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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후(死後)의 영혼의 모습은 (눅16:19-31)

본문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 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결코 없어지거나 소멸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으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죽음이란 육신과 영혼이 분리를 말 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다시 부활의 영체로 살아나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알려주는 인간론의 일 부분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함께 생각해 볼 문제는 사람이 죽은 다음, 사망과 부활 사이에 존재하는 영혼의 상태'를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중간 상태,(Intermediate State)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 중간 상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강하게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긍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후에 시작될 영원한 시대, 곧 천국과 지옥을 알려 줌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죽은자 중에, 의인(義人)들의 영혼은 행복한 상태에 있고, 악인들의 영혼의 고난을 당하는 상태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죽음 이후의 인간에 대한 성경적 조명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신자)의 경우
(1) 회개한 강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2절, 43절에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할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 '낙원'이란 말은 누가복음 23:43, 고린도후서 12:4, 계시록 2:7절 등에서 세번 나오고 있습니다. 고린도서의 경우는 세째 하늘(삼층천)과 동일한 표현이고, 계시록은 최종 영원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한 '낙원'은 주님이 계시는 곳이며, 구원받은 자들의 영역이고 특별한 처소인 천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빌립보서의 조명 빌립보 1:21-23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 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것이 더욱 좋으나 ……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죽는것이 사는것 보다 더 유익 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가리켜서 '떠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떠난다'는 말은 '순간적 경험'을 뜻합니다. 떠나는 그 순간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그 순간, 나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3) 고린도서의 조명 고린도 후서 5:6-8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 주와 따로 거하는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도 몸을 떠나도 그 순간이 바로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 밖에서 죽은자(불신자)의 경우
(1)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의 조명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라고 하였습니다(눅16:23) 여기 '음부'는 히브리말 '스올'이고, 헬라어 번역에는 '하데스'입니다. 이 말은 무덤, 지옥, 구덩이 등으로 번역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무덤, 그리고 형벌의 장소(지옥)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 나타난 음부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은 목마른 고통이고(16:24),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는 고통이며,(눅16:24) 소원대로 되지 않는 고통이었습니다. 자신에게나, 이 세상에 있는 불신 형제 다섯에 대한 전도의 소원도 이루어 질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2) 베드로후서 2장 9절의 조명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 불의한 자란 불신자를 뜻합니다. 저들도 심판날까지(최후) 형벌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믿는자와 믿지 않는자의 사후 영혼이 실존함을 가르칩니다. 믿고 죽은 자의 영혼은 낙원(천국)에서 행복을 누리지만, 믿지 않고 죽은 자의 영혼은 음부(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 죽은 영혼의 의식적 존재와 활동 상태는 어떠한가
1. 잘못된 견해들이 있습니다
(1) 영혼 수면설(Psychopannchy)이 있습니다. 이 학설은 죽은 후에 사람의 영혼이 무의식 상태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때까지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감각과 인식이 멈추어져 버리고 잠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 영혼 멸절설(Annihilationism)이 있습니다. 이 영혼 멸절설은 사람은 본래 영생하도록 창조 되었으나 죄 가운데 죽은 영혼은 하나님께 그 불멸성을 박탈 당하였기 때문에, 긍극적으로 비존재의 상태에 들어가 버린다고 말합니다. 바리새교파는 악인의 영혼은 멸절한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증인'같은 이단 교파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은 지옥 교리를 부인하게 됩니다.
(3) 제2시련설이 있습니다. 이 학설은 사후 영혼의 의식적 존재를 인정 합니다. 이 학설은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자들이 내세에서 구원 얻을 기회를 다시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로마 카토릭 교회의 연옥 교리가 그 대표적인 경우 입니다. 1563년 트렌트종 교회의는 '연옥'이란 곳이 존재하며, 거기서 머물고 있는 영혼들은 신도들의 기도와 제물에 의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결정 하였습니다. 연옥은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의 영혼이 고통을 당하면서 정화되는 곳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고통에서 정화되는 것도 이 지상에서 그 친구들이 그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와 미사, 헌금, 면죄부 등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2) 성경의 가르침 성경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의식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천국에서 구속 받은 성도들이 잠자고 있으면서도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 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앞에 있는 9-10절의 말씀을 받아 나오는 결론으로 내세에서 경험하는 의식적 기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의로운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그의 형상을 보는 것을 만족 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7편 15절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 하리이다 고 하였습니다.
