즐기며 살았으며, 나사로가 거지로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 똑같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가 많이 소유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조금밖에 소유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가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하거나 잘못되었다 할 수 없고, 또 어떤 이가 적게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잘했다고, 인생은 그런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믿음 안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부자는 안되고 가난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많이 소유할 수 있고, 주시지 않아서 적게 소유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이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성공이고, 적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실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얼마만큼 소유했느냐 하는 소유의 유무다소가 그 인생의 전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약 1: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다르게 말하면, 소유를 많이 했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소유를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기죽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이 땅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많이 소유한 사람이든, 적게 소유한 사람이든 그 소유한 것을 가지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소유한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가야할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2절-‘이에 그 거지가 죽어.’ ‘부자도 죽어.’ 부자든 거지든 이 땅에서 아옹다옹하는 모든 것을 두고 죽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창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여러분과 저도 오늘 분명히 내 가슴에 기억합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 내게 일어날 일, 내 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나중에, 다음에, 차자 이런 일을 당해야지 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아니면 내가 원하는 때에 죽게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올 때에는 순서 있게 왔지만 갈 때에는 순서 없이 갑니다. 건강하다고 보장된 것이 아니라 건강해도 사고로도 갑니다. 나이가 젊다고 아직 나는 멀었다가 아니라 어린이들도 갑니다. 이 죽음에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장사는 없습니다. 이것을 당할 지혜와 지식이 없습니다. 지난밤에도 수만의 사람들이 이 세상의 생을 마치고 영혼이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생명을 가지고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생각하십니까 저가 오늘 이 거룩한 주일 아침에 기분 나쁜 말씀을 들려주어서 죄송합니다만 은 저는 여러분들을 기분 나쁘게 하려고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부자와 나사로가 당했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게 일어날 일이 된다는 것, 그래서 언제 내가 그런 일을 맞았을 때에라도 후회함이 없는 그런 생의 끝을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자로 세워지기를 원해서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 종을 통해서 전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오늘 내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언젠가 내게 닥쳐올 일들을 잘 준비된 자로 준비하는 자로 살아 라고 주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지금 생명 있을 때에 언젠가 닥쳐올 일들을 위하여 잘 준비된 자로 세워져야 하겠습니까 두 번째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2.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으면 끝이 되어버리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습니다.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베풀며 살든 움켜쥐며 살든, 하든 안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과 더불어 히브리서 9장27절은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합니다. 심판이 있다는 이 말은
1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참 안타까운 소식을 듣습니다. 몇칠전에도 빚을 져서 채무에 시달리다 못해 갚을 길이 없자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려 한 젊은 청년이 자살을 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십대들의 우상이었던 인기 가수가 삶의 공허와 허무를 달랠 길 없어 자살을 했습니다. 죽으면 그런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얼마나 경제가 어렵습니까 중소기업을 하는 한 사람은 도저히 회생가능성이 없자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합니다. 또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심정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이 중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때로는 자신의 문제로, 때로는 가정의 문제로, 때로는 자신의 장래와 일들에 너무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하고, 고통을 받을 때 ‘차라리 콱 죽어 버릴까 보다’, 아니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분명한 것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가 아니라,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로는 육신과 세상의 당한 현실로부터는 끝이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우리가 자연사를 하던, 병이 들어 죽던 죽으면 끝이다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왜 끝이 아닙니까 우리 사람들은 육체와 영혼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육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곧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없어진다. 즉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이유가 눈에 보이는 육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끝이라고 여기고, 또 그 육체를 땅에 묻으니 썩어 없어짐을 보고 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영혼입니다. 영혼은 비물질적인 것입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제한 받지 않기에 죽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삽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몸속에 있는 영혼이 육체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떠나서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영혼이라는 것은 담겨있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육체를 떠난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끝이 아니라 이 육신의 삶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영원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보십시오. 거지가 죽어 어디로 갔다고 합니까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국입니다. 부자가 죽어 어디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음부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지옥입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영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서 결정이 납니까 바로 육신의 생명이 있는 이 땅에서 결정이 납니다. 예수 안에서는 천국이요, 예수 밖에서는 아무리 고관대작이라고 해도 지옥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죄인이며 이 죄인 된 나를 위해 그분이 나의 죄를 담당하신 구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죽으면 천국에 이르게 될 줄 믿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나만 이런 은혜를 받아서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부모형제 친척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도 같이 죽어 천국에 이르도록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를 전합시다. 두 번째로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은
2이 땅에 살았을 때의 것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자면, 죽어 천국 가고, 지옥 간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사는 영혼의 때에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영혼의 때는 지옥에 있습니다.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는 영혼의 때의 모습은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그것도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영혼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불꽃으로 인하여 얼마나 목마른 고통이 있는지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라 구세주와 같은 영혼의 때로 보냅니다. 그가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육신의 때에는 부요한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영원히 거하는 영혼의 때는 자기집 대문밖에 있던 거지 나사로 보다 훨씬 가난한자가 되어 있습니다. 또 거지 나사로의 영혼의 때는 천국에 있습니다. 그의 영혼은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거하고 있습니다. 25절의 말씀에 보면 그는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의 때의 모습은 육신의 때에 가난한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요한 영혼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때에 어디서 보내는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로 보내는가, 가난한자로 보내는가 어떤 영혼의 때를 보내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혼을 영원히 보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의 때를 천국에서 보낼 때에 어떤 영혼을 영원히 보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혼의 때에 가난하자가 아니라, 부요한 자로 살수 있기 바랍니다. 영혼의 때에 적은 자가 아니라 큰 자로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의 때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혼의 때에 없는 자가 아니라 있는 자로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이 사실을 잊어버려 서는 안됩니다. 영혼의 때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 영혼의 때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 숨을 쉴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이 영혼의 때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으면 끝이 아니라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3.영혼의 때에 부요한 자로 세워지려면 여러분들은 영혼의 때에 천국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음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 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 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주어진 기회를 믿음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영혼의 때에 부요하고, 가난한 것의 차이는 어디에서 옵니까 25절에 보면, ‘살았을 때에’라고 합니다. 살았을 때에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영혼의 때의 부요하고, 가난한 것이 좌우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 믿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가 되느냐, 가난한 자가 되느냐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음으로 심느냐, 믿음으로 심지 않느냐가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가 되느냐 가난한자가 되느냐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열심히 주님을 믿고, 섬기느냐에 따라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가 되느냐 가난한자가 되느냐가 결정이 되어 집니다. 오늘 본문에 부자 나사로의 대문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부자 나사로에게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라고 주신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못합니다. 주어진 거기에 마음이 팔려 있어서 하나님도 필요 없었고, 거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의 때에 부요한 자로 세워주시기 위한 기회를 주신 줄 믿습니다. 시간 주셨습니다. 물질 주셨습니다. 믿음 주셨습니다. 건강 주셨습니다. 재능 주셨습니다. 은혜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엇입니까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게 하기 위한 기회인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엡 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 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3오늘이 나의 마지막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행하여야 합니다. (고후6: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 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내일은 나에게 보장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영혼의 때를 준비합시다. 우리가 지금 엉뚱한 생각, 엉뚱한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세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닙니다. 안일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히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가야 합니다. 주어진 오늘, 주어진 이 때에 영혼의 때에 부요한 자로 세워지도록 믿음으로 삽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지금 육신의 생명이 있을 이 때가 기회입니다. 27절 이하에 부자가 후회하며 간청합니다. 그러나 죽어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이 때만이 기회입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한 번은 죽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디서 영원을 보낼 것인가 어떤 영원을 보낼 것인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어진 육신의 때에 주신 환경에서 그 환경을 이겨 나가십시오. 주신 환경이 어떤 환경이든 주신 환경 그 상황에서 영혼의 때를 준비하십시다. 이 땅의 육신의 때는 잠시 잠간입니다. 그러나 이 육신의 때가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는 영혼의 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기 위해서 주신 육신의 때에 주어진 기회를 믿음으로 잘 선용하여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로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혼의 때에 부요한자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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