(3) 잠자는 중에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장 11절에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라고 하였습니다.
(4) 하늘 보좌에서 울려 퍼지는 새 노래 앞에 어찌 영이 잠들고 모른체 할 수 있는가 (계 5:9, 14:3)
(5) 하늘 보좌의 제단 아래 순교한 영혼들이 신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6:9-11).
(6) 밤낮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7:15).
(7) 보좌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20:4) (8) 더 확실한 내용은 예수님 자신께서 들려 주신 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명백히 나타납니다. 죽은 아브라함과 죽은 나사로 사이에, 그리고 죽은 아브라함과 죽은 부자 사이에 나타난 사후의 장면들이 분명히 영혼의 의식과 활동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시원함을, 뜨거움을 감지하는 상태로 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또 소원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 나사로와 부자 사이에는 전혀 교제가 불가능함을 보여 줍니다. 뿐만 아니라 한번 죽은 다음, 세상을 떠난 영혼은 다시 이 세상에 올 수도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성경 말씀에서 볼 때 초혼술(招魂術) 즉 혼을 불러온다는 말은 잘 못된 것 입니다. 죽은 자를 불러올 수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은 사탄,마귀의 술책입니다. 음부의 부자이건, 천국(낙원)에 있는 나사로건 막론하고 이 세상에 다시 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왕래가 불가능한 '큰 구렁'이 끼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중대한 교훈은 사후에도 영혼을 살아 있어서 의식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앞에 두고 그 영이 주와 더불어 즐거워하고 있고, 불신자의 영혼은 심판의 부활, 곧 사망의 부활을 앞에 두고 고통을 당하는 의식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영원한 사망의 부활을 앞에 두고 그 영이 주와 더불어 즐거워하고 있고, 불신자의 영혼은 심판의 부활 곧 사망의 부활을 앞에 두고 고통을 당하는 의식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이 '몸'과 '영혼'으로 구성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마10:28) 이 '몸'과 '영혼'이 잠시 갈라지는 것을 가르켜 '육체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한번이란 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은 여러번 나기도 하고 여러번 죽기도 할 수 없는 존재 입니다.
그러므로 힌두교나 불교의 윤회생사설(輪廻生死說)은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은 단 한번의 출생과 단 한번의 사망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단 한번의 부활과 단 한번의 최후적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죽음이 인생의 분깃점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이 인생의 분깃점이 됩니다. 그때는 죽은 자의 영혼이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한 것은 사람의 육신이 죽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까지의 사이에 있을 사건을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그 무덤에서 잠들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 특히 믿는 자의 영혼은 예수님과 함께 바로 낙원 곧 천국에 머물게 됩니다. 그 영혼은 의식적 활동이 있어 주와 함께 모든 것을 즐기게 됩니다. 믿지 않고 죽은 영혼은 음부(스올)에서, 의식적으로 고통하며,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아직 완전한 고통은 아닙니다. 마지막날에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육신이 다시 부활하여 완전한 영체가 되어 영별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죽은 후에 육체는 흙으로 돌아 가지만 그 영혼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은 후에 그 영혼은 잠을 자지 않습니다. 고통과 슬픔과 눈물이 없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무한한 영광과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유익 하다고 하였습니다. 흑인 영가에는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저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복음성가21)
1)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다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 차겠네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영원한 기쁨 있겠네
2)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기기는 기쁨만 있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찬송만 있네 세상의 근심은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 차겠네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영원한 기쁨 있겠네
3)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즐거움 있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사랑만 있네 인간의 욕심은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 차겠네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영원한 기쁨 있겠네 우리 주님이 거하시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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